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홍룡표국(紅龍鏢局)(3)
대결 이후, 표국 내에서 남량을 대하는 시선이 달라졌다.
“저기 봐. 저 도사님…….”
“아, 저분이 표사 60명을 제압했다는 소문의?”
“손도 쓰지 않고 기백? 뭐 그런 걸로 제압했대.”
“세상에. 그런 게 정말 가능하단 말이야?”
“그런데 정말 아름답다. 꼭 선녀 같아.”
어딜 가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으며.
“도장님. 어디 불편한 점은 없으십니까? 하하하…….”
고담은 하루에 열 번을 넘게 찾아와 안부를 묻고.
“도장님. 저랑 차 한잔하시겠습니까?”
진표는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차를 권했다.
가장 태도가 달라진 건 표두와 표사들이었다.
그들은 남량의 발 앞에 엎드리며 부탁을 해 왔다.
“도장님. 저희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십시오!”
왕보는 고개를 들며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미령상단을 제외한 나머지 천하 오대 상단은 홍룡표국의 표행을 막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암수를 막아 내려면 저희도 지금보다 강해져야 합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부탁드립니다!”
왕보를 비롯한 표사들이 바닥에 이마를 찍었다.
잠시 고민하던 남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표행의 안전에 도움이 된다면…….”
왕보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미리 말해 두는데 큰 기대는 하지 마세요. 기껏해야 자세를 교정하거나 초식을 봐주는 정도일 겁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표사들은 크게 기뻐하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그렇게 표행을 떠나기 전, 짧은 기간 동안 남량은 표사들을 지도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서로 목숨을 걸고 펼치는 싸움은 화려한 초식을 동반하지 않습니다. 명심해야 할 건 두 가지. 정확성과 속도입니다. 누가 먼저 정확하게 적의 급소를 찌르느냐. 그것이 중요합니다.”
경청하던 표사 한 명이 손을 들며 물었다.
“그럼 첫 일수(一手)는 어디를 노리는 것이 현명합니까?”
“자신의 경지가 상대방보다 높다고 판단하면 뜻대로 하시고, 반대로 상대가 자신보다 경지가 높다고 여겨질 시에는…….”
남량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고환을 노리세요.”
“고, 고환이요?”
“가장 방비가 허술한, 최고의 급소가 바로 고환입니다. 생사가 걸린 대결에서 이기려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저도 가끔 씁니다.”
표사들이 나직이 감탄했다.
“오오……. 명문 정파에서도 그런 잔인한 수를 사용하는군.”
저 멀리서 장문인이 분노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남량의 지도를 받은 표사들은 겨우 닷새 동안 눈에 띌 정도로 실력이 변했고, 총표두와 행수, 국주까지 그 변화를 기꺼워했다.
그리고 마침내 표행을 떠나는 날이 다가왔다.
***
표행 당일, 아침에 일어난 남량은 운기조식을 마치고 객실을 나왔다. 외원(外苑)에는 표행 준비를 마친 홍룡표국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그 뒤에는 표물을 실은 표차(鏢車)가 늘어져 있었다.
국주 장휴는 대행수 고담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부디 성공하고 돌아오너라. 한 사람도 다치는 일 없이.”
고담을 바라보는 장휴의 눈빛에는 신뢰가 가득했다.
고담은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고개를 돌린 고담은 표사와 쟁자수들을 향해 말했다.
“지금부터 홍룡표국의 표행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표행 도중에는 반드시 표두와 표사의 지시를 따르며…….”
고담이 말하는 동안, 남량은 총표두 진표의 곁으로 다가왔다.
진표는 미소를 지으며 포권을 취했다.
“잘 주무셨습니까?”
“네. 총표두님은요?”
진표는 어색하게 웃었다. 수십 번 표행을 성공시킨 그조차도 이번 여정은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남량은 지나가는 어투로 말했다.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있으니까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진표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든든합니다. 그럼 남량 도장만 믿겠습니다.”
진표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진 것을 본 남량이 피식 웃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친절한 놈이었나.’
