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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망나니 검술 교관이 되었다-40화 (40/119)

040화

* * *

만티코어.

사자의 몸통에 인간의 머리, 그리고 뱀의 꼬리를 가진 고대로부터 인간을 위협해 온 괴수.

몬스터답지 않게 마법을 다루며 인간을 속여넘길 지능까지 가졌고, 마법과 오러에 저항하는 항마력까지 지녔기에 까다롭기 그지없는 상대였다.

혹자는 만티코어의 근원이 인간계에 표류한 마족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할 만큼 마족과 닮은 점이 많은 몬스터였다.

필립은 만티코어의 전투력을 꽤 잘 안다고 자부했다.

‘저주 마법과 꼬리의 독침만 조심하면 그리 어려울 건 없는 놈인데.’

그 말은 사실 군인에게서 총만 조심하면 이길 수 있다는 말과도 같았다.

“설마 펠리시아가 당하지는 않겠지?”

문득 불안해진 필립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네리아가 대답했다.

―에이, 설마요. 그 언니 제법 강해 보였단 말이에요. 그리고 만티코어에게 지는 것보다 그냥 죽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네리아의 네 번째 주인의 친구가 만티코어에게 도전했다가 당했는데… 으웨엑! 그 시체에 대해 설명하는 건 관둘래요.

“만티코어는 잔인하고 교활한 괴물이지. 네가 누구를 믿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은 무사하기 힘들 걸세. 여자라면 꽤 끔찍한 꼴을 당하겠지.”

필립에게 붙들린 지올로 마트란이 이죽거리며 말하자 필립은 그의 머리통을 세게 후려쳤다.

“그 주둥이 좀 다물지 그래. 쪽팔리지도 않나? 요정을 생포하려다 걸린 것도 아니고, 고작 한다는 게 몬스터를 소환해서 새파랗게 어린 애들한테 뒷수습을 맡기려는 건가? 인생을 대체 왜 그렇게 사는 건지 모르겠군.”

지올로는 사람 취급을 받을 자격이 없었다. 필립은 그가 마탑에서 운영하는 마법사 전용 감옥에서 남은 생 동안 고통받기를 원했고, 그건 분명 죽음보다 더 끔찍한 결말이었다.

그곳의 고문 기술자들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걸 후회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는 요정을 연구하려 들었고, 몬스터와 거래했으니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햇빛을 보는 일은 없을 터였다.

지올로 또한 아마도 요정의 손에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게 뻔했다.

‘일단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겠군.’

필립은 지올로의 지팡이를 발로 밟아 분질렀다. 그리고 수인을 맺지 못하도록 그의 양쪽 검지와 중지를 부러뜨렸다.

“아아아악! 끄아아악! 이게 무슨 짓이야!”

지올로는 발광하며 몸부림쳤다.

“상품 포장 중이지. 뭘.”

주문만으로도 위협적인 마법을 시전할 수 있는 마법사는 분명 존재했으나 지올로 마트란은 그만큼 뛰어나지 않았다.

물론 간단한 원소 마법 정도는 쓸 수 있겠으나 필립은 그럴 기미가 보이는 즉시 그의 혀를 자를 생각이었다.

“끌고 가기도 귀찮으니 그냥 자루에 담아서 들고 가는 게 낫겠군.”

필립은 오두막에 놓인 곡식 자루 중 하나의 내용물을 모두 비운 뒤 그 입구를 가리키며 명령했다.

“들어가.”

“…뭐라고?”

“들어가라고, 이 새끼야. 내가 직접 넣어줄 순 있는데, 당신이 나올 때 그 팔다리가 멀쩡할 것 같지는 않거든.”

지올로 마트란은 순간 손가락이 부러진 고통마저도 잊을 만큼 분노해 소리쳤다.

“빌어먹을! 내가 비록 잘못을 저지르긴 했지만, 노예처럼 다뤄질 이유는 없지 않나?”

“…오.”

필립은 지올로의 현실감 없는 태도에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당신을 이렇게 대할 이유가 없지. 그건 맞아.”

필립은 그렇게 말하며 주먹을 세게 쥐었다.

“덜 처맞아서 그런 개소리가 나오는 거지. 실감이 안 나서 그러는 거야. 지금부터 당신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몸으로 깨닫게 될 테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잠시 후 필립은 군데군데 피로 얼룩진 자루 하나를 들쳐메고 오두막을 나섰다. 그는 곧바로 요정에게로 향할 생각이었다.

―…주인님한테 이런 면도 있는 줄은 몰랐어요. 좀…화끈하시네요?

