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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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관인단들은 리안의 너무 빠른 행보에 어떻게 해야 할지 발을 동동 굴렀다.
리안이 마맨 백작가의 수도를 점령하는 순간 손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지게 된다.
“그보다 이벨 왕국의 사위라니……?”
얼마 전에야 신센롬 제국의 부마가 된 것을 알았는데, 이벨 왕국의 부마라니.
도대체 하브스 가문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방금 교묘하게 명예 성기사의 지위는 빼 버렸소.”
스랑 제국의 참관인이 잉글슨 왕국의 참관인에게 말해 주었다.
이들은 적국이나 다름없지만, 양측 모두 리안의 뒷모습을 보며 동병상련을 느꼈기 때문.
“그런… 배후에 교황청까지 있단 말이오?!”
“그래서 더 골치 아프오.”
“그런데, 명예 성기사 작위는 방금 전 왜 언급을…….”
“과시겠지요. 신센롬과 이벨 왕국의 후광이면 충분하다는 것이겠지. 안 그렇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갑작스럽게 나타나 훼방을 놓는 바람에 두 나라는 참으로 골치 아프게 되었다.
해전은 흐지부지되어 가는 상황에 종전은커녕 휴전도 되지 않은 상태.
두 나라는 결국 육지로까지 확전을 생각했고. 이제 싸우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또다시 명분을 교환하기 위해 시간이 걸리게 될지도 모른다.
‘돈 새는 소리가 장난 아니군…….’
전투가 소강상태라 하더라도 군비가 들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병사들이 매일 먹어 치우는 식량부터, 용병들을 고용한 값까지.
“지금이라도 말려야…….”
“무슨 명분으로 말리겠소.”
잉글슨 국왕 직할지인 노르망 공작령의 봉신이 시비를 걸었고.
스랑 제국이 이를 용인해 줬다.
“일단 시간이라도 끄는 것이…….”
“저길 보시오.”
참관인들이 마맨 백작령의 수도 입구로 눈을 돌렸다.
도시로 진입하는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으나 의미가 없었다.
지키는 사람이 없으니 소수의 병력이 성벽을 넘어 문을 열었다.
끼리리릭!
커다란 성문이 열리자 리안이 선두에서 오토호스 위에 섰다.
그걸 모든 병력이 지켜보았다.
“약탈, 강간, 민간인 학살을 금지한다! 만약 이를 어기는 자가 있다면 즉결 처형하겠다!!”
큰 소리로 외치자 실망하는 병사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들은 자신이 목숨을 걸고 싸웠으니 전리품을 얻을 자격이 있다고 당연시 생각했다.
이 세계는 그런 시대였다.
“이곳은 너희들의 영주인 푸제흐 백작님의 데릴사위이자 내 동생인 라드 레온이 지배하게 될 것이다. 파괴하는 행위는 좌시할 수 없다.”
여전히 병사들의 표정은 뾰로통했다.
마치 ‘그건 네 사정이고.’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단! 전투가 끝나는 즉시 마맨 백작가의 창고를 털어 전리품을 대신하겠다. 그리고! 궁전에 있는 마맨 가문의 깃발을 가장 먼저 내리는 열 명에게 1골든씩 상금을 내릴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병사들의 눈이 뜨겁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1골든은 1,200페니이니 금화 10개의 가치가 있든 골드바였다.
솔직히 리안에게도 아주 약간은 부담되는 비용이었지만.
“가라! 용맹한 푸제흐의 병사들어어!”
“우와아아아아아!!!!”
병사들이 광기에 젖어 도시안으로 진입했다.
아무리 마맨 백작이 대패를 해서 패잔병을 별로 건지지 못했다 할지라도 궁전을 지키는 병력은 있을 것이다.
“꼬맹이. 잔인하군.”
그때 부선장이 귓가에 말을 흘렸다.
“어차피 내 병사도 아닌걸요.”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돌격을 시키는 것은 효율적인 공성전이 아니다.
무질서한 공성전은 많은 사상자를 낼 것이다.
다만,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는 단언할 수 있었다.
꺄아아아악!!
도시 이곳저곳은 비명으로 가득 찼다.
분명 약탈을 금지했지만, 아무것도 없이 공성전을 할 수 없는 터라 어느 정도는 눈을 감아 줘야했다.
어차피 병사들도 딱히 민간인의 재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깃발만 내릴 수 있다면 인생 역전이다.
병사들이 가정집에 쳐들어가 하는 일이라곤 나무판자 같은 것을 뜯어서 나올 뿐이었다.
그걸로 방패나 사다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하긴. 저런 곳을 넘어가기는 우리라 해도 조금 부담스럽지.”
리안이 데려온 선원들을 시켜 성벽을 넘어 문을 열게 시켜도 된다.
