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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키웠더니 짐승-7화 (7/121)

# 7

#7화

참새도 쓰다듬고, 에이몬도 쓰다듬으며 블론디나는 멍하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에이몬. 이 아이는 어떻게 말을 해? 얘도 신수야?”

에이몬에게 물었건만 참새가 신이 나 답했다.

“아니요! 전 신수는 아니에요! 에이몬 님이 신성한 힘을 나눠 주셔서 말할 수 있는 건데, 사실 제가 다른 애들보다 좀 똑똑한 건 사실이고-.”

귓가에서 짹짹거리며 날개를 파닥이는 통에 영 부산스러웠다.

그 호들갑을 진정시키기 위해 참새의 목 주변을 쓰다듬고 있으려니 에이몬이 으르렁거리듯 이빨을 보였다. 입 좀 다물라는 의미였다.

그제야 찔끔한 참새가 조용해졌다.

에이몬은 그제야 속이 편하다는 듯 꼬리를 살랑이며 물었다.

「어때. 내 선물 마음에 들어?」

“응. 너무 귀여워. 그런데 얘 이름은 뭐야?”

그 말에 다시 참새가 신이 나, “제 이름은 아직-.” 하고 날개를 파닥였지만, 에이몬의 콧잔등에 주름이 지자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이름 없어. 네가 지어 줘.」

“그럼 마제또로 할까?”

에이몬은 마음대로 하라며 꼬리를 흔들었고 마제또는 부산스럽게 날개를 파닥이며 외쳤다.

“좋아욧!”

***

「미쳤어?」

에이몬은 블론디나가 내민 털실 조각을 앞발로 툭 내쳤다.

하지만 블론디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에이몬의 동그랗고 까만 머리통 위에 다시 씌웠다. 털실 모자였다.

“화살 쏘는 거 구경해 보고 싶다며, 인간이 도구를 얼마나 잘 사용하는지 궁금하다고 했잖아.”

어느새 초록의 푸릇한 새싹이 얼굴을 내미는 봄이 됐다.

사냥터의 눈이 녹고 바람이 조금 따뜻해지자, 황실에서 활쏘기 대회를 주최했다.

에이몬은 그 대회 자체에 큰 흥미를 보였다.

「활쏘기 대회? 나도 구경할래.」

“왜? 인간이 하는 일에는 관심 없다고 했으면서?”

「나약한 인간이 발톱과 송곳니를 가진 짐승을 몰아내고 대륙을 차지했잖아.」

“응. 그랬지.”

「그건 모두 도구의 덕이니까. 그 도구의 파괴력을 확인해 봐야겠어. 그까짓 게 얼마나 강한지.」

표범 신수 장로가 에이몬을 비롯한 새끼 세 마리에게 늘 하는 말이 있었다. 인간들의 힘을 얕보지 말라는 말.

인간은 야비하고 교활하기에 언제 어떤 수를 써서 우리를 끌어내릴지 모른다는 그런 말.

그래서 그 힘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치욕스러운 털실 모자를 쓰는 건 좀 그랬다.

이마의 변환석을 가리기 위함이라고는 하나 신수로서의 고고한 자존심이 무너지는 일인 것이다.

이 모습은 제가 봐도 너무 귀여운 고양이였으니까.

“에이몬. 이거 안 쓰면 못 가. 널 내 애완 고양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변환석이 보이면 소용이 없잖아.”

블론디나의 말에 대꾸한 건 루시였다.

“맞아요, 에이몬 님. 아니면 아예 정체를 드러내고 참석하시는 건 어떠세요?”

에이몬은 바닥에 턱을 대고 누워 눈앞에 보이는 모자 리본 끈을 앞발로 문질렀다.

정체를 드러내는 것이야 어렵지 않다.

다만 자신이 황궁을 마구 드나드는 걸 다른 신수에게 들켜, 인간과 친하게 지낸다느니…… 하는 귀찮은 소문에 시달리기 싫은 것이다. 더군다나.

‘더군다나 블론디나는 금발이니까.’

표범 신수들이 치를 떨고 싫어하는 금발과 금안. 물론 블론디나는 금안은 아니었으나 금발이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재수 없는 인간과 붙어먹는다며 한 소리 들을 게 뻔하다.

꼬장꼬장한 장로들 잔소리는 귓등으로 흘릴지라도 지금처럼 황궁을 자유롭게 드나들기는 힘들게 될지도 몰랐다.

「이미 한참 전 일인데.」

에이몬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런 후 반짝이는 털실로 만들어진 모자를 쓰기로 겸허히 결정했다.

제 모습이 비치는 거울, 유리창, 분수대 물 따위는 절대 보지 않기로 다짐하며.

“에이몬 님! 멋지십니다! 잘 어울리셔요! 평생 쓰고 다니세요!”

