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자하신공(紫霞神功)(3)
“자하신공을 익히기 위해서는 내력을 모두 소모하고 매원향의 선기(仙氣)로 단전을 채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전쟁이 앞으로 열흘 정도 남았다고 했지? 시간이 없으니 당장 수련을 시작하자.”
광영자의 말에, 남량이 물었다.
“시간이 촉박한 건 맞지만 휴식은 필요한 것 아닙니까?”
“아까는 잘도 반말을 하더니 다시 존댓말인가?”
“제가 무례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광영자는 웃으며 말했다.
“선도(仙道)를 아느냐? 도가의 선술을 사용하면 상처를 낫게 하고 기력을 끌어올릴 수 있게 된다. 네가 익힌 선술도 비슷한 것이다.”
그의 말투도 이전보다 한층 엄숙해져 있었다.
“천양신경…….”
각운 선사의 심득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구나.
화륵! 광영자는 전신에 자색 불꽃을 피워 올렸다.
“선기를 채우고 자하신공의 운공법에 따라 내력을 운용하게 되면 이렇게 기(氣)가 자색 불꽃의 형상을 띠게 된다. 이것이 자하신공의 첫 단계인 발현(發現)이다. 네가 이 단계에 오르게 되면 힘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 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미리 말해 두는데…….”
쇄액! 광영자는 순식간에 쇄도하며 수직으로 검을 휘둘렀다.
순간, 남량은 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지는 착각이 들었다.
검을 들어 막았을 땐, 이미 충격으로 전신이 마비된 후였다.
“크윽!”
광영자는 신음하는 남량을 향해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한창 검성(劍星)으로 불렸을 때에도, 힘 조절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선술로 치료해 준다고는 했지만 잘못해서 죽일 수도 있어.”
퍼억! 광영자는 남량의 가슴팍을 걷어차 날려 보냈다.
“참, 그리고 수라화는 하지 마라. 선기를 채우는 동안 불순한 사기(邪氣)가 섞이면 안 된다.”
남량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이 수련은 자하신공을 익힐 뿐 아니라 검술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어쩌면 내가 목표로 하고 있었던 또 하나의 경지인 우주검(宇宙劍)의 경지로 가는 해답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최선을 다해서 임한다.’
그는 호흡을 고르며 자세를 취했다.
“제 목숨 정도는 충분히 지킬 수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음. 훌륭한 투지다. 그럼 마음 놓고 공격하마.”
파파파팟! 광영자와 남량은 동시에 몸을 날리며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
무한에서 남량과 헤어진 낭연청은 무림맹으로 향했다.
물론 탄영의 편에 서기 위해 가는 것은 아니었다.
진실을 들은 순간, 마교는 이미 그녀의 적이 되었다.
무림맹으로 가는 목적은 탄영의 약점을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혈마의 힘을 완전히 흡수한 탄영은 천하의 명왕을 쓰러뜨릴 정도로 강해졌다. 기습을 한다고 해도 내 힘으로 그녀를 죽이는 건 역부족이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교주님께 도움이 될 방법은 이것뿐이다. 다행히도 저들은 내가 배신했다는 사실을 모르니…….’
이 말을 들은 남량은 완강하게 반대했다.
그녀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난 소중한 주군이자 정인(情人)을 의심하고 다치게 만들었어. 이렇게라도 해야 그 죄책감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것 같아.’
만약 들킨다고 해도 무사히 빠져나올 자신이 있었다.
지둔술을 사용해 땅속으로 들어가면 누가 잡겠는가?
‘슬슬 도착하겠군.’
무림맹에 도착한 낭연청은 엄청난 광경을 마주하고 입을 쩍 벌렸다. 거대한 광장에는 병사 수천이 대오(隊伍)를 갖춘 채로 서 있었다.
‘혈마의 힘을 사용해 무림맹 대원들을 수하로 만든 것인가.’
낭연청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전쟁, 처음부터 쉽지 않겠어.’
그때, 멀리서 그녀의 기운을 느낀 도올 사환이 다가왔다.
