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초인의 시대 (5)
도와줄 생각은 없다. 그 말이 백한영의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다.
“이유가 뭐예요.”
“이유가 뭐냐고?”
“형이라면 이 정도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잖아요!”
김태식의 목소리가 살짝 격양됐다.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보면 분노하기 마련이다. 그만큼 백한영의 행동은 이해의 범주를 벗어났다. 적어도 김태식이 보기엔 그랬다.
사실 김태식의 부탁은 보편적으로는 어려운 쪽에 속했다.
범죄 조직을, 그것도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감도 안 잡히는 강력한 조직을 해치워 달라니. S급 각성자도 거절할 난이도였다.
하지만 난이도라는 건 원래 상대적인 개념이다. S급 각성자가 난색을 표한다고 모든 사람이 그러란 법은 없었다.
김태식이 봤을 때 백한영에게 이번 일은 굉장히 간단한 안건이었다. 범죄 조직? 그래서 그놈들이 S급 각성자, 권왕 윤한을 일격에 쓰러트렸던 리치의 왕보다 강한가?
제주도에 SS급 던전 게이트가 열렸던 그날. 김태식은 백한영이 가지고 있는 힘을 똑똑히 목격했다. 그건 인간의 상식을 넘어선 무언가였다.
백한영의 능력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진 김태식도 잘 몰랐다. 아마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이 튀어나오겠지.
어차피 백한영의 진정한 힘이 어느 정도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보여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범죄 조직을 쓸어버릴 수 있었으니까.
실제로 백한영도 마음만 먹으면 범죄 조직 같은 건 당장에 괴멸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김태식은 거절당했다. 그것도 단칼에. 대체 왜? 머리가 복잡해졌다.
귀찮아서는 아닐 거다. 김태식이 몇 달간 지켜본 바로는 백한영은 그런 이유로 도움이 필요한 타인을 외면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백한영이 저런 소리를 한 명확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게 뭔지 짐작조차 안 가서 그렇지.
“태식아.”
백한영의 차분한 목소리에 김태식도 감정을 가라앉히고 대답했다.
“네, 형.”
“소냐를 도와주려는 이유가 뭐냐.”
“그건.”
“눈에 띄어서겠지. 정확히는 소냐의 비극을 네가 인지해서일 테고.”
“…그게 나쁘다는 거예요?”
“선악의 얘기를 하는 게 아니야. 그것 자체를 뭐라고 하는 건 더더욱 아니고. 나는 단지 이유를 물어봐서 설명을 해 주는 것뿐이야.”
백한영이 짧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마치 아이와 대화하기 전 마음을 가다듬는 어른처럼. 옛날얘기를 해 주려는 노인처럼.
“내가 소냐를 도와줬다고 치자. 지금 당장 러시아로 날아가서 나쁜 놈들을 죄다 쓸어버렸다고 가정하자고. 그러면 어떻게 될까.”
“이번 일이 해결되겠죠.”
“맞아. 아마 한 시간 내에 모든 게 해결될 거야. 그런데 그다음은? 그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순간 대화의 흐름을 놓친 줄 알았다. 그다음이라니. 무슨 맥락으로 저런 소리가 나온 건지 감도 안 잡혔다.
잠시 고민한 김태식은 가장 먼저 떠오른 문장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증오의 연쇄가 시작되나요?”
“증오의 연쇄? 그런 건 충분한 힘이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안 돼, 적어도 나한테는. 그런 것 말고. 내가 타인의 불행을 인지하고, 그걸 해결해 줬을 때. 그다음에 일어날 일들을 말하는 거야.”
김태식이 입을 다물었다. 떠오르는 건 많았지만, 전부 백한영이 원하는 답변은 아닐 것 같았다.
“잠깐 얘기를 돌리자. 타인의 불행을 인지했을 때 그걸 해결할 능력이 있으면 해결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뭘까. 인지일까? 해결할 능력일까?”
“해결할 능력 아닐까요.”
“그래. 해결할 능력. 그게 문제야.”
백한영이 실소를 터트렸다. 김태식 때문은 아니었다. 단지, 과거의 자신이 너무나 웃겼다.
“타인의 불행을 인지했다고 해서 무작정 해결해 주려고 하면 끝이 없어.”