네리아가 조심스럽게 묻자 필립이 헛웃음을 뱉었다.

“어이가 없잖아. 만약 모든 일이 이 새끼가 계획한 그대로 흘러갔다면, 이 병신 같은 패배자 하나 때문에 대체 몇 명이 피해를 보는 건데? 근처 마을 사람들, 요정이 폭주하면 동원될 병사들, 용병들, 길잡이를 할 사냥꾼들….”

적어도 수천 명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을 만한 사건이었다.

“…자기 연구 때문에 어린애들을 희생시킬 생각을 했으면, 사람 취급을 받을 마음은 버려야지. 그냥 그런 거야.”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아요.

네리아는 필립의 말에 동의했다.

필립은 빠른 속도로 이동했고, 곧 호수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는 마침 주변을 이동하던 스테판과 마주쳐 상황을 확인했다.

“교관님!”

스테판은 필립과 마주치자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처럼 기뻐했다.

“무슨 일이니?”

필립은 일단 시치미를 떼었다. 스테판은 다급한 얼굴로 소리쳤다.

“쟈니스 아가씨와 루아가 위험합니다. 호수에 만티코어가 나타났어요. 셰릴은 교수님을 부르러 갔고, 저는 아가씨를 돕기 위해 움직이던 참이었는데!”

“일단 진정해라. 그래서, 어느 방향이니?”

“저쪽입니다.”

스테판은 호수 서쪽을 가리켰다. 자욱한 물안개 때문에 필립의 시력으로도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 천리안 마법으로 시야를 공유하겠습니다.”

스테판이 임기응변에 강하다는 건 저번 실습에서도 느낀 점이었다. 필립은 그가 시전한 천리안 마법을 통해 쟈니스와 루아 쪽의 상황을 관측할 수 있었다.

‘펠리시아가 급히 달려온 모양인데.’

머리도 묶지 못한 펠리시아가 밝은 금발을 찰랑거리며 만티코어와 싸우고 있었다. 쟈니스는 지팡이를 들고 그녀를 지원하는 중이었고, 루아 또한 검을 들고 쟈니스를 호위하는 것처럼 보였다.

검사 두 명과 마법사 한 명의 조합은 대단한 효과를 발휘했다.

날개 없이도 공중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만티코어였으나 검기를 날려 멀리 있는 적을 죽일 능력을 갖춘 펠리시아와 저주 마법에 미숙하게나마 저항할 수 있는 쟈니스의 협공을 압도하지는 못했다.

―요정님은 어디 있는 거예요? 자기 집에 괴물이 나왔는데 왜 안 나타나는 거죠?

네리아가 의문을 표했다. 필립 또한 그녀와 같은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스테판. 여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야영지에서 셰릴과 합류해라.”

필립이 지시하자 스테판은 이를 악물며 고개를 저었다.

“저도 도울 수 있습니다.”

“네가 돕고 싶은 마음은 나도 안다. 하지만 내 말을 듣는 게 좋다는 건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니? 너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줄 아는 학생이니 내 말을 들어줄 거라 믿는다.”

교관인 필립이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고집을 내세울 수는 없었다. 스테판은 알겠다고 대답한 뒤 참담한 표정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스테판이 멀어지자 필립은 호수에 대고 외쳤다.

“호수의 요정이여!”

그러자 필립에게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물안개가 뭉치기 시작하더니 벌거벗은 물빛 머리카락의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적개심 어린 시선을 필립에게로 향하며 물었다.

“왜 절 불렀죠? 내 호수에 괴물을 불러들인 것으로도 모자라서, 내 기분이라도 묻고 싶은 건가요?”

필립은 등에 멘 자루를 땅에 내던졌다.

“끄으윽!”

방금 충격으로 정신이 들었는지 안에 담겨 있던 지올로 마트란이 비명을 질렀다. 필립은 네리아를 들어 자루의 주둥이를 잘랐고, 빛이 들어오자 지올로가 팔을 휘저으며 자루에서 벗어났다.

“먼저 말씀드리면, 만티코어를 부른 건 저희가 아닙니다. 이자의 짓이죠. 이자는 근처 오두막에서 당신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는데, 연구가 막히자 당신을 자극할 목적으로 만티코어를 소환한 겁니다.”

필립은 요정이 자신의 말을 듣고 오해를 풀 거라 여겼다. 요정은 장난을 좋아할 뿐 악하지 않은 존재였기에, 관계없는 그와 일행에게로 분노의 화살을 향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게 중요한가요?”

그러나 요정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녀는 자신의 물빛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미간을 좁혔다.

“지올로. 당신이 그랬나요?”