낭연청은 그를 응시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강해졌다. 탄영에게서 더 많은 힘을 받은 건가? 이 정도면 칠령귀의 수준은 한참 넘어섰다고 봐도 되겠군.’
사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사하셨군요. 당신도 당한 줄 알고 걱정했습니다.”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다.
낭연청은 최대한 의연하게 대답했다.
“무시하는 거냐? 내가 누군 줄 몰라서 그따위 말을 지껄여?”
“참. 그랬지요. 당신이 도주의 귀재였다는 것을 깜빡했습니다.”
가볍게 웃은 사환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런데 주인님께 바로 보고를 올리지 않으셨더군요. 덕분에 소식을 받는 것이 조금 늦었습니다. 그동안 무얼 하고 계셨습니까?”
낭연청은 속으로 당황했으나, 곧 침착하게 대꾸했다.
“도망치는 도중에 상처를 입어서 몸을 숨기느라 그럴 겨를이 없었다.”
“아, 그랬습니까?”
“그런데 저기 있는 것들 말고 흑영대주나 총대주 같은 자들도 똑같이 세뇌시킨 거냐?”
낭연청은 다급히 화제를 돌렸다. 다행히 사환은 별 의심 없이 넘어가는 듯했다.
“네. 맹주도 수하로 만들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를 산 채로 잡는 건 강해진 주인님으로서도 불가능했던 모양이더군요.”
“그래…….”
낭연청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무신을 적으로 상대하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사환은 광장을 내려다보며 스산한 웃음을 내뱉었다.
“뭐, 그런 것 없어도 무림을 쓸어버리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겠지만요. 놈들이 이곳에 도착해서 이 광경을 보는 순간,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만 해도 기대됩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말했다.
“가시지요. 주인님을 뵈러.”
낭연청은 사환과 함께 맹주전으로 향했다.
그곳은 격렬한 전투로 인해 반파되어 있었다.
대전에 들어서자, 태사의에 앉아 있던 탄영이 입을 열었다.
“역시 너는 살아서 돌아올 줄 알았어. 낭연청.”
“복귀가 늦어 죄송합니다. 탄영 님.”
고개를 숙인 낭연청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탄영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이전과 차원이 달랐다.
이런 위압감은 천마에게서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탄영은 정말 신이라도 된 것인가?’
탄영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에게 하나 물어볼게 있어. 천마와 나를 비교했을 때 누가 더 대단해 보여? 응? 솔직하게 대답해 봐.”
낭연청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대답했다.
“탄영 님이 더 대단하십니다.”
“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깔깔. 나도 같은 생각이야.”
한참을 웃던 탄영이 말했다.
“이 경지에 오르니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더라. 예를 들면 눈앞의 인물이 어떤 감정을 감추고 있는지 말이야. 천마가 이 경지에 올랐다면 우리가 배신할 거라는 걸 금방 알아챘을 테지. 그래서 말인데, 낭연청.”
말을 마친 탄영이 낭연청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붉은 기운이 뻗어 와 낭연청의 목을 휘감고 끌어 올렸다.
공중에 매달린 낭연청은 컥, 하고 신음을 흘렸다.
“너는 어째서 나에게 적의(敵意)를 품고 있지?”
탄영이 서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낭연청은 대답하는 대신, 검을 휘둘러 붉은 기운을 잘라 냈다.
바닥에 떨어진 그녀는 쿨럭 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네놈들이……. 내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느냐!”
그 말에 탄영이 표정을 찌푸렸다.
“어떻게 알았지? 지월과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인데.”
낭연청은 분노로 이를 부득 갈았다.
“네놈들 때문에 나는 그분을……. 배반하고 말았다.”
“우리 탓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하! 네가 진심으로 천마를 믿었다면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지도 않았을 테지. 안 그래?”
낭연청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탄영은 계속 말했다.
“결국 위광은 부하에게도, 정인에게도 배신당한 채 쓸쓸하게 죽은 한심한 인간일 뿐이야.”
“그 입 다물지 못해-!!!”
