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복마전(伏魔殿). 가화어인(嫁禍於人)(2)
세 살수는 남량이 움직이기 전, 먼저 끝을 낼 생각으로 동시에 무기를 내질렀다.
채채챙!
그러나 다음 순간, 살수들이 내지른 병장기는 난데없이 튀어나온 황금빛 투명한 막에 튕겨 나가고 말았다.
남량이 각운 선사의 천양신경 중 두 번째 능력, ‘사자금강’의 능력을 사용한 것이다.
도끼를 든 사내와 암기를 든 여인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방금 대체 뭐지? 이게 무슨 무공-.”
“피해! 이 멍청한 녀석들!”
검을 든 살수가 가장 먼저 몸을 날리며 외쳤다. 그와 동시에 남량의 검기가 반월을 그리며 쏘아져 나갔다.
여인은 간신히 경고를 듣고 물러나 팔을 베이는 것으로 그쳤다. 허나 도끼를 든 사내는 덩치가 커서 동작이 굼뜬 탓에 남량의 검을 피하지 못했다.
스걱-.
남량의 검기가 사내의 허리를 가르고 지나갔다.
“커억…….”
사내는 배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막내야!”
검을 든 사내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쿵. 쓰러진 사내를 쳐다보던 남량이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남은 두 살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숨겨 둔 ‘패’ 한 장과 살수 한 명의 목숨이면 그닥 밑지는 장사는 아니군.”
두 살수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네 이놈……! 네놈이 감히 우리 막내를!”
“도사라는 자가 사술(邪術)을 쓰다니!”
남량은 기가 차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억울하면 저승에 가서 변명해. 아, 하나 충고하는데 염라라는 작자가 그닥 말이 통하는 위인은 아닐 것이다. 워낙 악취미인 양반이라.”
“흥! 누가 저승에 간다고? 저승에 가는 건 네놈이 될 것이다. 그 목을 잘라 막내의 영전에 바치고 몸뚱이는 개 먹이로 주지!”
“둘째야! 흥분을 가라앉혀라.”
검을 든 사내는 손을 뻗어 금방이라도 달려들듯 흥분한 여인을 제지했다. 남량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나마 저자가 낫군.’
사내는 천천히 손을 들어 갓을 벗었다.
“널 얕본 것은 인정하지. 허나 네놈은 절대 살아서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남량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내가 벗어날 수 있는지는, 네놈을 죽여 증명해 보마.”
“이놈! 언제까지 그 입을 놀릴 수 있을지, 두고 보자!”
여인이 앙칼진 기합과 함께 암기 다발을 내쏘았다. 여인의 손에서 빠져나간 암기가 곡선을 그리며 남량의 전신 급소를 노려 왔다.
‘상당히 숙련된 암기술이다.’
채채챙!
남량은 검을 회전시키며 날아드는 암기를 모조리 튕겨 냈다.
바로 그때, 번개 같은 속도로 남량의 품 안에 파고든 사내가 허리를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내가 암기를 막는 사이에 공격을? 확실히 합공에 능숙하군.’
남량은 재빨리 허리를 틀어 검격을 피해 냈다. 다행히 옷자락과 피부가 살짝 베이는 것으로 그쳤다.
“운이 좋군. 허나 이건 피하지 못할 것이다!”
사내는 몸을 빙글 돌리며 이번에는 남량의 목을 노렸다. 푸른 검기가 당장이라도 남량의 목을 둘로 가를 듯했다.
쇄애액!
남량은 검을 들어 사내의 검격을 막는 것과 동시에 검집을 빼내 사내의 무릎을 가격했다.
퍼억!
무릎이 휘청거리며 일순 사내의 동작이 멈추었다. 남량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사내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크억!”
충격을 받은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 바닥에 쓰러졌다.
‘지금이다.’
남량은 사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동안 여자 살수를 처리하기 위해 곧장 몸을 날렸다.
남량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덮쳐 오는 것을 본 여자 살수가 깜짝 놀라 두 자루의 단도를 쥐고 내질렀다.
파파팟!
여인의 단도를 아슬아슬하게 피한 남량이 허공에 몸을 띄우는 것과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스걱-!
검이 목을 가르며 혈선이 허공을 수놓았다. 여인의 눈에 빛이 사라지고 힘을 잃은 몸이 바닥에 엎어졌다.
