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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검황-52화 (52/164)

<52화>

복마전(伏魔殿). 가화어인(嫁禍於人)(3)

남량은 비설과 함께 흑영대 지하 고문실로 향하고 있었다.

“유령객 설요주. 과거 사파 조직에 몸담은 자객 출신으로 사파 토벌 이후 낭인으로 전락해 조정 관료들이나 거상들의 암살 의뢰를 맡아 행동하다 일 년 전, 정착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남 소협의 암살을 사주한 그자겠지요.”

고문실에 도착하자 흑영대원들이 정중히 인사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살 타는 냄새와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끄아악!”

제아무리 무공 고수라고 해도 결국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 한 시진째 인두로 살을 지지는 낙형(烙刑) 고문은 절정의 고수인 유령객도 어린아이처럼 고분고분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인두로 유령객의 살을 지지던 암영이 식은 인두를 떼어 내며 말했다.

“다시 한 번 묻겠다. 누가 너에게 남 소협의 암살을 사주한 것이냐?”

유령객은 입에서 침을 줄줄 흘리며 빌었다.

“저는 모릅니다. 정말입니다……. 한낱 자객 나부랭이가 그런 걸 어찌 알겠습니까? 제발 살려 주십시오…….”

“네놈이 아직 인두 맛을 덜 본 모양이구나.”

암영은 활활 타오르는 숯불에 인두를 달구기 시작했다.

이미 충분히 고통을 맛본 유령객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그걸 말하면 저는 죽은 목숨입니다!”

“실토하지 않아도 네놈은 고통스럽게 죽을 것이다. 어찌하겠느냐?”

결국 유령객은 몇 차례의 고신을 당하고 나서 혼절했다.

암영은 비설과 남량에게 다가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최대한 빨리 알아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해 줘요.”

남량과 비설은 고문실을 나와 복도를 걸었다.

“정말 순찰당주 양봉이 사주한 일일까요?”

“만약 그자라면 어찌 나올 것 같습니까?”

남량의 물음에, 고민하던 비설이 대답했다.

“양봉은 학식이 풍부하고 무공 경지가 높으나 그릇이 작고 겁이 많은 자입니다. 지금쯤 암살 실패의 보고를 받고 매우 초조해하고 있을 테지요. 냉정히 판단하기보다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음…….”

남량은 마교 내 후계자 다툼 당시, 온갖 모략이 판치는 복마전에서 살아남으며 다양한 인간 군상을 접한 바 있었다. 그중에는 양봉과 마찬가지로 소인배의 기질을 가진 자들 또한 존재했다.

‘그렇다면 양봉의 다음 행동은 아마…….’

양봉의 생각을 예측한 남량이 비설에게 말했다.

“대주님, 이렇게 해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

한편, 자신의 거처에서 초조히 결과를 기다리던 양봉은 수하의 보고를 받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시, 실패했다고?”

“그뿐만이 아닙니다. 유령객이 생포되어 흑영대의 지하 고문실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수하는 양봉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양봉은 주먹으로 탁자를 치며 고함쳤다.

“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야!”

“송구합니다.”

양봉은 긴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감쌌다.

‘이걸로 남량 그자가 흑영대의 명령을 받고 움직인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빌어먹을. 흑영대의 지하 고문실은 반드시 자백을 받아 내기로 악명이 높은데……. 만약 유령객의 입에서 나와 관련된 이름이 나오기라도 하는 날에는 모든 게 끝장이다. 대업도, 내 목숨도…….’

상황이 좋지 않다. 멋대로 일을 벌였으니 회에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아니, 만약 이 사실을 알면 회에서는 자신을 가장 먼저 제거하려 들 것이었다.

그렇다고 지하 고문실에 쳐들어가 유령객을 빼내 올 수도 없는 노릇. 양봉은 가슴이 답답해 죽을 듯했다.

“이제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수하의 물음에, 양봉은 깊게 고심하며 중얼거렸다.

