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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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태로 바다가 육지 안으로 움푹 들어간 지형을 ‘만’이라고 불렀다.
항만 포격을 위해 ‘만’ 안에 갇힌 연합은 스랑 제국의 접근을 저지하기 위해
격렬하게 견제했다.
그럼에도 돌격선들은 무리하게 ‘만’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퍼버버벙!
보통이라면 이런 식에 돌격은 하지 않겠지만, 지형조차도 압도적이게 유리했다.
제국 함대는 잉글슨-해적의 연합과 비교하자면 단일 지휘 계통에 군함의 성능
또한 훨씬 좋았다.
이 점에서 오는 자신감에서일까? 그래서인지 얻어맞으면서도 빠르게 전진했다.
“전진!! 이지포(실드 마법탄)를 쏴라!!”
물론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해전의 특성상 먼저 거리를 좁히는 쪽이 불리한 터라 그 불리함을 상쇄시키기
위해 개발된 이지포.
그들은 전방에 아낌없이 이지포를 쏴 젖혔다.
“초반에 이지포를 저리 낭비하다니.”
제국은 압도적인 전력으로 단숨에 전투를 끝내기 위해서였지만.
연합군은 그런 제국군을 보며 두려워하는 기색은커녕 여유로웠다.
아니, 조소를 날렸다.
“멍청한 놈들. 물었습니다. 확실하게 물렸어요.”
“그런 것 같군. 반격의 시간이다. 신호탄을 올려라!”
연합군의 몇몇 함선에서 하늘을 향해 신호탄이 쏘아졌다.
삐루루루. 펑!!
연막으로 인해 공중에는 노란색 연기가 자욱하게 퍼졌다.
그걸 본 스랑 제국 측은.
“뭐지? 저 연기들은? 이런 상황에서 왜??! ”
“서··· 설마. 뭔가 더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
생각보다 연합군의 규모가 작다고 느끼던 차였다.
물론 리안이 사전 작업을 하긴 했다.
-아직 집결이 완전히 되지 않음.
-정면 대결은 무리라고 판단.
-먼저 집결된 함대로 스랑 제국의 항구를 포격.
-시간을 끌기 위한 전략으로 보임.
이런 식으로 가짜 정보들을 계속 흘렸다.
당연히 그럴싸해 보였기에 제국 측은 낚인 것이고.
-해적들이라 단합이 안 되는 가보군.
집결하는 데 한세월이 걸릴지도 모르니 연합군의 항구 습격은 이상하게 보이
지 않았다.
오히려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병력이 완전히 소집되기 전까지는 정면 대결이 불가능하니.
“적! 적입니다. 후방에 연합군 등장!!”
너무도 안일했다고 해야 할까?!
정보를 너무 가감 없이 믿었다.
그 결과.
“앞뒤로 포위되었습니다!!”
[*
‘*’는 ‘만’에 갇힌 연합군.
l
그 만의 입구를 막은 제국군.
)
입구를 막은 제국군을 포위한 새로 나타난 연합군.
[*ㅣ)
제국이 오히려 역으로 갇히게 된 것이다.
억지로 포위를 뚫고 나가려고 하면 항구에 원래 갇혀있던 연합군이 꼬리를 물
고 놔주지 않을 거다.
결국 막대한 피해를 입으며 퇴각할 수밖에.
“쯧. 속은 건가?!”
“그리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쓰지 않은 카드가 있으니까요.”
스랑 제국 이 황자가 혀를 차자 특급 전열함 함장이 여유로운 미소를 보였다.
“그 해적왕의 부하 말인가? 노르드의 해적 놈들도 협조한다고 했던가?”
“네. 플랑크라고 가장 신임받는 부하라고 합니다. 다음 해적왕으로 전격 지원
을 해 주기로 했습니다.”
“북해의 노르드 해적 놈들은? 왜 협조하는 거지?”