“둘째야! 으아아아-!”
여인이 죽는 모습을 목격한 사내가 짐승처럼 괴성을 지르며 남량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남량이 가볍게 한숨을 흘렸다.
“이거야 원……. 대체 누가 악당인지 모르겠군.”
챙! 채채챙!
사내는 흥분에 차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이성을 잃고 휘두르는 검격은 남량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이만 끝내자.”
남량은 칼등으로 사내의 손목을 가격해 검을 떨어뜨리게 한 다음, 칼날을 세워 그대로 목을 쳐 버렸다.
촤악-!
사내는 목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와중에도 남량의 도포 자락을 붙잡고 버텼지만, 결국 힘이 다해 스르륵 무너졌다.
혈삼랑 세 명을 모두 처치했지만, 남량은 검을 갈무리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말했다.
“이만 모습을 드러내라. 아니면 내가 직접 꺼내 줄까?”
“으흐흐.”
어둠 속에서 등이 굽은 노인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인은 분위기가 매우 음침하고 눈에는 시뻘건 살기를 흘리고 있었는데,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불쾌감이 차올랐다.
‘이놈도 절정인가. 아주 제대로 작정하고 보냈군.’
노인이 입꼬리를 히죽거리며 입을 열었다.
“제법이구만. 젊은이. 칼놀림이 예사롭지 않아.”
“너 따위에게 칭찬을 듣고 싶지는 않은데.”
남량이 서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너, 일부러 이자들과 내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지? 내 움직임을 관찰하기 위해.”
노인은 끌끌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생각보다 자네의 무위가 뛰어나 많이 알아내지는 못했네. 기껏해야 정체불명의 황금빛 기막. 그리고 손속이 무자비하다는 정도? 지금껏 수백 명을 도륙해 온 이 도살객(屠殺客)이 보건대 자네도 살인에 통달한 인물이 틀림없어. 그리고 황금빛 기막은 짐작컨대 항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아니로군. 만약 그랬다면 굳이 여살수가 던진 암기를 검으로 막아 낼 이유가 없지. 안 그런가?”
“…….”
남량이 침묵하자, 도살객은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억울해하지는 말게. 이 또한 싸움의 일부이니…….”
“평가가 끝났으면 시끄럽게 굴지 말고 덤벼라. 늙은이.”
남량이 싸늘히 내뱉자, 도살객의 웃음이 멈추었다.
“예의를 모르는 놈이로군. 오냐, 원한다면 그리 해 주마.”
직후, 도살객은 자신의 양쪽 허리춤에 찬 채도(菜刀:푸주칼)를 잡고 발도(拔刀)했다.
‘하체를 노리고 들어오는 극하단 베기!’
남량은 빠르게 공중으로 몸을 날렸으나 무릎 아래 종아리가 베이고 말았다. 실로 엄청난 속도였다.
채도를 양손에 쥔 노인이 비릿하게 웃었다.
“어떠냐. 내 하단 베기는 설사 초절정의 고수라고 해도 완전히 피해 내지 못한다. 방금 전의 검격으로 다리에 상처를 입었으니 더 이상 이전의 움직임을 보이지는 못할 터. 어찌하겠느냐?”
남량은 다리의 상태를 확인하고 태연히 대꾸했다.
“그게 다라면 이 승부는 금방 끝나겠군.”
“끝까지 허세를 부려? 으허허!”
도살객은 마치 바닥을 기어 다니는 뱀처럼 자세를 낮춰 쇄도했다.
채채채챙!
남량의 화양검과 도살객의 채도가 엄청난 속도로 부딪쳤다. 도살객은 집요하게 하단만을 노려 왔고, 남량은 공격을 막아 내기에만 급급했다.
‘반격을 해야 한다. 허나 자세를 바꾸어 상단을 노리는 순간 다리가 잘려 나갈 터.’
그렇다면-.
남량은 바닥을 박차고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도살색은 기다렸다는 듯 채도를 추켜올렸다.
“역시 공중으로 도망칠 생각이군! 허나 이미 네놈의 생각은 간파당했다! 이대로 죽여 주마!”
바로 그때였다.
공중에 몸을 띄운 채로 회전한 남량이 회전력을 이용해 수직으로 검을 내리쳤다.
