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망나니 검술 교관이 되었다-6화 (6/119)

006화

* * *

3월 8일.

개학이 이틀 남은 시점.

필립은 하녀를 통해 학부의 호출을 받았다. 무려 펠리시아 오스왈드의 호출이었다.

펠리시아의 사무실 탁자에 마주 앉은 둘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먼저 입을 연 건 펠리시아였다.

“…너는 나와 함께 1학년, 그리고 2학년 수업에 들어가게 될 거야.”

그녀는 불안과 의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필립을 바라보았다.

펠리시아 오스왈드는 천재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가씨였다. 아카데미 4학년, 그러니까 열일곱 살에 검기를 깨우쳐 오스왈드 백작 가문의 자랑이 되었고, 졸업하자마자 바로 추천을 받아 교관이 되었다.

스물셋에는 검기의 응용, 그러니까 검기를 날려 먼 거리에 있는 대상을 벨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 교수가 될 자격을 증명했다.

그리고 스물넷인 현재, 그녀는 아카데미 경력 최악의 위기를 마주하고 있었다.

‘…대체, 아버지와 어머니께선 무슨 생각으로 저 애를 여기 보낸 걸까.’

그녀는 필립의 평소 행실을 잘 알았다.

용돈이 생길 때마다 고급 살롱의 여자들에게 가져다 바치고, 질 나쁜 무리와 어울려 다니며 기행을 일삼는 동생.

아카데미 시절에는 두 학년 위의 선배를 반쯤 죽여 놓는 바람에 퇴학까지 당한, 그야말로 망나니 중의 망나니였다.

‘요 며칠 확실히 조용하긴 했어. 방에 틀어박혀서 뭘 한 건지 모르겠지만….’

필립은 펠리시아 오스왈드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할 얘기는 그것뿐이야? 뭐 다른 건 없고?”

“아니. 아니야.”

정신이 번쩍 든 펠리시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네 가족이자, 누나로서의 마지막 부탁이야. 여기까지 온 이상 널 비난하거나 매도하지는 않을게. 대신, 학생들을 가르칠 땐 진지하게 해. 우리가 가르칠 애들…고작 열넷, 열다섯 살이야. 너 같은 애한테 상처받기엔 아직 너무 어려.”

필립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애들이 걱정되어서 저런다는데 뭐라고 반박하기도 그랬다.

“글쎄, 난 정말 제대로 할 생각이라니까.”

그러나 펠리시아는 전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리고 내일은 입학식이야. 학부모님들께서 참관하시는 수업이라고.”

“물론 알고 있지.”

이미 전달받은 사항이었고, 이미 아는 사실이었다.

프리비아 아카데미에선 입학식이 끝난 뒤 학부마다 참관 수업을 개최하는데 이는 학부모들에게 어떤 식으로 수업이 이루어지는지를 확인시켜 주기 위한 행사였다.

“거기서 네가 할 거라곤 간단한 자기소개, 그리고 내 수업을 보조하는 것뿐이야. 난…네 평소 행실을 정말 싫어하지만, 그 정도는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필립은 그녀의 심정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가 미치도록 싫고 혐오스러우나 교수로서의 사명감으로 그 감정들을 짓누르는 것.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스물네 살의 어린 아가씨라곤 믿을 수 없는 책임감이었다.

“…그렇게 자꾸 부담을 주니까 오랜만에 술이 당기는걸.”

필립의 농담에 펠리시아가 발끈했다.

“너 진짜 미친 거니? 한순간만이라도 진지해질 수 없어? 날 대체 어디까지….”

“농담이야. 농담. 사람이 농담 좀 할 수도 있지. 안 그래?”

펠리시아는 필립을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발. 필립 오스왈드. 난 네가 여기서 오래 버틸 거라곤 생각도 안 해. 몇 달만 사고 치지 말고 버티면 내가 부모님께 무릎을 꿇고 빌어서라도 가문으로 돌아가게 해 줄게. 응?”

“무슨 소리야? 난 여기서 최소한 5년은 있다가 갈 건데. 누나랑 오래 같이 있고 싶단…헛!”

필립은 다급히 펠리시아가 던진 찻잔을 피했다. 마력을 끌어 올린 탓인지 펠리시아의 긴 금발이 공중에서 파도치듯 찰랑거렸다.

‘진짜 화났네.’

“…나가. 꼴도 보기 싫으니까. 너, 만약 내일 수업에서도 그런 식이면 나 절대로 너 용서 못 해.”

“알았으니까 내일 보자고.”

필립은 도망치듯 펠리시아의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주인님도 참 짓궂으세요. 착한 언니 같던데 왜 그렇게 놀리시는 거예요?

네리아가 불만이라는 듯 투덜댔다. 필립은 키득대며 대답했다.

“반응이 귀엽잖아.”

