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26화 (26/117)

승급 시험(2)

교육생들과 인사를 나눈 백한영은 팔짱을 끼고 고민에 빠졌다.

그래서 얘네를 어떻게 가르칠까.

물론 백한영도 여러 가지 교육 방법을 생각해 놓긴 했지만, 막상 다양한 각성자들과 대면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백한영은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PC를 작동시켜 자신이 가르칠 각성자들의 정보를 훑어봤다.

각종 검법 및 권법, 도법, 창법 등을 각성한 각성자에, 신체를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강화하는 각성자까지.

이렇게 통일성 없는 각성자들을 어떻게 교육하는 게 가장 좋을까.

참고라도 해야 되나.

백한영은 고개를 들어 다른 교관들을 살펴봤다.

가장 먼저 유지아부터. 유지아는 마나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마나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유지아가 가르치는 원거리 전투 직종에게 가장 중요한 게 그거였기 때문이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백한영은 이번엔 손배성을 살펴봤다.

손배성은 푸른 트레이닝복을 입은 교육생들 앞에서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각성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각성 능력입니다. 그러니 각성자라고 불리는 거죠.”

“예전에 저를 가르쳐줬던 분은 조금 다른 말을 했었는데요.”

“다른 말이라고요? 누가 그랬죠?”

“막 각성했을 시기에 개인 교습을 봐줬던 C급 각성자분이···.”

“하. C급? 교육생이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저는 A급. 그것도 검맥의 길드원입니다. 원래라면 여러분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니 잠자코 제 말에 따르세요, 라고 낮게 덧붙이는 손배성을 보며 백한영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건 참고할 게 못 될 거 같다고.

이어서 다른 교관들까지 두루 둘러본 백한영은 이내 교육방침을 정할 수 있었다.

‘그냥 내 식대로 하는 게 맞겠다.’

백한영이 입을 열었다.

“대련이나 하죠.”

“대련이요?”

“리그식으로 모든 사람과 한 번씩 대련을 하고, 그 후에 피드백을 해드리는 거예요. 괜찮죠?”

갑작스러운 백한영의 말에 교육생들은 일단 시키는 대로 트레이닝실 구석에 배치된 대련용 무기를 가져왔다.

대련용 무기를 착용한 교육생들은 각각의 위치에 서며 조심스럽게 백한영을 바라봤다.

진짜 해요? 라는 의미를 담아서.

교육생들의 시선에 백한영은.

“바로 시작하세요.”

단호히 대답했다.

백한영의 말에 교육생들은 눈앞의 상대와 눈을 마주치며 순순히 무기를 들었다.

물론 속은 그렇지 않았다.

‘이거 맞아?’

의구심을 가득 품은 채 교육생들은 대련을 시작했다.

현재 이곳에 있는 교육생들은 전원이 C급 각성자로, 나름 경력과 경험이 있었다.

즉 대부분이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다는 소리였고, 때문에 일반적인 교육 커리큘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았는데.

자기들의 경험에 의거하면 무작정 대련을 시키는 건 그다지 효율이 안 나왔건만, 백한영이 대련을 시키니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다 끝났습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20명의 교육생이 리그제로 대련을 전부 마친 후 백한영에게 말을 걸었다.

교육생의 얼굴엔 살짝 불만이 올라와 있었다.

이런 걸 바라고 여기에 온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게 교육생들의 판단이 틀린 건 아니었다.

실제로 개인 교육소에서 대련을 시키는 건 잘 모르겠으니 시간이나 때워야겠다는 식이 많았다.

제대로 가르쳐줄 생각이 있으면 교육생의 문제점을 면밀히 파악한 후에 교정을 하지, 무작정 대련을 시키지 않았으니까.

뭐 어디까지나 교육소가 그렇다는 거고, 백한영과는 관계없는 얘기긴 했지만.

백한영이 말했다.

“피드백 보내놨으니 확인하고 계세요. 가장 앞번호부터 앞으로 나오세요. 차근차근 문제점을 고쳐 볼게요.”

“예?”

백한영의 말에 교육생들의 눈동자가 물음표로 바뀌었다.

뭘 보냈다고?

교육생들이 워치형PC를 작동시켜 자신의 메일을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무언가 와 있었다.

