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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하늘은 여전히 안녕하신지-55화 (55/210)

55화

자잘한 돌멩이들이 창문 유리에 부딪혀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나디사는 창문을 활짝 열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돌멩이를 들고 있는 은색 망아지가 그곳에 있었다.

히아신이 그러고 있을 것은 예상한 바였다.

나디사는 창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러하니 그는 갑자기 벽 타기 실력을 선보였다.

“그러다가 떨어진다.”

벽돌에 발을 걸치고 섰다. 창문 바로 옆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렸다. 강한 바람이 불면 떨어질 것처럼 위태로운 자세였으나 그의 얼굴은 걱정이 없었다.

나디사는 자신의 염려가 또 염소 여물통에 들어갈 듯싶었다.

“안 들여보내 주면 나 떨어진다?”

“떨어지면 다쳐?”

“팔 하나 정도는 부러지지 않을까?”

“그러면 다쳐도 되겠다.”

나디사는 창문을 닫았다. 그러나 약삭빠른 하얀 손이 들어와 막아섰다. 이러다 밤새우겠다 싶었는지 그는 창문을 잡고 직접 열어젖혔다.

“다리도 다칠걸.”

“네 몸을 가지고 나한테 협박하다니.”

“잘 먹히잖아, 알면서.”

“부모님이 아래층에 방 내주셨잖아.”

“침대가 아니어서 못 자겠어.”

“알겠어.”

“진짜?”

나디사는 창문을 열고서 그가 들어올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줬다.

히아신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좋아 죽겠는 얼굴로 들어왔다. 입이 귀에 걸린 그가 방으로 들어와 두리번거렸다.

“갖고 싶어, 저거.”

그녀의 오래된 책상 위에 있는 초상화를 가리켰다.

그림 솜씨가 있는 로단이 그녀의 어린 시절을 그려 둔 것이었다. 나디사의 얼마 없는 보물 중 하나였다.

“안 돼. 나도 저것밖에 없어.”

나디사는 베개를 챙겨 문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묵직한 발소리가 뛰어왔다.

“어디가?”

“너 여기서 자. 침대 아니면 못 잔다며.”

자신이 내려가는 게 낫지.

그러나 그는 나가려는 나디사의 어깨를 잡아서 돌렸다. 그는 우는 얼굴로 칭얼거렸다.

“무서워. 같이 자자.”

“뭐가 무서운데.”

“저기 있는 사진에 있는 작고 예쁜 소녀가 튀어나와 내 목을 조르면 어떡하지? 나는 놀라서 어쩔 수 없이 그 소녀가 담긴 사진을 훔쳐 버리고 말이야.”

저를 두고 가면 노골적으로 사진을 훔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여간 연기력과 협박에는 따라올 자가 없었다. 히아신은 침대에 뛰어 들어가 손으로 가운데에 선을 그었다.

“여기 넘어가면 나는 어, 그러니까, 사람이 아닌 걸로 할까?”

“침대가 작아.”

어떤 말로도 고집이 시작된 그를 설득할 수 없을 거다.

더군다나 로단의 표정을 보아하니 만일 이 방에 둘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 히아신을 두 동강 낼 거다.

마음이 복잡해진 나디사는 침대 한편에 엉덩이를 붙였다.

눕지 않고 앉아 있는 그녀를 보며 히아신은 달콤한 눈을 했다.

“세상에, 나디사, 나 재워 주지 않아도 되는데. 그렇게 나를 재워 주고 싶었구나.”

히아신은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더니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눈감았다.

“자장가부터 부탁할게. 아, 목소리 톤은 낮게.”

나디사는 그런 그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베개를 끌어안고 벽에 등을 댔다. 그녀는 다리 하나를 침대에 올려 길게 뻗었다.

“히아신.”

“내 이름부터 시작하는 자장가라.”

“나를 좋아해?”

이런 질문을 누군가에게 하리라곤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보는 빙산처럼 얼어붙은 회색빛 인생엔 어림없는 질문이었다.

나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히아신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를 보았다. 그의 거짓말에 능한 입술보다는 눈동자를 믿고 싶었다.

거기엔 아무런 감정이 없이 깨끗한 눈동자가 있었다.

“내가 좋아한다고 하면 뭐가 달라지는구나.”

히아신은 이유 없이 진지했다. 평상시 웃음과 결이 달랐다. 그 웃음은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히아신은 느릿느릿 고개를 저었다.

“나디사. 너를 숨이 막힐 정도로 끌어안고 싶어. 이 침대에 너를 눕히고 내가 상상하던 그 모든 행위를 시험해 보고 싶어.”

그가 부정할 줄 알았다. 아니면 장난식으로 넘길 줄 알았다.

히아신의 말을 들은 나디사는 발끝이 움찔거렸다. 그가 고개를 돌려 나디사의 시선을 훔쳐 갔다.

마주친 연두색의 눈동자는 진실만을 전하고 있었다. 그의 빨갛게 달아오른 뺨, 얼마 전 그녀에게 뜯긴 입술. 그 모든 것이 마음을 알아 달라고 호소했다.