―…그건 그래요. 그나저나 주인님. 준비는 다 된 거예요? 요 며칠 동안 네리아의 예전 주인들하고 싸우기만 했지 정작 수업 준비는 하나도 안 하셨잖아요.

“준비는 지금 충분하다 못해 넘쳐. 애초에 내게 부족한 건 검술에 대한 지식이었지. 가르치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어. 이번에 얻은 비전서를 통해 검술이란 게 뭔지 대충 감을 잡았거든.”

―그걸로요? 어떻게요?

네리아는 어젯밤 필립에게 ‘월광검’이 대충 어떤 개념의 검술인지 들었으나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냥 대충 알겠던데? 정식으로 입문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조만간 성과가 있을 것 같더라.”

―…아, 네. 주인님 잘났어요.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 * *

3월 9일.

프리비아 아카데미의 대광장은 새로 입학할 육십 명의 신입생과 그 가족, 친지 혹은 수행원으로 가득했다.

필립은 몇 가지 행사에 간단히 참석한 뒤 참관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창고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저학년 수업을 담당할 교관을 처음 만났다.

“다시 말하지만, 만일 펠리시아 교수님께 폐를 끼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을 응징하고 말 겁니다.”

그녀의 이름은 디아나 프렌할. 나이는 스물여섯.

파란 머리칼에 무표정한 여자였다. 타고난 외모가 예쁘지 않았다면 눈매가 사납다는 말을 들었을 법한 인상이었다.

필립은 그녀를 꽤 잘 알았다. 프리비아 아카데미에서 유일하게 펠리시아의 ‘친구’라고 불릴 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석에서는 나이가 더 어린 펠리시아가 그녀를 언니라고 부른다는 걸 필립은 이미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녀 또한 자신에게 적대적이라는 것.

“그, 교관님. 이제 조금 있으면 참관 수업 아닙니까? 굳이 지금 제게 부담을 주실 이유가 없잖아요.”

“…그건 그렇습니다.”

그래도 말은 어느 정도 통하는 상대였기에 필립은 현기증을 느끼면서도 필요한 물품들을 확인했다. 수련용 인형과 실습용 목검 따위의 상태를 확인하는 게 교관들의 역할이었다.

“이건 안쪽이 썩었는데요. 당장은 멀쩡해도 목검으로 몇 대 때리면 부서질 겁니다. 여기 이 목검은 손잡이 마감이 왜 이래요? 애들이 잡았다가 손바닥에 나무 조각 박히면 어쩌려고? 창고 관리 이거 누가 합니까?”

필립이 열정적으로 준비에 임하자 디아나 교관은 의외라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펠리시아에게 듣기론 살면서 뭘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던데?’

“뭐 하세요? 일 안 해요?”

“아니, 그, 꽤 열심히 하시는군요. 필립 교관.”

“애들이 쓸 건데 대충 볼 수는 없잖습니까. 잘못하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게요. 참관하러 온 학부모님들께서 얼마나 불안하시겠습니까?”

“그…렇죠?”

‘뭐지? 대체 뭐지?’

디아나 프렌할은 극심한 혼란을 느꼈다. 소문으로, 그리고 펠리시아에게 들었던 필립의 이미지와 너무도 달랐던 탓이었다.

‘저건 연기를 한다고 되는 게 아닌데…?’

아이들이 쓸 물건이라 꼼꼼히 확인한다는 말은 정말로 그런 생각이 없다면 나오기 힘들었다. 필립 같은 상황에서 사람은 보통 다른 이유를 대기 마련이니까.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끝났군요.”

불량인 교보재는 헷갈리지 않도록 따로 표시하고 교무원들이 편하게 꺼낼 수 있도록 분류해 놓는 솜씨에 디아나는 하마터면 감탄사를 입 밖에 낼 뻔했다.

펠리시아는 그녀에게 필립에 대해 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유일한 친구인 디아나와 어두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껏 들은 이야기라고 해 봤자 요 며칠간 들은 것뿐.

그 덕에 디아나는 딱히 선입견이나 편견 같은 걸 가질 시간이 없었다.

“…그래요. 필립 교관. 이제 우리도 참관 수업을 준비합시다.”

‘어쩌면 펠리시아가 동생에 대해 오해하고 있을 수도 있겠어. 그 애는 필립 교관을 몇 년 정도 보지 못했잖아.’

‘이 아가씨 의외로 고문관인가? 자꾸 멍을 때리네.’

두 교관은 서로를 오해하며 참관 수업이 이루어질 검술 교장으로 향했다.

* * *

“만나서 반갑습니다. 귀빈 여러분. 그리고 신입생 여러분. 1학년과 2학년의 검술 수업을 담당하게 된 펠리시아 오스왈드입니다.”

참관 수업은 신입생 중 스무 명 정도를 뽑아서 진행되었다.

필립은 주인공 쌍둥이를 찾았으나 아쉽게도 이 교장에는 없는 듯했다.