‘5번 교육생. 각성 능력 뇌영체. 주무기는 창. 평가:창 말고 다른 무기를 찾으세요. 교육생과 창은 햄버거와 마라 소스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추천하는 건 도입니다···?’

5번 교육생이 빠르게 다른 교육생에게 다가가 그 사람에게 온 메일을 살펴봤다.

자신에게 온 것이 그냥 휘갈겨 쓴 건지 진지한 피드백인지 구분이 안 됐기 때문이다.

‘나랑 아예 다른 내용이 적혀있네?’

7번 교육생에겐 발을 쓰는 게 갓난아기 수준이다, 라고 적힌 메일이 와있었다.

일단 복사 붙여 넣기가 아닌 건 확인이 됐는데.

그렇다고 이게 진지한 피드백이라는 생각은 안 드는 5번 교육생이었다.

리그식이라 꽤 많이 대련을 하긴 했지만, 그래봤자 20번 정도 대련을 한 게 다인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런 피드백이 가능하다는 게 믿기지 않는 것이다.

백한영은 혼란에 빠진 교육생들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정도야 낭인들 가르치는 일에 비하면 쉽지.’

교육생들의 경험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을 동시에 대련시키며 그들의 장점과 단점을 한 번에 파악하는 건 평범한 사람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 명만 붙들고 하루 종일 관찰해도 발견하지 못하는 게 장점과 단점인데, 스무 명을 동시에?

가능한 쪽이 이상했다.

이상했지만.

바꾸어 말하면 그건 평범하지 않고 이상한 백한영에겐 가능한 일이라는 소리였다.

‘쉽다 쉬워.’

백한영은 5번 교육생이 멍하니 앞으로 나오는 걸 확인하곤 말했다.

“창은 갖다 버리라니까요. 가서 훈련용 도나 가지고 오세요.”

*

손배성은 푸른 트레이닝복을 입은 자신의 교육생들을 가르치며 백한영을 흘긋 노려봤다.

‘저래서 근본도 알 수 없는 놈은 걸러야 되는데.’

무작정 대련부터 시키는 백한영을 보며 손배성은 속으로 혀를 찼다.

8년간 수많은 일을 겪으면 확립된 각성자 교육 커리큘럼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됐다.

첫째. 각성자의 능력을 파악한다.

둘째. 각성자의 마나량을 파악한다.

셋째. 각성자의 능력과 마나에 맞는 훈련 방식을 제시한다.

이게 보편적인 교육 방식이었고, 인정받은 교육 방식이었건만.

백머시기인가 하는 놈팽이는 듣도 보도 못한 놈답게 듣도 보도 못한 교육 방식을 사용했다.

‘아니. 들어보긴 했지. 지방의 자격증도 없는 싸구려 개인 교습소에서 저런 식으로 교육하니까.’

개개인의 능력도 파악하지 않고 무작정 시키는 대련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럴 바에는 그냥 샌드백이나 두들기는 게 더 훈련이 될 것이었다.

‘불쌍한 놈들. 쯧.’

하지만 덕분에 일이 잘 풀릴 거 같았다.

어떻게 망신을 줄까 고민했는데, 저거면 확실히 망신을 줄 수 있을 거 같았다.

손배성이 고개를 돌려 25번 교육생을 바라봤다.

우웅―!

25번 교육생의 손에서 빛이 회전했다.

손배성이 가르쳐준 대로 컨트롤 연습을 시작한 것이다.

마나를 빛으로 만드는 능력을 가진 25번 교육생은, 희귀한 능력을 각성한 각성자답게 가진바 실력도 출중했다.

홀로그램 몬스터를 최단 시간에 쓰러트리기도 했고, 검맥에 입단이 예정돼 있기도 했는데.

이걸 손배성은 이용할 생각이었다.

‘일단 백머시기의 교육 커리큘럼을 지적하는 거지. 거기서 순순히 고개를 숙이면 그거대로 좋고, 반박이 들어오면 교육생들끼리 대련을 시키는 거야. 자기가 가르친 교육생이 철저하게 박살 나면 망신 좀 당하겠지.’

검맥에 입단 예정인 25번 교육생은 어차피 검맥의 길드원인 손배성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걸 이용해 백한영을 철저하게 박살 낼 계획을 짜던 손배성은 재차 백한영을 흘겨봤다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대련부터 시키시네요?”

