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104화 (104/117)

105화 아카데미 속 엑스트라 (5)

잠깐 백한영에 대해 얘기를 하겠다.

검 한 자루로 상급 신위를 손에 넣은 백한영. 그의 재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재능이라는 게 고하를 나누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검’이라는 분야로 한정 짓는다면, 그 누구도 백한영의 재능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런 만큼 백한영의 재능 일부분을 열화해 이식한 호문쿨루스는 상당히 강할 수밖에 없었는데, 때문에 슈진은 여태까지 없던 수준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가문의 검술을 자기식으로 해석한 건가? 아니. 조금 달라.’

호문쿨루스는 프라일러류 검술 1식, 스칼렛 피어(Scarlet Fear)를 멋대로 변형해 사용했다. 거기까진 그럴 수 있었다. 검술을 어떻게 변형하든 자신의 마음이니까.

하지만 변형된 검술의 수준이 상상 이상이면, 원본을 사용하는 입장에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저건 단순히 검술을 자기식으로 해석한 게 아니었다.

저것은.

검술을, 보다 ‘나은’ 길로 이끈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슈진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고작, 고작 인공 생명체 주제에.

이 프라일러 가문의 검술의 부족함을 알려 주겠다는 거냐?

슈진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건방진 인공 생명체에게 주제를 알려 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슈진의 몸 안을 순환하던 오러가 이내 몸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우웅―!

마나 블레이드를 넘은, 오러 블레이드. 검강(劍罡)을 뽑아낸 슈진이 매섭게 호문쿨루스를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프라일러류 검술.

1식, 스칼렛 피어(Scarlet Fear).

선홍빛 공포가 호문쿨루스를 덮쳤다.

슈진의 공격에 호문쿨루스 백이영이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검을 들었다.

스칼렛 피어는 강(强)의 묘리가 담긴 초식이다. 대체로 프라일러류가 강검(强劍)의 성질을 띠고 있으니 당연했다.

그렇다면 백이영이 새롭게 재구성한 프라일러류는 어떨까.

답은 간단했다.

백이영류 검술.

1식, 블러드 스파이럴(Blood Spiral).

강검(强劍)을 넘어선 패도의 검. 패검(霸劍)이었다.

콰아아아앙!

강검과 패검이 만나 부딪치자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백이영의 검엔 어느새 검강이 씌워져 있었다.

“감히.”

슈진은 검사였다. 그것도 능력이 출중한.

그렇기에 백이영의 검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잘 알 수밖에 없었다.

너 같은 건 짓누르고 지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검술에 슈진의 오러가 격하게 타올랐다.

어디 해봐.

위에 서는 게 누군지 알아보자고.

콰아앙!

재차 폭음이 울려 퍼지는 훈련장. 백한영은 앞으로 엎드려 슈진과 백이영의 대련을 살펴보다가 등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나직이 중얼거렸다.

“바르세알.”

“하명하십시오.”

“이 세계 오락은 이런 것밖에 없냐?”

“마음에 안 드십니까?”

“마음에 안 든다기보다는, 이 짓을 몇 주일 내내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

현재 백한영은 마사지를 받는 중이었다.

미녀가 해 주는 마사지. 이 세계에서는 꽤 인기가 많은 오락거리였지만, 백한영에겐 영 아니었다.

백한영은 이런 것보다 도파민이 막 분비되는 종류의 오락이 더 마음에 들었다.

백한영의 생각을 읽은 바르세알이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돌려보내겠습니다.”

“어. 돈 제대로 챙겨 주고. 임금 체불되면 서러워.”

“명심하겠습니다.”

“그나저나 호문쿨루스마다 열화 카피 한 재능이 다른가 보다?”

“방향성을 정해 줄 수는 있지만, 그 결괏값에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오차가 적은 편입니다.”

“아니 뭐라 하는 건 아니고. 신기해서.”

백한영은 백일영과 백이영을 번갈아 가며 살펴봤다.

아일라의 펜드라류를 멋대로 뜯어고쳐 자신에게 완벽히 맞는 검술로 바꾼 백일영.

