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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집 살림을 하는 중입니다만-101화 (101/120)

101화. 콜론의 계획

“형님이 말씀하신 대로 보석을 훔쳐 오긴 했는데.”

마코야데스는 괜히 헛기침하며 콜론 앞에 새빨간 사파이어 두 개를 올려놓았다.

“두 개? 이거 왜 두 개야?”

“그, 훔치러 들어간 아이가 보석을 빼돌리려고 했습니다.”

하나는 프리야가 가져다준 것이고, 하나는 프리야가 가지고 있던 것을 빼앗은 것이었다.

“제가 보기에 이거 둘 다 그 보석 아닌 것 같은데, 형님이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둘 다 아니야. 이건 좀, 더 비슷해 보이는군.”

콜론은 둘 중 르니예가 만들어 둔 가품을 손 위에 올려놓고 살폈다.

“훔쳐 온 아이는 그게 진짜 소원을 들어주는 보석이라고 믿는 눈치였습니다.”

“아냐, 이건 가짜야. 그 보석은 손에 쥐면, 어떤 느낌이 딱 오거든.”

콜론은 사파이어를 도로 내려놓았다.

“보석 말고 다른 건? 지도가 든 수첩은?”

“그것도 못 훔쳤습니다.”

콜론은 한숨을 짧게 쉬었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르니예가 면회 와서 소원을 들어주는 보석을 언급했을 때, 목뒤가 싸하더라니.

그의 감은 르니예가 그 보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뭐, 그래도 괜찮을 겁니다. 반란이 실패했어요. 1왕자가 곧 선위를 받을 거랍니다.”

보석을 훔쳐 달란 의뢰는 2왕자의 외척인 백작에게서 받았다.

백작은 어떻게 알았는지 보석이 있는 위치를 알려 주며 훔쳐 오라고 했다.

그게 다른 곳이었다면 마코야데스는 그냥 훔쳐다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말한 곳이 하필이면 콜론의 상단이었다.

마코야데스와 콜론은 오랜 인연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마코야데스가 콜론에게 진 빚이 있었다.

해서 마코야데스는 콜론에게 그 의뢰를 알렸다. 콜론 역시 그냥 보석이었다면 모른 척 내어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보석은 안 되었다. 2왕자가 아니라 왕이 온다고 해도 그 보석을 내어 줄 수 없었다.

그건 르니예의 것이었다. 만에 하나 르니예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큰 병에 걸렸다거나, 인생에서 큰 위기를 맞이했는데 주변 그 누구도 르니예를 도와주지 않을 때. 그럴 때 쓰라고 주려던 것이었다. 그래서 콜론은 머리를 좀 썼다.

“알아보니까 카밀이 2왕자한테 뭘 많이 가져다 바쳤던데. 그 돈 아까워서 어떡하나, 우리 형님.”

“내가 이래서 정치에는 안 끼는 건데.”

콜론은 쯧, 혀를 찼다. 마코야데스가 2왕자에게 의뢰를 받았다고 말한 그즈음, 콜론은 영주에게 불려 갔었다.

영주는 콜론을 넌지시 떠보았다. 그러나 콜론이 거절 의사를 보이자 이번에는 카밀을 불러들였다.

“내가 카밀에게도 몇 번이나 말했지. 정치판에는 끼는 거 아니라고. 그런데도 괜히 휘말려서 제 명줄만 재촉하는 꼴이라니.”

카밀은 영주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가 몰래 영주 성에 드나드는 것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그런 카밀을 감시하다 걸린 게, 바로 에드윈이었다. 에드윈은 남들 눈을 피해서 셰론 후작을 만나고 있었다.

그때 콜론의 머릿속에 아주 좋은 계획 하나가 떠올랐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이긴 사람 쪽에 설 방법이.

“뭐, 덕분에 내 명줄은 이리 길어졌지.”

콜론은 카밀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가 탈세 혐의로 자신을 감옥에 처넣었을 때도, 그의 배신을 모른 척했다.

“반란이 성공했으면 카밀이 상단주가 될 테고, 그러면 형님은 갈 곳이 없지 않나?”

마코야데스의 질문에 콜론은 픽 웃었다.