“모든 사람을 구해 주는 게 아니라 손이 닿는 범위까지만―.”
“태식아, 네가 날 찾아온 이유가 뭔데. 내게 이번 일은 간단한 일이니까 찾아온 거잖아. 아니야?”
김태식이 입을 다물었다. 슬슬 백한영이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너도 알겠지만 까놓고 말해 폭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내게 너무나 간단해. 아마 불가능한 일이 없을걸? 손이 닿는 범위까지만? 내 손이 닿는 범위가 어느 정도일 것 같니.”
“전 세계인가요?”
“전 세계? 그런 말로는 표현이 안 돼.”
마음만 먹으면 초 단위로 세상을 감시할 수 있고, 초 단위로 악인을 쓸어버릴 수 있었다.
세상에 퍼진 비극을 없앨 수 있는 능력을 처음 얻었을 때, 백한영은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생각을 했었다.
내가 겪은 슬픔을 그 누구도 겪게 하지 않겠다는, 진짜 말 그대로 어린아이의 망상 같은 생각을.
결과는 뭐, 보다시피 그다지 좋지 않았다.
“소냐의 일은 안타깝긴 해. 근데 세상에 소냐 같은 애가 한둘일까? 쓰레기 같은 인간들은? 몇 명이나 될 것 같아. 혹시 감이 잡혀?”
“셀 수 없이 많겠죠.”
“불행의 숫자는 인간의 숫자와 똑같아. 그들을 전부 구하려고 하는 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오만이야.”
“그러면 특별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만…….”
김태식이 말끝을 흐렸다. 말을 하다가 깨달았다. 그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그런 주관적인 기준으로 일을 정하면 끝이 없어. 특별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구별하는 방법이 뭔데. 내가 아니면 구해 줄 수 없는 사람? 그런 거라면 소냐는 이미 탈락인데? 평균보다 불행한 사람? 평균이 대체 어느 정도고, 애초에 그 사람들에게 특별히 도움이 필요한 게 맞아?”
“…….”
“그런 걸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사람들을 구해 주려고 해도 문제야. 처벌이 필요한 악인의 기준을 뭘로 잡아야지? 형량? 사회적 인식? 내 주관적인 판단?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기준은? 애초에 답이 없는 문제야. 그래서 이런 건 중간이 없어. 하면 끝까지 가야 돼. 어중간하게 이랬다 저랬다는 못 한다고.”
그리고 끝까지 간 결과, 별로 좋은 결말을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백한영은 지금의 방식을 채택했다.
평범한 인간의 기준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걸 바탕으로 울타리를 만든다.
그 후 울타리 안에 집어넣을 걸 정한다. 다 했으면 남은 건 간단했다.
울타리 안에 있는 내용물을, 일상, 가족, 친구를 지킨다. 울타리 밖에 있는 건 최대한 신경 쓰지 않는다. 이게 백한영이 판단하기에 큰 문제가 터지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김태식이 입술을 깨물었다. 백한영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는 알았다. 하지만 납득은 안 됐다. 가슴 깊은 곳에서 반발심이 솟구쳐 올랐다.
터질 것 같은 김태식의 심경을 알아채고 백한영이 말했다.
“논리의 비약이라고 느껴져? 아마 너는 이렇게 생각할 거야. 고작 사람 하나를 구하는데, 그것도 별로 어렵지도 않으면서 이런저런 핑계가 많다고.”
“그렇게까진 생각 안 했어요.”
“소냐만,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눈에 띈 사람들만 구해 주는 선에서 멈추면 되지 않나 싶을 거야. 근데 태식아, 사람의 마음은 눈덩이와 같아. 일단 시작을 하면 자기도 모르게 어마어마하게 커져 버려. 나중에 정신을 차렸을 때는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말이야.”
그러니 애초에 출발선에 서지도 말아야 돼. 백한영이 나직이 덧붙였다.
김태식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람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했다. 입장이 다르고, 사고방식이 다르고, 걸어온 길이 달랐다.
백한영의 삶을 살아 보지 않은 김태식은 무슨 연유로 저런 얘기가 나온 건지 짐작조차 안 됐다.
백한영과의 거리가 오늘따라 유독 멀게 느껴졌다. 바로 앞에 있음에도, 영원히 닿지 못할 평행선을 보는 듯했다.