“노르드 해적 놈들은 얼핏 보기에 서로 파벌이 달라 보이지만, 거기서 거기인
놈들이죠. 잉글슨 놈들이 속은 겁니다.”
사실 제국 측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리안에게 나포당한 통신선에서 오는 정보를 별 의심 없이 받아들인 것도 그
자신감에서 오는 거였다.
잘못되어도 수습할 수 있다는.
지금과 같이.
“그놈들이 우리에게 돌아서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아쉬운 대로 이길 수는 있습니다. 해적왕의 기함만 잡으면, 사기가 떨어진
해적들이 항복하거나 연합군에서 빠르게 이탈할 겁니다.”
특급 전열함 함장이 고개를 돌려 새로 등장한 연합군 쪽을 바라봤다.
대부분 해적들로 구성된 포위망이다.
저들은 만 안쪽에 있는 해적왕이 쓰러진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주할 놈들
이었다.
결론은 해적왕을 얼마나 빨리 잡느냐에 따라 유리하게 전투를 마칠 수 있는지
가 정해졌다.
“해적왕을 잡는 데 최선을 다하도록. 이쪽에 있는 병력을 추가로 밀어 넣어.”
“알겠습니다. 이 황자 전하. 지금 곧장 플랑크에게도 통보하겠습니다.”
먼 거리가 아니었기에 제국은 곧장 플랑크에게 통신 마법을 보냈다.
[지금 당장 약속한 대로 부탁하네.]
아쉬울 것 없이 고압적이던 스랑 제국은 조금 자세를 낮췄다.
“크하하하!!!”
플랑크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
멍청한 제국 측이 함정에 걸려든 바람에 자신의 몸값이 최고치를 찍었다.
[보상은 확실하게 해 주지. 그대가 해적왕이 되는 데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
약속은 지켜질 것이다.
이미 문서로 교환된 내용들이 있었으므로.
아마 체면 때문이라도 확실하게 밀어줄 것이다.
자신의 배신이 도움이 된 것이 아니라 결정적이었다면, 호사가들 사이에서 입
방아가 오르내릴 것이니.
결정적 역할을 한 세력에게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스랑 제국과
거래를 하려는 집단은 점점 없어질 것이다.
그래서 국가는 명예를 중시하는 것.
“좋아. 아주 좋아! 애들아. 신호탄을 쏴라!! 드디어 때가 왔다.”
플랑크의 명령에 따라라 공중으로 보라색 연막탄이 쏘아 올려졌다.
삐우우웅~! 펑!! 펑!!
그 즉시 배신을 약속한 해적들과 노르드 해적들이 깃대에 보라색 깃발을 올렸다.
적아를 식별하기 위해서였다.
퍼버버버벙!!! 쾅아앙!
그것과 동시에 근처에 있던 연합의 배에 무차별 공격을 가했다.
덕분에 연합군은 우왕좌왕.
“뭐··· 뭐야!! 갑자기.”
“배신. 배신이다!!”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되는 거야?!!”
“해적왕이 배신한 건가?”
“아닙니다. 내분인 것 같습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덕분에 제국의 함대는 만안으로 안정적이게 추가 병력을 밀어 넣을 수 있었다.
또 그 덕분에 전투는 서로가 엉망으로 얽혀 난장판이 되기 시작했고.
“젠장!! 플랑크!!! 플랑크가 왜!!”
해적왕도 갑작스러운 부하의 배신에 당황했다.
“이탈하셔야 합니다. 우리 전력의 이 할이 배신을 했습니다.”
“도대체 왜?! 어째서.”
“사실 플랑크 그놈이 엉큼한 구석이 있는 놈이었지 않습니까.”
해적왕은 부하들을 너무 믿었다.
정확히는 다섯 명의 최측근들을.
설마 그중에 배신자가 나올 줄은 몰랐다.
“토온 그놈도 배신을 했나?”
“단짝이지 않습니까? 플랑크와 토온은.”
다섯 중 둘이 배신을 했다.
