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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검황-26화 (26/164)

<26화>

지하미궁(地下迷宮)(3)

두두두-!

수십 개의 목인형이 노도처럼 남량 일행을 향해 밀려들었다.

마치 굶주려 아사(餓死)하기 직전의 짐승처럼, 서로가 짓밟히고 부서지는 데도 신경 쓰지 않고.

가히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다.

“찬야, 우측을 맡아.”

“알았어.”

운휘를 먼저 보낸 남량은 몸을 빙글 돌리며 달려드는 목인형들을 향해 쇄도했다.

훅-콰콰곽!

남량의 검이 허공을 가르며 검기가 터져 나왔다.

검기에 적중당한 목인형들이 수십 조각으로 분리된 채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나 달려드는 기세는 멈출 줄 몰랐다.

“후우-.”

한 차례 숨을 뱉은 남량이 또다시 검을 휘둘렀다.

키잉- 콰아앙!

폭음과 함께 바닥이 움푹 파이고 흙먼지가 치솟았다.

충격에 휩싸인 목인형들이 산산조각이 나 흩어졌다.

그러나 끊임없이 달려드는 목인형들을 전부 부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젠장.”

코앞까지 도달한 목인형들이 묵직한 철퇴를 휘둘렀다. 남량은 닿기도 전에 뺨을 찌르는 바람을 느꼈다.

대기를 가르며 날아오는 철퇴. 내력은 없었지만 충분히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카카카카캉!

남량은 일 합에 달려드는 공격을 모두 쳐 내며, 몸을 빙글 돌리는 동작과 동시에 매화천수검의 초식을 펼쳤다.

“유성추월(流星追月)!”

콰아아아앙!

번쩍, 하고 섬광이 일어난 것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참격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달려들던 목인형들은 그대로 소용돌이에 휘말려 가루가 되었다.

바로 옆에 있던 찬야는 그 위력에 입을 떼지 못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이런 초식이 있었으면 그냥 혼자 막아라…….’

화산 제일(第一)의 검술답게, 가공할 만한 위력의 초식이 아닐 수 없었다.

후두두둑-.

부서진 목인형의 잔해가 바닥에 떨어졌다. 남량은 한 차례 검을 빙글 돌리며 아래로 늘어뜨렸다.

그의 곁으로 다가온 찬야가 말했다.

“그냥 처음부터 쓰지 그랬어.”

“내력을 크게 소모하는 초식이라 연발할 수 없어. 시간만 벌었으니 도망치자.”

앞으로 이런 장치들이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른다.

돌아올 때까지 계산해서 내력을 분배해야 한다.

두 검사는 목인형과의 거리가 조금 떨어진 틈을 타,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목인형들의 속도는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멀어진 거리는 금세 따라잡혔다.

‘출구는?’

고개를 돌리자 마침 출구가 보였다. 미리 도착한 운휘가 필사적으로 손짓을 하고 있었다.

“서둘러!”

남량과 찬야는 이를 악물고 속도를 높였다.

바로 그때, 바로 뒤까지 접근한 목인형이 찬야의 뒤통수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서걱-!

남량은 목인형의 철퇴를 반으로 가른 다음, 부서진 단면을 발로 차서 목인형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휘릭, 촤아악!

그리고 허공에 몸을 띄움과 동시에 검을 휘둘러 달려드는 목인형들을 단칼에 베어 버렸다.

그사이 출구에 도착한 찬야는 고개를 돌려 목인형 사이에 갇힌 남량을 향해 소리쳤다.

“남 사제, 어서!”

콰콰콰쾅!

그러나 목인형에게 둘러싸인 남량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파묻혀 버렸다.

운휘와 찬야는 눈을 부릅뜨며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안 돼-!”

빠악! 빡!

직후, 출구 뒤편에서 나타난 남량이 찬야와 운휘의 뒤통수를 가볍게 후려쳤다.

“뭐가 안 돼? 멍청하게 기척이나 놓치고…….”

“어? 남 사제, 언제 여기까지 왔어?”

찬야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남량이 익힌 월인비는 천하제일의 경공이라 불려도 손색없을 만큼 뛰어난 무공이라 할 수 있었다.

방금 전, 남량은 목인형에게 파묻히기 직전 이형환위(移形煥位)의 수법을 이용해 출구로 빠져나온 것이다.

목인형들이 남량이라 착각했던 것은, 바로 남량의 잔상이었다.

‘전설의 지하미궁이라더니, 숨겨진 기관도 수준급이군. 목인형이라…….’

확실히 응룡의 여의주까지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을 듯했다.

이 앞에 또 어떤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기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동행한다면 조금 더 수월하겠지만…….

남량은 고개를 돌려 제갈경을 슬쩍 쳐다보았다.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인지, 그녀는 운휘의 등에 얼굴을 파묻은 채 어깨를 떨고 있었다.

“후우…….”

남량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일단 조금 쉬고 일다경(15분) 뒤에 출발하자.”

***

찬야와 운휘가 쉬는 동안, 남량은 혼자 떨어진 제갈경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물이 든 죽통을 내밀었다.

“마셔. 좀 나아질 테니.”

“…….”

제갈경은 말없이 죽통을 받았다.

그녀의 옆에 앉은 남량이 물었다.

“그들과 많이 친했나? 그게 아니면……. 혹시 사람이 죽은 걸 목전에서 본 게 처음이야?”

“네…….”

“충격을 받을 만하군.”

살인과 죽음에 익숙해진 무림인들과 다르게, 그녀는 명문가에서 금지옥엽으로 자라 온 규수였다.

조금 전처럼 잔혹한 광경을 눈앞에서 마주하고 의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남량은 그녀에게 충고했다.

