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를 한 바쿤이 다시 샤르망에게 왔다.
“그래서 무슨 일 때문에 왔는데? 또 저번처럼 무기를 달라는 건 아니겠지? 안 그래도 미야 벨킨슨한테 귀 여러 번 뜯겼으니까 이번에는 네가 양보해. 막대기 하나 안 줄 테니까.”
그 말에 샤르망이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런 거 아니야. 그거보다 네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뭔데? 아, 제스퍼가 요즘 일 잘 배우고 있나, 그거 물어보러 왔나?”
“아니. 혹시 다른 종족의 기술을 배우고 싶은 생각 없어?”
바쿤이 눈이 짝짝이가 될 만큼 한쪽 눈썹을 한껏 올렸다.
“다른 종족의 기술? 그런 게 왜 필요해! 내 손이 있는데! 또 무슨 바람이 분 거지?”
“내가 소로 숲 엘프들하고 협업을 진행하고 있는 건 알고 있지?”
“당연하지! 그 콧대 높은 것들이 마음을 바꾼 것이 정말 신기하더군! 그래봤자 귀잽이일뿐이지만.”
“그쪽에서 자신들의 기술을 공유해주겠대.”
바쿤이 수염을 씰룩였다.
“뭐라고?”
“믿을 만한 자를 추천해 달라고 하더라고. 너밖에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어.”
내심 기분이 좋아진 바쿤이 입술을 씰룩였다.
그러나 엘프들의 제안이라 반갑지만은 않았다.
“말은 고맙지만 사양하겠어. 얼마나 깔볼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그려지는군.”
“바쿤, 금속을 다루는 데 너만 한 드워프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어.”
“당연한 말을 하는군!”
샤르망은 이 공방에 벽이자 재료인 프레목을 쳐다봤다.
“대신 그들은 희귀한 나무를 다른 재료와 합성시키는 능력이 뛰어나지. 바쿤, 완벽해지고 싶지 않아?”
바쿤의 눈이 잠시 흔들렸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의견을 고집했다.
“네 실력과 소로 숲 엘프들의 기술이 만나면 그야말로 완벽해질 거야. 지금도 네가 만든 것들 모두 멋진 무기들인데 얼마나 더 멋지겠어?”
“기술은 좀 탐나긴 하지만.”
“응.”
“내 자존심이 용납을 안 하는데. 귀잽이한테 기술을 배운다니.”
“들어봐. 세상에 없던, 그런 최고의 무기를 만들게 될 거라고. 지금보다 더! 억만금을 네 발아래 가져다준다고 해도 코웃음 칠 정도의 명검을 만들 수 있을 거야.”
바쿤의 수염이 한 번 더 씰룩였다.
“흠흠, 내키진 않지만 뭐, 이야기 정도라면 들어나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한참 고민하던 바쿤이 중얼거렸다.
샤르망이 그 기회를 확 낚아챘다.
“물론이야. 결정은 바쿤, 네가 하는 거니까.”
“그런데 그 녀석들이 무슨 꿍꿍이로 그러지?”
엘프에 대한 반감이 줄어든 건 아니었지만 이미 바쿤의 마음이 반쯤 기울어졌다.
“엘리움과 제대로 손을 잡고 싶대. 이쪽에서 신뢰를 보여줬으니 그들도 우리에게 손을 내미는 거야.”
“뭐, 사실상 네가 다 하지 않았어?”
샤르망이 어깨를 으쓱였다.
“다들 도와주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일이지. 무엇보다 왕이 허락을 내려줬으니까.”
바쿤이 덥수룩한 수염을 가르고 턱을 긁적였다.
“뭐 그렇다면 못할 것도 없는데……. 고민을 좀 해보지.”
“좋아. 무슨 결정을 내리든 네 생각을 존중할게. 음…….”
샤르망이 말끝을 흐리자 바쿤이 힐끔 쳐다봤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뭐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좋게 생각해 볼게. 이번에 정말 무기는 필요 없는 거지?”
샤르망이 두 손까지 들어 흔들며 고개를 저었다.
“응, 전혀! 나도 미야한테 꽤 잔소리를 들어서.”
그날 이후 미야는 샤르망이 부엌칼을 들고 있는 모습만 봐도 발작을 일으키다시피 했다.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을 해도 걱정하던 모습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렇담 한시름 놓았군.”
샤르망은 바쿤의 공방을 나와 제자들이 머무는 집으로 가려다 다시 가게로 방향을 틀었다.
“녀석들한테는 좀 더 뭔가 확실한 게 생기면 그때 말해줘야겠다.”
정체도 이제 확실하게 드러냈겠다, 매번 일거수일투족 귀찮게 할 수는 없으니까.
이전까지는 그들의 행동반경이 좁아서 답답함이라도 풀어주려고 뭐라도 바리바리 싸들고 갔었다.
그런데 황궁에서 기사단을 훈련하게 된 이후로는 행동반경이 수도 전역으로 늘어났으니 그들만의 시간도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애들도 아닌데, 그동안 걱정이 과했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던 샤르망이 서서히 속도를 늦추더니 그대로 멈춰서기까지 했다.
“그런데 왜…… 륀트벨에서 움직임이 없지. 결국 날 찾는 걸 그만뒀나?”
일을 그르치는 걸 무엇보다 싫어하는 라칸이라서 자신을 찾는 게 집요하게 느껴지기까지 했었다.
없어졌으면 없어진 대로 그렇게 흘러갈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으니까.
심지어 사라진 자신과 제자들을 반역자로 몰고 엘리움에 사절단까지 보내면서.
그런 일 때문에 단순히 괘씸함으로 일을 벌인 것 같진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다 알아내고 싶었지만 들킬까 봐 차마 거기까진 알아보지도 못했다.
미래를 바꾸기 위해 여기서 하는 일에만 신경 써도 벅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잠잠해졌다.
아무리 샤르망이 장난을 치고 왔기로서니 지금은 꽤 시일이 지난 상태였다.
하지만 다시 찾아오기로 한 날짜가 지나고 샤르망이 넉넉하게 예상한 시일이 지났는데도 륀트벨에서는 아무 소식이 없었다.
“역시…… 포기했나? 찜찜한데.”
하긴 인원까지 추려가며 반역자로 몰아넣은 한 명을 찾는 건 아무리 라칸이라도 정신 나간 짓이긴 했다.
이제야 제대로 정신을 차린 거라면 이제는 샤르망 노엘 켄더스 없이 대륙 전쟁을 준비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이쪽은 순조로워. 하지만 좀 더 확실한…….’
전쟁을 막아 이곳을 지키는 것 말고도 라칸, 그를 쓰러뜨리기 위한 무언가.
그러나 그건 샤르망 노엘 켄더스 자신의 몸으로 하고 싶었다.
이렇게 페페의 보호를 받아 몸을 숨긴 상태가 아닌 오로지 자신의 손으로.
갑자기 조용해진 게 찜찜하긴 했지만 어차피 그들에게 페페의 몸에 샤르망이 들어 있다는 증거는 없었다.
계획대로 대륙전쟁을 준비하려는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오히려 이 기회에 빠르게 움직여 봐야겠다.
‘적당히 준비만 해놓자.’
샤르망이 다시 발길을 서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