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24화 (24/117)

쇼핑(2)

간만에 길드에 출근한 백은하는 부길드장, 방상철이 자신을 찾는다는 소리에 의문을 품으며 응접실로 향했다.

할 거 많은데 갑자기 왜 찾는 거지.

별일 아니기만 해봐 진짜.

그런 생각을 하며 응접실에 도착한 백은하는 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끼익.

고급스러운 문이 열리고, 백은하의 시야에 자본주의의 미소를 지은 채 손이 닳도록 비비고 있는 방상철이 잡혔다.

저건 예전에 대형 의뢰가 수주됐을 때나 짓던 표정인데.

진짜 무슨 일이지?

“은하 씨 왔어?”

“아. 네.”

세상 부드러운 방상철의 목소리에 백은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것저것 벌어오는 게 많은 백은하를 방상철이 잘 대해 주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 잘해준 적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대체 왜 저러는 거야.’

백은하의 시선이 방상철의 앞으로 향했다.

“······?”

백은하의 머릿속에서 갈고리가 춤을 췄다.

이상한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었다.

“은하야 왔어?”

“그···. 오빠가 여기 왜 있어?”

“왜 왔냐니. 당연히 뭐 좀 사러 왔지.”

“뭐를?”

“검 하나 맞추려고.”

백한영의 말에 백은하는 더욱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업계 1위인 금혼이랑 그 밑에서 쌍두마차로 달리고 있는 성휘랑 블랙해머 놔두고 왜 청풍에?”

“그, 은하 씨? 우리 청풍도 요즘 한창 잘 나가는···.”

“잠깐 조용히 해주세요 부길드장님.”

오빠가 이상한데 돈을 쓰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 백은하가 단호히 말하자, 방상철이 의자에 쭈그려 앉았다.

그래도 요즘 금혼 밑에 청풍까지 포함해서 3대장이라고 불러야 된다고 얘기가 자자한데···!

라고 속으로만 생각하는 방상철을 가만히 둔 채 백한영이 말했다.

“추천받았어.”

“누구한테?”

“오빠 길드 길드원한테.”

“이야. 안목을 제대로 갖춘 분이네요.”

슬그머니 끼어드는 방상철을 살짝 흘겨본 백은하가 백한영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길드는 또 무슨 소리야. 오빠 설마 길드도 만들었어?”

“말 안 했나? 안 했구나. 응. 만들었어.”

백은하가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이놈의 오빠는 잠깐 한눈을 팔 때마다 무슨 일을 저질러 버렸다.

“사기당한 건 아니지?”

“나랑 길드원 하나밖에 없는 소규모 길드인데 그런 게 어딨냐. 그리고 길드 덕분에 이번에 돈도 많이 벌었어. 사기 아니야.”

“그러면 다행인데.”

오빠와의 대화를 끝낸 백은하가 이내 방상철을 바라봤다.

그래서 자신을 왜 불렀냐는 의미였다.

백은하의 시선에 방상철이 다시금 자본주의의 미소를 한껏 띄우며 말했다.

“은하 씨도 알다시피 은하 씨가 우리 청풍 길드에서 알아주는 실력의 각성자잖아?”

“알아주는 실력은 모르겠고 아는 사람이 많긴 하죠.”

“아무래도 백한영 씨가 그 실력을 보고 싶은 모양이야. 지명 의뢰야.”

“지명 의뢰요?”

백은하가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백한영에게 말했다.

“오빠 검 제작하러 왔다며.”

“그치?”

“나보고 오빠 검 하나 만들어 달라는 거야 지금?”

“정확히는 너도 만들어 달라는 거긴 한데, 맞아.”

100억짜리 제작 의뢰를 넣는 김에 백은하에게도 제작 의뢰를 넣을 생각인 백한영이었다.

백은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물었다.

“얼마나 쓰게.”

“네 실력에서 최대로 쓸 수 있는 돈이 5억 안팎이라고 하더라? 그만큼 쓸 생각이야.”

“그래 은하 씨. 그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이번에 한 번···.”

