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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하늘은 여전히 안녕하신지-81화 (81/210)

81화

라드는 미리 마구간에서 꺼내어 파티가 열리는 정원 뒤편에 숨겨 놓았다.

이 소담하면서 아름다운 파티 뒤로 날개 달린 짐승들이 육고기를 뜯고 있다니.

작은 가면을 쓰고서 돌아다니는 요정과 사냥꾼들은 각자 다른 가면을 쓰고 있었다.

라이가 손수 닭의 털을 붙인 요정 가면과 갈색 가죽으로 만든 듯한 사냥꾼의 가면 말이다.

가면이 어설퍼 상대방의 얼굴을 다 가려 주지 못했지만 어차피 이 파티의 목적은 라이의 기쁨이지 완벽함이 아니었다.

그래도 파티에 참석한 이들을 위해 음식이나 술에 신경을 쓴 게 보였다.

숲의 나무마다 색색의 종이와 샛노란 등불을 걸어 두어, 영롱하게 이 밤을 밝히고 있었다.

라드를 이끌고 나서기엔 아직 일렀다. 라이 모세스가 케이크의 촛불을 끄는 순간 나가기로 약속을 했었다.

그전까지 가볍게 파티를 즐겨 달라는 명을 받은 발톱 부대는 이 즐거운 분위기 속에 섞여 함께 즐기고 있었다.

나디사는 즐겁게 춤을 추고 있는 시네라와 마벤을 보며 웃고 있었다.

놀라운 건, 시네라가 먼저 마벤에게 춤을 신청했다는 것이었다.

아트리스 곁을 맴돌던 마벤은 흔쾌히 나가서 춤을 추고 있었다.

조끼와 사냥꾼 특유의 찢어진 바지를 입은 이들 중에 그녀의 동료들이 사냥꾼에 가장 잘 어울리긴 했다.

금발의 요정 같은 마벤은 시네라와 추는 막춤이 즐거운 것인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즐겁게 이 파티를 즐기는 이들을 보고 나디사 또한 불안한 마음을 버린 뒤 이 파티에 스며들고 있었다.

주인공이 등장하기 전, 충분히 즐거운 파티는 누군가의 죽음을 생각지 못할 정도로 밝고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했다.

“웬일이에요.”

이 사냥꾼 옷이 창피하여 절대 춤을 출 생각이 없다던 그리사가 파티를 즐기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히아신에게 말을 건 것이었다.

“히아신이라면 당장 나디사에게 춤을 추자고 조를 줄 알았는데.”

아트리스는 마지막 점검을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

춤을 출 생각이 없는 그리사는 그렇다 하더라도 얌전히 지켜만 보는 히아신은 이상했다.

히아신은 웃으며 나디사를 보았다. 그녀의 등에 달린 날개를 손가락으로 튕기고는 말했다.

“이건 정말, 거짓 없이, 내 온 마음을 다해서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춤은 끔찍해.”

“그러면 내가 나디사하고 춤을 추는 건요?”

히아신은 마치 허락해 줄 것처럼 나디사의 손을 넘겨주다가, 대뜸 그녀를 뒤에서 껴안았다.

“안 돼. 내가 출 수 없으면 아무도 추지 못해.”

나디사는 그의 팔을 끄르고 앞으로 나왔지만 가슴이 쿵, 내려앉는 느낌은 지독히 그녀를 따라왔다.

그녀의 표정을 보던 그리사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가오는 이를 보며 다시 미소를 지었다.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 또 확인한다고요?”

“임무를 확실히 하고 싶을 뿐이야.”

거짓말. 그리사는 남몰래 비웃을 뿐이었다. 그는 방관자로서 이 관계가 재밌는지, 불쾌한지 알 수 없었다.

태생부터 많은 형제들 사이에서 유독 성격이 나쁘고, 갖고 싶은 건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그였다.

지금 갖고 싶은 것은 라드의 심장 부대까지 들어가는 것.

하지만 저 교리 책만 끼고 다니던 남자가 요정의 옷을 입은 나디사를 보며 눈가를 붉히던 것도, 도대체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없는 남자가 수시로 어두운 눈을 하는 것도.

그리고 그 사이에서 끼인 여자의 다양한 표정을 보는 것도, 그리사는 몹시 마음에 든 참이었다.

“곧 시작된다고 하니까, 준비하지.”

아트리스는 커다란 목소리로 마벤을 불렀다.

시네라와 춤을 추던 마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서 쪼르르 달려왔다. 시네라와 마벤은 이 파티에 완전히 녹아든 것처럼 보였다.

