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106화 (106/159)

106화

“위위경, 군기감에서 대장장이가 찾아왔사옵니다.”

“들라 하라.”

덜컹.

방문이 열리며 대장장이가 들어왔다.

그는 현수에게로 다가가 탁상 위에 철퇴와 원형 방패를 내려놓았다.

“위위경, 원형 방패와 말씀하신 철퇴이옵니다.”

현수는 먼저 원형 방패를 바라보았다.

팽배수들이 차고 다니는 원형 방패들과 차이가 없었다.

조금 차이가 있는 거라면 방패 테두리에 은 판박과 당초 무늬가 있다는 점이었다.

옆에는 팽배수의 방패처럼 귀면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현수는 원형 방패를 한번 들어 올려 보았다.

방패 안쪽에는 사슴 가죽으로 안쪽을 감싸져 있었다.

“가볍구먼… 팽배수들이 사용하는 방패와는 달리.”

“요즘 팽배수 방패들도 그렇게 나옵니다. 위위경.”

“어? 그래?”

“예, 위위경. 기존의 방패들은 매우 두껍고 무거웠지만, 지금의 원형 방패는 무게가 기존에 사용하던 방패의 절반도 아니 됩니다.”

대장장이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방패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번엔 비단 천 속에 들어있는 철퇴를 꺼내었다.

철퇴는 현수가 부탁했던 야구 배트 모양의 철퇴보다 훨씬 그럴 듯하게 완성되었다.

둥근 원통 모양에는 압정 돌기를 박아 넣었고, 방패와 비슷하게 당초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손잡이 부분에는 손을 보호할 수 있도록 막을 씌어 놓았다.

“잘 만들었네.”

“감사합니다. 위위경. 철퇴의 길이는 4자 반이며 무게는 10근 조금 넘게 나갑니다. 날붙이를 만나면 그 돌기 부분에 날붙이가 걸릴 것입니다.”

“고맙네. 정말 잘 만들었어. 그리고… 내 하나만 더 부탁하지.”

“예. 위위경.”

“봉 하나만 더 만들어 주게. 장병기로 쓸 거야.”

“장병기로 사용하실 거면 창이나 월도 종류를 쓰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만.”

“때리는 맛이 달라.”

“…예?”

현수가 씩 미소를 지었다.

오래전, 경대승이 준 철봉으로 현수는 열심히 수련하였다.

철봉을 쥔 채, 싸워도 보고 죽여도 보고 때려도 보았다.

그렇다 보니, 칼이나 검으로 베는 것보다 때리는 게 더 익숙해졌다.

더불어 군사들에게 소리쳐서 혼내기보다는 말을 안 들으면 검집으로 훈육을 하곤 했으니, 때리는 것에 맛이 들여버린 것이다.

“말 안 듣는 놈은 몽둥이가 약이라고 하잖나.”

“아…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위위경. 좋은 봉 하나를 만들어서 가져오겠습니다.”

“고맙네.”

대장장이는 허리를 숙이며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경번갑을 입은 정균, 천시호, 악정이 안으로 들어왔다.

“위위경, 말씀하신 대로 모든 준비를 마치었습니다.”

정균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산은 안 했나?”

“보문각 대제학과 국자박사가 학생들을 설득하고 해산시키려 하였지만, 해산하지 않았습니다. 위위경.”

천시호가 말하였다.

“흠… 해산을 안 했다고?”

“예. 위위경.”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철퇴를 내려놓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정돈된 경번갑 앞으로 다가갔다.

“다들 도와주겠나.”

“예. 위위경.”

악정과 천시호가 앞으로 나가며 경번갑을 들어 올리자, 현수는 오른팔을 먼저 집어넣고 왼팔마저 넣은 후, 스스로 경번갑 끈을 매듭 지었다.

“견룡군과 순검군은?”

“위위경의 명대로 경계 군사들 제외하고, 전원 집결해있습니다.”

천시호가 대답하였다.

“미련한 놈들… 큰 그림을 보지 못해. 멍청한 놈들이.”

“…….”

“…….”

현수가 탁상으로 가서는 방패를 왼손에 들고, 야구 배트 형태의 철퇴를 오른손으로 집었다.

“위위경.”

