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107화 (107/159)

107화

“합하.”

“무슨 일이냐?”

“예부 상서 유응규가 뵙기를 청하옵니다.”

“어서 뫼시어라.”

덜컹.

방문이 열리며 유응규가 안으로 들어섰다.

“아, 유 공… 어쩐 일이요?”

“남송으로 사신을 보내는 일로 왔사옵니다.”

“아, 그렇지요.”

유응규는 이의방에게로 천천히 다가가 서첩을 이의방 상위에 올려 두었다.

“남송으로 보낼 물품입니다.”

이의방은 유응규에 말에 서첩을 펼쳐 살폈다.

[비단 200필, 청자 50점, 흑삼 100근, 진주 100개, 수달피 20장…….]

“이거 너무 많은 거 아닌가? 무슨 조공 바치러 가는 거 같은데.”

“하하, 아닙니다. 이것도 아주 많이 줄인 것입니다. 송나라와 외교 관계가 끊어진 지 오래이지 않사옵니까. 이 정도의 성의는 보여 줄 필요가 있다 보옵니다.”

“이제 금나라 조정에 사신 보낼 때도 적당히 합시다.”

“예.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합하, 하옵고… 사신으로 갈 사람이 위위경 유현수 맞습니까?”

“맞네. 자네도 알고 있잖나.”

“…….”

“신경 쓰이는 게 학생 때려죽인 것 때문인가?”

“아, 예…….”

“그건 내가 알아서 하겠네.”

“예. 합하. 그럼 그대로 준비하면 되겠사옵니까?”

“그래. 그렇게 하게. 아, 나가는 길에 서리 좀 불러주게.”

“예. 합하.”

유응규는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고는 밖으로 나갔고, 곧장 서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합하, 찾으셨사옵니까.”

“위위경을 들라 해라.”

“예. 합하.”

서리는 이의방의 명을 받고서는 곧장 밖으로 나갔다.

* * *

학생들 대부분을 때려죽인 현수는 위위시에서 현수의 부름에 앞으로 나왔던 학생들을 만나고 있었다.

학생들은 현수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였다.

하지만 그중에서 고민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천천히 생각해. 나는 아까도 약속했듯이 정4품까지 내가 관리할 것이니.”

“저는 위위경을 따르겠습니다.”

가장 먼저 나왔던 학생의 말에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혹시 위위경… 갑옷 좀 벗으시면 아니 됩니까?”

“왜?”

“피 묻은 갑옷 입고 계시니, 눈치가 보여서 그럽니다.”

“아, 그래… 그렇게 하지. 뭐.”

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끈을 풀고서 갑주를 벗었다.

갑주를 제자리에 걸치고는 자리에 다시 앉았다.

“되었나?”

“아, 예…….”

“그럼 너희들은 성균관이 완공되면 그리로 들어가는 거다.”

“예.”

“혹시나 내키지 않으면 지금 말해.”

쾅!

현수가 철퇴를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자, 학생들은 식겁하였다.

“아, 아닙니다… 위위경.”

“예. 완공되면 성균관으로 가야지요.”

“그래. 성균관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때가 되면 과거도 보는 거다. 그리고 공자 말, 맹자 말 좋아하면 그냥 쭉 읽어도 돼. 하지만 그대로 따를 필요 없다는 거야. 읽어보다가 조금만 생각을 뒤집어봐. 무슨 말인지 알겠어?”

“예. 위위경.”

현수의 말을 이해한 학생들은 고개를 숙이며 답하였다.

“그리고… 너희들 상투 자르는 거 어떻게 생각하냐?”

“예?!”

“상투를 자르다니요?!”

“상투 틀기 귀찮지 않나. 군에 들어오면 미리 상투를 자르는 걸로 하자고. 어차피 머리는 계속 자라나니까.”

“예…….”

“그리고 고민인 것이 있네. 전쟁으로 인해 죽은 군사들의 시신 처리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네. 너무 수가 많아서 말이지.”

현수의 질문에 학생들의 말문이 막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서지 않았다.

“화장(火葬)밖에 답이 없을 듯합니다.”

“근데 그럼 그 화장은 누가 관리합니까?”

