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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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랑 제독들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정찰 편대가 잉글슨 왕국도 아닌 해적들의 정찰 편대에 박살이 났다는 소식.
그것도 모자라 제국에 단 두 척뿐인 통신함도 나포당한 듯 싶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분명 우리 측이 배의 성능이나 함포전에 더 우위에 있을 텐데?”
정찰 편대끼리 조우하면 오히려 꼬리를 말고 도주하는 측은 해적 쪽이 될 거
라 생각했다.
“이건 기강이 해이해서야. 정찰 편대가 어디 소속이지?”
“서해······.”
쾅!!
서해 제독은 테이블을 내리치며 말을 막았다.
나머지 두 제독들이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아 보지도 않고 이렇게 나를 몰아붙이는 거요?!!”
“보고가 그렇게 들어온 것 아니오.”
“맞소. 그리고 그 신형 쾌속함이라고 했나?”
“그런 일 없다고 하지 않았소!!”
두 제독은 서해 제독을 몰아붙였고. 서해 제독은 부인하기 급급했다.
찝찝하긴 했다.
그 신형 전함은 하늘을 날았다.
어쩌면 기행을 펼치는 그 선장이 해적의 정찰 편대에 소속되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때.
뚜뚜뚜!
다시 통신함에서 정보가 들어왔다.
거리가 멀어지면, 음성 통신은 힘들기에 길고 짧은 형태로 신호를 보내는데,
이걸 전보라 불렀다.
그렇다고 긴 문장을 만드는 건 아니었기에 핵심 내용만 보내는 것이 룰이다.
-가까스로 정찰 편대 간 전투에서 승리.
-통신함 재탈환 성공.
전보의 내용 덕에 제독들의 기 싸움은 반대로 흘러갔다.
“으하하!! 그럼 그렇지. 내 부하들이 그딴 해적 놈들에게 깨질 리가 없지. 그
래!!! 으하하하.”
서해 제독이 기고만장했다.
“이거 조금 의심이 가는데···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전투가 불리하게 흘러갔
다고······.”
“신형 전투함이 개입했다고. 서해 제독이 부인했으니 잉글슨 왕국의 비밀 병
기일 수도 있고.”
“설마 함정 아니오?!”
서해 제독도 조금은 의심이 들었지만.
“애초에 해적들이 통신함을 손에 넣었다 해도 우리 제국 해군의 암호를 어떻
게 알고 우리에게 거짓 정보를 흘리겠소.”
“하긴. 암호뿐만 아니라 우리의 좌표도 알아야 하니 더더욱 그렇겠지.”
암호 해독이 능한 마법사가 해적 쪽에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통신함의 함장이 협조했다면?”
“지금. 내 부하들을 의심하는 거요?!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상대에게 협박을
당하면 비상용 단어를 끼워 넣게 매뉴얼 되어 있소이다.”
서해 제독은 당당하게 말했다.
1. 상대는 암호를 모른다.
2. 협조하라는 협박을 받는다.
3. 협조하는 척 비상용 ‘단어’를 끼워 넣는다.
상대에게 암호만 가르쳐 준다 해도 3번의 비상용 단어가 자동으로 조합되게
되는 트릭도 있다.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한다면 저 트릭은 피해 갈 수 없다.
괜한 걱정이다.
“정 의심이 가면 그대들의 정보 장교들에게 물어보든가. 다들 그렇게 활용하
고 있을 거요.”
“음······.”
최고 지휘관인 제독들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괜히 심통을 부려 본 것
이다.
“신형 전투함은 어찌되었는지 몰어보게나.”
북해 제독이 호기심에 정보 장교에게 말했다.
“이보게, 북해 제독. 장거리 통신은 에너지가 많이 들어. 그런 쓸데없는 질문
이나 할 건가?”
서해 제독이 말렸다.
실제로 장거리 통신은 특수한 배터리에 마나석에서 추출한 에너지를 압축해서
사용해야 한다.
단어 몇 개를 보내는 것도 한 참이나 충전해야 가능했다.
“혹시 잉글슨 제국의 비밀 병기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때.
삑삑삑.
전보가 추가로 들어오고 있었다.
-포로를 심문.
-적 함대 경로 파악 완료.
-확인을 위해 이동 중.
-이상.
서해 제독은 겨우 식은땀을 닦았다.
아마도 다시 통신을 하기 위해서는 충전을 해야 할 것이다.