“너와 관련된 건 전부 내가 갖고 싶어. 양말 한 짝까지, 네가 밟고 떠난 흙 한 줌까지.”

“…….”

“그런데 말이야, 나디사.”

히아신의 손이 뱀처럼 기어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가만히 잡고 있던 그 손에 이끌려 한 팔이, 몸이 넘어갔다.

그의 옆자리에 눕게 된 나디사는 귀를 열었다. 그의 말을 더 듣고 싶었다.

“네가 나 때문에 죽을 만큼 괴로워서 숨이 꼴딱 넘어가기 직전까지 우는 것도 보고 싶어.”

“…….”

“내가 너무 미워서 어디를 가도 누구를 만나도 나를 죽일 생각만 했으면 좋겠어.”

잡고 있는 그의 손이 너무도 단단하여 뿌리치기 버거웠다.

작은 침대에 구겨지듯, 누운 그의 품으로 빨려 가듯 머리통을 누르는 압박감이 그녀를 옮겼다.

“그래서 좋아하냐는 말은 내 마음을 축소시키는 것 같아서 싫단 말이지. 이런 건 어떨까.”

사정이 있어 곱게 미치지 못한 히아신의 손이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내가 전에 어떤 여자 죽여 달라고 했던 거 기억해?”

나디사는 그의 말에 잊고 살았던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피 나는 전당포에서 살인 의뢰를 받았었다. 인생 한번 파란만장했다.

“그거 취소야.”

“……갑자기 왜.”

“그 여자를 죽이면, 어떤 느낌일지 벌써 알 것 같아.”

히아신은 갑자기 그녀의 얼굴을 놓아주었다.

그의 가슴에 약간 눌려 있던 나디사는 이걸 사랑 고백이 아닌, 사랑을 가장한 경고장이라고 생각됐다.

너를 몇 월 며칠에 죽일 것이다, 같은 경고장. 거기에 사랑 몇 스푼이 추가된 거다.

“난 지금 당장 널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분명 널 어떻게 할 거야. 사랑하면서 죽을 만큼 미워할 거야. 너도 그렇게 만들 거고.”

상처투성이인 입술이 그녀의 눈가에 내려왔다. 눈두덩에 가볍게 입을 맞춘 그가 만족스러운 숨을 내쉬었다.

“네가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건 내가 가지겠어. 나는 착하니까 미리 말해 둘게.”

장난스러운 어조지만 그 내용은 전부 하나같이 무시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눈앞에서 제 것을 다 가져가겠다고 선언한 그는 어느 순간 새근새근 잠에 들었다.

피곤해 보인 건 진짜였나 보다. 잠이 깊었다. 하지만 그녀의 허리를 안고 있는 손은 절대 힘이 빠지지 않는다.

그의 손을 치우기 위해 끙끙거렸던 나디사는 그의 고른 숨이 뺨에 닿을 때마다 가슴이 불편해졌다.

히아신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 걸까. 히아신은 왜 이런 말을 자신에게 하는 걸까.

그 다정한 협박이, 그 사랑하는 이를 보는 듯 달콤한 눈빛이 그녀를 붕 뜨게도 하고 가라앉히기도 한다.

곤히 자는 그와 다르게 나디사는 창밖으로 보이는 별을 보며 밤을 지새웠다.

히아신 아스. 머리칼이 눈을 찌르는 것 같아 살며시 치워 주자 미소를 짓는다. 제가 망가트린 입술을 치료도 하지 않는 그를 보며 나디사는 눈을 감았다.

사랑하면서 미워할 거라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듣고도 그가 싫어지지 않는 자신이 이상한 거겠지.

그날 밤하늘 별에 둘러싸인 꿈을 꾸었다. 그 별을 제 옆에 둔 것은 히아신이었다.

하얀 별보다 더 하얗게 부서지는 히아신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짹짹, 새가 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나디사는 햇볕이 제 창으로 드는 것을 보고 기지개를 켰다.

소녀 시절부터 쓴 작은 침대에는 그녀밖에 없었다. 방 안을 돌아다니던 그녀의 시선은 낡은 책상에 머물렀다.

침대에서 내려온 나디사는 그녀의 초상화를 끼워 넣었던 작은 액자가 바뀌었다는 걸 깨달았다.

거기에는 그녀의 어린 시절의 그림이 아니라 웬 소년이 있었다. 소년의 초상화는 급하게 그린, 흰 종이 위에 까만 연필로 칠을 한 것이었다.

얼핏 낙서처럼 보이는 그것을 초상화를 가져간 값으로 두고 갔다.

다급하게 방문 밖으로 나간 나디사는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마로닌 부인을 보며 물었다.

“혹시 히아신이 나갔나요?”

“오, 먼저 간 것 아니야? 거실에도 손님방에도 없던데.”

나디사는 액자를 쥔 손의 힘을 천천히 풀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 낙서 같은 초상화를 바라봤다.

이 망아지 같은 도둑이.

그러나 입가에 떠오른 건 작은 미소였다.

마로닌 부인은 무언지 모르지만, 그녀가 굉장히 기분 좋아 보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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