슈진의 프라일러류를 멋대로 뜯어고쳐 보다 나은 검술로 진화시킨 백이영.

둘이 한 행동은 얼핏 봐선 비슷해 보였지만, 완전히 다른 짓이었다. 필요한 재능도 달랐고.

그래서 둘 중 내 재능은 뭐냐고?

당연히 둘 다 가지고 있지. 뭘 묻고 있어.

백한영은 이번엔 백삼영에게 시선을 옮겼다.

마빈과 백삼영이 맞붙고 있었다.

마빈은 이제 막 정안검법(正眼劍法)을 익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능숙히 검을 움직였다.

정안검법(正眼劍法).

1식, 정류(正流).

마빈의 검이 최단의, 최적의 검로로 움직였다.

얼핏 봐선 쾌검 같아 보였지만, 착각이다.

검로에 군더더기가 사라지니 자연히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백삼영이 검을 들었다.

백삼영 또한 정안검법(正眼劍法) 1식, 정류(正流)를 사용했다.

챙!

가벼운 충돌음이 수련장에 울려 퍼졌다. 마빈은 이제 막 검술을 배운 입문자. 검기(劍氣)나, 검강(劍罡) 같은 기예는 사용하지 못했다.

그런 마빈을 상대하는 백삼영도 마찬가지로 검강을 사용하지 못했다.

때문에 둘의 충돌음은 앞의 슈진과 아일라와 비교하면 다소 약한 감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둘의 대련이 격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슈진과 아일라보다 격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게 백삼영과 마빈이었다.

정안검법은 쉽게 말해 ‘정답’을 펼치는 검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순간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정답을 추구하는 검법인 것이다.

이 정답이라는 게 참 오묘했다.

정답이라는 건 조건에 따라 여러 개일 수도 있었다.

가령 쾌검으로 순식간에 적을 쓰러트리든 강검으로 적을 압살해 쓰러트리든 결과가 똑같다면 두 개 다 정답이 아닌가?

그리고 가지고 있는 패에 따라 정답이 달라지기도 했다.

마빈의 정답과 백한영의 정답이 같을 수는 없었으니까.

이토록 정답이라는 건 애매하고 확실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정안검법은 올바른 답을 추구했다.

상황에 따라, 가진 패의 개수에 따라, 그 순간에 맞는 최적의 해답을 찾는 검법.

그것이 바로 정안검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백삼영과 마빈의 검이 끝없이 부딪쳤다.

서로 사용하는 검법이 달랐다면 조금 다른 양상이 나왔겠지만, 둘 다 똑같이 정안검법을 사용하다 보니 심리전의 영역으로 구도가 굳은 것이다.

마빈은 그 어느 때보다 기분이 고양됐다.

‘즐거워.’

마빈은 마법을 배우며 즐거웠던 적이 없었다.

마법사 가문이니까, 재능이 있다니까 익혔을 뿐. 딱히 마법이 좋진 않았다.

심지어 재능을 느낀 적도 없었다.

그 와중에 마법이 즐거우면 그건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하지만 검술은 달랐다.

검술은, 마치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마빈에게 잘 맞았다.

살면서 처음으로 ‘재능’이라는 게 느껴졌다.

왜 백한영이 자신을 용사 후보로 뽑았는지 알 것 같았다.

챙!

…그거랑 별개로 호문쿨루스의 검이 너무나 매서웠지만.

‘버거워.’

정안검법의 핵심은 사용할 수 있는 손 패의 개수를 늘리는 거라고 할 수 있었다.

쾌(快), 변(變), 환(幻), 강(强) 패(覇), 환(渙), 폭(爆), 중(重) 등등.

수많은 검의 묘리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야만 그 상황에 맞는 올바른 답을 재현할 수 있었다.

그 부분에서 마빈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적응했다.

이제 막 검을 잡은 주제에 수많은 검의 묘리를 얼추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도 왜 백삼영의 검을 버거워하냐고?

그야, 백삼영이 마빈보다 더 빠르게 수많은 검의 묘리에 익숙해지고 있었으니까.

정안검법을 보자마자 익혀 버린 백삼영은 순식간에 검법의 핵심을 파악하고 검의 묘리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숙련시켰다.