“응? 왜 그래?”

“못 보던 철퇴인 듯합니다.”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하였네. 왜, 문제 있는가?”

“아, 아닙니다.”

“설마… 그걸로 때려죽이시려는 거 아니지요?”

악정이 물었다.

“가서 보고.”

현수는 그렇게 말하며 위위시 밖으로 나갔다.

* * *

황성 남문에 주둔한 견룡, 순검의 팽배수가 철퇴, 도끼를 들고 집결해있었다.

모여 있던 군사들은 현수를 바라보자 군례를 올리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 죽어라 외쳐대는 학생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추웅!”

“가자!”

현수는 앞으로 먼저 나아가자, 수백의 군사들이 뒤를 따랐다.

끼이익.

황성 남문이 활짝 열리었다.

경번갑을 입고 왼손에는 방패, 오른손에는 철퇴를 꽉 쥐고 있는 현수를 본 학생들은 침을 꿀꺽 삼키었다.

저 철퇴로 뭘 하려 하는지 대충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팽배수! 앞으로!”

현수의 외침 한 번에 팽배수들이 즉각 자리를 잡았다.

둔기를 든 팽배수 사이로 단창(短槍)을 든 팽배수들이 투창 자세를 취하였다.

그 모습을 본 주위 사람들은 후다닥 자리를 피하였다.

겁을 주기 위한 장난이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뭉치면 용감하다더니…….”

정균이 혀를 찼다.

지금 이건 훈련이 아니라, 실전이었다.

진짜로 이 자리에서 모두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육위 대장군 전중감 위위경 유현수다! 전 학생들은 해산하라!”

“그렇게는 못 합니다!”

앞줄에 서 있는 학생들이 똘똘 뭉쳤다.

하지만 자신만만한 말투와는 다르게 대열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몇몇 학생은 뒤로 조심스럽게 물러나 도망가는 학생들도 있었다.

“위위경, 부디 위위경의 뜻을 철회해 주십시오!”

“철회해 주십시오!”

“공자의 말씀은 곧 하늘의 말과 같습니다!”

“X랄한다.”

현수는 작게 말하였다.

그러더니 현수는 학생 하나를 꼬집어 말하였다.

“자네가 한 번 대답해보게. 논어에서 ‘사람의 신체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것을 감히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라고 배웠지?”

“예? 예…….”

“그럼 장군들은 모두 불효자인가?”

“…예?”

학생은 뜬금없는 현수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신체는 부모에게서 받은 거라 손상시키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근데 장군들은 전쟁터에 나가서 다칠 뿐만 아니라, 자객들한테 살해 위협도 받거든. 결국 몸이 손상되었으니, 불효자인 건가?”

현수는 냉담한 얼굴로 말했다.

“그, 그게… 어…….”

“위위경, 그건 사람의 신체와 터럭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몸을 함부로 해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지키고, 국경을 지키는 데 있어서 어찌 손상이 안 되겠습니까. 당연히 손상되지요. 그걸 가지고 불효라 운운한다면 그놈은 죽어도 싼 놈입니다.”

현수의 말에 한 학생이 앞으로 나와 답했다.

“그럼 이 상황은 어떠냐. 몸이 몹시 아픈 상황인데 종기(腫氣)가 돋아서 약으로도 침으로도 치료할 수가 없다. 칼을 이용해야만 제거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건 어찌하겠나?”

“당연히 칼 들고 제거해야죠. 죽는다는데 어떤 놈이 가만히 있습니까?”

당당하게 질문에 답을 하는 학생이 마음에 들었는지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 내 옆으로 서.”

“…예?”

“서라고. 빨리.”

“아, 예…….”

학생은 현수의 말대로 옆으로 딱 섰다.

그제야 현수가 조용히 귓속말로 물었다.

“너 다른 사람한테 끌려 나온 거냐 아니면 그냥 나온 거냐?”

“…끌려 나왔습니다.”

“저런 X새끼들… 앞줄이지?”

“예? 예…….”

현수는 앞줄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지금부터 눈치 보지 말고 내 앞으로 집결해라. 집결하면 최소 정4품까지 내가 하사하겠다. 나오기 싫었는데 억지로 여기 끌려 나왔다 하는 놈들, 글 읽는 게 지겨워서 새로운 학문을 배우고 싶다 하는 놈들은 이 녀석 옆으로 서라.”