“승군.”

“응?”

모든 이들이 한 사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윤관 장군께서 여진 정벌 나가실 때 거기에 속해 있던 승군이 있습니다. 묘청에 난 당시에도 승군이 있었으니, 승군을 모집하여 기본 훈련을 시키고 승군을 따로 모아 군사들의 화장을 주관하게 하는 게 어떻습니까?”

현수는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화장(火葬)하는 곳이 어디면 좋겠느냐?”

“국경이지요.”

“국경?”

“예.”

학생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지도 앞으로 가서는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 용주… 지금 말하면 용천이지요. 귀주, 화주 이렇게 세 군데에 설치하면 좋겠습니다.”

“전부 최다 북단이네?”

“예. 국경을 지키고 싸워야 하니까요. 일단 모든 것을 제대로 갖춘 화장터를 만들고, 그다음 차츰차츰 하나씩 늘려가도 될 거 같습니다.”

“남쪽에는?”

“당장 필요할까요?”

“그래. 그럼 너의 말대로 세 곳을 추진하자고. 다들 나가보고, 성균관 꼭 입학해서 배워라.”

현수는 학생들에게 다시 한번 더 해야 할 일을 상기시켜 주었다.

학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 사람씩 밖으로 나갔다.

“야! 그리고 너희 둘.”

“예?”

“이름이 뭐냐?”

“저는 이규보라 합니다.”

“그리고 저는 허홍재라 합니다.”

“어… 이규보… 어?! 이규보라고!?”

“예. 왜 그러십니까?”

“아니야… 하하, 가보게.”

두 사람은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위위경.”

학생들이 나가자, 곧 서리가 안으로 들어섰다.

“무슨 일이냐?”

“합하께서 찾으십니다.”

“알겠다. 곧 나가마.”

“예.”

현수는 급하게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던지더니, 새 관복으로 갈아입고는 중방으로 향하였다.

* * *

중방으로 들어온 현수는 이의방과 대면하였다.

“그래… 때려죽이니 속이 시원하더냐?”

“송구하옵니다. 합하. 하지만 필요한 일이었사옵니다.”

“뭐가 필요한데? 학생들 때려죽이는 게 필요한 일이더냐?”

“…합하도 승려 많이 죽이지 않았습니까.”

현수는 마치 비꼬는듯한 이의방의 말투에 신경질적으로 답하였다.

“야! 이씨!”

퍽!

이의방은 옆에 있던 벼루를 현수에게로 날려 버렸다.

마음만 먹었으면 현수는 정통으로 맞았을 거지만, 벼루는 아슬아슬하게 비켜 갔다.

일부러 현수에게 던지지 않은 것이다.

“너랑 나랑 같더냐?!”

“…송구합니다.”

“그래… 네가 하려고 하는 일 때문이겠지. 하지만 더 이상 학생들은 죽이지 말거라. 아무리 네 뜻에 반하는 일이라도 나와 같은 길을 걷지 마라. 난 아직도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거병했던 딱 그날로 돌아갔으면 싶다.”

“예. 합하.”

“네가 베라고 한 수급(首級)… 네가 직접 거두어라. 내가 거두면 네 위신만 손해가 갈 것이니.”

“예. 합하.”

“그리고 사신으로 갈 준비가 모두 끝났으니, 소식을 받거든 곧바로 떠나거라.”

“예. 합하.”

현수는 고개를 숙이었다.

“예. 합하. 하옵고…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해봐.”

“강동 용천, 귀주 동북 면에는 화장터를 만들까 하옵니다. 그곳을 승군을 모집하여 관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승군을 모집하면 석 달은 기본 훈련받게 하고 나머지는 용천, 귀주, 화주에서 근무케 하면 어떨까 하옵니다.”

“그리하거라.”

“더불어 상투에 관한 말씀이온데… 군에 들어오면 상투를 자르게 할까 하옵니다. 전장에 나가면 전사자들이 많으니, 다 옮기지도 못할 것이고… 화장하더라도 그 유해에 상투도 함께 가족의 품으로 보내면 가족들이 감사해할 것입니다.”

“상투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이야. 하지만 분명 반대하는 자가 나올 것인데…….”