참새 마제또가 천장 위를 부산스레 빙빙 돌며 외쳤다. 칭찬인지 놀리는 건지 모를 발언에, 에이몬의 표정이 더욱 더러워졌다.

「……저 새 새끼 당장 없애 버릴 거야…….」

곧 에이몬이 마제또를 잡기 위해 방 안을 휘저으며 난동을 피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시 후 사냥터에 도착한 블론디나는 에이몬을 꼭 끌어안았다.

황실 주관 활쏘기 대회가 열리는 장소 입구에 서서 어색하게 허리를 편다.

품에는 고양이인 척하는 표범을 안고, 머리 위에는 마제또라는 참새를 얹고 있었는데 그 꼴이 좀 웃긴 것 같아 스스로 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황제 폐하께서 입장하십니다!”

시종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곧 블론디나를 제외한 황족 가족이 상석을 향해 먼저 입장했다.

에이몬이 블론디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넌 왜 같이 안 들어가?」

“음. 원래 주인공은 혼자 고고하게 입장해야 하니까?”

난 반쪽짜리니까 같이 못 가. 블론디나는 할 수 없는 말을 삼키고 대충 농담을 던졌다.

저들은 제국의 고귀한 혈통을 잇는 황족이었고 자신은 평민 피가 섞인 반푼이 황녀다.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없는 위치였다.

그랬기에 황족이 참석하는 모임에 함께 입장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들 뒤를 숨죽여 조용히 따라갔을 뿐.

그것이 아테스 제국의 황녀, 블론디나 륜 아테스였다.

하지만 그런 씁쓸한 현실까지 에이몬에게 구구절절 설명할 이유는 없었다.

블론디나는 그저 웃었다.

곧 아무런 안내 없이 블론디나 역시 입장했다. 눈 속에 파묻힌 꽃처럼, 조용히, 그리고 은밀히.

그 누구도 블론디나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블론디나는 오히려 그 점이 좋았다. 괜히 저에게 관심을 가져 봤자 품 안에 있는 에이몬만 주목될 뿐이다. 덧붙여 무척 시끄러운 참새 역시.

“그럼, 이제 시합을 시작해 보도록.”

털가죽 양탄자 위에 누운 황제가 나른히 말했다,

시합의 시작이었다.

사냥복을 입은 귀족들이 웃는 낯으로 경계선에 섰다.

서너 명씩 그룹을 지어 모인 이들이 활시위를 쭈욱 당겼다.

참가자들은 시종이 날리는 비둘기를 화살로 맞히기만 하면 됐다. 가장 많은 비둘기를 잡는 자가 이기는 단순한 방식.

곧 푸드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비둘기가 허공을 날아올랐다. 핑! 핑! 화살이 하늘로 쏘아지기 시작했다.

블론디나의 머리 위에 있던 마제또가, 블론디나의 어깨 위로 늘어진 머리카락 속으로 황급히 몸을 파묻었다.

“블론디나 님! 혹시 참새 맞히기 대회 같은 게 있는 건 아니죠……?”

“없어, 그런 건.”

그제야 마제또가 블론디나의 머리카락 사이로 머리를 삐죽 내밀었다. 그러곤 화살을 날리는 모습을 보더니 다시 쏙 몸을 숨겼다.

“꺅! 인간들은 잔인해……!”

“……내가 미안해, 마제또.”

블론디나는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머리카락 안에 파묻힌 마제또를 툭툭 두드렸다.

인간이 놀이로 즐기는 사냥이, 마제또에게는 퍽 잔인하고 두려운 사건일 터다.

한편, 블론디나 품에 안긴 에이몬은 화살의 궤적을 날카로운 눈으로 응시했다. 과연 인간의 무기는 어떠한지 나름대로 가늠해 보고 있는 모양이다.

화살 궤적을 따라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에이몬의 귀가 쫑긋쫑긋 움직였다.

시간은 퍽 지루하게 흘러갔다.

처음에야 허공을 휙휙 날아다니는 화살을 집중해서 보았지만 몇 번의 그룹이 바뀌고 똑같은 양상이 반복되자 몸이 비틀렸다.

마제또는 무섭다며 이미 어딘가로 날아가 버린 지 오래였다.

애꿎은 블론디나의 소매 보석 장식만 앙앙 물어 대던 에이몬이 그녀의 어깨로 폴짝 뛰어올랐다. 그런 후 목덜미에 얼굴을 비비는 척 작게 속삭였다.

「브리디. 지겨워 미치겠어.」

“조금만 참아. 끝나 가.”

「인간들의 이 부질없는 행동에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거지?」

“의미 없을걸.”

「그럼 저 바보 같은 짓을 도대체 왜 하는 거야.」

“그냥 노는 거야. 에이몬. 마치 네가 털실을 갖고 놀듯.”

마지막 말은 마치 놀리듯 던져졌다.