어쩌면 피해 없이 손쉽게 궁전의 문을 열지도 모르지만, 운이 나쁘면 죽는다.
대전사도 살과 피로 이루어진 사람이니.
“이딴 곳에서 내 측근을 잃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기에 돈을 풀어 병사들을 선동했다.
눈에 불을 그들은 개떼같이 궁전으로 몰려가 사방에 사다리를 걸쳤다.
“거참… 잔인한 처사도 아니었나……?”
생각보다 리안이 말한 파장이 컸나 보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한 무리만 움직였다면, 궁전을 수비하는 자들에게 쉽게 저지를 당했을 것이다.
공성 장비를 따로 들고 온 것도 아니고 민가에서 뜯은 나무판자로 어설프게 조립한 것들이다.
그런데, 의외로 시도하는 무리가 많았고. 그것은 전군에 전염되었다.
가뜩이나 공격하는 병사의 숫자가 훨씬 많은데, 그들이 하나같이 성벽에 오르려고 하니 상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좀비같네…….”
“본 적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하는군.”
“그냥. 소문으론 들었죠. 훗.”
율 대륙 남쪽 중해 너머 검은 땅.
그곳에는 죽음의 신을 모시는 사제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시체를 일으켜 전쟁에 동원시킨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들을 네크로맨서 또는 부두술사라 불렀다.
“생각보다 피해가 적겠군.”
“아니요. 지휘 체계가 엉망진창인 상태라 궁전에 진입하고 나서 더 큰 피해가 날 거예요.”
아무리 패잔병이라 할지라도 궁전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마맨 백작가의 친위대이거나 충성심이 높은 자들로 구성된 자들일 것이다.
“많은 아군이 죽을 걸 예측했는데도 밀어붙이다니. 이럴 때 보면 냉정하단 말이지.”
“어차피 내가 나서지 않는다면, 율 대륙은 더 큰 피를 흘려야 할 거예요.”
뜬금없는 리안의 말.
“황제라도 되려나 보군.”
부선장은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리안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 * *
잉글슨 왕궁의 알현실.
그곳에는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잉글슨의 지배자가 있었다.
“아니! 이걸 말이라고 하는가?!!”
그동안 밀려 있던 정보들이 한 번에 들어왔다.
헛소문이라 판단되어 가차없이 밀려난 서류들도 새로이 검토되었다.
“그러니까. 신센롬 제국의 부마에. 이벨 왕국의 부마라고?!”
“그렇습니다. 전하!!”
그저 능력이 좋은 참모를 데리고 있는 꼬마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꼬마가 새끼 용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아국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악용!
“거기다 명예 성기사?!”
“확실하진 않지만, 급히 수집한 정보로는… 유명한 이교도의 해적단 셋을 박살 내고 튀니스에 있는 율 대륙민을 구출했다고…….”
“아니. 그놈은 언제 그런 일을……!!”
가뜩이나 신센롬 제국과 이벨 왕국이 거슬리는데, 거기에 교황청이라니.
롬의 교황청은 태양신 쥬교만의 힘이 아니다.
그곳에는 다양한 종교의 지도자들이 방문하며, 교황과 여러 가지를 논하는 곳.
교황은 여러 종교의 대표나 다름이 없었다.
“재상. 방법은 없겠는가? 이대로라면 어디서 돈이라도 꿔야 할 판이야.”
“이미… 많은 돈을…….”
의회에서 승인한 돈에 개인 내탕금도 모자라 금융업자들에게도 돈을 빌린 국왕이었다.
이번 전쟁으로 노르망의 직할지를 공국으로 독립시킬 생각이었다.
거기에 영지를 조금만 더 집어삼키면 황제로 즉위할 수도 있다.
물론 지금 보유한 땅만으로도 황제국이 될 수는 있었지만, 바다 건너에 있는 스랑 제국을 손봐 주지 못한다면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 올 것이 분명했다.
“전하!! 레온 백작의 외조부인 아트로네 백작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어서 들라고 해라!”
* * *
마맨 백작가에 푸제흐 백작가의 깃발이 펄럭였다.
와아아아!!!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게 궁전은 점령되었다.
물론 그 빠른 만큼 아군의 피해도 제법 컸다.
“세바스 아저씨. 곳간을 파악하고 전리품을 배분하세요.”
“알겠습니다. 각하!”
세바스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너… 너희들…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내 뒤에는…….”
마맨 백작이 영주 의자의 뒤에서 벌벌 떨며 소리쳤다.
병사들은 용맹하게 전투에 임했지만, 감히 백작의 몸에 손을 대지는 못하고 머뭇거리며 포위만 한 상태였다.
“지금 그 발언은 상당히 위험한 것 같은데요. 마맨 백작님. 아니. 이제 그냥 마맨 님이라 불러야 하나?”
“너… 넌!!”