“합하의 말씀이온데 반대하는 자가 얼마나 있겠사옵니까.”

“그렇긴 하지. 알겠다. 내가 공표하마.”

“감사하옵니다. 합하!”

현수가 기쁜 얼굴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세월 한번 빠르군. 저렇게 철없던 놈이 이제는 거리낌 없이 사람을 죽이고, 뜻을 세우려 하니… 하하하!”

이의방이 털털하게 웃으며 다른 장계를 짚어 살피어 보았다.

“야.”

“예. 위위경.”

“너 남대가 가서 목 회수해서 집으로 돌려보내라.”

“예. 알겠사옵니다. 위위경.”

부장은 곧장 현수의 명을 받고 남대가로 향하였다.

* * *

일주일 후.

수안 궁주와 연희궁주 왕씨가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래. 정주는 좋았습니까?”

“예. 벽란도도 다녀왔습니다.”

“벽란도까지요? 벽란도는 어떻던가요? 상업이 활발합니까?”

“예. 무척이나 활발합니다.”

“다음엔 위위경께서도 시간 나시면 저희와 함께 갔으면 좋겠습니다.”

“하하,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수는 두 공주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어서 밥 먹읍시다. 청국장이 구수하니 잘 되었습니다. 하하하.”

사골국에 무, 청국장을 넣고 팔팔 끓여서 버섯과 두부와 파로 마무리 지은 청국장의 냄새가 그윽하게 올라왔다.

“제가 한잔 올리겠습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부인.”

청자로 만든 술잔을 들어 올리자, 수안 궁주 왕씨가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현수는 술을 마시고 잔을 내려놓으려 하자, 이번에는 연희 궁주 왕씨가 이번에는 술병을 들었다.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내밀었다.

“이러다가 먹기도 전에 취하겠습니다.”

“취하시면 저희 둘이 모실 거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하하! 그것참 듣기만 해도 좋네요.”

현수는 크게 웃었다.

“위위경, 출발하시면 언제쯤 돌아오십니까?”

“남송이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옥화와 선화가 두 분을 잘 모실 거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필요한 게 있으면 최 집사에게 말하면 됩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신으로 가시면 언제 돌아오실지 모르니…….”

“별일 없을 겁니다. 나도 언제 돌아올지 모르겠습니다.”

“떠나실 때 옷가지랑 물품 좀 챙겨 놓았습니다. 갈아입으실 관복도 준비하였으니, 부디 잘 다녀오셔요.”

“고맙습니다. 부인.”

현수는 수안 궁주 왕씨를 안심시켰고, 두 공주와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 * *

이틀 후.

현수는 황궁으로 들어와 황제를 알현하였다.

안부 인사를 건네고, 태후전에 들러 황태후와 황태비에게 인사를 하였다.

그런데 낯선 여인이 태후전에 들러있었다.

그것도 9~10세의 여아를 데리고 있는 여인이었다.

“잘 다녀오게.”

“예. 태후 마마.”

“몸조심하고, 입에 맞지 않더라도 식사는 잘 챙기게.”

“예. 태비 마마.”

현수는 고개를 숙이었다.

“아, 그리고 위위경.”

“예. 태후 마마.”

“부탁이 있어 그런데…….”

“부탁이라니요. 하명(下命)하시옵소서.”

“혹… 여기 황태비의 조카를 어떻게 보시오?”

“…예?”

뜬금없이 옆에 있는 여인을 황태비의 조카라고 소개했다.

이에 현수는 어안이 벙벙한 듯,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하, 이 사람이 위위경을 당황스럽게 하였군요. 위위경,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남송에서 돌아오면 부디 황태비의 조카와 혼례를 올려 주시겠소?”

“예?!”

현수는 깜짝 놀랐다.

“태후 마마, 송구한 말씀이옵니다만… 곧 두 공주께서 해산하시는데 제가 어찌 혼례를 올리겠사옵니까.”

“내가 생각을 많이 하고 한 말이네. 혹시 황태비의 조카가 싫은 건가?”

“아니옵니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태후 마마, 이건 아니옵니다.”

태비의 말에 태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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