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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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은 살짝 피로한 느낌이었다.
바다와는 달리 육지는 지형에 따라 조종간을 계속 움직여 줘야 했다.
“으아··· 조타수가 필요해.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어!”
바다와 달리 누구에게 잠시 맡기기도 그랬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바다에선 그저 적당히 리듬을 타면 되지만, 육지는 우두
커니 진동을 버티는 느낌이랄까.
더군다나 직진만 하면 되는 바다와 달리 육지는 지형에 따라 조타를 계속 해
줘야했다.
외줄 타기와 장거리 자동차 운전을 섞어 놓은 느낌이랄까.
“꼬맹이. 쉬려면 수속부터 마쳐.”
목적지에 도착해도 곧장 쉴 수는 없었다. 무슨 공항도 아니고.
대표자가 신고를 마쳐야 한다.
“이건 아동 학대라고요!”
리안은 축 처진 어깨로 선교 밖으로 나왔다.
타각. 타각.
접안된 부두와 연결된 나무판자까지 걸었다.
그곳에는 긴장한 여력이 가득한 관리가 마중 나와 있었다.
“환영합니다. 아트로네 부유 부두의 관리인 사츠인이라고 합니다. 혹시 관련
된 통행 허가증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아?”
‘웬··· 꼬마?!’
참고로 마법 처리가 된 증명서는 개인에게 귀속된다.
해군 대제독이 발급한 서류는 마법적 술식으로 계약이 된 것.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서인데, 덕분에 당사자가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본인이 아니라면 계약서가 반응하지 않기 때문.
이렇게 본인이 직접 나온 이유다.
스윽.
리안은 딱히 입을 열지 않고 서류를 넘겼다.
“어··· 리안 레온 도련님이십니까!?”
부두 관리인은 이름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곳 주인인 아트로네 백작의 외손자인 리안의 얼굴을 모르는 모양.
분명 리안은 본가로 돌아갔을 터인데··· 이런 식으로 나타날지는 몰랐다.
혹시 사칭인가 싶어 통행증을 확인했지만, 붉은색 광이 나는 것이 아무리 확
인해 봐도 진짜였다.
국가별로 반응 양피지(만졌을 때 광이 나는 효과)를 만드는 노하우가 모두 다
르다.
그렇기에 색을 보고 어느 나라에서 발급했는지 알 수 있다.
붉은색은 잉글슨 왕국의 전유물이다.
“몰라뵈어서 죄송합니다. 도련님! 한 번도 뵌 적이 없다 보니······.”
급히 부두 관리인은 저자세를 취했다.
이곳에서만큼은 리안도 로열패밀리.
“괜찮아요. 빨리 서류나 처리해 주세요.”
부두 관리인은 급히 허가증 옆에 정성스럽게 도장을 찍었다.
이미 허가증에는 다른 곳의 도장이 찍혀 있었는데, 당연히 더블린 항의 도장
이었다.
더블린의 도장 옆에는 특급 보급을 받았다는 글귀도 적혀 있었다.
사실 검증은 그곳에서 받았을 터. 더 확인하고 자시고 할 것이 없다.
“휴··· 시이이······.”
대충 수속도 다 밟았겠다. 리안은 뒤를 돌아보며 선원들에게 외치려던 찰나.
“란!! 이 녀석아! 하하하.”
웬 건장한 청년이 리안에게 달려와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다만, 그 정도가 조금 아니 과하게 심했는데······.
“아··· 아!! 씨입··· 왜··· 뭐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리안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마나 유저임에도 아플 정도로 거칠다.
도가 지나치는 장난.
다만 그 와중에 순간 생각이 든 것은 아는 사람인가 싶기도 했다.
그래도 이건 좋아서 머리를 만지는 것이 아니다.
과하다. 너무 과하다. 명백한 괴롭힘이다.
그때.
우드득!!
뼈가 꺾이는 소리?
마치 치킨의 관절을 뒤틀 때 나는 느낌과 비슷한 진동.
“으아아아아악!!!”
리안에게 달려든 청년의 입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내 파알아아악!!”
그는 바닥에 나뒹굴었고 그 위에는 붉은 머리의 소녀가 엉켜 있었다.
“어디서 감히 우리 도련님께 더러운 손을······!!!”
샤로트였다.
그녀는 매우 화가 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리안에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명백히 제 실수예요. 도련님! 이런 상황에 치한이 덮칠 줄
은······??!!”
그러다 잠시 말을 멈추더니. 치한의 얼굴을 보았다.
“어엇!! 죄송합니다. 둘째 도련님!!”
갑자기 놀라 뒤로 급히 물러나서는 한쪽 무릎을 꿇는 샤로트.
“흐억··· 억! 흐억. 헉··· 너어어···!! 하찮은 년이 감히!”
아는 얼굴.
당연히 샤로트는 아트로네 백작의 두 번째 손자인 가이스의 얼굴을 모를 리
없고. 가이스 역시 리안의 시녀인 샤로트를 알고 있었다.
