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그냥 무시해.”
“어떻게 무시해, 이걸…….”
아연은 울 듯한 얼굴로 웃으며 도무지 무시하기 어려운 물건으로부터 하체를 떼어 내려 애썼다. 그러나 성현은 도리어 그런 아연을 끌어당겨 하체를 더욱 맞붙였다. 납작한 아랫배에 발기한 성기를 야릇하게 문지르며 그가 속삭였다.
“이 분위기에 안 세우면 문제 있는 거지. 얼마 만에 안아 보는 건지 모르겠어. 네 냄새, 네 감촉, 네 목소리, 하나하나가 돌아 버릴 것 같아, 아연아.”
커다란 몸을 잔뜩 웅크린 맹수가 참다못한 괴로움에 끙끙 앓는 듯한 목소리였다. 짙은 정염이 밴 음성에 본능처럼 아래가 지끈거렸다.
그가 바닷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귀 뒤로 꽂아 주었다. 그리고 아연의 정수리에 애틋하게 입술을 붙이고 나직하게 물었다.
“여기서 하자고 하면, 너무 짐승 같은가?”
아연이 놀라서 입을 크게 벌렸다.
아무리 사생활이 보호되는 풀빌라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양옆으로 뻥 뚫린 야외였다. 게다가 바로 옆 침실에는 희수가 곤히 잠들어 있지 않은가. 신경안정제를 먹고 잠들었다 한들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상황인데, 여기서 하긴 뭘 해?
“미, 미쳤어? 여기가 어디라고……. 어떻게 훤한 곳에서 다 내놓고……. 말도 안 돼.”
당장 이곳에서 성현이 옷이라도 찢어발길까 두려운 눈으로 경계하며 아연이 질색했다. 그러나 성현은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야살스럽게 미소 지었다.
“야외만 아니면 된다는 거지? 우선 하는 거엔 동의했어, 너.”
“아, 아니. 잠깐만……!”
성현은 아연을 번쩍 들어 올렸다. 허공으로 붕 떠오르는 느낌에 아연이 꺅 하고 짧은 비명을 질렀다. 단단한 팔이 안정적으로 몸 아래를 받치고 그녀를 끌어안았다. 아연을 아기처럼 가볍게 안은 성현은 성급한 기세로 발코니 문을 열어젖혔다.
유리가 부서지도록 문을 박차는 성현의 귀 끝이 붉어 시선이 멈추었다. 간질간질한 감각에 아연은 저도 모르게 콧등을 찡그렸다. 그리웠던 그의 기분 좋은 냄새가 훅 끼쳐 들어왔다.
도무지 밀어낼 수가 없었다. 아니, 다시는 밀어내고 싶지 않아.
아연은 끝내 성현의 목을 세게 끌어안았다.
수면 위로 완전히 떠오른 이른 아침의 해가 두 사람이 떠나간 발코니에 반짝이며 부서졌다.
완벽하게 사랑스러운 아침이었다.
* * *
“제발 천천히……!”
아연이 성현의 어깨를 손톱으로 할퀴듯 콱 움켜잡으며 애원했다. 낭창하게 뻗은 다리가 양쪽으로 활짝 벌어진 채 하염없이 허공에서 흔들렸다. 성현은 무릎 뒤쪽의 여린 부분을 잡아 위쪽으로 접어 누르며 더욱 속도를 높였다.
“천천히 못 해, 아연아.”
아이를 나무라듯 속삭이는 목소리는 가증스러우리만큼 다정했다. 난폭하게 아래를 박아 올리는 남자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견뎌.”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양 아무렇게나 속삭이고는 성현은 고개를 내려 바짝 선 젖꼭지를 핥아 올렸다. 앵두같이 귀여운 정점을 혓바닥 위에서 굴리고 강하게 흡입하자 아연이 앓듯이 흐느꼈다.
후우.
성기를 끊어 먹을 듯한 조임에 성현도 낮게 신음했다.
발코니에서 아연을 둘러멘 성현은 곧바로 옆 동으로 이동했다. 희수를 이곳에 데려온 뒤로 보안과 외부 감시를 강화하기 위해 나란히 바다를 향하고 있는 풀빌라 세 개를 모두 이용하고 있었다. 지금 두 사람이 엉켜 있는 이곳은 희수를 살피러 왔을 때 성현이 이용하는 빌라였다.
“아아! 아읏!”
성현은 상체를 세우고 시선을 내린 채 허리를 빠르게 움직였다. 흡사 개처럼 쳐올리는 박자에 따라 유두가 예쁘게 곤두선 가슴이 위아래로 미친 듯이 흔들렸다. 심각하게 자극적인 광경이었다.