당부를 마친 고담이 홍룡표국의 표기(鏢旗)를 든 사내에게 말했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지요.”
고개를 끄덕인 사내가 홍룡표국의 상징인 붉은 용[紅龍]이 그려진 깃발을 들어 올렸다. 표사들이 북과 쟁을 울리며 표행의 시작을 알렸다.
말에 올라탄 남량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북해라. 한 번 정도 갔던가.’
새외 무림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지라 북해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다만, 북해빙궁의 궁주이자 거대한 땅을 다스리는 빙제(氷帝)는 대단한 지도력을 지닌 수장이자 부족을 아끼는 현명한 군주라고 들었다.
‘설마 마교와 손을 잡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을 테지.’
어쩐지 북해에서 큰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
표행을 떠난 지 벌써 열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홍룡표국의 표행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쟁자수들은 강이나 잔도(棧道)를 안전하고 신속하게 건넜다.
표사들은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한시도 경계를 소홀히 하는 법이 없었다.
행수 고담은 하룻밤 묵는 객잔도 꼼꼼히 확인한 다음에야 짐을 풀었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이 있다면 곧바로 그곳을 떠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량은 이들이 수십 번이나 표행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날 밤은 산에서 야영을 하게 되었다.
남량은 솥을 걸고 능숙한 솜씨로 음식을 했다.
그가 만든 요리는 표사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였다.
“아니 대체 어떻게 이런 맛을 내는 거지?”
“10년 넘게 표행을 다니면서 이런 맛은 처음이야!”
“허허. 내 설마 표행 도중에 입이 호강할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표두 왕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대체 남량 도장님은 못하는 게 뭡니까?”
남량은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운휘에게 요리를 배워 두길 잘했군.’
밤이 깊어지자 불침번을 제외하고 모두 잠에 들었다.
진표와 남량은 화톳불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남 도장님은 잠을 반 시진 이상 주무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진표의 물음에 남량이 대답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고수들은 원래 잠이 없다는데, 그 말이 사실이군요.”
진표는 미간을 주무르며 웃었다.
“저는 조금 졸린데 말입니다.”
“제가 있으니 걱정 말고 잠시 눈 좀 붙이시지요.”
“아닙니다. 오늘은 깨어 있을 생각입니다.”
진표가 화톳불을 응시하며 말했다.
“표사 노릇을 오래 하다가 보면 일종의 감이라는 게 생깁니다. 도장님 같은 고수 앞에서 감을 운운하니 조금 부끄럽습니다만……. 오늘은 제 감이 꼭 깨어 있으라고 말하고 있군요.”
“그렇습니까?”
남량은 기감을 끌어올려 주변을 살폈다.
다음 순간, 그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렀다.
“그 감 말입니다. 정말 신통하군요.”
“네?”
“주변에서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진표의 얼굴이 굳었다. 그가 물었다.
“제 기감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데……. 산적입니까?”
“그건 알 수 없으나 기척을 숨기는 솜씨가 생각보다 제법입니다. 일반 녹림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 뭔가 이상하군요. 일단 대비하시지요.”
“알겠습니다.”
진표는 검을 들고 벌떡 이러나 소리쳤다.
“야습(夜襲)이다! 모두 전투 준비!”
숙련된 표사들답게 무기를 들고 일어나 방어 대형을 갖추는 것까지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졌다.
“야습이라면 산적입니까?”
곁으로 다가온 대행수 고담이 물었다.
남량이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오는군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커다란 박도(朴刀)를 든 사내들이 나타나 진영을 둘러쌌다.
놈들은 이미 방어할 준비를 마친 표사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이놈들. 우리가 온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나?”
진표는 쯧, 하고 혀를 찼다.
“하나같이 무공을 익힌 놈들입니다. 산적으로 위장한 무인이에요. 행수님. 아무래도…….”
“천하 오대 상단이 슬슬 움직이는 모양이군요.”
고담은 이를 부득 갈며 말을 받았다.
남량은 적들의 숫자를 세며 코웃음을 쳤다.
