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급 시험(1)
[지아야 들어봐. 우리 오빠가 또―.]
“또 뭐 했어?”
백은하의 말에 그녀의 오랜 친구, 유지아가 무심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차피 늘 있던 오빠에 대한 한탄―.
[그렇다니까. 이번에 갑자기 나한테 검을 만들어 달라고 하지 않나, 어디서 100억 넘게 벌어오지 않나. 신경 쓰여 죽겠어.]
―을 가장한 자랑질을 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오빠, 라.
유지아는 얼마 전의 일을 떠올렸다.
갑자기 열리는 수십 개의 게이트와 쏟아지는 몬스터와, 그 몬스터를 일검에 베어버렸던 한 남자를.
유지아가 말했다.
“은하 네 오빠 이름이 백한영이라고 했지?”
[그지?]
“A급 각성자고.”
[응.]
“다중 게이트 사태 때 활약했고.”
[그렇다니까. 지아 너 이거 몇 번째 물어보는 건지 알아?]
백은하의 오빠가 자신이 만났던 그 사람이 맞다는 걸 확인한 유지아는 조용히 책상에 있는 서류를 내려봤다.
[승급 시험 신설 및 임시 교관 추천]
‘은하 오빠면 괜찮지 않을까?’
*
중국 상하이에 최초의 게이트가 열린 후로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인류는 수많은 일을 겪었다.
최초의 각성자, 최초의 빌런, 최초의 협회, 최초의 S급 게이트 공략 등.
지난 8년간 수많은 일이 있었고, 그에 맞춰 인류는 변화를 거듭했는데.
이번에 승급 시험이 신설된 것도 변화에 포함됐다.
어차피 이제 공략 실패를 해도 던전 게이트라 민간 피해가 없는데, 등급 좀 시원하게 올려도 되는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을 정부가 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폐업 직전에 재고 상품을 처리하듯 마구잡이로 등급을 뿌리는 건 아니고, 그냥 조금 더 고등급 각성자가 많아지는 정책을 낸 거긴 했다.
기존의 심사 제도는 유지한 채 정기적으로 승급 시험을 실시해 설사 실적이 부족해도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한 것인데.
“교관이요?”
그런 상황에서 백한영은 사람 하나를 만나고 있었다.
“네.”
“어···. 조금 뜬금없는데, 자세히 말해주실래요?”
백한영의 말에 유지아는 승급 시험과 각성자 교육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설명을 다 들은 후 백한영이 말했다.
“그러니까 며칠 동안 각성자 교육도 하고, 시험관도 해줄 사람을 찾고 있다, 그 얘기인가요?”
“네. 그 얘기에요.”
“각성자 교육. 음.”
백한영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안 그래도 각성자 교육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하고 싶었는데, 잘 됐다고.
“교관은 저 혼자만이에요?”
“저도 있고, 다른 사람도 몇 명 있어요.”
유지아의 말에 백한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게요.”
그리고 이상이 백한영이 임시 교관을 하게 된 경위였다.
“시설 좋네.”
교육소 내부 시설을 확인하며 백한영이 중얼거렸다.
첨단 문명과 마법의 힘이 합쳐져서 그런가. 무림에서 봤던 훈련 시설보다 더 좋은 거 같았다.
시설을 둘러보던 백한영은 이내 각성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강철로 된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테스트실.
그곳을 유리로 내려다볼 수 있는 방에 도착한 백한영은 미리 교육생들을 지켜보고 있던 교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백한영은 그중 유지아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쟤네가 이번에 승급 시험을 치룰 각성자예요?”
“네. 백한영 씨가 가르칠 그룹은 저 중 붉은색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흐음.”
백한영이 테스트실 내려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딱히 눈에 띄는 애는 없네?
“쟤네들 저기엔 왜 모아놓은 거예요?”
“좀 더 정교한 테스트를 받기 위해서요. 교육을 하기 전에 교육생들의 수준을 알아 놓으면 좋잖아요.”
“다 비슷해 보이는데···.”
