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홍룡표국(紅龍鏢局)(4)
표행을 떠난 지 두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남량은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국경인가.”
진표의 예상대로 표행은 험난했다.
홍룡표국의 전력이 만만치 않음을 깨달은 천하 오대 상단은 더 강하고 많은 인원을 보내 공격을 해왔다.
아무리 홍룡표국의 표사들이 유능한 인재들이라 하나, 하루가 멀다 하고 전투를 치르며 멀쩡할 수는 없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 표사 삼십 명이 죽었다.
남량이 있는데도 무려 삼십 명이 죽은 것이다.
그날도 한 차례 기습을 막아 내고 야영을 했다.
표사들과 쟁자수들은 천막을 치자마자 잠들었다.
힘든 여정으로 다들 피로가 극에 달한 것이다.
진표는 이런 것들을 고려해 불침번을 서는 표사들의 숫자를 최대한으로 줄였다.
“더 이상의 강행은 무리입니다.”
대행수 고담이 연신 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는 며칠 전부터 심한 열병을 앓고 있었다.
표행을 이끄느라 몸을 돌보지 않은 탓이었다.
진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국경을 넘기 전 마지막 도시에 들러 하루 쉬고 가시지요.”
남량의 표정이 굳어졌다.
‘큰일이군. 천하 오대 상단도 국경을 넘으면 추격이 어렵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분명 총력전을 걸어올 것이다. 조금 무리해서라도 내일 국경을 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지만……. 대행수의 말대로 표사들과 쟁자수들의 체력은 한계에 다다른 지 오래야. 행수 본인도 당장 휴식을 취해야 되는 상태고.’
답답해진 남량은 쯧, 하고 혀를 찼다.
‘결국 최선을 다해 막아 내는 수밖에 없나.’
다음 날, 객잔에 도착한 일행은 짐을 풀었다.
“그래도 오늘은 지붕 아래서 자는 건가…….”
“오늘 밤은 제발 아무 일 없이 지나갔으면 좋겠는데.”
표사들은 반 시진마다 교대하며 객잔을 지켰다.
남량은 지붕 위에 앉아 적들의 습격에 대비했다.
‘해가 지는군. 밤이 깊어지면 움직일 테지.’
남량의 예상대로 해시(亥時:21∼23시)가 되었을 때, 살기를 품은 자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와라. 누가 오든 전부 죽여 주마.’
남량이 화양검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자객들 중 가장 강한 기운을 가진 열 명이 지붕으로 다가오는 것이 감지되었다.
남량의 입가에 차가운 냉소가 떠올랐다.
‘이것들이……. 나를 막기 위해 별동대를 꾸렸구나.’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파계승(破戒僧)으로 보이는 두 남자였다.
그들은 검은 장삼 차림에 손에는 긴 봉을 들고 있었다.
“그대가 매화검수, 백매화 남량이신가.”
“우리는 한때 소림의 제자였던, 지금은 강호에서 염마귀(炎魔鬼)로 불리는 황요(黃曜)와 황정(黃政)이라네.”
‘절정.’
파계승들의 내력을 확인한 남량이 고개를 돌렸다.
다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자는 집채만 한 체구의 거한이었다.
그는 히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나는 산동의 권왕(拳王), 양표(陽豹)다. 매화검수 남량. 네놈이 얼마나 강한지 보려고 왔다.”
‘초절정.’
이번에는 뒤쪽에서 흑색 장포를 입은 두 명의 노인이 나타났다. 그들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백매화 남량. 소문대로 미색이 대단하군. 내력도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야.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가. 소청(小淸)?”
“확실히 강해 보이는군. 우리 냉귀쌍검(冷鬼雙劍)의 명성을 떨치기에 아주 좋은 먹잇감이네. 대량(大樑).”
‘절정.’
검은 망토를 펄럭이며 두 명의 암살자가 소리 없이 지붕에 착지했다. 한 명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일영(一影). 백매화 말고 나머지 놈들은 어찌할까요?”
“적당히 이용하다 방해되면 해치운다. 칠영(七影).”
‘절정.’
염마귀 중 황요가 암살자들을 향해 말했다.
“보아하니 살막(殺幕) 소속인 것 같은데, 백매화를 잡으려면 견제가 아니라 협력을 해야 하네.”
“우리는 협력 따위 하지 않는다.”
일영이라 불린 암살자가 싸늘히 대꾸했다.