쾌락에 겨워 속눈썹까지 젖어 든 아연의 울 것 같은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며 성현은 그녀의 다리를 어깨에 걸쳐 올리고 세차게 박아 댔다. 괴물 같은 힘으로 성기를 처박을 때마다 침대 헤드가 벽을 쿵쿵 때리며 엄청난 소리를 냈다.
빈틈없이 맞붙은 채 마찰하는 접합부엔 허연 거품마저 일었다. 콱 하고 세게 박아 넣자 안에 고여 있던 애액이 찌걱대며 삐져나왔다. 눈앞에 불꽃이 튀어 오르는 것 같았다.
한계를 초과한 쾌락에 모든 것이 그의 제어를 벗어나 있었다. 오랜만에 아연이 주는 아찔한 감각을 느낀 온몸이 미쳐 날뛰었다.
더. 더.
바닷물을 한 움큼 집어삼킨 사람처럼 성현은 깊은 갈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연에게 더 깊이 들어가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밖에 없다는 양 그는 갈급하게 움직였다.
반복되는 것 같으면서도 일관성이 뒤틀린 삽입에 안쪽의 속살은 성기를 놔주지 않을 기세로 물고 쪽쪽 빨아들였다.
페니스를 길게 밀어 넣으면 부드러운 점막이 찰지게 감겨들고, 귀두의 굴곡이 질구에 턱 걸릴 때까지 느리게 뽑아내면 기둥에 들러붙은 속살이 쭈웁 빨려 나오기까지 했다.
느릿하게 비벼 대자 찔꺽찔꺽 음탕한 물소리가 귓가를 달궜다. 통통한 음순이 뿜듯이 흘러나온 애액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험악해 보일 정도로 굵은 기둥을 다 삼킨 요망한 구멍이 물을 질질 흘리며 색정적으로 벌름거렸다.
지독하게 야한 광경에 명치 아래가 지끈거렸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사정감을 억누르며 성현은 상체를 내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아연이 팔을 뻗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제게 안겨 오는 그녀가 정말이지 거짓말 같았다. 확인이라도 하듯 성현은 아연의 뒷목을 끌어당겨 몇 번이고 입술을 겹쳤다.
그의 아래에서 뭉개진 입술이 뜨거운 숨을 토해 냈다. 같은 숨을 나누며 성현은 가장 깊은 곳까지 성기를 단번에 찔러 넣었다.
흐읏. 아연이 숨이 끊어지는 것 같은 신음을 흘렸다. 평평한 아랫배가 위쪽으로 바짝 들리며 바들바들 떨려 왔다.
절정에 다다른 그녀의 목덜미를 단단히 움켜잡고 성현은 낮게 신음하며 안쪽에 사정하기 시작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내벽에 정액이 쏘아지자 아래가 다시 한번 왈칵 조여들었다.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의 쾌락에 거친 숨이 흘러나왔다.
정액을 여린 배 속에 모두 쏟아부은 성현은 뼈가 잡힐 듯이 가녀린 골반과 음부 위쪽의 부드러운 살갗을 어루만졌다. 절정의 여운으로 속살이 두근두근 맥동하며 쫀득하게 성기를 압박하는 게 느껴졌다.
그는 아연의 안에 박아 놓은 페니스는 빼낼 생각도 않고, 정액과 애액으로 질척해진 음순을 만지작거리며 느긋하게 후희를 즐겼다. 아연은 눈을 감고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안온한 감각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아, 나 너한테 혼나야 하는 거 있어.”
성현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혼나야 하는 거라니?
갑작스러운 고백이었다. 아연과 그녀의 부모 뒤에 감시자를 붙여 놓는 불법을 저지른 것이라면 이미 들었는데, 그 외에 또 혼나야 할 일이란 게 무엇일까.
반은 궁금하고 반은 불안해서, 아연이 반짝 눈을 떠 성현을 바라보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아연의 입술을 잡아 문 그가 아랫입술을 빨고, 쪽 소리가 나도록 간지럽게 입을 맞추고는 콧등을 맞대었다.
“기태준이 너한테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너무 늦게 알아차려서, 신나게 뒷북이나 쳤으니까.”
성현은 매형이니 사장이니 하는 호칭은 모두 집어치우고 말했다. 아연은 가만히 숨을 멈추었다.
그를 향하는 마음을 차마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비로소 성현의 손을 잡아 보기로 마음먹었지만, 여전히 마음속의 불안과 상처가 들썩거렸다.