현수의 외침에 학생들은 침을 꿀꺽 삼키었다.

최소 정4품까지 보장한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 위로는 알아서 올라가라는 소리였다.

현수의 말귀를 바로 알아들은 자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당당하게 현수에게로 향하였다.

그게 한둘이 아니었다.

최소 수십여 명이었다.

“유학을 배우는 자가 감히 어떻게!”

“그만하지.”

한 학생이 현수에게로 향하였다.

“더러운 놈들… 공자와 맹자의 뜻을 배우는 자들의 기개(氣槪)가 이것밖에 안 된다는 말이냐! 어찌 더러운 천출(賤出)들과…….”

“야, 너 천출이라고 한 놈. 너 문하시랑평장사 앞에 가서 그 말 똑같이 할 수 있겠느냐?”

“…….”

대답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감히 이의민 앞에 가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이의민이 때려 죽어도 시원치 않아 할 것이 분명했다.

“공자, 맹자와 같이 훌륭한 사람들이 맞는 말 많이 했지. 근데 너희들… 공자가 무조건 이렇게 하라고 하면 할 거냐? 공자든 맹자든 시대에 맞게끔 해석하고 따라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현수는 앞줄에 있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 학생들은 공자와 맹자에게 미쳐있었다.

광신도처럼 말이다.

“‘서경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이 틀렸습니까? 신라가 왜 망했습니까. 절대 성현들의 말씀은 틀린 말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위위경께서 행하려고 하는 일들은 모반(謀叛)하는 행위입니다. 그렇게 되면 남자가 아닌, 여자도 관직에 앉고 노예도 관직에 앉을 수 있다는 말씀 아닙니까!”

“하…….”

현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놈들은 말로 해서 안 되는 놈들이었다.

“천한 노비가 관직에 오르면 신분 질서가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여인이 관직에 오르게 된다면 나라가 망할 것입니다!”

“…뭐?”

현수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후의 일을 예상한 듯, 현수의 뒤에서 악정이 눈을 질끈 감았다.

빠악!

현수는 철퇴를 들고 말대답하는 학생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려쳐 버렸다.

이에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더니, 학생은 털썩 고꾸라져 눈을 뜬 채 죽어버렸다.

“이런 정신 나간 놈들… 저 중국 땅에는 여장수 양홍옥이 있었고, 여황제 측천이 있었다. 또한 송나라에는 유명한 시인 이청조가 있었고, 저 고대국가 한나라에는 여치가 백성을 가엽게 생각하여 나라를 크게 일구었는데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네놈들이 말한 대로 여자가 나섰다고 해서 나라가 망하였느냐?!?”

“분명 나라가 기울었습니다.”

현수는 다시 한번 더 철퇴로 내려쳤다.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죽었다.

“여기 있는 놈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놈들이다! 모조리 죽여라!”

“예! 위위경!”

현수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군사들이 뛰어 들어와 학생들을 가차 없이 때려죽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던 학생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도저히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 * *

“뭐야? 다 때려죽여!?”

“예. 합하. 위위경이 앞으로 나오라고 한 자들은 살았지만… 끝내 나오지 않는 학생들은 모두 철퇴로 내려쳐 죽였다 하옵니다.”

“하… 참나!”

이의방은 미간을 찌푸렸다.

“합하, 위위경을 지금 이렇게 두어서는 아니 됩니다.”

“문 공의 말은 이해하였소이다. 내가 잘 이야기하겠소.”

“합하…….”

“알지, 알아요. 하지만, 그렇게 학생들을 쳐 죽인 연유는 내 직접 들어봐야겠소.”

“처음에는 학생들이 사직을 거론하며 나라가 망한다고 해서 처벌에 대해 별말은 하지 않았지만, 지금 이건 분명 선을 넘은 행위이옵니다.”

“알았네, 알았어.”

이의방은 똥 씹은 표정을 지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전에는 내가 승려를 죽였는데… 이제는 네놈이 학생을 때려죽이냐?”

이의방은 골치가 아픈지 손에 머리를 짚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