<136화>
자하신공(紫霞神功)(2)
남량은 빠른 속도로 달려 매원향이 있는 산에 도착했다.
약도가 가리키는 곳으로 가자, 작은 사당 하나가 있었다.
‘범상치 않은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군.’
사당으로 가까이 다가간 남량은 문짝에 새겨진 매화 문양을 발견했다. 화산의 문양이었다.
‘여기가 매원향으로 가는 입구인가.’
남량은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직후, 사당에 펼쳐진 결계(結界)가 반응하며 몸이 뒤로 밀려났다.
‘수호 결계다. 장문인의 말대로야.’
남량은 화산 내공법을 운용하며 다시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이번에는 결계가 반응하지 않았다.
끼익-. 문을 열자 안쪽에서 강렬한 빛이 쏟아졌다.
남량은 눈을 감은 채, 사당 안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그렇게 몇 걸음을 걷자, 초성(草腥:풀냄새)이 났다.
눈을 뜬 남량은 주변을 둘러보며 탄성을 내뱉었다.
그는 매원(梅園:매화나무 밭) 한가운데 서 있었다.
사방에 흩날리는 꽃잎을 바라보며, 남량은 생각했다.
‘그 사당이 선계(仙界)로 가는 입구였던 모양이군.’
수라는 매원향의 기운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중얼거렸다.
-역겨운 곳이다. 인간. 어서 이곳을 떠나라.
“넌 조용히 하고 있어.”
일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남량은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한참을 걷자, 하늘거리는 옷을 입은 수십 명의 선인(仙人)들이 한바탕 연회를 벌이는 광경이 보였다.
신선들도 하는 짓은 인간과 다를 바가 없군.
남량의 입에서 절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때, 남량을 발견한 선인 한 명이 술병을 들고 다가왔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남량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매화 문양의 도복을 입고 있군. 화산의 도사인가?”
“그렇습니다. 혹시 광영자 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알고 있네. 그를 만나려면 따라오게.”
“감사합니다.”
남량은 선인의 안내를 받아 광영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넓은 공터에 도착하자, 비단옷을 입은 청년 한 명이 선녀들과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생각보다 경박한 자로군. 화산파의 시조는.’
남량은 장포를 펄럭이며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일단 화산파의 제자 신분이니 예를 갖춰야겠지.’
남량은 광영자에게 절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후손 남량이 화산파의 시조이신 검성(劍星) 광영자 대협을 뵙습니다. 자하신공을 전수받기 위해 왔습니다.”
광영자는 남량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문인치고는 나이가 어려 보이는군.”
“저는 장문인이 아닙니다.”
“그럼 자하신공을 전수할 수 없으니 돌아가.”
광영자는 손을 저었다. 다급해진 남량이 고개를 들며 외쳤다.
“마교가 무림맹을 점령했습니다. 이제 곧 무림의 명운을 건 전쟁이 벌어질 겁니다. 적은 너무나 강력하여 도저히 이길 수 없습니다. 그 사실을 알기에 현 장문인도 규율을 어기는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제발 자하신공을 전수해 주십시오.”
남량의 간청에도 광영자는 여전히 냉정한 반응을 보였다.
“선인들은 무림의 일에 관여하지 않아. 아무리 사정해도 그 부탁을 들어줄 수는 없어. 자하신공을 전수받고 싶다면 정식으로 장문인 자리에 오른 다음 장문령부를 가져오도록 해.”
“시간이 없습니다. 전쟁은 이제 열흘 남았습니다!”
“장문령부를 가져와. 그럼 전수해 줄게.”
똑같은 대답을 반복하자, 결국 남량의 성질이 폭발했다.
그는 벌떡 몸을 일으키며 광영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럼 무력으로 네놈을 제압하고 무공을 가져가겠다!”
남량의 손에는 어느새 화양검이 들려 있었다.
쇄애액! 남량은 낙영용섬 초식으로 검을 휘둘렀다.
직후, 광영자는 손등으로 칼날을 밀어냈다.
그리고 물 흐르듯 손을 뻗어 남량의 명치를 후려쳤다.