‘샤로트가 저리 행동하는 이유는······.’
곧장 상황을 파악한 리안.
아주 일이 재미있게 돌아간달까.
“형님!! 괜찮으십니까?!!!!”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당연히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았다.
아마도 자신의 머리를 개같이 쓰다듬다가 팔이 완전히 꺾여 버린 사람은 사촌
형이 아닌가 싶다.
“리아아아안!!! 쓰벌 놈아! 이런 연놈들! 뒤졌어! 파울로! 뭐 해! 이 개 같은
자식을 무릎 꿇리지 않고!”
그는 아주 이성이 나갔는지 욕설을 하며 자신의 가신을 불렀다.
“후··· 리안. 도련님. 어쩌겠습니까? 사람들이 보는 앞이라 수치스럽겠지만,
꿇으십시오.”
가이스의 기사 파울로는 낮게 분위기를 잡으며 리안에게 경고했다.
너무도 익숙한 느낌.
당황하면 평소에 습관이 나온다던가?
아마 이전에도 저런 식으로 윽박을 질렀을 것이다.
“푸흐.”
리안은 웃음을 겨우 참았다.
멍청한 걸까? 아니면 임기응변에 약한 것일까?
저 둘은 모두 가장 큰 걸 보지 못했다.
샤로트의 무력.
둘째 후계자 가이스는 각성한 대전사다.
아무리 실전 경험이 없다 한들 대전사는 대전사.
누군가에게 그리 쉽게 관절이 꺾이겠는가.
더군다나 파울로도 대전사.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평소에 하던 대로 습관이 나와 버린 것이다.
저 둘은 실격이다.
평화의 시기에는 귀족이니 대전사니 어깨에 힘을 주고 다녀도 전쟁터에 내보
내면 힘을 쓰지 못하는.
스윽.
리안은 뒤를 돌아보며 눈짓을 했다.
어느새 부선장이 뒤에 와 있었다.
진심으로 기겁을 한 얼굴.
아마도 갑작스러운 가이스의 난입에 적지 않게 놀란 듯싶다.
“쓰바아알!! 그러니까 각성 좀 하라니까.”
괜히 혼자 씩씩거리고 있었다.
만약 리안의 사촌 형이 마음먹고 죽이려 했다면? 아찔했다.
“후··· 나도 방심했다. 미안하다. 꼬맹아.”
분노를 겨우 가라앉힌 부선장은 리안을 스쳐 지나가며 속삭이듯 말을 남겼다.
그리고는 그의 몸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아마도 분노는 방심한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었겠지.
“거기 애송이. 내가 모시는 분을 모욕한 것은 당연히 목을 내놓고 말한 것이
겠지?”
“대··· 대전사······?”
그제야 뭔가가 잘못된 것을 느끼는 파울로였다.
모시는 분, 대전사, 놀라울 정도로 강해진 샤로트 마지막으로 당당하게 서 있
는 리안 레온.
모든 것이 이상했다.
“너··· 넌 누구지?”
물론 파울로는 실전 경험이 전무하지는 않다.
다만, 이 정도로 압박감이 느껴지는 상황을 겪어 보지 못했을 뿐.
다시 말해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다.
목젖 아래 칼날이 닿은 것처럼 섬뜩했다.
눈앞의 리안은 이제 별 볼 일 없는 꼬마가 아니다.
대기사를 거느린 진짜 귀족이 되어서 돌아왔다.
별거 아닌 상황처럼 보였지만, 귀족의 명예를 건드린 것이 되었다.
귀족은 백성 위에 군림하여 통치해야 하는 자.
명예와 고귀한 피는 도구이며, 이는 감히 일개 기사의 목숨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다.
그제야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지금 여기서 자신의 주군인 가이스의 후광을 믿고 어설프게 물러났다가는 자
신의 목이 달아날 일이란 걸.
리안은 엄연히 이 땅의 주인 아트로네 백작의 외손자였다.
아무 힘도 없을 때야 모르지.
힘이 있는 부하는 언제든 자신이 모시는 주군의 명예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
울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게 아니라······.”
순간 머릿속으로 스치는 것이 있었다.
‘리안 도련님은 본가로 갔었다!!’
백작위를 계승하기 위해.
그 말은 리안이 이미 백작일 수도······!
“무례를 용서하시길······.”
파울로는 급히 예를 차렸지만.
“싸바아알!! 파울로. 개자식아. 뭐 하는 거냐!! 당장······!”
여전히 고통으로 인해 반쯤 정신이 나간 가이스는 고함을 고래고래 질렀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
‘아아. 주군. 제발······.’
파울로는 등에 식은땀이 났다.
일이 커지면 가이스는 그저 백작에게 꾸중을 듣고 끝날지 모르겠지만 자신은
다르다.
목숨 그게 아니더라도 자신은 가진 모든 걸 잃겠지.
쿠우웅!!!