에이몬은 말을 멈춘 후, 웃지 않기 위해 실룩거리는 블론디나의 입꼬리를 응시했다. 그러다 까칠한 얼굴로 그녀의 귓불을 살짝 물어 버렸다.

「뭘 잘 모르나 본데, 브리디. 내가 가장 잘 갖고 놀 수 있는 건 털실이 아니라 사냥감이야. 알아? 표범은 커다란 먹이에 발톱을 박고 살을 찢어 내지.」

그런 나를 감히 털실이나 갖고 노는 고양이 취급을 해? 에이몬은 그리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블론디나는 이 자그마한 협박범의 말이 그리 공포스럽지 않았다.

그가 제 몸에 발톱을 박고 살을 찢어 내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귀여운 목소리로 오싹한 말을 하네.’

에이몬은 블론디나가 도통 겁을 먹지 않자 분하다는 듯 털을 세웠다.

언젠가부터 신수로서의 위엄과 권위가 블론디나에게 통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수는 없었다. 위협하거나 다치게 할 수도 없고. 영 성가신 인간이었다.

블론디나가 어깨 아래로 내려온 에이몬의 꼬리를 매만졌다. 보들보들 부드러웠다.

“정 지루하면 이 뒤 나무라도 구경할까?”

「나무 따위 구경해서 뭐 해.」

“그럼 화살 따위는 구경해서 뭐 하게.”

그 말에 꼬리를 두어 번 살랑거리던 에이몬이 다시 블론디나의 품 안으로 내려왔다.

그래, 나무라도 구경하러 가보자. 그런 신호였다.

잠시 후 둘은 나무를 구경했다. 말 그대로 그냥 구경이었다.

“에이몬. 여기 봐봐. 개미가 나무를 타고 올라가고 있어.”

「…….」

“그러고 보니 너도 나무를 잘 타지? 표범이니까. 심심하면 한번 올라가 볼래?”

「브리디. 할 말 없으면 그냥 안 해도 돼.」

심드렁한 에이몬의 말에 블론디나가 어색한 미소를 올렸다.

화살 보는 것보다 나무라도 구경하는 게 재미있으리라고 말했던 게 저였다.

그래서 어떻게든 재미를 쥐어짜 보려 했지만……. 아무래도 가만히 있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그 뒤로 둘은 잠시 침묵했다. 블론디나는 눈만 끔뻑이며 열심히 움직이는 개미를 응시했다.

그때였다.

쉬익- 텅! 블론디나의 머리 옆 나무에 화살 하나가 거칠게 꽂혀 왔다.

“꺄앗!”

블론디나는 크게 소리 지르며 에이몬을 품 안으로 꽉 끌어안았다. 마치 그를 보호하려는 듯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화살의 방향이 조금만 비틀렸어도 머리가 뚫릴 뻔했다. 죽을 뻔한 것이다.

찬물이 끼얹어진 듯 한기가 돌고 어깨가 떨렸다.

에이몬 역시 눈을 크게 뜨고는 귓가에 들리는 블론디나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쿵쾅쿵쾅, 소녀의 가슴이 정신없이 뛰고 있었다.

에이몬은 표정을 굳혔다.

나약한 인간 소녀가 지금 위험에서 지켜 주겠답시고 절 숨기듯 품었다. 놀라서 이렇게 벌벌 떠는 주제에. 누가 누굴 지키겠다고 그렇게 품 안에.

뒤에서 바삭바삭 풀 밟는 소리가 났다.

블론디나는 고동치는 심장 위에 제 손을 꾹 누르며 힘겹게 목을 돌렸다. 그녀의 배다른 남동생, 라르트 황자가 웃는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가 화살을 날린 장본인 같았다.

한쪽 입꼬리를 더욱 추켜 올린 라르트 황자가 입을 열었다. 그러곤 비웃는 듯한 얼굴로 빙글거리며 입을 열었다.

“블론디나, 너였구나! 행색이 초라하여 짐승으로 착각-.”

하지만 그 말을 제대로 마무리 짓지는 못했다.

블론디나의 품에서 벗어난 에이몬이 그의 가슴팍을 향하여 그대로 돌진했기 때문이다.

작은 표범이 뛰어올라 라르트 황자의 몸에 닿기 바로 직전, 짐승의 몸 주위에서 작은 돌풍이 불었다.

그와 동시에 라르트 황자의 몸이 바닥을 굴렀다.

상황을 인지할 틈도 없었다. 무언가 두려운 힘에 짓눌려 땅에 콱 처박혔고, 몸이 굳은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미천한 것이, 감히…….”

짓이기는 듯한 목소리가 오싹하게 울렸다.

소년의 모습으로 변한 에이몬이, 누워 있는 라르트 황자의 목을 발로 밟은 채 서슬 퍼런 안광을 쏟아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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