“카밀 옆에 사람을 심어뒀다. 카밀 뒤에 사실 내가 있었다는 증거를 다 모아뒀다 이 말이야.”

반란이 성공했을 때 그 증거를 쓸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면 카밀은 콜론의 명령에 따라 2왕자를 도운 셈이 된다.

탈세 혐의로 감옥에 간 것 또한 1왕자가 심어둔 세작의 의심을 피하기 위한 눈속임이었다고 꾸며댈 계획이었다.

머저리 같은 영주 놈은 뇌물로 구워삶으면 그만이었고.

“그런데 반란이 실패로 돌아갔으니 그 증거는 다 태워야겠지.”

결국 이번 판에서 1왕자가 이겼지만, 콜론은 역시 아무 상관 없었다.

“에드윈에게 금고 열쇠도 주고, 장부도 볼 수 있게 해 준 게 바로 나란 말이지.”

어떻게 보면 콜론은 1왕자에게 최대한 협조했다. 에드윈이 1왕자를 돕는 것을 알고, 그에게 금고 열쇠에 상단 장부까지 주며 협조하지 않았나.

영주가 자신에게 탈세 혐의를 씌워 감옥에 보낸 것이 다 그 때문이라고 주장하면 그만이었다.

“겸사겸사 자네 길드도 보호하고 말이야.”

콜론은 여전히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보석을 쳐다보며 말했다.

“혹시 모르니 이 보석은 가지고 있도록 해라. 2왕자 쪽 잔당이 달라고 하면 이거라고 하고 줘 버려.”

콜론은 곤란해하는 마코야데스에게 보석을 훔치라고 했다.

단, 진짜 보석은 제게 가져오고 2왕자에게는 가짜 보석과 신전으로 향하는 지도만 주려고 했다.

가서 소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다 헛소문이었구나, 하고 말 테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가짜 보석으로 줄 걸 그랬습니다. 괜히 아까운 인재만 잃었어요.”

“나를 속여야 적도 속는 법이야, 그걸 아직도 몰라? 어쭙잖게 연기했다간 들키기 십상이라고.”

마코야데스는 그래도 불만이라는 듯 입술을 삐죽였다.

“프리야는 내가 정말 아끼는 아이였는데.”

“걔가 실력도 좋고 나이 대도 적당한 걸 어떡하나, 그럼.”

프리야를 이용한 계획은 사실 콜론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에드윈과 그 가정사를 유사하게 꾸민 것까지 모두 콜론의 작전이었다.

“따님이 마음의 상처가 컸을 텐데요.”

“그걸 보는 내 심정은 어땠겠나. 그래도 어떡해, 정을 확실하게 떼어 놔야 나중에 그놈 죽고 나도 금방 잊지.”

콜론은 애초에 에드윈을 봐줄 마음이 없었다.

제 돈으로 호의호식하면서 자기 딸을 천대하는 사위가 예쁠 리 있겠나.

어떻게 키운 딸인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딸을 감히.

콜론은 이 일이 끝나면 에드윈을 사고사로 위장해 제거하려고 했다.

프리야를 이용해 에드윈을 숲 속 외진 곳으로 유인한 다음 죽이려고 한 것이다. 정부랑 놀러 갔다가 절벽에서 떨어졌다는 설정으로 말이다.

그렇게 되면 르니예는 과부가 될지언정 계속 ‘르니예 라포어’로, 귀족으로 살 수 있을 테니까.

“아무튼 반란이 어그러졌으니, 이제 다음 계획을 실행해야지, 마코.”

“드디어 때가 왔군요, 형님.”

* * *

“……르니예?”

벨데메르는 빵을 뜯어 물에 담그는 르니예를 조용히 불렀다.

그러나 너무 조용히 부른 모양인지, 르니예는 그대로 물에 적신 빵을 입에다 넣었다.

“이거 뭔데 아무 맛도 안 나지?”

그러고는 스튜가 싱거운 것 같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정신이 반쯤 나간 것 같은데 입맛은 제대로 있나 보군.

“빵을 물에 담갔으니, 싱겁겠지.”

벨데메르는 손을 뻗어 르니예의 물컵을 옆으로 치웠다.

싱겁다면서 무심코 물컵에 빵을 담그던 르니예의 손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아, 어쩐지 빵이 축축하기만 하더라.”