“이거, 전쟁의 신 탱글께서 우리에게 미소를 지으시나 봅니다.”
해군 제독 측은 일이 잘 풀린다고 생각했다.
전쟁의 신의 축복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
전쟁의 신을 모시는 유일한 주교 세이나는.
“탱글 님께 찬양을. 용맹한 어린 늑대에게 가호를······.”
부상자들을 위해 축복을 내리고 있었다.
해적들의 편에 서서.
“오오!!! 전쟁의 신!!! 사제다.”
다른 해적 선장들은 놀라워했다.
해적선에 어떤 정신 나간 사제가 타려고 하겠는가?
귀하고 귀한 사제를 리안 해적단은 데리고, 아니 모시고 있었다.
그것도 무려 전쟁의 신 사제다.
귀족들이 환장을 한다는.
“세이나 누나 적당히 해요.”
“전투가 끝나면 적군도 모두 탱글 님의 어린 늑대랍니다. 공자님.”
차분하고 자비로운 저 미소.
저럴 때 보면 천생 사제였다.
그런 그녀가 선량한 말투로 물었다.
“축제와 관련된 일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녀가 말하는 축제는 바로 피의 축제.
전쟁이다.
“흐흐. 조만간 대규모로 벌어질 겁니다.”
“기대되네요. 불쌍한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준비를 해야겠어요. 탱글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탱글교에선 따로 인신 공양 따위는 하지 않는다.
다만, 귀족들이 전쟁의 신을 믿는 사제들을 좋아하는 이유.
전쟁의 신 사제가 적이란 사실만 들어도 적들의 사기가 꺾이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적대하는 영혼을 탱글 신에게 보내 버린다는 이상한 믿음 때문이다.
그렇게 바쳐진 영혼들의 죗값은 천 년 동안 천계의 적들과 싸우는 노예 병사
가 되는 걸로······.
천 년 동안 병역의 의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샤아아아.
때마침 아군의 통신선이 도착했다.
그 배의 선장은 해적왕의 최측근 중 한 명이다.
그러니 단 한 척밖에 없는 통신선을 맡겼다.
“일단 지르긴 질러 버렸는데··· 흐흐.”
리안은 코 아래를 문질렀다.
스랑 제국에 거짓 정보를 흘린 것은 리안과 마법사 포트밖에 모른다.
“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통신선에서 내린 버즈비 선장은 기겁을 했다.
제국의 정찰 편대와 싸우는 것도 모자라 모두 제압하고 상대 통신함까지 나포
하다니.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최고급 전공을 세운 것이다.
“리안!! 리안, 어디에 있나?!”
그는 급히 이 일의 주동자인 리안을 찾았다.
“여기~! 여기요~!”
리안은 깡총깡총 뛰며 손을 들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로 인해 키가 작아 가려졌기 때문.
“후··· 진짜 다시 봐도 어리군.”
통신선 선장 버즈비 선장은 리안의 얼굴을 보고 감탄을 터뜨렸다.
처음 녀석을 봤을 땐 통신선이 아니라 해적왕의 기함인 2급 전열함을 탔을 때
였다.
무슨 배포인지 해적왕에게 ‘할아버지’라며 아양을 떨었지.
“그런데, 편대장 싸르지가 배신을 때렸다고?!”
“때리진 못했죠. 때리기 전에 제가 먼저 때렸으니.”
리안이 고개를 돌리자 싸르지의 목이 장대에 걸려 있었다.
탁!
버즈비 선장은 이마를 탁 치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저자의 뒤에 누가 있는지 알고서 그런 거더냐? 정황이 있으면 포박만 할 것
이지.”
“그 검은 수염 아저씨 꼬붕이라던데요? 뭐. 저도 그러려고 했는데, 저항이 심
해서요. 안 그래요? 아저씨들?!”
그 말에 다른 해적 선장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받아먹은 것도 있고.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왜 그 당시 말리지 않았냐고 문책을 당할 수도 있다.
“아무리 봐도 수상했습니다. 버즈비 선장.”
“맞소. 결백하면 얌전히 포박되었다가 나중에 증명하면 될 것이지.”
“그것도 모자라. 그 어린 꼬마 선장의 목을 비틀려고 했지.”
“맞아. 각성도 안 한 꼬마를 그리 비틀면 죽을 수도 있다고!!”
마나 로드를 개통했기에 망정이지 정말 위험한 행동이었다.