“잠깐만요 부길드장님. 오빠랑 얘기 중이에요.”

다시 쭈그러드는 방상철.

백은하가 살짝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못 들었나 본데 나 검을 만들어 본 적이단  한 번도 없어. 내 전문 분야가 아니야.”

“알아.”

“···안다고?”

돈에 눈이 먼 부길드장에게 오빠가 속은 줄 알고 살짝 화가 났던 백은하는, 백한영의 말에 방상철을 바라봤다.

방상철이 손수건으로 얼굴을 찍으며 입을 열었다.

“아까 내가 다 설명해 드렸어.”

“오빠는 설명 들었으면서 왜 그러는 거야. 나한테 검 제작 의뢰 넣는 거 돈 낭비야.”

“잘 모르겠고, 그냥 만들어줘.”

백한영의 말에 백은하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오빠가 저 상태가 되면 말을 안 듣는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백은하는 이내 결정을 내리고 말했다.

“알았어. 최대한 열심히 만들어 볼게.”

“잘 생각했어 은하 씨. 우리 은하 씨 실력이면 못 만들 것도 없다니까?”

“은하 실력이 어느 정도인데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길드 최대 유망주 중 하나로―.”

백은하의 얼굴에 금칠을 시작한 방상철과 연신 맞장구를 치는 백한영.

그런 둘의 대화에 백은하는.

‘집에 가고 싶다.’

그 어느 때보다 퇴근이 하고 싶어졌다.

*

백한영을 돌려보낸 후 백은하는 방상철과 제작 의뢰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나눴다.

“얼마요? 백억이요?”

“응. 그것보다 더 써도 괜찮다고 하더라.”

자신의 오빠가 넣은 제작 의뢰의 단가를 확인한 백은하가 입을 벌렸다.

‘대체 그런 돈은 어디서 난 거야.’

뭔가를 저지르는 백한영이 이제 별로 놀랍지도 않았기에 백은하는 힘이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저희 오빠의 요구 사항은 어떻게 돼요?”

“100억을 쓰든 200억을 쓰든 상관 없으니까 검의 본질에 집중해서 만들어 달라고 하더라. 편의성 정도는 신경 써도 되는데, 특수기능을 덕지덕지 바를 필요는 없다고 하던데?”

“그거 말고 저한테 넣은 의뢰요.”

“은하 씨한테 넣은 의뢰? 음.”

눈동자를 굴리며 백한영과 나눈 대화를 떠올린 방상철이 천천히 이어 말했다.

“없는 거 같은데?”

“없다고요?”

“응. 그냥 은하 씨가 만들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만들라는 거 같아.”

“자유롭게 하라고 하니까 더 막막한데, 어쩌죠?”

“일단 해봐. 정 어려우면 협력 요청하면 되잖아. 언제든지 말해. 길드 차원에서 팍팍 밀어줄게.”

진짜 오빠는 어쩌자고 이런 의뢰를 넣은 거야.

속이 답답해진 백은하는 앞에 놓인 물을 꿀꺽꿀꺽 들이켰다.

단번에 물 한 통을 비운 백은하를 보며 방상철이 웃으며 말했다.

“언제부터 제작 들어갈래? 공방 하나 계속 비워놓을 테니까 천천히 만들어도 돼.”

“계속 비워놓는다고요? 안 그래도 되는데.”

“5억짜리 의뢰인데 당연히 비워야지. 이건 은하 씨라 편의를 봐주는 게 아니라 길드의 규정이 그래.”

“···공방 그거 지금 당장 써도 되나요?”

“당연하지.”

공방 하나를 계속 비워놓는다니까 마음이 불편해진 백은하가 그렇게 묻자 방상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백은하는 방상철과 함께 중형 크기의 공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공방의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제작 테이블을 손으로 쓸어내리는 백은하에게 방상철이 말했다.

“원하는 게 있으면 얼마든지 길드에 요청해. 내가 말해놨으니까 어떤 거든 바로 허가가 날 거야.”

“무기 제작에 대한 노하우를 알려줄 전문가가 필요한데, 괜찮나요?”