다음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두 명이었다.
“반갑네. 백매화. 언젠가 한 번 만나 보고 싶었는데…….”
“우리는 염라좌수(閻羅左手), 염라우수(閻羅右手)라 불리는 사람들일세. 자네를 죽인 사람의 이름이 될 테니 기억해 두도록 하게나.”
‘절정.’
마지막으로, 두 손에 쌍검을 든 중년 사내가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자네가 폭혈검객 장태정을 쓰러뜨린 백매화로군.”
‘초절정.’
사내는 남량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장태정을 죽인 자가 누구인지 궁금했네. 참, 소개가 늦었군. 노부의 이름은 사마천(司馬天)일세.”
챙챙챙챙!
객잔 아래에서 한바탕 전투가 벌어졌다.
표사들은 표물을 지키며 분투했으나, 수적 열세로 인해 오래 버티지는 못할 듯했다.
‘일다경. 그 안에 이놈들을 전부 쳐 죽이고 객잔 아래 상황을 돕는다.’
판단을 마친 남량은 싸늘한 눈으로 자객들을 응시했다.
“놈의 기세가 달라졌군. 모두 조심하시게.”
사마천이 말했다. 그러자 남량이 피식 웃었다.
“경고한다고 뭐가 달라지느냐?”
말을 끝내자마자 남량이 벼락처럼 몸을 날렸다.
그가 가장 먼저 노린 건 방심하고 있던 염라좌수였다.
파파팟!
월인비를 펼친 남량이 염라좌수의 배후를 잡았다.
자객들 중 누구 한 명 알아차리지 못한 귀신같은 솜씨였다.
촤악-!
남량은 섬전 같은 일검(一劍)으로 염라좌수의 목을 베었다.
그의 목이 허공에 떠오르고 몸뚱이가 지붕 아래로 추락했다.
“좌수! 이런 빌어먹을-.”
깜짝 놀란 염라우수가 뒤늦게 분노하며 남량을 향해 수공(手功)을 펼쳤다.
남량은 염라우수의 수공을 피하며 그의 팔을 베었다. 동시에 화산의 장공(掌功)인 낙화추영장(落花追影掌)을 전개해 그의 가슴팍에 일장을 날렸다.
퍼퍼퍽!
공격을 당한 염라우수가 피를 울컥 내뱉으며 절명했다.
자객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염라우수, 염라좌수는 사천에서 제법 악명을 떨친 사파의 거두(巨頭)였다. 저 둘의 합공은 초절정의 고수마저 능히 상대할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 둘이 손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당해버린 것이다.
남량은 곧장 다음 상대를 찾아 움직였다.
“거, 정말 늑대같이 민첩한 놈일세.”
남량을 향해 쇄도한 권왕 양표가 태산 같은 주먹을 휘둘렀다.
쇄애애액! 묵직한 권강(拳罡)이 날아들었다. 남량은 몸을 빙글 돌리며 권강을 피해 냈다.
그 틈을 노리고 염마귀 황요와 황정이 동시에 봉을 내질렀다. 소림의 나한신곤(羅漢神棍)이 봉끝에서 펼쳐졌다.
그 순간, 남량의 몸에서 황금빛 방어막이 생성되며 두 파계승의 공격을 막아 냈다. 천양신경의 사자금강 능력이었다.
“엇!”
공격이 막히자 그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남량은 곧장 낙영용섬 초식으로 검을 휘둘렀다.
번쩍! 하고 섬광이 일며 황요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크윽! 이놈이 황요를…….”
황정이 분노하며 연격을 가하려는 때였다.
남량이 화산의 응조공(應爪功)을 펼치며 황정의 가슴을 찍었다. 황정은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죽어 버렸다.
슈슈슈슉!
일순, 바람을 가르며 날카로운 비수가 날아들었다.
은신한 일영과 칠영이 암기술을 펼친 것이다.
남량은 날아드는 비수를 허공에서 잡아챈 다음, 내력을 실어 반대로 던졌다. 화산파의 암기술인 매화비(梅花匕)였다.
퍼퍽!
비수는 은신해 있던 칠영의 미간에 정확히 박혔다. 깜짝 놀란 칠영의 눈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칠영……! 이게 대체…….”
일영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쓰러진 칠영과 남량을 번갈아 응시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관전만 하던 사마천이 헛웃음을 흘렸다.