그때 부선장이 자신의 검을 땅에 내리쳤다.
츠으으으!
검을 감싼 물이 바닥을 적셨고 그 물이 주변을 빠르게 잠식해 갔다.
중견급 전사.
어지간한 백작가의 기사 단장급이다.
은은한 살기가 순식간에 피부를 스쳐 지나쳤다.
“그대들이 하는 행동은···! 선전 포고인가?! 끝까지 내가 모시는 분을 모독하
는군.”
부선장은 잔뜩 힘이 들어간 눈으로 주변을 스쳐 보았다.
일반 시민들은 이미 기가 죽어 얼굴이 퍼렇게 변한 상태.
중견급 대전사가 내뿜는 기세는 범인이 견디기 힘들었다.
뭔가 일이 잘못되어도 심하게 잘못되었단 생각이 들었다.
급기야 고잉미샤호에 타고 있던 선원들도.
“씨발. 뭐야!!”
“누가 우리 선장을 건드린 거야?”
“와씨··· 우리 선장이 잘못되었으면 나 폭주할 뻔.”
“여기 있는 것들 다 죽이면 되는 건가? 헤헤. 약탈?”
“함부로 손부터 쓰지 마. 우리 선장 귀족이다.”
“어휴. 답답하구만. 그것만 아니었으면······.”
순식간이었다.
배에 타고 있어야 할 선원들은 해적이 아니랄까 봐 언제 이동했는지 어느새
부두 주변을 포위하고 있었다.
은밀하고 빨랐다.
이미 전투 준비를 마친 듯 보인다.
아마도 이들이 마음을 먹는 순간 목격자는 모두 목이 달아날 것이다.
“뭐··· 뭐야.”
그제야 이성을 차린 가이스.
육체의 고통은 죽음의 향기가 나는 분위기에 눌려 버렸다.
해적들의 살기는 진짜다.
살인에 익숙한 눈빛들.
“아오. 남자는 머리발인데······.”
안정화 되자 리안은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했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까딱!
“여기 있습니다. 선장님.”
세바스가 정중히 해적 모자를 스윽 하고 씌워줬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잘 씌워 줬는지 이리저리 각을 제며 손을 봐 줬다.
그래 봐야 해적 모자가 너무 커서 대충 걸쳐야만 했지만.
“샤로트. 그만 일어나라.”
“네?! 도련님··· 하지만······.”
그녀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저런 대가리 속이 꽃밭인 미친년이 두려움에 떨 정도면 예전에 저들의 패악질
이 심했다는 것일 거다.
안 봐도 비디오.
“너는 내 호위 기사다. 내 앞이 아닌 누구라도 내 허락 없이 무릎을 꿇지 마
라. 그것이 설령 황제라 할지라도.”
“충!”
흔들리던 그녀의 눈동자가 바로잡혔다.
동시에 그녀의 뜨거운 기운이 주변을 잠식해 나갔다.
명백한 중견급 대전사.
웃긴 것은 극의 수(水) 기운인 부선장의 영역과 다툼을 할 정도.
‘어딜!!’
당연히 실력 차로 인해 금방 밀려났지만, 두 사람 모두 리안의 부하였다.
거기에 더해 조화롭게 세바스의 목(木) 기운이 덮어져 있었다.
리안의 부하들이 공간을 완전히 장악했다.
후우우웅~!
세 명으로 인해 주변의 기운이 난리를 쳤다.
덕분에 리안의 커다란 해적 모자가 삐뚤게 내려왔다.
철컥.
그걸 마권총으로 자연스럽게 살짝 올린 다음.
타각. 타각.
천천히 가이스의 앞에 가서 쪼그려 앉았다.
당연히 부하들이 공간을 완전히 장악한 뒤이기 때문에 그리 행동한 것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마나 유저 주제에 적대적인 각성자의 코앞까지 다가가겠는가.
“둘째 형님.”
“어어··· 어?!”
잘못되어도 확실히, 명백히 그리고 굉장히 잘못되었다.
머리를 굴려 어찌 된 일인지 열심히 파악했다.
가이스도 당황해서 버릇이 나왔을 뿐 저능아는 아니었다.
“형님! 아무리 반가워도 그렇지. 갑자기 그렇게 튀어나오면 제 부하들이 실수
를 할 수밖에 없잖아요. 안 그래요?”
“그··· 그렇지. 내가 잘못했다. 정말 미안하다.”
분명 레온 백작가로 떠나기 전에는 유약하기 짝이 없던 리안이었다.
심심할 땐 목 아래를 두들겨 패도 되는.
그런데.
그런 녀석이 지금은 이 땅의 주인이자 자신의 할아버지인 아트로네 백작과 비
슷한 분위기를 펄펄 풍기고 있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던가?
그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리안을 보고 있으니 어쩌면 그 말이 사실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가능성이 없다던 떠들었지만, 결국 레온 백작위를 계승한 걸까?
그렇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백작 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