낭연청은 탄영을 향해 자신의 절기, 흑살검을 날렸다.
“멍청한 년. 이런 허접한 도발에 걸려서는!”
코웃음을 친 탄영이 손을 휘저어 흑살검을 막아 낸 다음, 붉은 기운을 쏘아 보냈다.
쩌엉! 탄영의 공격을 막아 낸 낭연청이 바닥을 굴렀다.
“으윽…….”
태사의에서 일어난 탄영이 쓰러진 낭연청을 향해 걸어왔다.
“지월이 아끼는 널 건들 생각은 없었는데……. 사실을 알아버린 이상 어쩔 수 없지. 다시 교의 충직한 하인으로 만들어 줄 테니 기뻐해.”
낭연청은 다가오는 탄영을 응시하며 속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교주님…….’
그녀의 의식은, 곧 혈마의 기운에 사로잡혀 버렸다.
탄영은 고개를 돌려 궁기 담승을 향해 물었다.
“무림 세력들의 위치는?”
“낙양으로 집결 중입니다.”
“멍청한 놈들. 이곳이 자신들의 죽을 자리가 될지도 모르고……. 그래. 어서 모여들어라.”
탄영의 웃음소리가 허공에 울렸다.
***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인지 모르겠다.
눈을 뜬 남량은 매원향의 청량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이걸로 수련은 끝인가.”
방금 자하신공의 여섯 단계 중 마지막 단계의 수련을 마쳤다.
확실히 이전과는 몸이 달라진 기분이 들었다.
‘화경(化境)의 경지라.’
남북 십성과 같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초인의 경지.
수라의 힘이 없이도 그들과 같은 반열에 오른 것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광영자는 헛웃음을 흘렸다.
‘정말 열흘 안에 자하신공을 대성할 줄이야.’
직접 가르치고도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광영자는 멍하니 서 있는 남량에게 말했다.
“수련이 끝났으면 어서 갈 준비를 해야지. 뭐 하고 있는 거냐?”
고개를 돌린 남량이 덤덤히 대꾸했다.
“여기서 낙양까지 하루면 충분합니다.”
광영자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펑, 하고 허공에 현세로 나가는 문이 생겨났다.
“명심해라. 자하신공을 익혔다고 해도 승패의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모든 건 너에게 달려 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 가거라. 화산의 이름으로 악적(惡敵)을 처단해라.”
남량은 마지막으로 절을 올린 다음, 문을 열고 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광영자가 말했다.
“이겨라. 이겨서 너에게 주어진 과업(課業)을 완수하거라.”
현세로 돌아온 남량은 동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그럼, 가 볼까.”
쉬웅-! 남량이 사라진 자리에 한 줄기 돌풍이 일어났다.
***
한편, 북경(北京).
전운이 미치지 않은 평화로운 그곳에, 한 사내가 있었다.
찻집에서 차를 마시던 그는 고개를 돌려 낙양 쪽을 응시했다.
“영웅들이 한데 모이고 있군. 이제 시작하려는 건가.”
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계속 중얼거렸다.
“혈마의 힘을 얻은 탄영과 남북 십성의 대결……. 하늘은 누구의 손을 들어 줄 것인지 궁금하군.”
사내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아름다운 외모의 여인이 말했다.
“무림인들에게 승산이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무림인들의 저력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대단하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그들의 필패(必敗)입니다. 무신마저 당한 지금, 남은 십성들 중에서는 탄영 님에게 대적할 만한 적수가 없습니다.”
사내는 차를 마시며 말했다.
“혹시 모르지. 남북 십성이 아닌 다른 사람일지도.”
여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설마, 남량?”
“글쎄……. 후후.”
사내는 의미심장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때, 사내의 곁으로 검은 죽립을 쓴 사내가 다가왔다.
“황제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지월(地月) 님.”
“오랜만의 나들이인데 우리 황제께서는 잠시도 나를 가만히 두지 않으시는구나. 하하.”
사내는 의자를 밀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가자. 황궁으로.”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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