“다른 분들은 이렇게 안 하나 봐요?”

“대련을 아예 안 하는 건 아닌데···. 아무래도 충분히 교육을 시킨 후에나 하죠.”

“그래요? 하긴 보통 그러긴 하겠다.”

유지아와 대화를 하는 백한영을 보며 손배성은 주먹을 꽉쥐었다.

또야?

또 친한 척 유지아에게 말을 걸어?

손배성이 심호흡을 했다.

머리끝까지 차오르려는 분노를 다스릴 생각이었던 건데.

심호흡을 하다 말고 손배성이 눈을 부릅뜨며 속으로 외쳤다.

‘저 새끼가?’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유지아와 귓속말을 하는 백머시기를 확인한 손배성이 결국 참지 못하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손배성 씨? 무슨 일이에요?”

유지아가 말했다. 갑자기 손배성이 다가와 의아한 탓이었다.

“안녕하세요. 지아 씨.”

“아. 네.”

“별 건 아니고 백한영 씨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저요?”

백한영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저런 행동마저 가식처럼 느껴지는 손배성은 분노에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목을 잘 가다듬은 후 천천히 말했다.

“백한영 씨, 남을 가르쳐 본 경험은 얼마나 되죠?”

“어···. 꽤 많죠?”

“많다고요?”

유지아의 앞이라고 허세를 부리는 백한영을 향해 손배성이 속으로 비웃음을 터트렸다.

많기는 뭐가 많아. 아까 알아보니까 각성자 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더만.

그리고 경력을 보지 않아도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꼴만 봐도 초짜 중의 초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최대한 내리며 손배성이 입을 열었다.

“아. 경력이 많으시구나. 구체적으로 얼마나 되시죠?”

“그···건 자세히 말하긴 좀 그런데. 왜 그러시죠?”

“아뇨. 별 건 아니고. 아무래도 이 교육소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건 피하고 싶어서요.”

“어떤 불미스러운 일을 말씀하시는 거죠?”

백한영의 말에 손배성은 신사 같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자신의 말에 백한영이 반발했을 때 최대한 유리하게 판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말이다.

“나중에 그, 교육생들이 민원 같은 거라도 제기하면 정부에서 곤란해하지 않겠어요?”

“구체적으로 무슨 민원이요?”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든가, 이것저것 있잖아요.”

“음···.”

백한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겠는데, 그래서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라는 뜻이었다.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 못 알아들은 건지.

손배성은 그냥 직설적으로 말하기로 했다.

“그렇게 무식하게 대련만 시키면 효율이 안 나온다는 얘기였습니다.”

“아하. 그 얘기구나. 왜 그런 소리를 하시는지 이해는 되는데,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이 방면으로는 전문가라.”

“전문가라고요? 백한영 씨는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걸로 아는데, 제가 착각했나 보군요.”

“···그건 맞는데 전문가가 맞긴 합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말할 수 없어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는 백한영에게 손배성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교육소는 백한영 씨의 놀이터가 아닙니다. 백한영 씨의 행동에 의해 많은 각성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어요.”

“다들 만족하던데요.”

“심지어 전문가라고 거짓말까지 하시고. 그냥 솔직하게 조언을 구하면 모두 친절하게 알려줄 텐데, 왜 고집을 부리시죠?”

“전문가 맞는데···.”

작게 중얼거리는 백한영에게 손배성이 통보하듯 말했다.

“계속 그런 식으로 엉망진창으로 교육생을 가르치면 저도 가만히 못 있습니다. 정식으로 이의를 제시할 수밖에 없어요."

“엉망진창 아닌데요.”

손배성이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저 말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어쩔 수 없죠. 당신의 교육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알려주겠습니다.”

“어떻게요?”

“며칠 후에 각자 가르친 교육생 한 명을 내세워 대련을 시키죠. 백한영 씨가 옳다면 백한영 씨가 가르친 교육생이 이기지 않겠어요?”

“으으으으음.”

백한영은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요. 교육생에게 물어보고 괜찮다고 하면 할 게요.”

살짝 지루했는데 이벤트도 생기고 좋네.

백한영은 자신의 교육생과 손배성의 교육생을 살펴봤다.

손배성이 아까부터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질 거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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