“너희는 왜 춤도 안 춰? 이런 기회 흔치 않다?”

“그, 그래. 어차피 임무까지는 아직 시간이…….”

“곧이야.”

아트리스는 냉정하게 말을 끊었다. 하지만 마벤은 포기하지 않고서 나디사의 팔을 콱 끌어안았다.

“나디사는 왜 안 춰? 나랑 출래?”

“미안……. 난, 이런 곳에 처음이라 어색해.”

그리사는 그 말을 듣고 왜 자신이 계속 나디사 마로닌에 대해 신경을 쓰는지 알게 됐다. 자신은 태생적으로 그녀 같은 사람들이 싫었다.

삐뚤어진 제 심성으로는 저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결국에는 남들의 위에 서 버린다는 것이 역겨웠다.

처음엔 그랬다. 그런데 저 숙맥은 얼굴에 티가 다 났다.

저런 별거 아닌 일들을 부러운 눈으로 보는 건 역시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다.

“조금 추다가 가죠. 주인공도 안 도착했는데.”

결국 미워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녀는 최악이었다.

그리사는 나디사의 어깨를 잡아 춤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신이 난 마벤과 시네라도 쫓아 들어오고, 아트리스 또한 마벤의 손에 잡혀 어쩔 수 없이 들어오는 느낌을 취했다.

사실은 아까부터 그러고 싶었던 거면서. 저 남자도 솔직하지 못했다.

가면을 썼기에 조금 더 편안한 밤이었다.

지난 시간 동안 쌓아 올린 감정들은 시네라가 추는 막춤에 의해 웃음으로 바뀌었다.

서투르게 손을 잡고 돌기만 하는 것일 뿐인데도 나디사 마로닌은 좋아서 웃었다.

자신보다도 나이가 많은 그녀에게 이것저것 가르쳐 주고 싶다고 생각이 든 건 그리사로서는 그날이 처음이었다.

마음에 별이 들어와 앉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 * *

연신 제 코를 닦아 주는 계부 옆에 서서 라이는 모세스 가문의 가보처럼 내려오는 왕관을 쓰고 파티에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이 밤을 별처럼 밝히고 있는 아름다운 정원에는 그를 위한 것처럼 하얀 요정들과 사냥꾼들이 있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이 그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자, 라이. 촛불 불어야지.”

탄신을 축하하는 노래를 요정과 사냥꾼들이 불러 주고 있었다.

왕관을 쓴 라이는 어미의 품에 안겨 촛불 앞까지 갔다.

“소원은?

눈을 꼭 감은 라이는 단 한 가지만의 소원을 빌었다.

내년에도 어머니와 아버지와 함께하기를.

입에서 나온 간절한 바람이 촛불을 끈 순간이었다. 갑자기 나무와 정원 뜰에 걸려 있던 등불이 하나씩 꺼지고 있었다.

라이는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겁을 먹고 어둠이 찾아온 정원을 바라봤다.

하지만 양손을 잡아 주고 있는 부모님의 손이 너무도 따듯하여 라이에게 찾아온 어둠은 금세 물러갈 수 있었다.

아름다운 왕자와 공주. 그리고 라이는 발견했다. 우렁찬, 라이가 가장 무서워하는 천둥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하늘을 오르고 있는 것들을.

작은 불빛. 그것은 다른 곳으로 전해졌다. 처음에는 떠올라 하나였던 불빛은 이내 둘이 되고, 그 불은 원 형태로 번져 가고 있었다.

화르르, 타오르는 소리가 이 멀리서까지 들리는 듯했다.

아름다운 불꽃은 별처럼 라이의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원의 형태로 이어진 별처럼 반짝이는 불꽃은 이내 가장 커다란 하나의 별을 만들어 냈다. 그 별은 빙글빙글 돌며 라이의 눈에서 영원히 반짝거렸다.

“어떠니, 라이.”

“아름다워요.”

알고 있었다. 제 몸이 하루가 다르게 약해져 간다는 걸. 모세스 가문의 후계자로서 늘 의연하지 못한데도 큰소리친 적 없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그의 앞에 무너져 우는 것도.

그 모든 일이 괜찮다고, 하늘에 떠 있는 저 불꽃 같은 별들은 말해 주고 있었다.

따스한 별들이 점점 커져 붉은색의 빛으로 그를 안아 주고 있는 순간.

꺼져 있던 모든 등불이 다시 켜지고 있었다. 요정들과 사냥꾼들이 은촛대를 들고 서서 그의 밤을 밝혀 주었다.

라이는 태어나 가장 행복한 생일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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