“내 소개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이 근방에는 이미 소문으로 다 퍼진 상태였다.
“그러니까 노르망 공작 아니. 잉글슨 국왕께서 명령했단 말이죠? 푸제흐 백작가를 치라고.”
“아… 아니… 그건 아니고.”
“맞다 해도. 적법한 절차를 걸쳐서 스랑 제국의 승인하에 벌어진 정당한 영지전이었습니다. 마맨님~??”
리안은 싱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항복하시죠. 10초 안에 항복하지 않는다면 항전하는 것으로 알고 명예롭게……!”
그때 뒤에서 참관인단이 들이닥쳤다.
물론 그전에 리안과 마맨 백작의 대화는 들은 상태다.
너무도 큰 소리였기에.
“아이고!! 여러분들. 이 영지전은 무효입니다!! 저자는…….”
“10!”
마맨 백작은 참관인단에게 호소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전쟁에 참여할…….”
“9.”
“8.”
.
.
.
“2.”
“병사를 끌고 오지 않았다고 해도! 이것은… 신센롬과 이벨 왕국의 내정 간섭!!”
“1.”
리안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슥!!
부선장에 칼 두 자루를 겹쳐 가위처럼 만들어선 목을.
싹뚝!!
그걸 지켜보던 참관인단들은 눈을 커다랗게 떴다.
누가 봐도 마맨 백작은 싸울 의사가 없어 보였지만.
“마맨 백작님은 참으로 용맹스러운 분이시군요. 이미 기울어진 전쟁에서 끝까지 항복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저항하시다니. 참으로 존경스러운 분이십니다.”
리안의 말과 태연한 태도에 참관인단은 경악했다.
저것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나 그렇게 호락호락한 놈 아니다.
귀족은 귀족을 잘 죽이지 않는다.
최대한 몸값을 받고 풀어 주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충분히 생포할 수 있음에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목을 날려 버렸다.
-끝났군. 진짜로 이 땅을 먹을 생각이야.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신센롬과 이벨의 세력권에 이런 중요한 땅이.
스랑과 잉글슨의 두 나라 참관인들은 적이지만, 마치 친구처럼 서로의 귀에 숙덕였다.
이들이 가진 권한으로는 이걸 수습할 방법도 없으리라.
그때.
“레온 백작!”
잉글슨 왕국의 귀족 하나가 리안을 불렀다.
본국에서 소식이 온 것이다.
“왜 그러시죠? 아참. 이 영지의 지배권을 인정받으려면 참관인단 여러분의 사인이 필요하죠.”
어차피 실효 지배를 하고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지배권을 인정받을 수 있다.
아무리 명분이 중요해도 결국 영주들의 세계는 힘의 논리만이 존재하는 야생이기 때문.
“서두를 것 없이 조금 기다리는 것이 어떻겠소. 그대의 외조부가 이리로 오고 있다 하오.”
그 말을 들은 리안이 미소를 지었다.
‘잉글슨 국왕이 머리를 좀 썼네.’
아트로네 백작가는 잉글슨 왕국에 굴종한 백작가다.
만약 반기를 들었다면, 사라진 다른 아일리 섬들의 귀족가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거다.
“잉글슨 왕국에 감사를 표합니다. 이렇게 기쁜 상황에 귀빈을 보내 주시고.”
* * *
아트로네 백작은 쾌속선을 타고 오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거참. 잉글슨 국왕이 그렇게나 저자세로 나올 줄이야. 도대체 리안 놈 무슨 일을 저지르고 다닌 거야?”
잉글슨 국왕은 리안을 설득해 달라고 했다.
-스랑 제국에 넘기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그래야. 우리가 그 땅을 찾기 위해 전쟁을 벌이지 않겠소. 아트로네 백작.
결국 잉글슨 왕국이 원한 것은 싸움 그 자체.
그저 리안이 뒤로 빠져 주길 바란 것.
“후… 설득할 수 있으려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마맨 백작은 대패를 한 뒤 소수의 병력으로 수도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리고 빠르게 잉글슨 측에 증원 요청을 했다고.
다시 말해 이미 먹은 땅이다.
무려 백작령을 말이다.
* * *
참관인단과 리안은 대회의실에서 아트로네 백작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다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양측은 전쟁을 원하고 있으며, 잉글슨 국왕이 묘안을 보내왔으리라.
“참으로 고생들이 많아요~”
리안은 살짝 거만하게 상석에 앉아서 말했다.
뿌드득.
리안의 말에 다시 심기가 나빠진 양측 참관인단.
두 나라는 전쟁에 승냥이가 끼지 않게 하기 위해 열심히 명분을 쌓았는데, 그 승냥이의 무리인 리안이 떡하니 등장해 알박기를 해 버렸으니 얄미울 수밖에.
“아트로네 백작께서 도착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