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새벽녘 샤포드는 뿌연 안개 때문에 해가 가려져 있었다.
밤에 피는 꽃인 화려한 롯소를 떠나와 샤포드로 들어오니 꼭 죽은 자들의 거리에 온 기분이었다.
설산의 바람을 정통으로 맞는 마을은 언제나처럼 삭막하고 조용했다.
샤포드의 겨울은 비정했다. 땔감 하나도 구하지 못하는 형편의 사람들이 많아 굴뚝에는 연기 대신 바람이 지나다녔다.
얇은 로브를 여미며 몸을 움츠린 나디사는 달려오는 발소리에 얼굴을 들었다.
“나디사!”
그녀의 이모부 로단이었다.
온몸이 땀 범벅인 그는 맙소사, 얼마나 찾아다녔다고, 하며 나디사의 어깨를 쥐었다.
“네 이모,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세탁소에서는 퇴근했다면서!”
“사정이 있어서요.”
“사정?”
로단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어깨를 놓아주었다.
머리칼을 한껏 끌어 올려 헤집은 그는 진정하려는 듯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 사정이 네 이모에게도 통하기를 바라는 게 좋을 거다.”
나디사는 자신에게 화를 내지 않으려고 억누르는 로단을 알기에, 군말하지 않고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지 멀쩡한 남자의 씨가 마른 샤포드에서 로단 정도면 우수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그만큼 바른 생활 중인 로단이 집 앞에 다 왔을 즈음에 담배를 꺼내어 문 것이 나디사는 못내 죄송했다.
도저히 한 대 피지 않고는 진정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죄송해요. 걱정 끼쳐 드려서.”
“들어가 봐라.”
엄밀히 말하면 로단은 그녀의 보호자 노릇을 할 필요가 없었다. 아내 때문에 억지로 떠맡은 아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로단은 정성을 다했다. 친딸처럼, 친조카처럼.
그래서 나디사는 이 착하고 성실한 부부를 경제적으로나마 해방시키고 싶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식탁 앞에 앉아서 머리를 싸매고 있는 그녀의 이모가 보였다.
마이사 마로닌.
플란 종족 특유의 검은 머리에 보라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어, 그녀를 이모라고 불러도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나디사. 이리와 앉아.”
인기척이 나자 고개를 들어 퀭한 눈을 깜박인 마이사는 손가락으로 제 앞자리를 가리켰다.
나디사는 식탁 쪽으로 걸어가다가, 옆구리에서 출렁거리는 금화 주머니를 생각해 냈다.
“잠시만 방에서 로브를 벗고 올게요.”
“그냥 앉아.”
소리치듯 말하는 마이사의 목소리에 울음이 끼어 있었다.
결국 방으로 가는 걸 포기한 나디사가 천천히 의자를 끌어내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금방이라도 다그칠 것처럼 이글거리던 마이사의 눈빛이 누그러졌다. 식탁 위 촛불만이 말 없는 두 사람을 따듯하게 비추고 있었다.
“어디 다녀왔니.”
마이사가 늦은 한 마디를 떼자마자 문이 열렸다.
퀴퀴한 싸구려 담배 냄새를 몰고 로단도 들어왔다. 그는 자연스레 마이사의 옆자리에 앉았다.
“롯소요.”
어렵게 꺼낸 나디사의 말에 그녀의 보호자인 두 사람은 낯빛이 어두워졌다.
“검문관은 어떻게 통과하고? 아니, 그 전에…….”
“너는 이제 외출 금지다, 나디사. 세탁소에도 내가 말을 해 두겠어.”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흥분한 두 사람이 말을 쏟아 냈다.
잠자코 듣던 나디사는 주머니에서 하얀 편지를 꺼냈다.
당장이라도 문에 못을 박을 것처럼 날뛰던 부부는 그녀가 내민 하얀 편지를 보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일렁이는 촛불 아래에 편지를 두고서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라드군 합격 통지서예요. 삼 일 전 날짜로 도착했어요.”
“거짓말, 세상에.”
라드군에 합격했다는 건, 그 집안이 폈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한 달 봉급으로만 금화 25개를 받는 데다가, 진급하면 왕국에서 작지만 저택도 내어 준다.
수비타 왕국군 중에서도 정예로 손꼽히는 라드군에 합격했다는 소리를 듣고 창백해지는 건 마로닌 부부밖에 없을 것이다.
나디사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이 집에서 라드군이 금기어가 된 것도 오직 한 사람 때문이었다.
“허락할 수 없어. 어떻게 우리에게 상의도 한마디 없이…….”
“저는 더는 보호자가 필요 없는 나이예요, 마이사 이모.”
해서 스무 살의 생일을 넘기자마자 곧바로 시험을 보러 간 것이었다.
애당초 마로닌 부부가 플란 종족이 모여 사는 고향을 떠나와 이렇듯 척박한 샤포드에 자리 잡은 건 순전히 나디사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나디사의 친모 때문에.
나디사의 기억 속엔 친모의 뒷모습만 가득했다.
라드군을 상징하는 푸른색의 망토.
그것을 휘날리며 네 살배기인 자신을 친구에게 맡기고 떠나는 어머니의 뒷모습. 그게 마지막이었다.
갓난아이일 때부터 마로닌 부인이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도 네 살이 되기 전까진 종종 들러 생필품을 사다 나르던 그녀는 어느 날 비극적인 자살로 소식을 알려 왔다.
지금껏 친모에 관한 건 베일에 가려 있었다. 어릴 때는 어릴 때라서. 다 커서는 아예 그 같은 대화를 피했다.
확실한 것은 그 여자는 죽었고, 그 죽음은 꽤 오랫동안 살아 있는 사람들을 괴롭혔다는 것 정도였다.