뻐억! 엄청난 충격을 받은 남량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바닥을 굴러 간신히 중심을 잡은 그가 명치를 부여잡았다.
‘속도도, 움직임도 모두 수준을 벗어나 있다. 손이 닿기 직전 사자금강으로 몸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당했을 거야.’
광영자는 눈에 이채를 띠며 말했다.
“본능적으로 반응한 건가. 사용하는 힘도 신선술에 가까워 보이는데……. 이것 참, 당돌할 뿐만 아니라 흥미로운 후손일세.”
남량은 몸을 일으키며 자세를 취했다.
“후손에게 험한 꼴 당하기 싫으면 무공을 내놔.”
“그 자세는 뭐지? 화산의 것은 맞는데 뭔가 달라.”
“매화천수검. 나의 스승이 만들어 낸 검법이다.”
“매화천수검! 구양중이 말했던 그 검술인가.”
광영자는 남량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서라. 네가 아니라 무신(武神)이 와도 이 공간에서 나를 이길 수는 없어. 그래도 내 후손이니 방금 전의 무례는 못 본 척 넘어가 줄 테니까 조용히 돌아가.”
남량은 냉소를 흘리며 대꾸했다.
“말했을 텐데. 무력으로 네놈을 제압하고 무공을 가져가겠다고. 무신이 와도 이길 수 없다면, 수라는 어떤가?”
화르르륵!
남량의 전신이 검은 불꽃에 휩싸이며 수라로 변했다.
광영자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가 중얼거렸다.
“몸 안에 괴상한 것을 집어넣고 다니는구나.”
“각오해라.”
콰앙! 남량이 바닥을 박차고 야수처럼 쇄도했다.
***
찬야는 무림학관에 도착한 장탁과 만났다.
잠깐 대화를 나눈 다음, 장탁이 서책 한 권을 내밀었다.
서책을 받은 찬야는 장탁에게 물었다.
“잔영보법(殘影步法)? 이게 뭡니까?”
“회주님께서 찬야 도장에게 남기신 유품입니다.”
장탁은 품에서 서신을 한 장 꺼내 주었다.
찬야는 서신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찬야. 언젠가 이걸 너에게 줄 생각이었지만 이 서신을 읽고 있다면 내 유품이 되겠구나. 잔영보법은 내가 가진 무공 가운데 가장 훌륭한 무공이란다. 신검합일의 경지에 든 너지만 앞으로 강한 적들을 상대할 테니 필요할 것이다. 잔영보법을 완성하게 되면 적이 너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없을 거야. 마교의 간부와 싸울 때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찬야는 망설였다.
‘정식적인 후계자도 아닌 내가 이걸 익힐 자격이 있을까?’
찬야의 마음을 읽은 장탁이 그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당신은 회주님의 유일한 후계자입니다. 그 무공으로 마교를 물리치고 무림을 구하십시오.”
“장 대협…….”
잠시 고민하던 찬야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분의 뜻은, 제가 이어받겠습니다.”
한편, 위지혁은 독왕을 찾아가 고개 숙여 부탁했다.
“스승님. 저에게 만령독(萬靈毒)을 전수해 주십시오.”
만령독이란, 독왕이 가진 최강의 독술(毒術) 중 하나였다.
독왕은 위지혁에게 자신이 가진 독술을 대부분 전수했는데, 딱 세 가지만 전수하지 않았다. 이유는, 그것들이 가문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비기(秘技)였기 때문이었다.
제아무리 위지혁을 제자로 받아들였다지만, 엄밀히 말해 그는 외인(外人)이었다. 외인에게 가문의 비기를 전수할 수는 없었다.
잠시 침묵하던 독왕, 당지황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건 곤란한데. 허락도 없이 비기를 전수했다간 가문이 발칵 뒤집힐 거다. 원로원의 늙은이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위지혁이 이를 악물었다.
“그렇군요.”
“너만의 독술을 만들어 낸다면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
이어진 당지황의 말에, 위지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만의……. 독술?”
“그래. 만령독술을 알려 주겠다. 대신, 그것을 가지고 너만의 독술을 새롭게 창조해 내는 거다. 어떠냐? 할 수 있겠느냐?”