“당연히 괜찮지. 그거 말고 더 없어?”

“지금 당장은 그거면 됐어요.”

백은하의 말에 방상철은 스마트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며 입을 열었다.

“나는 바빠서 이만 가봐야겠다. 담당자 붙여줄 테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그 사람한테 말하면 돼. 알았지?”

“알겠어요.”

공방을 떠나는 방상철을 뒤로한 채 백은하는 제작 테이블을 조용히 내려보다가, 고개를 젖혔다.

머리가 아픈 탓이었다.

백은하의 능력은 만물각성,

자신이 만든 물건에 신비한 힘을 부여하는 능력으로, 만물각성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선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첫 번째.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만든 물건일 것.

두 번째. 그렇게 만든 물건의 퀄리티가 좋을 것.

이 두 가지가 충족되지 않으면 만물각성의 힘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고, 때문에 백은하는 여태까지 스스로 자신 있는 악세사리 제작 쪽만 파고들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검을 만들라는 소리를 들으니 당황스러운 것이다.

“나도 모르겠다 이제.”

작게 중얼거린 백은하는 그냥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최선을 다하긴 하겠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든 겸허히 수용하기로.

‘근데 이왕이면 내가 잘하는 걸 만들어 달라고 하면 좋잖아.’

물론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고 해서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백은하는 아까부터 메고 있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제작 도구와 각종 보석과 귀금속, 그리고 한창 제작 중인 미완성의 목걸이를 제작 테이블에 늘어놓은 백은하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목걸이 하나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검까지 만들게 생겼네.’

*

“여기가 국내에서 제일 유명한 아파트 단지라고요?”

백한영이 고개를 들어 눈앞의 아파트 단지를 올려봤다.

딱 봐도 수십억은 써야 입주할 수 있을 거 같은 고급스러운 아파트 단지가 백한영의 시야에 들어왔다.

백한영의 말에 중년의 부동산중개사가 자신의 반들반들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내부 시설이면 시설, 인테리어면 인테리어, 전부 최고인데 심지어 치안까지 좋죠.”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본적인 시큐리티도 잘 되어 있지만, 국내 유명 각성자들이 다수 입주해 있다 보니 여러모로 인기가 많죠. 원래 매물이 없기로 유명한데, 이번에 운 좋게 딱 나왔습니다.”

치안이 좋다라.

그건 마음에 드네.

“가서 직접 확인해 봐도 되죠?”

“물론입니다.”

백한영은 부동산중개사를 따라 고급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거의 꼭대기 층에 도착한 백한영은 기본 가구만 남아있는 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 안을 군데군데 둘러본 후 백한영이 말했다.

“넓네요?”

“펜트하우스를 제외하면 가장 넓은 집입니다. 100평을 살짝 넘어서 조금 과장하면 축구도 할 수 있죠. 하하하.”

“여기 가격이 얼마나 되죠?”

“91억입니다.”

“91억. 흐음.”

상당한 가격에 백한영은 턱을 쓰다듬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네요. 지금 바로 살 수 있죠?”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언제쯤 입주할 수 있죠?”

“제가 최대한 빠르게 입주할 수 있도록 집주인과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만족스러운 거래에 입꼬리를 한껏 올리는 중년의 부동산중개사를 뒤로한 채, 백한영은 집 내부를 재차 살펴봤다.

‘이모랑 은하가 좋아하면 좋겠는데.’

그렇게 백한영이 이사 준비를 마쳤을 때.

백한영이 입주하기로 예정된 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멈춰 선 엘리베이터에서 한 여자가 걸어 나왔다가, 멀찍이서 들리는 두 남자, 백한영과 부동산중개인의 목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 언제 계약은 가능하신지.”

“언제든지요.”

옆집이 비었다 싶었더니, 그새 팔린 모양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내가 구입하는 건데. 여자는 속으로 살짝 짜증을 내고 자신의 집 도어락에 손을 가져다 댔다.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가며 여자, S급 각성자 홍염 이초아는 생각했다.

거슬리지만 않으면 돼.

거슬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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