자고로 낭중지추라고, 송곳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티가 나는 법이었건만, 교육생 중 그런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쓸만한 애 있으면 길드로 데려가려고 했는데, 이러면 다른 사람들 교육 방식이나 구경해야겠네.’
그렇게 백한영이 팔짱을 끼고 교육생들을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쯧.”
뒤에서 누군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린 백한영은 웬 남자가 자신을 (본인은 티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노려보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뭐야 저건.
의아한 상대의 행동에 백한영은 고개를 숙여 유지아에게 조그마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분은 누구예요?”
“누구요?”
“저 뒤에서 여기 쳐다보고 계신 분 있잖아요.”
“쳐다보고 계신 분···? 아. 손배성 씨에요. 저분도 교관으로 오셨어요.”
손배성?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그건 즉 만난 적이 없다는 소리였는데, 왜 저렇게 노려보는 건지 감도 안 잡히는 백한영이었다.
“아는 사이에요?”
“안면이 있긴 해요.”
“그럼 가서 왜 저러는지 물어봐 주실 수 있어요?”
“어떤걸요?”
“왜 자꾸 노려보는지요.”
백한영의 말에 유지아가 손배성을 쳐다봤다가, 고개를 바로 했다.
“그냥 손배성 씨가 눈매가 날카로워서 오해하신 거 같은데요?”
“오해 아닌 거 같은데···.”
유지아와 백한영의 대화가 길어지자마자.
“후우.”
손배성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화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
워낙 조용히 한숨을 쉬어서 그런가, 귀가 좋은 백한영을 제외하곤 아무도 손배성의 상태를 눈치 못 채지 못했다.
백한영은 테스트실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거 같은데, 저러다 들이박기밖에 더 하겠냐.
신경 끄자.
[피지컬 테스트 시작합니다.]
테스트실에 기계음이 울려 퍼지고, 각성자들이 차례대로 피지컬 테스트를 받기 시작했다..
‘흠.’
백한영은 각성자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지정된 코스를 도는 것뿐인 간단한 테스트였지만, 저것만으로도 재능을 알아보기엔 충분했다.
몸을 쓰는데 재능이 있다면 티가 날 테니 말이다.
‘아예 맹탕은 아니네.’
몇몇 각성자의 몸놀림이 나쁘지 않을 걸 확인한 백한영은 이내 자신이 가르칠 붉은 트레이닝복을 입은 그룹을 집중해서 관찰했다.
붉은 트레이닝복을 입은 각성자들은 대부분이 무림계 및 강화계였는데, 그래서 그런가 신체 능력이 나쁘지 않았다.
일단 테스트실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붉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그래봤자 백한영의 성에 안 차긴 했는데, 그건 뭐 김태식도 마찬가지였으니 그러려니 했다.
[다음으로 마나 테스트 시작합니다.]
철컹.
테스트실에 있던 각종 장애물이 밑으로 내려가고 특수 소재로 만들어진 허수아비가 다수 튀어나왔다.
저건 백한영도 본 적이 있는 놈이었다.
각성자 등록을 할 때 가볍게 툭 쳤던 허수아비가 딱 저렇게 생겼었다.
우웅―!
마나를 최대로 끌어올린 각성자들이 자기 앞에 있는 허수아비를 힘차게 때렸다.
동시에 상황실 모니터에 각종 그래프와 숫자가 어지럽게 표시됐다.
각성자의 실력을 도식화해서 보여주는 듯했는데, 당연하게도 백한영은 저 그래프와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근데 모르면 물어보면 되지.
백한영은 아까부터 주시하고 있던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교육생이 허수아비를 치는 순간, 유지아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쟤는 테스트 결과가 어떻게 나왔어요?”
“17번 교육생이요? 음. 평범해요.”
“평범하다고요?”
“피지컬 테스트는 나쁘지 않은데, 마나 보유량이 별로네요. 각성 능력도 평범하고. 특출난 각성자는 아닌 거 같은데요?”
“그래요?”
백한영은 볼을 긁적이며 17번 교육생의 몸놀림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아까 그거, 내공. 그러니까 마나 활용에도 재능이 있어야 나오는 움직임인데.
정작 사람들 평가는 별로네.