새로운 독술이라! 위지혁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그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청출어람이 무엇인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유라는 텅 빈 공터에서 홀로 초식을 수련하고 있었다.
검로(劍路)를 따라 아름다운 불꽃의 잔상이 일렁거렸다.
‘도달해야 한다. 삼매진화의 최고 경지에.’
삼매진화가 극한에 다다르면 불꽃의 색이 하얗게 변하는데, 바로 백색화염(白色火焰)의 경지였다.
전설에 따르면, 백색화염의 위력은 물질을 넘어 기(氣)조차 태워 버릴 정도로 강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 경지에 오르는 때가, 마교의 간부를 넘어서는 때다.’
유라는 기합을 내지르며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연무장에 선 운휘는, 도제 팽인호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저를 있는 힘껏 때려 주세요.”
“내가 있는 힘껏 때리면 넌 죽는다.”
“그럼 조금만 힘을 조절해서…….”
“금강불괴의 신체를 단련하기 위해서냐?”
운휘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당장 검술을 수련하는 것보다, 제가 가진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려고요. 찬야가 창(槍), 유라가 검(劍), 위지혁이 활(弓)이라면, 저는 방패가 될 겁니다.”
“각오가 섰다는 말이군. 알았다.”
쩌엉! 운휘는 팽인호의 주먹을 맞고 포탄처럼 날아가 연무장 벽에 처박혔다.
바닥에 쓰러진 그는, 속으로 비명을 내뱉었다.
‘장난 아니네.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겠어.’
운휘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할 수 있겠느냐?”
팽인호의 물음에, 운휘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
검을 내린 광영자는 쓰러진 남량을 향해 말했다.
“내가 검을 들게 만들 줄이야. 대단하군.”
바닥에 쓰러진 남량은 울컥 피를 내뱉었다.
그의 전신은 크고 작은 검상으로 가득했다.
‘수라의 재생력으로도 상처를 회복할 수 없다니…….’
광영자는 손가락 끝에서 자색 불꽃을 만들어 내며 말했다.
“상처가 재생되지 않는 이유를 말해 줄까? 바로 자하신공의 힘 때문이야. 자하신공은 특별한 운공법을 통해 선기(仙氣)에 가까운 정순한 기운을 만들어 내지. 그렇게 발현된 이 자색 불꽃은 그 어떤 기운보다도 강하다.”
남량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럼 더더욱 물러날 수 없다. 탄영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그 힘이 반드시 필요해…….”
남량을 말없이 내려다보던 광영자가 대뜸 물었다.
“이유가 뭐냐?”
“뭐?”
“자하신공을 얻고 싶은 이유가 뭐냐고.”
“그거야 당연히…….”
복수를 위해서-. 라고 대답하려던 남량은 순간 멈칫했다.
정말인가? 단지 복수를 위해서 자하신공을 얻으려는 건가?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순간, 남량은 진심을 깨달았다.
“지키기 위해서다.”
“무엇을?”
“동료들을. 그리고 스승이 사랑했던 이 문파를.”
마침내 자신의 마음을 정면으로 마주한 남량은 웃었다.
‘우습구나. 그저 한바탕 꿈이라도 생각했는데…….’
그때, 광영자가 검을 거두며 손을 내밀었다.
“그 대답이면 충분해.”
남량은 광영자가 내민 손을 응시하며 물었다.
“이건……. 무슨 뜻이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네 진심을.”
광영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냐하면 너는 ‘진짜’ 남량이 아니니까.”
그 말의 의미를 눈치챈 남량은 깜짝 놀랐다.
“내가 환생한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나?”
“신선의 경지에 오른 자의 눈에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이 보이는 법이지.”
광영자가 덧붙여 말했다.
“아무래도 너는 진정한 화산의 도사가 맞는 것 같군.”
남량은 눈을 크게 떴다.
“그렇다면…….”
“너를 인정할게. 자하신공을 전수해 줄 테니 일어나.”
수라화를 해제한 남량은 광영자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인간! 내게 몸을 넘겨라! 저놈을 두들겨 패 버리고 말겠다!
머릿속에서 자존심이 상한 수라의 외침이 들려왔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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