그 두 명에 딸린 해적들의 숫자가 여기 있는 해적들의 이 할에 가까웠다.
그 이 할은 해적들 중에 정예라 더욱 뼈아팠다.
“우리야 그렇다 치고. 노르드 놈들은 왜?!”
“그게 조금 의외이긴 하지만, 그건 잉글슨 놈들이 잘못 생각한 것 같습니다.”
노르드는 북해의 전통 해적 민족이었다.
얼어붙은 척박한 동북쪽 땅에 장착한 민족으로 살아남기 위해 과거부터 해적
질로 연명을 했다.
그들은 매우 호전적이었으며, 어느 순간 잉글슨 왕국이 혼란한 시기가 있었다.
그때 기회를 포착한 노르드의 대부족중 하나가 거친 북해를 가로질러 잉글슨
왕국의 북쪽 끄트머리 땅을 점유했다.
원래는 잉글슨의 더 넓은 영토를 점령했었지만, 잉글슨 왕국의 계승 전쟁이
끝나자 북쪽 끝으로 밀려났다.
“노르드 놈들도 여려 세력으로 나뉘어 있으니까요.”
여기서 잉글슨 왕국의 오해가 발생한 것이다.
노르드 민족의 땅에는 세 개의 대부족이 있었는데, 그들끼리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여전히 척박한 땅 안에서는 서로 지지고 볶고 하는 중이니까.
적의 적은 아군.
잉글슨 왕국은 자신들의 북쪽 끄트머리 땅을 점유한 족속들을 제외하고 본토
에 남은 부족들의 손을 잡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쯧. 믿을 놈들이 따로 있지. 애초에 노르드 놈들은 양심을 버리고 태어나는
놈들이지. 처음부터 그놈들이 합류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
그들은 태생부터가 해적으로 태어났다.
윤리나 도덕의 개념부터가 달랐다.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마라.
왜?! 그들의 땅에서는 밀이 풍요롭게 자라는데. 이건 불공평하잖아.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마라.
싸우다 보면 죽일 수도 있지. 겁쟁이는 살 가치가 없다.
“그냥 자체적으로 배신을 한 건가?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니.”
“아마도 스랑 제국 측에서 잉글슨 왕국의 진출을 지원한다는 조건을 내세웠을
겁니다.”
“납득이 가네. 멍청한 잉글슨 놈들.”
노르드 인들은 잉글슨 왕국을 만만하게 봤다.
애초에 땅을 내어 준 자체가 약탈 대상에서 정복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저놈들도 먹었는데, 우리가 못 먹을 게 뭐람.
한 부족이 잉글슨 땅을 점유하는 순간 나머지 두 부족의 머릿속에도 저런 의
문이 떠올랐을 거다.
세 부족은 원래 고만고만한 부족이었으니.
호전적인 노르드족에게 어울리는 생각 방식이었다.
“잉글슨 왕국 쪽에서 온 소식은 없나?”
“그쪽은 완전히 패닉상태로 보입니다. 정신을 차리려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해적왕의 세력 일부와 노르드 해적들의 배신으로 잉글슨 해군은 정신을 차리
지 못하고 있었다.
사방이 적인 상황.
고작해야 아군끼리 뭉치게끔 교통정리를 하는 것도 한계였다.
진형을 새로 짜는 데 한세월이 걸릴 거다.
“밖에서 포위를 한 놈들은?”
1/3의 병력이 숨어 있다 스랑 제국의 뒤를 포위했다.
만 안쪽은 난장판이 되었지만, 그들이 밖에서 지원한다면······.
“절반 이상이 우리 해적들입니다. 대부분 해적왕께 우호적인 놈들이고······.”
“플랑크 그놈이 손을 썼군.”
병력 배치에 해적왕이 직접 나서지 않았다.
부하들도 유능했고. 저주로 인해서 해적왕은 그런 섬세한 작업을 하기엔 심적
인 여유가 없었다.