그녀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지올로 마트란은 필립에게 얻어맞아 망가진 얼굴을 좌우로 흔들었다.

“천만에! 나는 당신의 친구지 않습니까? 내가 왜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이 불한당은 내게 누명을 씌우려는 겁니다. 요정이여.”

“…하지만 당신이 그랬잖아요. 왜 내게 거짓말을 하는 거죠? 나는 당신을 친구라고 불렀는데.”

호수의 요정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지올로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의 머리 주변에 물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곧 커다란 물방울이 그의 머리통을 완전히 감쌌다.

“끄르르륵…!”

호흡할 수 없게 된 지올로가 몸부림치며 물방울을 손으로 헤집었으나 이미 그의 호흡기와 폐에는 공기 대신 물이 가득했다.

“잠깐, 죽이지 마십시오.”

필립이 그녀를 만류했다. 호수의 요정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왜죠? 같은 편이라도 되는 건가요?”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렇게 쉽게 죽으면 안 되는 놈입니다. 저걸 보십시오. 살고 싶어서 꿈틀거리는 모습을. 저자는 당신을 속여 죄 없는 인간을 죽이게 하려 했으니, 차라리 누가 죽여주길 바랄 때까지 고통받아 마땅합니다.”

필립의 대답에 호수의 요정은 인상을 찌푸렸다.

“내 알 바 아니에요. 게다가, 어차피 당신도 같은 인간 아닌가요? 당신에게도 죄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텐데요.”

“저와 일행들은 그냥 놀러 온 겁니다. 이자와는 관계없어요.”

“내가 그걸 어떻게 믿죠?”

“그러면 저자는 왜 죽이려는 겁니까? 내가 지금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당신은 알지 않습니까.”

필립은 그녀를 설득해야만 했다. 이 요정이 인간에게 등을 돌리게 되면 그 나비효과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거대한 재앙이 되어 돌아올 것이었다.

“맞아요. 하지만 상대가 거짓을 말하는지 아는 건 아니에요. 단지 눈을 보면 저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뿐. 저 배신자도 그랬어요. 절 이용해 뭔가 하려고 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말한 요정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단지 자주 저를 찾아와서 말을 걸어주는 게 기뻤을 뿐이죠. 이런 짓을 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지만요.”

필립은 식은땀을 한 방울 흘렸다. 저건 화가 난 반응이라기보다 인간이라는 종 자체에 정이 떨어지려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신은 내게 뭘 원하죠?”

요정의 질문에 필립은 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말을 해도 통할 것 같은 상황이 아니었다.

‘그냥 포기해야 하나?’

미래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모습으로 바꾸기 위한 일이었다. 아예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면 모르겠으나, 아직은 아니었다.

머리를 열심히 굴리던 필립의 눈앞에 갑자기 어떤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이게 되려나?’

그는 의문을 품었으나 일단 지르고 볼 일이었다. 필립은 요정을 똑바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건 오직 옳은 선택을 하는 것뿐입니다. 요정님, 만티코어와 마주한 학생 중 당신에게 이름을 줄 수 있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 말에 요정은 눈에 띄게 당황하며 필립을 노려보았다.

“당신, 이름을 받는다는 게 요정에게 있어 무슨 의미인지 아나요? 그건 농담이나 거짓말이라는 변명으로 넘어갈 수 없는 이야기에요. 지금 거짓말을 하는 거라면, 호수에 맹세코 당신을 죽이고 말겠어요.”

필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압니다. 이름을 가진 요정은 더 높은 차원의 존재로 탈바꿈할 자격을 얻는다는 걸요. 그리고 요정에게 이름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수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다는 것도요. 제 말이 거짓말이라는 게 드러난다면 어떤 대가라도 치르겠습니다.”

그의 결심이 드러났는지 요정은 손가락을 움직여 지올로를 거의 죽이고 있던 물방울을 사라지게 했다.

“커흑! 쿨럭, 허으윽!”

호흡기로 들어간 물까지 모두 빠져나왔는지 지올로는 추한 소리를 내며 다시는 맛볼 수 없을 것이라 여기던 공기를 미친 듯이 들이마셨다.

“…만약 내게 거짓말을 했다면, 이 호수에 들어오는 인간은 앞으로 영영 돌아가지 못하게 될 거예요. 동의하나요?”

“제게 다른 사람의 목숨을 결정할 권한은 없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저는 사실을 말했기 때문에 그냥 그렇다고 대답해도 될 것 같군요.”

필립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는 요정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움직인 듯했다.

“그러니, 일단 저 만티코어부터 처리하고 생각합시다. 어떻습니까?”

요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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