『매화천수검의 4초식, 뇌전포화(雷電砲火)는 낙뢰(落雷)의 일검(一劍). 회피와 동시에 벼락이 떨어지듯 내리치는 검격은 거대한 힘과 속도, 그리고 웅장한 천둥소리를 동반한다.』
일순 섬광이 번쩍이며 도살객의 채도가 남량의 검에 의해 산산이 조각나 흩어졌다.
도살객은 떨어지는 낙뢰의 일검을 응시하며 경악에 찬 얼굴로 생각했다.
‘분명 내가 먼저 검을 내질렀는데…….’
그것이 도살객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콰르릉!
우렁찬 뇌성(雷聲)과 함께 떨어진 일검은 도살객의 몸을 정확히 반으로 쪼갠 것으로 모자라, 실제 벼락이 땅에 떨어진 것처럼 커다란 구덩이를 만들어 냈다.
“후우…….”
남량은 내력을 다스리며 긴 숨을 내뱉었다.
자신을 습격한 자객들을 모두 죽였지만, 남량은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은 채였다.
‘분명 처음 느꼈던 살기는 다섯이었다. 허나 도살객이란 자를 포함해 내가 죽인 자객들의 숫자는 넷이야. 아직 한 명이 더 남아 있다.’
남량은 최대한 감각을 집중해 주변을 살폈다. 허나 근처에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미 도망쳤거나 내가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은신에 뛰어난 자라는 뜻.’
암살을 사주한 배후를 밝혀내려면 놈을 이대로 보낼 수 없었다. 반드시 생포해서 흑영대에게 끌고 가야 했다.
‘좋아. 감각으로 찾아낼 수 없다면…….’
직후, 남량의 두 눈이 푸른빛을 일렁이며 번쩍였다.
각운 선사의 세 가지 심득, 그중 만물을 꿰뚫는 눈인 ‘통찰안’을 사용한 것이다.
‘찾았다. 북서쪽 방향! 이 거리라면 잡을 수 있다!’
남량은 통찰안을 해제하고 다친 다리에 손을 대었다.
화르륵!
그러자 손에서 녹색 불꽃이 일어나며 도살객에게 베인 상처가 모두 치유되었다.
각운 선사의 마지막 심득. 정신력을 소모해 상처를 치유하는 ‘신유유합’의 능력이었다.
‘반드시 잡는다.’
타앗-!
남량은 은신한 자객을 붙잡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한편,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몸을 숨긴 채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마지막 자객, 유령객(幽靈客)은 남량의 무위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혈삼랑, 도살객이 전부 당했다. 저 도사는 의뢰인에게 전해 들은 실력을 훨씬 상회하고 있어. 이대로면 개죽음을 당할 뿐이야. 차라리 도망쳐서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이…….’
유령객은 절정의 고수들 중에서도 특히 은신에 뛰어난 자. 그가 작정하고 몸을 숨기면 초절정의 고수들조차 그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저자는 대체 내가 숨은 곳을 어떻게 알아낸 것인가!’
유령객은 남량이 정확히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분명 도살객에게 다리를 베였을 텐데 빠르기도 하군!’
점차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는 도중, 절벽이 나왔다. 유령객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내 경신술이라면 이 정도 절벽은 무리 없이 내려갈 수 있다. 허나 저놈은 절대 불가능하겠지.’
유령객은 주저 없이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유령객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위쪽을 응시했다.
마찬가지로 절벽에 도착한 남량이 조금의 망설임 없이 몸을 날린 것이다!
‘미친놈! 같이 죽을 셈인가!’
남량은 떨어지는 와중에 중심을 잡으며 유령객을 향해 발검했다. 섬광이 번쩍이며 쏘아져 나간 검기가 유령객의 어깨를 베고 지나갔다.
“크악!”
유령객이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추락했다. 남량은 유령객의 옷깃을 붙잡은 다음, 경신술을 펼쳐 떨어지는 속도를 늦추었다.
그제야 유령객은 남량이 자신 있게 떨어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놈, 나보다 더 상승의 경공술을 쓸 수 있었구나. 대체 어디서 이런 작자가……. 이자를 암살하는 계략은 악수(惡手)였다.’
기절한 유령객을 붙잡고 절벽을 내려온 남량은 그길로 흑영대를 찾아갔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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