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대 고구려 외교(2)
151화 대 고구려 외교(2)
참으로 오랜만에 고정의의 눈동자가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정말 기분이 좋아서 발생한 일이었다.
그런데 나도 그랬다.
정말로 이 정도면 우주의 모든 기운이 고구려로 모인다고 여길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강이식이 참으로 절묘했소.”
그랬다. 강이식이 서해에서 수나라 사신단 소위를 만나서 기벌포로 데려간 사안의 일의 여파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물론, 그 전에 가볍게 정리할 부분이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나의 궁금증이었다.
“그나저나 강이식은 대체 왜 그랬다고 하오?”
이건 정말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적대국의 사신이 적대국으로 가는데 길 안내를 해준 것이니 말이다. 심지어 강이식이 소위를 만난 시기는 평양 도성에서 위계가 진행되던 때와 일치했기에 정보를 공유할 수도 없지 않은가.
나는 진심으로 강이식의 심리가 궁금했다.
“큭. 그게 참으로 강이식다웠소.”
“무슨 말이오? 서둘러 말해보시오.”
“바다는 고구려가 장악했다는 걸 수나라 사신단에게 보여주고자 했다고 하오.”
“······.”
“심지어 백제 기벌포에 직접 데려갔으니 위엄을 확실하게 보였다며 기뻐하였소이다.”
그러니까 수나라에게 우리의 힘을 과시한 것이다.
“수나라와 백제가 동맹을 체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고 하오?”
“오히려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했소.”
“이런.”
정말로 정치 공학을 아예 배제한 본능적인 이유였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고정의는 노래 부르듯 말을 계속 이어갔다.
“만일, 강이식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백제의 목리문차는 소위에게 은밀하게 접근했을 것이오. 그들에게 수나라와 동맹이라는 건 거절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러나 다시 기벌포에 나타난 강이식은 그의 말문을 막을 수밖에 없소.”
정치적 판단은 역사적 경험에 따를 수밖에 없다.
지금껏 북중국은 백제와 손을 잡고 고구려를 견제한 바가 없었다. 늘 말을 앞세웠을 뿐 실질적인 행동으로 돌입한 적이 아예 없었다. 오히려 고구려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러하니 결국, 목리문차는 한 발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강이식의 행동이 화룡점정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만일 소위가 목리문차와 대화를 나눴다면 본국의 내전을 확신했을 것이오. 하지만, 아니외다. 결과, 장손람과 소위의 말이 다를 것이오.”
수나라 황제 양견이 고구려의 내분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흐름이 확실하게 도출된다.
이때 수나라 조정의 의견이 나눠지는 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다. 이리된다면 우리가 더 제대로 준비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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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가한 대라편은 속이 시원했다. 그동안 무언가 꽉 막혔던 것이 시원하게 해결된 것이다.
“하하하! 대사. 지내는데 불편한 부분은 없으시오?”
격한 호의가 표출되자 의연은 환하게 웃었다.
‘모든 확인이 끝났구나.’
박고와 동흘까지는 확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는 의연 역시 정확하게 파악한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머지 사례들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었으니 대라편이 다른 생각을 할 수는 없다.
“가한께서 이토록 신경 써 주시는 데 어찌 문제가 있겠습니까.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편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하하하! 참으로 다행이외다. 그나저나 내가 긴히 상의할 일이 있소.”
“소승은 가한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순간만을 기다렸습니다. 바야흐로 때가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의연의 넉살은 듣는 귀를 즐겁게 했다. 그래서인지 대라편은 시종일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고구려가 북평을 점령했소. 하면, 대카간과 일전을 치르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소만.”
“가한. 어차피 대카간의 몰락은 확정적입니다. 중요한 건 결국, 수나라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후일 가한께서 돌궐을 장악하신다면 응당 대군을 이끌고 수나라를 벌하실 건데 우리 고구려가 그들의 기선을 제압했으니 어찌 일이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음.”
“무엇보다 본국의 공세로 위기에 처한 수나라는 준비한 수량보다 더 많은 세폐를 가한께 바칠 것입니다. 이는 그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아파가한과 수나라의 동행도 정세에서 비롯한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했다. 누구라도 힘이 가지게 되면 곧장 공격을 감행할 것이니 말이다.
이럴 때 고구려가 수나라를 격퇴한다는 건 아파가한에게 이로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한 가지를 더 확인하겠소.”
“무엇입니까.”
“고구려는 무엇을 원하오?”
“본국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렇소? 한데, 고구려의 자력으로 능히 할 수 있는 일이오. 이미 이뤄지기도 했소. 한데, 나와 손을 잡으려는 이유가 잘 이해가 가지 않소.”
예리한 물음이었다.
의연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본국은 일시적인 정벌이나 약탈이 아니라 북평을 확고부동한 고구려의 영토로 삼고자 합니다. 일 년, 십 년이 아닌 백 년의 대계를 수립한 것이지요. 이리하자면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수나라를 이대로 두면 끝없이 공세를 펼칠 것이니 어찌 우려하지 않겠습니까.”
“음. 내가 수나라의 심장부를 타격하길 바라오?”
“어찌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이런. 내가 아주 큰 일을 해야 하는 것이었구려.”
“공동의 적이 있으니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심지어 하나가 아니라 둘입니다.”
대라편은 입꼬리를 올리면서 말했다.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이오. 한데, 고구려가 힘을 보태는 것이니 마다할 이유는 없겠지요.”
“그저 감읍할 따름입니다.”
외교는 성공적이었다.