“네 어머니, 티사 때문이니?”
저 이름을 참 오랜만에 듣는다는 생각을 하며 나디사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봉급을 많이 줘서요.”
라드군은 말 그대로 라드라는 짐승을 타고 다니는 군인을 칭한다.
라드와 교감하면서 그들의 날개를 이용해 상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수비타 왕국의 자랑이었다.
플란 종족은 그런 라드와 태생부터 교감하기 쉬운 피를 타고났다.
플란 종족의 눈, 피가 비싼 이유는 그것이었다. 눈과 피를 소유하면 그 주인도 라드와 교감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였다.
물론 모든 소문이 그렇듯 근거는 없었지만.
“조금 있다가 수도로 떠나요. 이미 여비와 필요한 준비도 다 해 뒀거든요. 봉급은 매달 사람을 시켜 보낼게요. 어느 정도 모이면 샤포드를 떠나, 괜찮은 집을 사세요.”
어조가 담담하다고 해서 듣는 이 또한 담담해지는 게 아니었다.
일평생 나디사를 먹이고, 입히고, 재운 두 사람은 흡사 배신이라도 당한 얼굴이었다.
“저 키우느라 고생하신 거 알아요. 그러니 이제 편히 사시면 좋겠어요.”
숨기려고 해 봤자 나디사의 목소리 끝이 떨린다는 것은 이 자리에 있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복잡한 심경이 담긴 마이사의 한숨이 식탁 위로 쏟아졌다.
“나디사. 나는 너를 수비타 왕국의 군인으로 만들기 위해 널 키운 게 아니야.”
“봉급이 커요.”
“봉급이 문제가 아니야.”
“그러면 빨래하는 여자로 키우고 싶으셨나요?”
“나디사!”
말이 길어질수록 서로를 할퀴는 말만이 늘어날 뿐이었다.
나디사는 편지를 챙겨 주머니에 넣은 뒤 고개를 꾸벅 수그렸다.
“기다리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주무세요. 도착해서 편지할게요.”
“나디사, 기다려.”
살가운 딸은 아니었어도 마로닌 부부에게 반항하거나 대든 적은 없었다. 사춘기 소녀 같은 돌발 행동에 두 사람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2층에 있는 방으로 올라가 문을 걸어 잠근 나디사는 비로소 거추장스러운 로브를 벗을 수 있었다.
대화를 더 하자며 2층으로 따라오는 발걸음이 있었으나 이내 방문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다시 내려갔다.
저 마음씨 좋은 부부는 양딸의 말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나디사는 씻지도 않고 움직였다. 몰래 넣어 둔 작은 상자가 끌려 나왔다.
“나디사, 이따가 얘기하자. 점심을 먹고 말이야.”
1층에서 큰 목소리로 외친 로단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디사는 그 목소리를 뒤로하며 작은 상자를 열었다.
푸른색의 망토와 하얀 군복. 수비타 라드군의 표식이나 다름없는 그것을 끄집어냈다.
푸른 망토를 만지작거리다가 바닥에 누웠다.
그 엄마에 그 딸. 아마도 마이사가 그녀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할 것 같았다.
나디사는 따스한 마이사와 로단을 생각하며 푸른 망토를 이불처럼 덮었다.
그리도 끔찍해 하는 라드군에 들어갔으니 이제 두 번 다시 예전처럼 안아 주지 않을 터였다.
나디사는 뜬눈으로 아침을 기다렸다. 새벽의 기운이 창문 너머로 물러갈 즈음 푸른 망토를 작은 상자에 도로 넣어 두었다.
짐도 따로 챙길 필요 없어 입던 옷 그대로 방을 나섰다.
작은 상자 하나만을 안고 내려와 아침이 차려진 부엌을 마지막으로 눈에 새겼다.
찬 기운이 도사리는 찬장 옆에 세 번째 서랍.
거기엔 그녀의 친모가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가 있었다. 순진한 마이사는 본인이 철저하게 숨긴 줄로 안다.
나디사는 이미 수십 번도 더 읽어 머릿속에 새겨진 그 편지를 조용히 펼쳤다.
[마이사에게.
내 딸은 네게 맡길게.
네 이해는 바라지 않아.
우리는 길이 달랐지. 너는 혼인을, 나는 라드군을.
그러니 넌 영원히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야.
부탁한다.
부디 건강히 지내기를.]
처음 이 편지를 읽었을 때 느낀 슬픔과 서러움은 더 이상 없었다.
나디사는 건조한 손길로 편지를 원래 있던 곳에 돌려 두었다.
며칠 있으면 그녀도 딸을, 친구를 버릴 정도로 대단한 라드군에 들어가게 된다.
이게 어떤 오기 같은 감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결정을 바꾸고 싶진 않았다.
나디사는 할 수 있는 한 천천히 집을 나섰다.
문을 열고 설산의 아침을 보고 이별을 꼭꼭 씹어 삼켰다.
두 사람이 조금만 덜 다정했더라면, 조금만 더 이기적이었다면, 아마도 세탁소에서 일하는 한 여인으로 만족했을지 모른다.
자신은 차가운 새벽녘 길을 걷더라도 두 사람은 따듯한 곳에서 재우고 싶었다. 은혜를 갚을 길은 그뿐이었다.
나디사는 작은 상자 하나를 끌어안고 샤포드의 추운 거리를 걸었다.
다녀오겠다는 쪽지조차 남겨 두지 않고 떠났다. 샤포드에 훈훈한 봄이 오면 선물을 한 아름 안고 돌아오리라 생각했다.
쪽지는, 편지는 다시 오지 않을 사람이 남기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