‘날아드는 비수를 잡아채 던진 기술도 신기(神技)에 가까우나, 정말 대단한 것은 저 다급한 상황에서도 은신해 있던 살막의 암살자를 정확히 찾아냈다는 점이야. 백매화. 놈의 명성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쇄애액!
기척을 지우고 남량의 등 뒤로 접근한 냉귀쌍검이 유성처럼 빠른 일격을 날렸다.
퍼퍼퍽!
남량은 몸을 빙글 회전시키며 화산파의 소엽퇴법(掃葉腿法)을 펼쳐 검격을 막아 냈다.
“화운용무.”
화르륵-!
남량의 검끝에서 불꽃이 일었다. 불을 휘감은 검이 냉귀쌍검 중 대량의 목을 베었다.
“백매화. 네 이놈-!”
소청이 이를 갈며 검을 휘둘렀다. 남량은 공중으로 몸을 띄워 소청의 검격을 피해 냄과 동시에 수직으로 검을 내리쳤다.
“뇌전포화.”
콰르릉!
우레 소리를 동반한 검격이 소청의 몸뚱이를 반으로 쪼개 버렸다. 이제 남은 건 단 세 명뿐이었다.
“흐흐. 차라리 잘되었다. 걸리적거리는 놈들이 없으니 둘이서 제대로 승부를 보자.”
씩 웃은 양표가 지붕을 박차고 남량을 향해 쇄도했다.
그는 강기를 머금은 주먹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쾅! 쾅쾅쾅!
남량은 권강을 막아 내는 대신 아슬아슬하게 피해 냈다.
그때, 소리 없이 접근한 일영이 뒤에서 목을 노려왔다.
‘칠영의 복수다. 내 손으로 끝장내 주마!’
그 순간, 남량이 화산의 금나수(擒拿手)법인 난화무영수(蘭花無影手)를 전개해 일영의 목을 붙잡았다.
목을 붙잡힌 일영이 눈을 부릅떴다.
콰득! 남량이 손에 힘을 주자 일영의 목이 부러졌다.
그사이 양표의 주먹이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쩌엉! 양표의 주먹은 사자금강에 의해 튕겨 나갔다.
남량은 사자금강을 해제하며 매화천수검의 유성추월 초식으로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검강의 소용돌이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양표를 공격해 왔다.
“어림없다! 이까짓 것!”
양표는 괴성을 지르며 주먹으로 소용돌이를 받아쳤다.
쩌어엉! 강기의 충돌로 인해 충격파가 발생했다.
뒤로 밀려난 양표는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크윽. 제법 묵직한데. 허나 이 정도로는 아직 멀었…….”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량이 재차 돌진해 왔다.
쇄애액! 낙영용섬 진(眞)의 참격이 빛살 같은 속도로 날아들었다. 양표는 당황하며 호신강기를 펼쳐 막았다.
그러나 남량의 공격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단천열화.”
콰콰콰콰콱!
광범위한 참격이 터져 나오며 양표의 전신을 도륙했다.
아홉 명의 자객들이 전부 당해 버렸다. 이제 남은 건 사마천뿐이었다.
남량은 피에 젖은 눈으로 사마천을 바라보았다.
‘그 눈. 마치 지옥의 수라와 같구나.’
사마천은 쌍검을 치켜들며 남량을 향해 달려들었다.
‘길게 끌 것 없이 단 한 수로 끝내자.’
인정하긴 싫지만 지켜본 결과, 남량의 전투 능력은 자신을 훨씬 상회했다.
싸움을 오래 끌어 봐야 이쪽에 득이 될 것이 전혀 없었다.
“나선만참(螺線萬斬).”
푸른 검강이 나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렸다.
남량은 곧바로 매화천수검의 9초식, 천류신화를 펼쳤다.
매화의 꽃잎이 휘날리며 사마천을 뒤덮은 것과, 나선의 검강이 남량을 공격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콰아앙!
남량은 사마천의 검강을 받아 냈으나 검을 든 오른쪽 어깨와 팔에 피가 튀었다.
매화의 검강에 뒤덮인 사마천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크윽…….”
남량은 신음을 흘리며 신유유합 능력으로 다친 팔을 치료했다. 녹색 불꽃이 팔을 두르자 상처는 금방 나았다.
‘참, 아래 상황은 어찌 되었지?’
남량은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지붕을 부수고 안으로 내려왔다.
객잔 내부를 둘러본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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