“너도 무림인이라면 익숙해져야 할 거야.”

“내 잘못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게, 마음이 아파요.”

제갈경의 붉어진 눈을 응시하던 남량이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은 이해하는데, 난 지체할 시간이 없어.”

남량은 제갈경을 여기 두고 갈 생각이었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제 한 몸 지킬 여력도 없으니 오히려 방해만 될 것이다.

“죽통은 놓고 갈 거야. 날이 밝기 전까지는 돌아올 생각이니까 여기 가만히 있어.”

남량이 몸을 일으키자, 제갈경이 다급히 그의 팔을 잡아세웠다.

“뭐야?”

남량이 붙잡힌 팔목을 흔들며 물었다. 제갈경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내 부탁을 한 가지만 들어줘요. 그럼 당신이 여의주를 찾게 도와주고, 약속대로 입을 다물어 줄 테니까.”

남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강단이 있군. 감히 날 협박하는 건가?”

“그래요. 협박이에요. 어떡할래요?”

제갈경은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며 남량을 응시했다.

남량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탁이 뭔데.”

제갈경은 눈물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돌아갈 때,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가져오게 도와줘요.”

“그거야 나중에 제갈세가 사람들이 발견하면 그때 가져와도 늦지 않을 텐데.”

제갈경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충격으로 손에 들고 있던 애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내 사람들이에요! 조금이라도 차가운 지하 바닥에서 외롭게 놔둘 수는 없어요!”

남량은 싸늘한 눈으로 제갈경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제갈경은 조금도 눈을 피하지 않고 붉어진 눈을 들어 당당히 남량을 마주 응시했다.

“……후우.”

짧게 한숨을 내쉰 남량은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숙여 떨어진 애체를 주워 든 다음, 제갈경에게 내밀었다.

“축하해. 네 협박은 성공했어.”

***

남량은 자신이 제갈경을 업겠다고 나섰다.

경공에 약한 운휘가 제갈경을 업는 것보다, 남량이 안전하게 그녀를 보호하고 찬야와 운휘, 두 사람이 장애물을 막아 내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금부터는 어설픈 기관 따위에 발 묶이지 않고 단번에 지나갈 거야. 그러니, 잘 부탁한다.”

“맡겨 둬요.”

제갈경은 남량의 옷깃을 꽉 잡으며 대답했다.

파파팟!

아래로 달려가는 도중, 이번에는 천장에서 수천여 개의 셀 수 없이 많은 암기가 쏟아져 내렸다.

찬야와 운휘가 재빨리 검을 들어 암기를 쳐 내는 동안, 남량은 빠르게 함정을 통과했다.

제갈경은 매의 눈으로 사방을 살피며 숨겨진 기관들을 귀신처럼 찾아내서 알려 왔다.

“10보 앞에 함정이에요. 바닥이 무너지는 기관이 설치되어 있어요!”

“독무(毒霧)! 좌우로 보이는 작은 구멍에서 독무가 쏟아질 거예요!”

“창이에요. 창이나 화살이 쏟아질 것 같아요. 앞으로 20보 앞이에요.”

제갈경의 말은 그대로 들어맞았고, 덕분에 한결 수월하게 기관을 피할 수 있었다.

‘한결 수월한 정도가 아니야……. 미리 알고 대비하기 때문에 심적 안정감과 더불어 내력을 최대한 아낄 수 있게 되었어. 설마 이 정도로 도움이 될 줄이야…….’

비단 남량뿐 아니라, 찬야와 운휘도 제갈경의 기재(奇才)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일행은 미친 듯 기관을 파훼하며 나아갔다. 그리고 목인형 때와 같이 긴 복도에 도착했다.

“또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제갈경. 여긴 무슨 기관이 설치되어 있지?”

“잠깐만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제갈경이 헉, 하고 헛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남량의 어깨를 다급히 두드리며 소리쳤다.

“다, 달려요!”

“마냥 달리면 되나?”

“미친 듯이 달려요! 천장에 깔려 죽기 전에!”

“……!”

남량 일행은 즉시 다리에 힘을 주고 복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드드드드!

제갈경의 말대로 중간쯤 갔을 때, 천장이 진동하며 엄청난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주주, 죽는다!”

“앞만 보고 달려!”

거대한 천장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남량이라 해도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일행은 이를 악물고 달리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출구로 나올 수 있었다.

“허억, 허억…….”

남량은 거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그대로 깔려 죽었을 것이다.

드드드-.

바닥에 붙은 천장이 다시 소리를 내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돌아갈 때도 똑같이 달려야겠군.”

“악취미야……. 여기 설계한 사람.”

어쨌든, 이번에도 무사히 통과했다.

걸음을 옮기자, 이번에는 거대한 성문이 일행의 앞을 가로막고 나타났다.

단순히 성의 구조를 생각해 봤을 때, 아마 이곳 너머가 내성(內城)일 것이다.

그 말인즉, 서서히 끝에 다다르고 있다는 뜻이었다.

남량은 검을 뽑아 들고 앞을 가로막는 철문을 베었다.

스릉, 쿠구궁!

남량이 가볍게 칼을 휘두르자 두꺼운 철문이 두부처럼 베였다.

일행은 철문을 지나 내성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푹. 푹푹.

‘응?’

남량은 눈살을 찌푸렸다.

발밑의 감촉이 딱딱한 바닥에서 부드러운 감촉으로 바뀌었다.

‘이건 꼭, 모래 같은데?’

이런 지하 바닥에 모래라고?

직후, 남량이 소리쳤다.

“함정이다!”

“……!”

다음 순간, 바닥의 모래가 푹, 하고 꺼지며 일행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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