각성만큼은 아니더라도 마나 로드만 개통해도 일반인에 비해 강하다.
신체에 마나가 흐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가 잘 중재해 보마.”
“일단 전쟁이 끝나고요. 그리고 그냥 있는 사실 그대로 해적왕 할아버지에게
전달해 주세요.”
“뭐?!”
생각보다 더 곤란해진다.
싸르지는 해적왕의 다섯 손가락 중 한 명인 플랑크와 친밀한 관계이지 않은가.
거의 꼬붕이라 불러도 틀린 말이 아니다.
“정보가 확실히 있나 보네.”
없다. 증거 따위는.
애초에 싸르지는 배신에 가담하지 않았을 거다.
신뢰받지 못했겠지.
만약 신뢰했다면, 뒤통수를 칠 주요한 전력을 정찰 편대에 넣지 않았을 거다.
근처에 데리고 있다가 기회를 봐서 함께 해적왕을 쳤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나중에 플랑크가 배신을 하고 나면, 자동으로 싸르지가 엮일
것이다.
그때가 되면 증거 따위가 왜 필요할까?
“제 부하 중에 한 명이 암호 해독에 능해서요.”
그냥 플랑크에게 똥줄이 타라고 알려 주는 거다.
그는 이미 스랑 제국과 계약으로 엮였기에 배신을 안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배신을 앞당길 수밖에.
“쯧. 곤란하게 되었군.”
“그보다 더 곤란한 게 있어요. 적의 이동 경로를 알아냈어요.”
“뭐?!”
리안은 싱글벙글 웃었다.
양쪽으로 거짓 정보를 흘렸다.
원하는 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게 하기 위해.
“이··· 일단 알겠다. 혹시··· 적의 거짓 정보는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나. 판 자체를 리안이 짰는데.
“위치가 아군 쪽이 더 가까워요. 미리 가서 확인을 해 볼 수도 있고요. 아니
매복을 하는 게 더 좋겠네요.”
대규모의 전투에서는 포위를 하는 쪽이 유리하다.
육군의 전투도 그러할진대, 포격전을 주로 하는 해군은 오죽하랴.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리안 선장 너는 이번 전쟁의 일등 공신이다.”
“이럴 시간이 없어요. 해적왕 할아버지에게 알리고. 또 잉글슨 왕국의 해군도
끌어와야 해요.”
“알겠다.”
***
리안의 거짓 정보로 인해 해적과 잉글슨 왕국의 수뇌부도 난리가 났다.
거의 충격과 공포 수준.
“제국과 정보 편대 싸움을 이겼다고?! 숫자도 더 열세인데?”
“어떻게 싸웠는지 자세한 내용은 없습니다. 통신선을 통해 전보로 소식을 알
려 온 터라.”
사실 잉글슨-해적 연합군은 불안해하고 있었다.
숫자나 전투함의 질에서 열세이기 때문.
해적들은 함포전에 약하고. 잉글슨 왕국은 부족한 전투함의 숫자를 채우고자
상선들까지 징발했다.
정면 싸움은 자신이 없었다.
그저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은 단하나.
시간뿐.
제국은 각 바다에서 함대를 모았기에 나머지 바다의 공백이 큰 상태.
전쟁을 오래 끌 수는 없었다.
“이러면 상황이 달라졌어.”
“그렇지. 굳이 정면 싸움을 피할 필요가 없어.”
정확히 말해서는 정면 싸움이 아니라 매복이지만.
“자자. 다들 진정하고. 시간을 맞추려면 빠듯하니 지금 출발하는 것이 좋겠소.”
가장 큰 소리를 낸 것은 당연히 해적왕 거프였다.
그는 기분이 좋은지 계속해서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그 녀석, 일을 이렇게 크게 칠 줄이야.’
리안을 정찰 편대에 넣은 것은 정말 잘한 일 같았다.
신의 한수라고 해야 할까.
그 정신 나간 올몬드 해적단이 따르는 걸 봐선 그 꼬마가 보통은 아닐꺼라 짐
작은 했는데······.
“다행히 우리가 조금 더 빨리 해당 장소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적왕 거프의 말을 끝으로 회의를 위해 모인 선장들이 자신의 배로 돌아갔다.
그러다 거프가 한 명을 불러 세웠다.
“플랑크. 잠깐 이야기 좀 하지.”
“알겠습니다.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