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대 고구려 외교(1)
150화 대 고구려 외교(1)
아파가한 대라편의 표정은 괴이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또한, 눈동자에는 참으로 다양한 감정이 담겨 있었는데, 불편함이 가장 도드라지게 나타났다.
“고구려의 밀사가 나를 찾아왔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군.”
“송구합니다. 더 빨리 찾아왔어야 하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쉽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관세음보살께서 쉽사리 길을 내주시지 않으셨기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천연덕스러운 의연의 답변에 대라편의 표정이 점차 굳어졌다. 눈동자에는 묘한 살기까지 담기기 시작했다.
“분명히 말하지.”
“이르시지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행동은 너의 수급을 수나라에 보내는 것이다.”
“······오해가 있으신 거 같습니다.”
“오해라. 큭. 고구려의 승려가 대카간의 신뢰를 받았다는 말을 들었지. 그런데 말이야. 오늘 그 승려가 내 앞에 나타났어. 여기에 오해가 있나?”
“그 부분은 오해가 없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수나라와 고구려가 적대관계라는 사실이지. 때마침 나도 고구려라는 나라를 신뢰할 수 없으니 이보다 좋은 일은 없지. 안 그런가?”
당장이라도 칼을 뽑을 것만 같은 기세였기에 의연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온몸이 경직될 정도로 상황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개죽음이나 당할 뿐이다.
“소승에게 해명의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고흘은 고구려 최고의 무장이지. 한데, 그가 돼지 떼를 대카간에게 넘겼다. 내가 이를 어찌 생각해야 하나?”
“그 또한 오해가 있습니다.”
의연은 상황이 최악이라는 걸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 아파가한이 어찌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수나라와 손을 잡은 이후에는 모든 그에 맞춰서 결정 내리고 있을 것이다.’
반론이 나올지라도 이미 모든 사고의 방향이 친수나라로 귀결될 것이다.
차분해져야 했다.
말을 아끼는 걸 넘어서 말실수 한 번이면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위기였다.
‘유학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왕고덕은 자신을 잊었을지도 모른다.
“약조대로 했는데 왜 이러시는지 알 수 없군요. 그리고 밀약은 파가한께서 파기했는데 말입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듣고 있어야 하지? 그리고 네 말대로 어차피 난 수나라와 손을 잡았는데 말이야.”
“그래서 하는 말이지요. 먼저 신뢰를 어긴 건 아파가한이십니다.”
“안 되겠다. 그냥 죽어라.”
“지근찰과 이계찰의 불화가 대카간의 몰락을 유도할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대라편의 손이 칼을 향해 움직일 때 의외의 말이 들렸다. 그의 손이 멈췄다.
“밀약의 본질은 아파가한께서 돌궐의 주인으로 등극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본국은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무슨 말이지?”
“이런. 아직 듣지 못하셨습니까. 소승이 그들의 내부에서 최선을 다하여 그들을 이간질했습니다. 그리고······.”
의연은 격하게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자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대라편의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박고와 동흘라의 거병을 유도한 것도 본국입니다.”
“뭐라······?”
“본국이 처라후에게 쌀 5만 석을 지원했지요. 한데, 군량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유도한 것도 소승이지요.”
“······.”
“어떻습니까? 이런데도 본국이 신뢰를 버렸다고 하실 겁니까?”
대라편의 손은 어느새 칼의 손잡이와 거리를 뒀다. 그만큼 의연의 말이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수나라가 세폐를 바친다지요?”
현재 가장 큰 문제가 언급됐다.
정확하게 ‘세폐’라고 지칭하면서 말이다.
“잘된 일입니다. 대카간을 제압할 물자를 수나라가 지원하는 꼴이니 말입니다.”
“이런.”
대라편의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과연 고구려의 배포는 남다르오.”
순식간에 태도가 바뀌었다.
“하하하. 동맹국이 강성해지는데 어찌 시기하겠습니까.”
“하하하. 과연 그렇소. 참으로 옳은 말이오.”
이쯤에서 확실히 할 게 있었다.
“아. 진위를 확인하셔야겠지요. 그동안 구금하십시오. 소승은 아무 저항도 없이 절차를 따를 것입니다.”
“허. 동맹국의 사신을 어찌 박대하겠소. 융숭하게 대접할 것이외다.”
말과는 다르게 철저한 확인 작업을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의연은 오직 진실만을 언급했기에 탈이 날 수는 없었다.
-----
감금 생활은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았다. 물론, 정말로 감금된 건 아니지만, 외부로 나갈 수 없으니까 무조건 감금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사랑채로 들어오는 연자유를 쳐다보며 안타까움을 가득 담은 두 음절을 외쳤다.
또, 크게 탄식하며 말을 이었다.
“결국, 자네도 잡혀 오고 말았나? 허. 고구려의 운명이 벼랑 끝에 서게 되었군.”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믿었던 자네가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허무하게 잡혀 왔기에 역모가 성공하게 되었네. 그래서 개탄스러울 뿐일세.”
“그런 걸로 하시지요.”
연자유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더니 고개까지 저었다. 정말이지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이 분명했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나저나 자네는 왜 여기에 있나? 자네 집은 어쩌고?”
“······당분간 갇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한곳에 모여 있어야 논의라도 하지요.”
“이런. 내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네.”
“평소 고민을 제대로 하십시오.”
수나라 사신을 속일 때 연자유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했기에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물론, 입가를 가지 채운 미소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자네가 여기에 왔다는 건 아직 백제 놈들이 도성에 남아 있다는 걸 의미하겠군.”