“무슨 생각을 하느라 물이랑 스튜도 구분을 못 하지? 걱정이라도 있나?”

“걱정은 아니고, 뭐가 좀 이상해서요.”

카밀이 셰론 후작에 대해 한 말이 영 거슬렸다. 저를 흔들기 위해서 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거짓말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셰론 후작이 어머니를 죽였다면, 아버지는 왜 복수를 빌지 않았을까요?”

아버지에게는 소원을 빌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왜 아버지는 그 기회를 이용해서 복수를 하지 않았을까.

“아버지에게 직접 물어보지 그래.”

“지금까지 말을 안 해 줬으니 앞으로도 안 해 줄 가능성이 커요.”

그리고 만약 아버지가 그 일을 잊기로 했다면, 아버지의 상처를 후벼 파는 일만 될 것이었다.

“그래서 지난번에 셰론 후작에 대해 직접 알아본다고 하지 않았나? 뭐가 잘 안 되는 모양이군. 내가 도와줄까?”

그래 주면 고맙다고 하려던 르니예는 멈칫했다.

앞으로 삼 일 뒤에 법정에 한 번만 더 출석하면, 완전히 이혼이었다.

그러면 벨데메르와는, 어떻게 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조각상으로 돌아갈 테고, 다시 나왔을 때 아무래도 그들의 관계는 지금과 다르겠지.

“사람 시켜서 조사하고 있는데 그걸로 안 되면 도와달라고 할게요.”

게다가 벨데메르는 최대한 빨리 소원 개수를 채우길 원했다. 벨데메르는 그것만으로도 바쁠 테니까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프리야 소원은 언제 들어줄까요? 오늘 밤? 아니면 내일?”

르니예는 자연스럽게 주제를 돌렸다.

“찰리 소원이 이뤄졌는지 확인하고 들어줄까 한다.”

지난밤, 찰리는 소원을 빌었지만 얼굴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혹시 모르니 확실히 하고 가는 게 좋겠지. 소원이 이뤄졌든 아니든 들르라고 했으니 곧 올 것이다.”

“궁금하다, 찰리 얼굴.”

얼마나 잘생겨졌을까. 그 어떤 소원보다 이번 소원이 가장 궁금했다.

“너무 잘생겨져서 못 알아보는 거 아닌지 몰라.”

르니예의 얼굴이 기대와 호기심으로 반짝반짝했다. 벨데메르는 그 관심이 꽤 거슬렸다.

“그게 그렇게 궁금한가? 아무리 잘생겨졌어도 나보다는 못할 텐데.”

벨데메르는 은근히 자신의 미모를 어필했다. 그는 르니예가 예전처럼 흠모하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봐 주지 않는 것이 요즘 불만이었다.

그런데 찰리를 떠올리며 눈을 반짝이다니. 아무리 잘생겨 봐야 타고난 미모는 이기지 못하는 법이거늘.

“취향은 주관적인 거니까요.”

뭐라고? 주관적? 르니예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대답에 벨데메르는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던 포도주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물론 놀라운 순발력으로 다시 잡았겠지만.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르니예는 지금, 찰리가 그녀의 취향일지도 모른다는 뜻을 시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찰리 얼굴이 그대의 취향인지 아닌지 그게 궁금하다? 그래서 찰리가 그대의 취향이면 어쩔 거지?”

“뭐 어쩌려는 건 아닌데.”

르니예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잔뜩 찌푸린 벨데메르의 얼굴과 마주했다.

“벨데메르, 지금 질투해요?”

“아니, 전혀.”

아닌 게 아닌데. 르니예는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질투할 필요 없어요.”

“질투 아니라니까.”

“찰리가 벨데메르보다 잘생겨진다고 해도, 어떻게 안 할 테니까. 벨데메르가 아마 내 마지막 남자일걸요.”

마지막 남자라는 말은 좋지만, 아마도라니.

“아마?”

“확실히.”

르니예는 정정해 말해 주었다. 어떤 의미가 되었든 벨데메르가 르니예의 마지막이었다.

벨데메르와 헤어지게 되더라도 다른 남자는 만나지 않을 거니까.

“약속하는 건가, 르니예?”

르니예는 선뜻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해요.”

“그 약속 꼭 지켜 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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