오히려 원작자인 마빈이 백삼영이 하는 걸 보고 따라 할 정도로 둘의 차이는 급격하게 벌어졌다.

어쩔 수 없었다. 슈진과 아일라는 여태 십수 년간 쌓아 온 것이 있었다. 그래서 호문쿨루스가 무섭게 따라와도 잘 따돌릴 수 있었지만, 마빈은 이제 막 검을 잡은 초짜.

따지고 보면 백삼영과 조건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마빈이 믿어야 될 것은 자신의 재능밖에 없었지만.

안타깝게도 마빈이 상대하는 호문쿨루스는 백한영의 열화 카피였다.

정안(正眼)의 재능 같은 건, 당연히 백한영도 가지고 있었다.

챙!

백삼영의 쾌검(快劍)에 마빈이 검을 놓쳤다.

단련되지 않은 육체 또한 마빈의 약점 중 하나였다.

무술가가 시간을 들여서 성장시켜야 되는 부분은 전부 수준 미달인 것이다.

“하아.”

마빈이 한숨을 내쉬었다.

갈 길이 너무 멀어서 그런가. 속이 답답했다.

‘이래서는 용사로 뽑히기 힘들겠네.’

기대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남자 중 어렸을 때 용사의 꿈을 꾸어 보지 않은 자는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

이제 막 검을 잡은 자신이 아일라와 슈진을 제치고 용사가 된다면, 그들을 압도적으로 뛰어넘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인데.

솔직히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아일라와 슈진의 십수 년을 제칠 정도로 뛰어난가?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눈앞의 호문쿨루스도 제대로 못 쓰러트리는데, 그럴 리 있나.

시무룩해진 마빈이 땅바닥에 떨어진 검을 주워 자세를 잡았다.

늦게 출발한 만큼 더 열심히 해야 됐다.

“갈게요.”

“…….”

아무 말 없는 백삼영에게 말을 걸며 마빈이 검을 휘둘렀다.

둘의 검이 재차 어지럽게 허공을 수놓았다.

“흠.”

백한영이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아직 소식이 없네.”

백한영은 백삼영에게 밀리고 있는 마빈을 보며 팔을 꼈다.

고작 호문쿨루스에게 밀리고 있는 걸 보니 아직 정안(正眼)을 완벽히 개안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편의상 열화 카피라고 한 거지, 엄밀히 따지면 쟤네, 열화열화열화 카피란 말이지.’

아무리 백한영의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열화를 세 번이나 거치고 나면 성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원래라면 진짜 정안의 소유자인 마빈이 가짜 정안에게 격의 차이를 보여 줬어야겠지만,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마빈이 밀린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재능을 자각하지 못했나.’

이해됐다. 실제 백한영도 겪었던 일이다.

평화로운 현대에서 살다가 무림에 떨어진 백한영은 초기엔 생각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

오랜 세월 동안 재능을 자각하지 못한 탓에 영혼에 새겨진 재능이 삐걱이며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백한영이 천재적인 모습을 보여 준 건 스승이 죽은 후. 격한 감정을 느낀 다음부터였다. 무협 세계에 빙의되고 꽤 많은 시간이 지난 후라는 거다.

뭐, 백한영이 자신의 재능을 완벽하게 자각한 것은 대적자, 마신 리바인드를 만나 후긴 했지만, 그건 다른 얘기니 넘어가고.

요점은 재능이라는 건 사용하지 않으면 녹슨다는 것이다.

저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계기가 필요했다.

격한 감정의 변화를 겪든, 아니면 숙적을 만나든.

다행히 마빈에겐 격한 감정은 몰라도 숙적은 준비돼 있었다.

비록 열화 카피라곤 해도 정안의 보유자가 매일같이 대련을 해 주니까.

‘얼른 녹슨 것 좀 벗겨 내라. 정안만 개안하면 즉시 네가 용사야, 마빈아.’

백한영은 백삼영과 격하게 검을 주고받는 마빈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마빈의 검이 아까보다 더 나은 궤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흠.

얼마 안 걸릴 것 같긴 하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