“고 대인께서 따로 생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백제인과 접선하는 건 목리문차와 밀약을 체결한 고정의의 일이었다. 볼을 살짝 긁적이면서 말했다.
“간단한 일인데 복잡하게 흘러가나 보군.”
“일국의 분열을 일으키는 일입니다. 어찌 가볍게 이뤄지겠습니까. 이 일은 고 대인이 알아서 잘 처리할 겁니다. 그나저나 수군이 당도했습니다.”
“음. 그가 갑자기?”
“백제를 타격한 뒤 보급하러 잠시 들렸습니다. 한데,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주더군요.”
“서둘러 말하게.”
“백제로 가는 수나라 사신단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정말로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
이연의 눈이 가늘어졌다. 대군을 이끌고 기주에 이르렀을 때 고구려 외교를 수행한 장손람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고구려에서 내전이 일어났다는 말이오?”
“그렇소. 나 역시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소. 고구려 수군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여기에 오지도 못했소.”
“허.”
이어지는 그의 말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고구려 내부에서 수나라와의 관계를 두고 혈전이 펼쳐졌다고 하지 않은가.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믿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직접 경험한 사실이니 말이다.
“본국과 대전을 앞두고 내전이나 일으키다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구려. 그러나 바꿔 말해서 아군으로서는 좋은 일이외다.”
“그렇지요. 한데, 잠시 진군을 멈춰주실 수는 없겠소?”
“그게 또 무슨 말이오?”
“평양계 귀족과 밀약을 체결했소. 그러니까······.”
어차피 내분이 일어난 고구려였다. 이대로 진군하여 싸워도 승산은 충분했다. 하지만, 저들과 체결한 밀약은 황제의 귀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즉, 무혈로 적을 격퇴할 수 있는데 굳이 무리하면 책임론이 휘말릴 수가 있었다.
또한, 만에 하나 무리하여 싸웠다가 패배하기라도 한다면 정치적 타격이 상당할 것이다.
‘그래. 괜한 분란에 휩싸일 필요는 없겠지.’
이연은 어렵지 않게 결론을 내렸다.
물론, 피해 갈 상황은 만들어둬야 했다.
“오래 기다릴 수는 없소. 아무리 군권을 부여받았다고 할지라도 내가 받은 황명은 어디까지 북평의 수복이니 말이외다.”
“물론이오. 내가 꼭 황명을 얻어낼 것이오.”
-----
이연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너무 황당해서 짜증이 솟구칠 정도였다.
물론, 상대가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소위였기에 섣불리 감정을 표출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백제로 가는 우리 사신단이 고구려의 수군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는 것이오?”
“그렇소.”
“한데, 어찌 무사하오?”
이연의 본질적인 물음에 소위는 숨이 턱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자신 역시 이 문제를 정확하게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이런 개인적인 부분이 아니었다.
“고구려가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는 알 수 없소.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북평을 수복해야 한다는 사실이외다.”
대 백제 외교를 끝내고 귀국한 뒤 고구려군의 남하 소식을 듣고 대경실색했다.
아예 생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고구려 수군은 우리가 귀국할 때도 마주쳤소. 한데, 아무런 공격을 하지 않았소.”
“그래서 내가 의아한 것이오. 북평을 점령한 고구려가 배후에 있는 백제와 본국의 외교를 바라만 봤다는 걸 의미하오. 이게 말이 되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가져야 할 의문점은 그게 아니외다. 저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오. 이 복잡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서둘러 북평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오.”
탄탄한 논리를 갖추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모호할 때는 아예 잘라버리는 게 현명할 수도 있었다. 더욱이 소위처럼 판단력이 명쾌한 사람의 의견이라면 더 그렇긴 했다.
그러나
“고구려를 다녀온 사신단의 의견은 달랐소.”
너무나도 명확한 반례가 존재했다.
게다가
‘굳이 내가 위험을 자초할 이유는 없다.’
지금은 장손람의 의견을 따르는 게 현명했다. 그는 명확한 근거가 있으나 소위의 말은 추론에 따른 것이니 말이다.
“아니외다. 그건 말이 안 되오. 만일, 정말 내전이 발생했다면 사신단이 무사할 수가 없소. 아니, 애초에 본국과 대전을 앞둔 상황에서 내부 분열을 일으킬 정도로 우매한 나라가 아니오.”
“······.”
“잊으셨소? 고구려는 외부의 위협이 있을 때는 절대로 내부에서 다투지 않소. 그것이 고구려가 천년을 지탱한 이유였소.”
“무슨 말인지 잘 알겠소. 한데, 공이 나라면 섣불리 진군할 수가 있소?”
이연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공의 말대로요. 지금 곧장 북진하면 고구려가 내전을 멈출 것이오. 그러나 때를 맞춰서 공세를 펼치면 북평은 물론이거니와 요동까지 도모할 수도 있소.”
“그건 가정이 틀렸다고 몇 번을 말하오!”
“허.”
이연의 미간이 와락 찌푸려졌다.
그의 표정에는 불쾌함이 가득했다.
“이보시오. 군권을 위임받은 건 공이 아니라 나요. 내 판단을 뒤엎고 싶다면 황명을 받아오시오.”
“그, 그런······.”
“또한, 나를 설득이라도 하고 싶으면 근거를 가져오시오. 지금 내 귀에 공은 고구려 외교의 성과를 폄훼하려는 것으로만 보이니 말이외다.”
“······.”
이연의 단호한 태도에 소위의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지금 할 수 있는 최대한 빨리 황제를 알현하는 것이었다. 이러고 있을 시간도 아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