김태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론이 나왔음에도 계속 붙들고 늘어지는 것도 민폐였다.
“형, 당분간 훈련은 쉴게요.”
“그래.”
김태식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회의실 밖으로 나섰다.
“어땠어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소냐와 놀아 주고 있던 이세영이 빠르게 물었다.
“잘 안됐어요.”
“음. 뭐 어쩔 수 없죠. 솔직히 이런 일에 선뜻 나서는 사람이 더 적을 거예요.”
이세영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소냐와 엮인 놈들은 그만큼 어마어마하기도 했고, 애초에 평범한 각성자인 백한영이 큰 도움이 안 될 거라고 결론을 내린 뒤기도 했다.
“우리끼리 해봐야지 어쩌겠어.”
이현진이 니코틴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다가왔다. 이세영과 다르게 말투에 약간의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나름 백한영을 높게 평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감정이 새어 나온 것이다.
그래 봤자 큰 도움이 안 될 거라 생각한 건 이세영과 똑같았지만.
여기서 백한영의 진정한 힘을 아는 건 김태식밖에 없었다.
김태식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불안감이 몸에 전염된 것이다.
내가 진짜 한영이 형 없이 소냐를 지킬 수 있을까.
김태식이 고개를 밑으로 숙였다. 감정을 가라앉혀야 됐다.
툭. 그때 누군가 김태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고개를 들자 거기엔 소냐가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아까 급하게 외운 러시아어 중 하나가 소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김태식은 속으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걱정하게 만들다니. 안심시켜도 모자랄 판에 뭐 하고 있는 거야.
손을 들고 양손으로 가볍게 볼을 두들기자. 짝. 사무실에 살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냐가 놀란 토끼 눈을 했다. 이세영과 이현진도 대화를 하다 말고 김태식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어깨에 올라온 소냐의 손을 조심히 치운 후 김태식이 말했다.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수 없으니 다른 곳으로 이동하죠.”
“확실히 안전 문제도 있으니 본부로 이동하는 게 좋겠어요.”
이현진의 말에 김태식은 안전만 생각하면 여기에 있는 게 제일 낫다는 말을 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의미 없는 말을 해서 기운을 빼고 싶지 않았다.
“얼른 가죠.”
* * *
김태식이 떠나 적막해진 사무실 안. 그곳에서 백한영은 턱을 괴고 가만히 상념에 잠겼다.
이 문제로 누군가와 다툰 건 오랜만이었다.
백한영은 예전 일을 떠올렸다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에 있었던, 길고도 긴 이야기를.
‘이게 백 가가가 원했던 삶이야?’
‘거짓말하지 마.’
‘난 이런 거 싫어.’
내가 원했던 건 그런 게 아니긴 했어.
옛 추억을 되새기던 백한영이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전 일은 예전 일이고, 지금은 현실에 집중할 시간이었다.
‘형이라면 이 정도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잖아요!’
머릿속에 맴도는 말들을 흩어 버리며 백한영은 훈련실로 내려갔다.
* * *
“실패했다고.”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남자, 니콜라이 코스틴이 부하의 보고를 받자마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고작 애새끼 하나 데려오는 것도 실패하다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죄송합니다. 기회만 주신다면 당장.”
“변명은 됐다. 나는 말로만 대가를 치르려는 놈들을 세상에서 제일 혐오하거든.”
니콜라이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옆에 서 있던 경호원들이 앞으로 나섰다.
“보스! 제발 자비를!”
비명을 지르는 부하에게 눈길도 주지 않으며 니콜라이가 말했다.
“실패한 이유가 뭐지?
“현지의 정부 기관이 끼어든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실패했다는 건가?”
“송구합니다.”
니콜라이가 미간을 꿈틀거렸다.
따지고 보면 애초에 애새끼가 연구소를 탈출한 것부터 말이 안 됐다.
안 되겠군.
“내가 직접 나서겠다. 돌아올 때까지 관련자들의 처벌을 전부 마무리해 놓도록.”
기회는 많이 줬다. 모든 기회를 차 버린 건 이놈들이었으니,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이놈들이나, 애새끼나, 전부 다.
러시아를 음지에서 지배하는 니콜라이 코스틴의 일을 방해한 대가는, 절대 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