“방법은 단 하나다. 내게 향한 의심을 돌려야 한다.”

양봉은 붓으로 종이에 뭔가를 써서 수하에게 건넸다.

종이를 건네받은 수하는 종이에 적힌 글자를 확인하고 눈을 크게 떴다.

“가화어인(嫁禍於人)!”

“그래. 화는 남에게 씌우고 나는 의심에서 벗어나야지.”

양봉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끌끌 웃음을 흘렸다.

“마교와 결탁한 증거를 남량의 방에 넣어 두고, 그것을 내가 찾아내 남량을 마교의 간자로 만든다. 그럼 나를 향한 의심은 모두 남량에게 쏠릴 것이야.”

맹주와 흑영대가 한패라고는 하나, 증거가 떡하니 있는데 놈을 비호하지는 못할 것이다.

수하는 매우 감탄하며 양봉에게 말했다.

“과연! 당주님의 혜안은 대단하십니다!”

“이번에야말로 믿을 만한 자를 시키게. 다시는 이전과 같은 실수를 해서는 안 될 것이야.”

수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암살 임무도 아닌, 종이를 방에 두고 오는 간단한 일인데 실패할 리 없습니다.”

“그래야지.”

수하가 방을 나서자 그제야 한시름 놓은 양봉은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이 양봉, 그리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허허.”

***

달도 구름 뒤에 숨은 적막한 밤, 검은 무복을 입고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한 사내가 무림맹 별채의 담을 넘어 들어왔다.

사사삭-.

양봉의 명을 받아 남량이 마교와 결탁한 증거를 방에 숨겨 두기만 하고 나오면, 다음 날 양봉이 남량의 방을 수색해 증거를 찾아낼 것이다.

사내는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창문을 통해 남량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남량을 미리 감시해 지금 방 안에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였다.

사내는 품에서 가짜 증거를 꺼내 남량의 베개 안쪽에 숨겨 둔 다음, 몸을 돌려 방을 나가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거기까지다.”

마찬가지로 검은 무복에 복면을 쓴 무리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순식간에 포위당한 사내가 당황하는 때, 방문이 열리며 남량을 제외한 매화오절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정말 형님의 예상이 들어맞았네? 이상한 놈이 밤에 숨어들 거라더니.”

검을 어깨에 걸친 운휘가 중얼거렸다.

찬야는 방금 전, 사내가 베개 아래 숨겨 둔 종이를 꺼내 펼쳐서 확인해 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이것 봐라……. 아주 자세하게도 적어 놓으셨네. 이걸로 우리 남 사제를 마교의 간자로 만들려 했어? 그런데 미안해서 어떡하지? 너희들의 계략은 실패했는데?”

사내는 이를 악물었다. 자결해도 자신의 얼굴이 밝혀진다면 배후가 드러나는 건 시간문제다.

사내는 마지막 방법으로 품에서 화골산(化骨散)을 꺼내 들었다. 화골산은 금속까지도 녹게 만든다는 극독(劇毒)이었다.

“저놈이 화골산으로 얼굴을 녹일 생각이야!”

사내는 흑영대원들이 달려들기 전에 병의 마개를 따서 얼굴 위로 들이부으려 했다.

그 순간, 유라가 벼락같은 속도로 발검하여 검기로 화골산을 든 손을 날려 버렸다.

“그렇게는 안 되지.”

푸화악-!

사내의 손목이 잘려 나가며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끄아악!”

흑영대원들은 재빨리 사내의 손목을 지혈하고 복면을 벗겨 얼굴을 확인했다.

“이자는 순찰당주, 양봉의 수하입니다!”

흑영대원들은 그 즉시 비설에게 연락을 취해 이 사실을 알렸고, 비설은 곧장 총관에게 달려갔다.

총관 건옹은 즉시 맹의 무사들을 동원해 양봉의 집을 포위하고 양봉을 붙잡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

양봉은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취침할 준비를 했다. 내일 아침, 동이 트기 전 무사들을 이끌고 별채로 들이치려면 일찍 자 두는 것이 좋았다.

