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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집 살림을 하는 중입니다만-119화 (119/120)

119화. 책임져

“하아…….”

어느새 창밖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해졌다.

한 몸인 듯 맞붙어 있던 그들은 몇 차례 열기가 지나고 난 뒤에야 떨어졌다.

아니, 르니예가 기절하기 직전이 되자 벨데메르도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그녀에게서 떨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손가락 하나 들어갈 틈새도 없이 붙어 있었으면서, 잠시 떨어지는 것도 아쉬운지 그는 붉게 달아오른 입술에 입을 맞췄다.

안 그래도 여린데 내내 자극당한 점막을 쓸고 지나가는 혀끝이 아릿했지만, 그런 자극에도 르니예는 달아올랐다.

그래, 몸이 미친 게 분명했다. 르니예는 제 입에서 흐르는, 열기 어린 신음을 들으며 죽고 싶지 않다면 입을 다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여기서 그를 더 자극했다가는 내일 동이 트는 것을 보지 못하고 갈 수도 있겠다는, 그런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으…….”

“어디가 아픈가?”

“어디가 아프냐고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일 걸어 다닐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내가 살살 해 달라고 했는데…….”

“다음엔, 노력해 보지.”

벨데메르는 입술을 삐죽이는 르니예가 편하게 자세를 잡도록 도와주었다.

거의 반죽음 상태인 저와 달리 생생한 그의 눈동자에서 금방이라도 저에게 달려들 것 같은 열띤 욕망을 보았지만, 르니예는 애써 모른 척했다.

“겨우 이 정도로 그대의 불안을 진정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 안 해.”

“……?”

그게 무슨 소리예요, 벨데메르. 충분히 확인하고도 남았답니다.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체력, 그리고 정력까지 아주 온몸으로 확인했다고요.

“그대의 불안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계속 확인시켜 주지.”

“그건 좀.”

곤란했다. 그의 마음을 확인하느라 일상생활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도 두 다리가 잘 붙어 있는지 쳐다보지 않고 알 수 없을 정도인데.

“내 체력도 좀 생각해 줘요.”

“체력? 체력이 왜 필요하지?”

벨데메르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태연한 얼굴을 하고서 르니예를 마주 보았다.

“그대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매일 해 주겠다고 한 건데.”

“……그런.”

“꼭 이런 행위로만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르니예.”

아, 그렇구나, 나만 쓰레기구나, 나만 쓰레기였어.

르니예는 입술을 앙다물다가, 짜릿한 통증에 미간을 구겼다.

“귀여워.”

“……?”

르니예는 제 귀를 의심했다. 벨데메르는 손가락을 들어 르니예의 미간을 꾹꾹 눌러 펴며 웃고 있었다.

무려 귀엽다는 말을 하면서.

“조각상에 들어갈 때, 이걸 못 보면 어쩌나 걱정했거든.”

르니예가 인상을 구기는 거, 웃는 거, 우는 거…… 아니지, 우는 얼굴은 못 보는 게 낫겠지.

하지만 지금까지 제 아래에서 우는 모습은 머릿속에 박제를 해 놓고 싶을 정도로 예뻤다.

“그대를 만나기 전에는 소원과 소원 사이가 몇십 년씩이었다. 그래서 다시 나왔을 때 그대가 없는 시간일까 봐 솔직히 다시 들어가기 싫더군.”

“벨데메르…….”

“그대가 여전히 있어서 다행이야. 그대랑 하고 싶은 게 많거든.”

“뭘 하고 싶은데요?”

“평범한 거. 남들이 다 하는 거.”

순리대로 흘러가는 삶.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시간을 보내는 그런 것.

“평범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실은 그냥 이대로 있고 싶었다. 이대로 꼭 끌어안고서.

“아.”

감동을 받은 건지 뭔지 제 품에 안기는 르니예를 바라보다가 벨데메르는 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제 더 이상 착한 일은 억지로 하지 않아도 돼. 그대가 제멋대로 맹세하고 지키는 거라고 그러더군.”

“누가요? 설마 저분이?”

르니예는 잘 움직이지도 않는 팔로 천장을 가리켰다.

“그래도 장하다고 칭찬을 하더군.”

“…세상에.”

내 멋대로 다짐하고 내 멋대로 지킨 거라고? 이런 헛짓거리가 있나.

르니예는 김이 쪽 빠졌다.

“그러니까 이제 착하게 살려고 애쓸 필요 없다.”

졸지에 착하게 살 필요가 없어졌다. 허무한 게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동안 엄청나게 착하게 산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다시 예전처럼 살아도 되나? 그럼 상단을 키우는 것도 훨씬 수월할 텐데.

하지만 그러기에, 르니예는 너무 많은 것을 봐 버렸다.

보지 않았으면 모를까 보고 나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나를 앞에 두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지?”

“어쩔 수 없이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 착하다고 칭찬까지 들어놓고 예전으로 돌아갈 순 없죠.”

“착하네.”

벨데메르가 칭찬하듯 르니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러니 그대에게 상을 줬겠지.”

“저한테 상을 주셨대요? 받은 기억이 없는데?”

“그럴 리가. 그대 눈앞에 두고 있잖아.”

벨데메르가 상인 거야? 르니예는 그의 진담이 반 이상 섞인 농담에 키득거리며 웃었다.

상은 상이지.

그런데 왜 벨데메르의 손이 엄한 데로 자꾸 내려가는 걸까?

“벨데메르, 지금 왜, 뭐 하는 거죠?”

르니예는 제 허리를 만지작거리다가 자신의 위로 타고 올라오는 벨데메르를 보며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설마, 설마.

“착하게 굴었으니 진짜 상을 줘야지.”