의연은 너무나도 기뻤다.
남은 건 구체적인 행동이었다.
이 또한 시간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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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의 진나라는 마지막 부흥의 불씨가 꺼졌다. 머지않아 대군을 출병하면 단번에 제압할 수 있다. 늘 근심이었던 돌궐은 분열이 시작됐다. 천하의 정세가 모두 이러한데 오직 동방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들은 지금껏 모든 부분에서 통제를 벗어나고 있었다. 오랜 세월 축적한 경험과 기록을 모조리 치워버리고 있었다. 결과, 현재로는 가장 큰 위협으로 부각됐다.
그들이 감히 북평을 점령했기에 대군을 출병시켰다. 한데, 이리해도 문제가 남았다.
고구려를 다녀온 장손람과 백제 외교를 수행한 소위의 말이 아예 달랐다.
“폐하. 고구려는 내전에 휩싸였사옵니다.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기회라고 할 수 있사옵니다.”
“아니옵니다. 폐하. 고구려는 철저하게 본국을 조롱하는 것이옵니다. 믿어서는 아니 되옵니다.”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는 없었다.
아무리 양견이라고 할지라도 이 문제를 명확하게 정리할 수가 없었다.
황제의 침묵은 장손람과 소위의 언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고구려 수군이 공의 목숨을 살려줬소. 왜인지 아시오? 고구려의 수군은 평양계가 통제하기 때문이외다. 나와 대계를 논의한 이들이 바로 평양계 귀족이오. 북평을 점령하고 왕도에서 거병한 건 국내계라는 말이오.”
“강이식은 내게 아무런 언질도 없었소. 이건 그들의 움직임이 체계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는 걸 의미하오.”
“억지가 참으로 과하오. 하면, 고구려 수군이 백제 사신단의 일을 수행하는 공을 살려둘 이유가 있소? 강이식이 황제 폐하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공을 살려뒀다고 하기에는 북평의 점령을 설명할 수가 없소.”
두 사람의 논쟁은 장손람이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었다. 소위가 강이식의 행동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기에 발생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소위는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만일 그렇다면 고구려는 왜 우리와 백제가 손을 잡는 걸 방치한다는 말이오? 아무리 평양계가 공에게 은밀한 제안을 했다고 할지라도 남쪽의 안정을 그들 역시 원하는 게 아니오?”
“허.”
장손람은 헛웃음을 지었다. 심지어 낮게 한숨까지 쉬었기에 소위의 안색이 다소 굳어졌다.
“강이식은 일개 무장에 불과하오. 그가 현장에서 그토록 고도의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여기시오?”
“······.”
“또한, 강이식은 본국과의 동맹 그리고 내전의 해결. 이 명제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위치가 아니겠소? 물론, 그의 행동을 두고 고구려의 왕도에서 어떤 평가를 할지는 알 수 없소. 어쩌면 크게 문책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오. 한데, 어차피 좋은 결과가 도출된 것이 아니오?”
“그게 무슨 말이오?”
장손람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우리는 고구려의 내분을 이용하여 요동까지 도모할 수가 있게 되었소. 이때 백제가 북진한다면 고구려의 몰락은 기정사실이 되오. 우리가 고구려 평양계를 진심으로 지원할 이유는 없으니 말이오.”
가장 정확한 원칙이었다.
고구려의 내분은 그들의 일에 불과하다. 수나라는 빈틈을 찾아서 국익을 도모하면 될 일이었다.
“나는 공이 어째서 이토록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지 이해할 수가 없소.”
장손람이 확고부동한 방향을 제시하자 소위는 말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의견이 모두 일리가 있소.”
양견이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자고로 황제는 신하의 의견을 듣고 정확하게 판단을 내려야 했다. 특히 혼탁함이 가득한 난세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모든 방향은 결국 고구려를 벌하는 것이외다. 진나라를 도모하는 것이 순서이지만, 고구려의 오만함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소.”
어차피 지금의 진나라는 아무런 위협이 될 수 없는 존재였다. 국경의 병력을 모두 대고구려 전선에 투입해도 그들은 움직임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진나라 황제는 무능력했다.
“하늘이 우리 수나라를 버리지 않으셨기에 고구려의 내분을 일으킨 것이오. 하면, 아군은 단번에 저들을 도모하는 게 옳소. 단지 순서가 바뀔 뿐이외다.”
결국, 현재 가장 중요한 건 현실적인 위협을 해결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진나라 점령이 우선순위였다고 할지라도 만리장성을 무용지물로 만든 고구려를 방치할 수는 없다. 확실하게 제압해야 한다.
“고구려의 평양계와 은밀하게 연계한다면 요동까지 도모할 수 있는 정세가 분명하오.”
“그러하옵니다. 폐하. 신이 그들과 연락을 취할 수 있사옵니다.”
“공을 믿겠소.”
장손람은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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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명을 확인한 이연은 낮게 숨을 내쉬었다. 표정도 복잡했다.
‘서서히 북상하되 교전은 피하라?’
사실상 장손람의 의견에 힘을 실어준 황명이었다. 이연으로서도 나쁜 건 아니었다. 큰 싸움을 펼치지 않고 적을 궤멸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내가 저들과 다시 만날 수 있소.”
장손람이었다.
승리가 확정적인 전쟁에서 과실을 나누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을 독차지하겠다? 어림도 없다.’
물론, 황명은 장손람의 판단에 따라서 대군을 진군시키라고 한다. 사실상 군권이 넘어간 것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의 외교적 판단을 따르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