‘백오십이라. 이미 이쪽의 전력도 분석이 끝난 모양이군.’
그런데 자객들 중 초절정의 고수가 없었다. 그 말인즉-.
‘이놈들. 내가 동행하고 있다는 걸 모른다.’
고담은 굳은 얼굴로 자객들을 향해 말했다.
“어디서 보냈느냐. 네놈들이 천하 오대 상단 중 한 곳에서 보낸 자객들인 건 알고 있다.”
“그 질문에 순순히 답해 줄 줄 알았더냐? 홍룡표국의 행수는 순진하구나. 하하.”
자객의 두목으로 보이는 자가 웃으며 말했다.
“네놈들이 여기서 죽는 이유는, 선택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받을 표물과 받지 말아야 할 표물 정도는 구분했어야지.”
고담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네놈들 따위가 무서워 표물을 거절했다면 지금의 홍룡표국이 존재했겠느냐?”
“허! 배짱이 제법 두둑하군. 지금 본인이 처한 상황을 모르는 건가? 그럼 내 친절히 알려 주도록 하지. 쳐라!”
두목의 외침을 신호로 자객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진표는 검을 뽑아 들며 크게 소리쳤다.
“침착하게 맞서라! 표두들은 상황에 따라 적절히 지휘하도록!”
“예!”
표사들은 침착하게 적들을 상대했다.
촤악! 자객 한 명을 베어 버린 진표가 눈을 번득였다.
‘비록 숫자에서 밀린다 하나 이길 수 있다.’
그동안 열심히 수련해 오지 않았던가. 이 정도 열세는 충분히 극복 가능한 것이었다. 거기다-.
빠악!
달려드는 자객의 고환을 부숴 버린 표사가 낄낄 웃었다.
“남량 도장님 말씀대로네? 이렇게 쉽게 이길 수 있는 것을!”
“고환을 노리자! 고환을! 크헤헤헤!”
남량에게 가르침을 받은 표사들은 진표의 기대 이상으로 잘 싸워 주고 있었다. 조금 미친 것 같긴 하지만.
‘마지막으로, 이쪽에는 초절정의 고수가 있다.’
어둠 속에서 백의를 입고 날아다니는 남량은, 정말 귀신처럼 보였다.
휘릭. 파파팟!
검을 한 번 휘두르자 자객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 떨어졌다.
남량은 검을 허공에 대고 휘둘러 피를 털어 냈다.
“칼에 피를 먹인지 꽤 오래였는데. 고맙다.”
자객 두목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 이럴 수가……. 이건 말도 안 돼…….”
“네놈들 따위로는 우리를 막을 수 없다.”
어느새 그의 앞으로 다가온 진표가 차갑게 내뱉었다.
“죽어라.”
그가 두목을 향해 검을 휘두르기도 채 전이었다.
스걱-.
섬뜩한 파공음과 동시에 날아온 검풍(劍風)이 두목의 목을 단칼에 베어 버렸다.
움찔한 진표가 고개를 돌리자, 남량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혹시 제가 방해했습니까?”
진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두목이 죽자 잔당들은 금방 도망쳤다. 진표는 굳이 도망치는 자들을 추격하지 않았다.
표사들은 승리의 기쁨에 젖어 웃음을 터뜨렸다.
“이겼다! 건방진 놈들. 감히 홍룡표국을 건들 생각을 하다니!”
“남량 도장님! 이 고환분쇄격 초식. 정말 엄청납니다! 하하!”
왕보는 눈살을 찌푸리며 일갈했다.
“이놈들이……. 정신 바짝 차려라! 겨우 하루를 버텼을 뿐이야!”
“네, 넵!”
표사들은 깜짝 놀라 대답했다.
고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왕 표두의 말대로입니다. 이번 기습으로 인해 우리의 전력이 자신들의 예상보다 더 강하다는 걸 알았으니 저들은 더욱 신중하게 공격해 올 겁니다.”
진표가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는 더욱 험난한 여정이 되겠군.”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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