백한영이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건 몸과 마나를 활용하는 감각이었건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
하긴 마나의 보유량과 각성 능력이 가장 알아보기 쉬운 종류의 재능이긴 하지.
그래서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조금 아쉬울 뿐이지.
콰앙!
테스트실에서 연달아 폭발음이 일었다.
화려하게 자신의 각성 능력을 뽐내며 마나 테스트를 마친 신입 각성자들은 이내 전투 테스트를 실시했다.
홀로그램 몬스터와 싸우며 전투 감각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본 것이다.
전투 테스트에서도 17번 교육생은 백한영에게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살짝 버거워했지만, 판단도 정확했고 힘의 분배도 적절했다.
천부적으로 전투 감각을 타고났다고 밖에 설명이 안 됐는데, 정작 교관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17번 교육생이 홀로그램 몬스터를 잡는 데 걸린 시간이 딱 평균 정도였기 때문이다.
“확실히 백한영 씨가 주목할만 하네요? 느낌이 있어요.”
그래도 전부 눈이 옹이구멍은 아닌지 유지아가 그렇게 말했다.
원거리 전투직인 유지아도 알아봤는데 너네는 대체 뭐하냐? 라는 의미를 담아 백한영이 교관들을 훑어봤지만, 화려하게 몬스터를 썰어 버리는 교육생에 정신이 팔려 백한영의 시선을 알아채지 못했다.
교관에 대한 기대를 반쯤 접은 백한영이 다시 테스트실을 내려다보려 했을 때, 손배성이 고개를 획 돌렸다.
“흥.”
백한영과 눈이 마주친 손배성이 어깨가 올라간 채로 피식 웃었다.
백한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저건 또 왜 저래.
백한영의 시야에 손배성의 옷차림이 들어왔다.
푸른색 트레이닝복. 교관인지라 교육생들의 트레이닝복과는 살짝 다르긴 했지만, 같은 종류의 옷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백한영은 이번엔 엄청난 빛을 뿜으며 몬스터를 썰어버렸던 교육생을 바라봤다.
저쪽도 푸른 트레이닝복이었다.
어···. 그니까 뭐야. 자기가 가르칠 교육생은 저 정도인데, 네 교육생은 지금 뭐 하고 있냐, 이런 뜻인가.
백한영은 살짝 어이가 없었다.
아직 애들을 가르친 것도 아닌데 이게 무슨 신경전이야.
그리고 가르쳐봤자 며칠이 끝 아닌가.
자부심을 갖기에는 기간이 너무 짧은 거 같은데···?
[모든 테스트가 끝났습니다. 각 교육생들은 여러분을 가르칠 교관을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지자마자 바로 테스트실로 내려가며 백한영은 생각했다.
이다음에도 계속 저러면, 타이밍을 봐서 왜 그러는지 물어라도 봐야겠다고 말이다.
*
“백한영 씨! 백한영 씨가 가르칠 교육생들은 저쪽에 있어요.”
“아. 감사합니다.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느라.”
“정말 들은 대로네요.”
손배성은 유지아와 웬 시꺼먼 놈팡이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저 새끼는 뭔데 자꾸 유지아한테 찝쩍대는 거지?
심지어 찝쩍대는 것에서 끝내지 않고 친한 척을 하기까지 했다.
자신이 오늘 유지아와 나눈 대화라고는.
‘안녕하세요 지아 씨.’
‘네.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혹시 시간이 되시면 저기 카페에서···.’
‘어? 백한영 씨? 일찍 오셨네요?’
이게 전부인데, 저 백한영인가 뭔가 하는 놈은 시도 때도 없이 대화를 거는 것이다.
그리고 얌전히 대화만 나누냐? 그것도 아니었다.
아까 백머시기가 유지아에게 갑자기 귓속말을 걸 때는 자신도 모르게 뛰쳐나가 검을 뽑아 들 뻔했다.
수준 낮은 수작질에 유지아가 당하는 게 너무나 화가 난 손배성이 백한영을 째려봤다.
어디 계속 해 봐.
계속 그러면, 내가 망신당하는 게 뭔지 똑똑히 보여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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