‘마법 학부 강의실에 있는 건가?’

학기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그 쌍둥이 중 주인공이 될 아이를 잘 구슬리는 것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몰라도 주인공만은 확실한 아군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편의상 경어를 생략하겠습니다. 귀빈 여러분께서는 이해 부탁드립니다. 음, 여러분이 검술 수업을 받기 전에, 창, 도끼, 채찍처럼 강한 무기들을 놔두고 왜 검이라는 무기만 유독 많은 사람의 선택을 받았는가에 대해 알 필요가 있어.”

펠리시아의 목소리는 소녀처럼 가녀렸으나 묘한 카리스마 또한 존재했다. 필립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강의를 감상했다.

“저 교관이 그 유명한 필립 오스왈드라지?”

“대체 학장은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망나니를 아카데미에 들인 거죠?”

“…뭐, 명문이 언제까지나 명문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어요?”

‘다 들린다. 이 새끼들아.’

필립은 눈을 지그시 감고 차오르는 분노를 삼켰다. 딴엔 귀족들이라고 고상한 말투였으나 내용을 해석하자면 가관이었다.

‘학장이 노망이 들어서 아카데미를 말아먹으려 한다는 말을 고상하게도 하는군.’

그리 신경에 거슬리지도 않았고, 화가 나지도 않았다. 문득 에밀 수석교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힘들었을 거야. 그렇지? 뭣도 아닌 놈들이 망나니니 쓰레기니 쫑알대는 게 말일세. 등 따시고 배부른 병신들이 아무렇게나 주절대는 꼴이 웃기기도 했겠지.’

지금이 딱 그 꼴이었다. 저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많은 땅이 정복되고, 그 땅에 건물과 도시가 들어서면서 좁은 골목에서도 충분한 전투력을 낼 수 있는 검이 귀족들의 호신을 책임지게 되었어. 여기에, 최초의 마스터 ‘솔베인’님께서 마력을 몸에 쌓고 활용하는 법을….”

어느새 수업이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곧 필립이 나설 차례였다.

“그러면, 오늘 수업을 도와주실 교관님들을 잠깐 소개할게. 파렌할 교관?”

펠리시아의 호출에 디아나가 앞으로 나섰다.

“반갑다. 앞으로 너희들을 가르치게 될 디아나 파렌할이다. 너희 중 나이 많은 형제나 자매가 있는 사람은 익히 내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나는 가감 없이 소문 그대로의 사람이니 기대하도록.”

‘별명이 얼음 교관이었나? 나한테는 파랑이가 더 익숙하지만.’

디아나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던 필립이 피식 웃었다. 신입생들의 표정은 가지각색이었다.

형제나 자매가 있는 학생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그녀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한 아이들은 예쁜 교관을 만난 행운을 곱씹는 듯 보였다.

“그러면 교관? 학생들에게 잠깐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예. 교수님.”

사석에서는 언니 동생 사이였으나 공적인 자리에서 디아나는 펠리시아를 깍듯이 대했다.

그녀는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허리에 찬 검을 뽑았다. 검술 교장 한가운데 서 있는 수련용 인형까지 다가간 그녀는,

사람 크기의 수련용 인형을 짧고 빠르게 한 번 베었다.

찰나의 번득임. 그것이 단순한 검광인지, 혹은 검기인지는 일정 수준 이상의 검사만이 알 수 있을 터였다.

곧 수련용 인형의 머리통과 하반신까지 잘려 총 네 토막이 되어 땅에 나뒹굴었다.

“검이 닿는 그 짧은 순간에 검기를 세 갈래로 분열시킨 건가? 소문은 들었지만 대단하긴 합니다. 처음 본다면 꼼짝없이 당할 것 같군요.”

“저 정도면 당장 어느 기사단에서든 영입하려 들 것 같네요. 고작 이십 대 중반에 저런 성취라니.”

학부모들의 감탄이 이어졌다. 그들 또한 가전 검술의 계승자들이었기에 디아나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와.”

“뭐야? 어떻게 한 거야?”

“난 좀 무서운데….”

신입생들은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그중 제법 이름 있는 가문의 자식도 있었으나 가문의 기사들이 고작 누군가의 여흥 때문에 저런 고급 기술을 선보일 일은 없었기에 신입생 중 대부분은 저런 걸 처음 보았다.

어지간한 가문의 결전기로도 모자람이 없는 수준의 검술이었다.

“이상입니다.”

디아나는 다시 본래 자리, 그러니까 필립의 맞은편으로 돌아갔다.

필립은 침을 꿀꺽 삼켰다. 비록 어느 정도는 준비했다곤 해도 이 순간이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 다음으로, 오스왈드 교관?”

여유로운 목소리와 달리 극도로 불안한 것처럼 보이는 시선이 필립을 향했다.

이제 그의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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