웬일로 플랑크가 적극적으로 나섰는데, 이번 일에 방해될 것 같은 놈들은 매
복하는 쪽으로 돌린 것이다.
배신할 해적을 만 안쪽에 나머지 해적들은 만 밖에.
해적왕은 단절된 것이다.
“해적왕께서 빠져나가셔야 합니다. 만약 잘못되시기라도 한다면 녀석들은 완
전히 와해될 것입니다.”
해적왕이 당한다면 제대로 싸우지 않고 도주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해적에게 의리란 딱 그 정도.
“빌어먹을 뚫을 수 있겠나?!”
해적왕은 적의 진형을 열심히 살폈다.
근처에는 배신한 해적들이 먼 곳에서는 스랑 제국의 군함들이 이쪽으로 다가
오고 있었다.
“······.”
부하들은 침묵했다.
그들은 해적이지만, 나름 이름값을 하는 자들.
그런 능력자들이 보기에도 답이 없어 보였다.
그나마 나온 답은.
“그나마 저쪽이 유일한데······.”
해적왕의 항법사가 한쪽을 가리켰다.
연합도 제국도 가까이 가지 않는 해안선.
통곡의 길이라 불리는 암초 지역이었다.
“저딴 곳을 지나간다고?! 해도는 가지고 있나?”
말이 안 된다.
섬세하게 측량된 해도 없이는 얼마 가지도 못해 암초에 배가 걸릴 것이다.
“죄송합니다. 확보된 것이 없습니다······.”
항법사는 가지고 있는 해도들을 뒤져 봤지만, 나오는 것은 없었다.
그러자 부하 중 누군가가 말했다.
“그러면 최대한 버티는 것은 어떻습니까? 불리하긴 하지만, 전체적인 진형은
우리가 나쁘지 않습니다.”
외곽에서 포위를 하고 있는 해적들이 선방을 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해적왕이 건재할 때까지는 그들도 싸우는 시늉 정도는 할 것이다.
버티고 버티다 보면 전투는 소강상태에 돌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후··· 내 명운도 여기까지인가?! 차라리 항복을 하지.”
“그건······.”
“안 됩니다. 어찌······.”
“싸울 수 있습니다. 우리만 선방하면······.”
부하들이 해적왕을 말렸다.
그러나 이미 해적왕은 마음을 먹은 듯 보였다.
“잉글슨 놈들이야 어찌 되던 내 알 바는 아니고. 네놈들은 살아야지. 플랑크
그 욕심 많은 놈도 내 자리만 차지하면 너희들까지 죽이진 않을 거야. 너희가
얼마나 유능한지 아니까.”
그 말에 선교에 있던 자들은 몸을 떨었다.
일부는 분해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통신을 돌려라. 내 목만 바치면 다들 목숨은 건질 테니. 어차피 내가 살아
봐야 얼마나 더 살겠······.”
마지막 결단을 내리려던 순간이었다.
삑! 삑!!
요란하게 울리는 통신구.
담당 마법사가 급히 보고를 했다.
“통신입니다. 발신자는··· 고잉미샤호?!”
모두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고잉미샤호를 찾기 위해서다.
워낙 특이한 외형을 가진 터라 찾으려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터.
그런데··· 없다?!
아무리 주변을 훑어봐도 없었다.
하긴. 있을 리가······.
“하하하. 꼬마야. 내가 걱정돼서 연락을 한 모양이구나. 외곽 매복 함대에 합
류한 것이더냐?”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스랑 제국의 함대 너머에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는 곳.
그곳의 해적들에게 합류한 것이 아닐까 싶다.
생각해 보니 이곳은 ‘만’이고 입구는 대규모의 제국 함대가 빽빽하게 자리 잡
고 있었다.
[오른쪽 위를 보세요. 흐흐흐.]
“무슨? 오른쪽은 육지인데에에에!!!!!?”
그제 서야 바다가 아닌 육지 위에서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음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