“언제 나오시려나.”

샤피로는 빨래를 널면서 이 층 벨데메르 방을 쳐다보았다.

그래, 주인님이 행복하시다니 다행이다. 하지만 방 안에만 틀어박힌 게 삼 일째였다.

“더 있다간 일개 하녀께서 진짜로 쳐들어올 기세던데.”

에니도 처음에는 참았다. 오랜만에 봤으니 반갑겠지, 하면서 나오시는 대로 연락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삼 일째 샤피로는 그 연락을 못 해 주고 있었다.

“이러다가 수도에 가기 직전에 나오시는 거 아닌지 몰라.”

1왕자가 르니예를 성으로 불렀다. 작위 수여식이 있을 예정이었는데, 아무래도 르니예는 그걸 까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계십니까?”

샤피로는 누군가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대문으로 향했다. 상단에서 사람을 보낸 건가 했는데, 초면인 사람이 서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편지를 전해 주러 왔습니다. 여기 르니예 님이라고 계시죠?”

“아, 감사합니다.”

샤피로는 편지를 받아 살펴보았다.

“고급스러운 편지지에 향수도 뿌렸군.”

그리고 무엇보다 보낸 사람 이름이 남자의 것이었다.

샤피로는 한창 사랑이 불타오르는 방으로 향했다. 불도 적당히 타야지, 삼 일을 내리 타는 건 옳지 않다.

꺼질 때가 되었다. 꺼지지 않는다면? 물을 뿌려야겠지.

“르니예 님, 들리십니까? 르니예 님 앞으로 편지가 왔습니다. 남자가 보냈네요. 향수까지 뿌려서 말이죠.”

그러자 열릴 것 같지 않던 문이 벌컥 열렸다.

“남자가 보냈다고?”

“예, 주인님.”

“그자를 죽이겠다.”

샤피로는 몸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제 주인에게 편지를 건넸다.

“죽이실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찰리 님이 보내신 편지라서요.”

* * *

“연극배우가 되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잘생겨지고 싶다는 소원을 빌고 감사 인사를 하러 온 후 찰리는 연락이 끊겼다.

‘어딘가에 잡혀 있는 게 분명합니다. 찰리 님을 혼자 소유하고 싶은 누군가의 집에 말이죠.’

‘그게 아니면 사람들을 피해 숨어 살고 있는 거다. 사람들이 가만두지 않는다는 게 무엇인지 경험하고 나면 그렇게 되지.’

샤피로의 벨데메르는 각기 나쁜 결과를 상상하며 혀를 찼다. 르니예도 찰리가 그렇게 되었을까 봐 실은 걱정을 좀 했다.

하지만 찰리는 연극배우가 되어 자신의 연극을 보러 오라며 티켓까지 친히 보냈다.

그런 초대를 거절할 수야 없지.

르니예는 장장 나흘 만에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으, 허리야.”

르니예는 허리를 두드렸다.

“샤피로한테 양말도 신겨 달라고 해야겠네.”

허리를 굽힐 수가 없었다.

“양말, 내가 신겨 주지.”

혼잣말로 중얼거렸는데, 벨데메르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르니예가 말릴 겨를도 없이 나가서 양말을 들고 왔다.

“……아직 옷도 안 입었는데?”

“순서가 중요한가?”

그래도 목욕 가운에 양말 신는 건 좀 변태 같아 보이지 않나?

뭐, 벨데메르가 좋다는데 옷 입는 순서 정도야.

르니예는 작은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아무 경계 없이 그에게 발을 내주었다.

그가 발을 좋아하는 걸 알았지만,

“저, 저기, 벨데메르, 흣.”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줄은 몰랐는데!

“간지러워요.”

분명 양말을 신겨 준다고 했다. 그러나 양말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르니예의 발은 벨데메르의 손에 잡혀 있었다.

한 손으로 쥐고도 남는 가느다란 발목을 붙든 그는 발등에서부터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으응…….”

그는 발목에도 기어코 제 흔적을 남길 모양인지 여린 살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우리, 이제, 준비하고 나가야 하는데.”

“그래, 나가야지.”

나가야 된다는 사람치고 그는 나갈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복숭아뼈 위로 닿는 이의 감촉이 찌르르 척추를 타고 올라와 르니예는 몸을 떨었다.

“여기서 복숭아 맛이 나는 것 같아.”

“그럴,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대가 보기에도 내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본인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가 보지?

르니예 역시 그렇게 생각했기에, 그에게 미안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가 이렇게 만들었어. 책임져. 책임진다고 약속했었잖아.”

그의 손이 종아리를 타고 올라오고, 그의 입술은 여전히 발목을 지분거렸다. 벨데메르는 만족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 같았다.

밤낮을 구분 없이 서로 탐하고 또 탐했는데, 지금 이렇게 또…….

“주인님, 바쁘신 와중에 죄송하지만 이만 준비하실 시간입니다. 게다가 그 양말은 오늘 르니예 님이 입으실 의상과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또는 없었다.

샤피로는 벨데메르와 르니예가 또다시 방에 처박히는 꼴을 볼 마음이 아주 요만큼도 없었다.

그는 드레스 룸으로 벨데메르의 등을 떠밀어 옷을 입히고, 다시 돌아와 르니예의 옷시중을 들었다.

그러고는 그들을 질질 끌어내 마차에 실었다. 그 덕분에 그들은 늦지 않고 찰리의 연극을 볼 수 있었다.

“내가 당신에게도 넓은 어깨가 있다는 것을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오, 크리스티나. 그 시간이 있었기에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아니겠소?”

“맞아요, 바자르.”

그리고 연극을 보는 내내 벨데메르는 기이한 기시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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