그때, 수하가 침소의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들어왔다. 양봉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네 이놈! 감히 내 허락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와?”

“어르신. 지금 그럴 때가 아닙니다! 도망치셔야 합니다!”

“뭐라?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수하는 숨을 헐떡이며 다급히 말했다.

“지금 총관이 무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 합니다!”

양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물었다.

“그, 그렇다면 설마 들킨 것이냐?”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양봉은 찻잔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눈을 감았다.

가화어인의 계략마저 수포로 돌아갔다. 이제 더는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양봉은 몸을 일으키며 옷을 갈아입었다.

‘아니,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혐의? 끝까지 부인할 것이다. 버티고 버틴다면 분명 회에서 손을 쓸 테니까. 그때까지만 기다리면 된다.’

옷을 갈아입고 나갈 채비를 마친 양봉이 수하에게 말했다.

“총관을 맞이할 준비를 하거라.”

양봉의 집에 도착한 건옹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순찰당주 양봉은 순순히 나오거라!”

대문이 열리고 미리 기다리고 있던 양봉이 건옹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총관. 헌데 이 늦은 밤에 어쩐 일이십니까?”

“미리 기다리고 있었던 것을 보니 예상하고 있던 것이렷다?”

“무슨 말이십니까? 소인은 그저 밤 산책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양봉이 시종일관 뻔뻔한 기색으로 나오자, 건옹이 소리쳤다.

“네놈이 수하를 시켜 남량의 방 안에 마교와 내통한 거짓 증거를 숨기려던 것은 이미 들통났다! 순찰당주 양봉! 네놈을 마교의 간자로 추포하겠다!”

양봉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당당히 대꾸했다.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끝까지 잡아뗄 생각이냐? 좋다. 어디 고신을 당하고도 똑같이 말할지 두고 보자! 뭣들 하느냐! 저놈을 당장 끌고 나가지 않고!”

무사들이 우르르 달려와 양봉을 밧줄로 묶었다. 양봉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쳤다.

“이거 풀지 못하겠느냐! 이건 누명이야! 나는 마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단 말이다!”

양봉은 무사들의 손에 이끌려 맹으로 압송되었다.

그 후, 건옹은 양봉의 집을 샅샅이 수색하도록 지시했으나 별다른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양봉은 모진 고신을 당하는 와중에도 수하가 단독으로 행동한 짓이며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억울함을 주장했다.

‘순순히 자백할 생각은 없다 이거군.’

저자의 입을 열게 만들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남량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

“으으윽…….”

하루 종일 고신을 당한 양봉은 무림맹 내부에 위치한 감옥에 갇혀 있었다.

‘빌어먹을. 무공 경지가 높으면 뭐 하는가. 고문을 버티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인데.’

거사가 성공할 때까지만이라도 버텨 보려 했지만 도저히 몸이 견디지 못할 듯했다. 이대로라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길어야 사흘, 아니면 이틀인가…….’

정신을 붙잡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정신을 다잡아도 육체가 견디지 못하면 저도 모르게 입이 열릴 것이다.

그때, 감옥 내 바람이 크게 일며 잠깐 불이 꺼졌다.

그리고 다시 주변이 밝아졌을 때, 양봉의 앞에는 누군가 서 있었다. 양봉은 당황하며 물었다.

“누, 누구시오?”

검은 무복에 두건과 복면으로 얼굴을 꽁꽁 감추고 검을 찬 사내가 말했다.

“회에서 보낸 사람입니다. 어르신을 구출하라는 지시를 받고 왔습니다.”

양봉의 입이 쩍 벌어지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그럼 그분이 나를 버리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양봉은 감격에 겨워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했다.

“변복할 옷을 준비했습니다. 어서 갈아입고 나가시지요.”

“그러세.”

양봉은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검은 무복의 사내는 가만히 양봉을 응시했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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