그곳, 한강 둔치에서 태준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초라함과 수치심, 모멸감과 절망, 그리고 체념이 수위 바로 아래에서 넘칠 듯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성현과 함께하기로 결정한 이상 그런 상황을 또다시 맞닥뜨리게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제 존재가 어쩌면 성현에게 어둠을 끼치게 되리라는 것도.
아연은 시선을 내려 제 손에 깍지를 낀 채 애틋하게 손가락을 어루만지고 있는 성현의 손을 보았다.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빈틈없이 맞붙은 손바닥. 그곳에서 전해지는 가슴 저리는 온기를, 더는 밀어내고 싶지가 않았다. 그것만큼은 이제 명확했다.
제 마음을 마침내 똑바로 직시하자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실낱처럼 피어올랐다.
이 손을 놓지 않는 한, 무엇이든 버티고 이겨 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깍지 낀 손을 가져와 제 가슴 위에 살며시 올려놓으며 아연이 물었다.
“……뒷북이라니?”
“다시는 그 비열한 낯짝 볼 일 없을 거야. 태송현에서든, 그 어디에서든.”
성현은 눈꺼풀을 내려 자신의 눈에 어린 음산한 기색을 능숙하게 숨기며 말했다. 태강에서 내쫓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기태준이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낯짝 들고 다닐 일은 없을 터였다. 그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사장직에서는 이미 해임됐고, 지금 비공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야. 이혼 서류도 날아갔을 거고.”
“……이혼까지?”
“기태준 쪽에서는 합의할 리 없으니 곧 이혼소송 들어가겠지.”
“누나도, 이혼을 원하셔?”
아연은 성현의 조카를 어렴풋이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가 알기론 성현의 누나, 지연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미국에서 유학 중인 아들이 있었다. 저 때문에 먼 타국에서 갑작스럽게 부모의 이혼 소식을 듣게 만든 것은 아닐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기 쪽팔리게 하는 놈은 못 품는다던데. 그런 놈을 남편이랍시고 여태 끼고 살았으니 하루빨리 갖다 버리는 게 낫지.”
성현은 남의 일 말하듯 무신경하게 대꾸하며 자연스럽게 아연의 다리 한쪽을 들어 올렸다. 그는 생각에 빠져 있는 아연을 비스듬히 내려다보면서, 가느다란 종아리를 길게 쓸고 올라가 볼록 튀어나온 복숭아뼈를 둥글게 문질렀다.
그러자 아연이 숨을 멈추고 허리를 뒤틀었다. 찡그린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는 시선이 미친 듯이 사랑스러웠다.
“읏……. 이제 좀 빼…….”
내가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매번 저렇게 칭얼거리는 것도 귀여워 죽겠고.
어디를 만져 주면 바르르 떨며 자지러지는지 아연의 몸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데도,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거대한 욕망이 그의 안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까마득한 무저갱처럼.
그래서 아연을 안을 때면 몹시 저열하고 치졸한 욕구가 고개를 쳐들었다.
제 손을 타지 않은 곳이라곤 터럭 한 올 남아 있지 않도록 지독하게 탐닉하고 몰입해도 그는 만족을 몰랐다. 그녀의 온몸을 아무리 물고 빨고 핥고 안아도, 여전히 타는 듯한 목마름이 성현의 목줄을 죄고 당기며 거칠게 채근했다.
그 지독한 갈증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 왜 처음부터 알지 못했을까.
등신처럼 돌고 돌아 이제야 제 손에 들어온 이 작고 예쁜 발목에 사슬을 묶어서 저와 연결해 놓고 싶었다.
다시는 나를 버릴 생각을 하지 말라고.
바르작거리는 다리를 잡아챈 성현은 한 손에 들어오는 얇은 발목을 움켜쥐고 제게 당겼다. 동그란 복숭아뼈에 가만히 입을 맞춘 그가 야릇하게 웃으며 말했다.
“잘못을 했으니까 벌을 받아야지.”
묘한 미소에 정신이 팔린 순간, 시야가 확 뒤집어졌다.
아연은 어느새 성현의 배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능숙하게 자세를 바꾼 그가 아연의 밑에 깔린 채로 팔을 벌려 그녀의 양쪽 무릎을 쓸듯이 어루만졌다.
“자, 마음껏 혼내 줘.”
벌을 받겠다는 사람이 왜 흥분한 얼굴로 눈을 번쩍거리는지 모를 일이다.
아연은 저를 올려다보는 기대 어린 새까만 눈동자를 응시하며 곤란한 듯이 웃었다.
역시 자신이 무언갈 잘못 건드렸다는 생각이 깊어지고 있었다.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스럽고 굶주린 짐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