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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농사도 잘함-121화 (121/199)

121화 투자 설명회(2)

121화 투자 설명회(2)

팽팽한 긴장감이 안학궁을 지배했다. 특히, 고양성의 안색은 평소보다 더 굳은 상태였다. 잘게 입술을 깨물던 그는 숨을 크게 내쉬며 주변을 살폈다.

“······.”

그리고 그의 눈동자에는

“······.”

“······.”

“······.”

고정의, 연자유, 고식 그리고 평강공주 등 고구려를 이끌어가는 핵심 인사들의 굳은 표정이 한 번에 담겼다.

이들 중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오늘의 결과에 따라서 고구려의 역량이 전과 달라질 것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중차대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났으나 여전히 결과를 알 수 없었다. 결국, 참지 못한 연자유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폐하. 마냥 기다릴 일이 아니옵니다. 더 공세적으로 추진해야 할 일이 아니옵니까. 하옵고······.”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양성은 단호하게 오른손을 들며 막았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는 침묵을 유지하라는 군왕의 강력한 의지였기에 연자유도 더 나설 수는 없었다.

다시 시작된 침묵.

숨소리가 귀를 때릴 정도의 무거운 침묵.

그리고

“폐하!”

천둥보다 거대하게 들리는 외침.

일제히 시선이 쏠렸다.

흥분한 기색의 이문진이 모습을 보였다.

이 순간 모두가 그만 바라봤다.

아니, 이어질 그의 말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1차 투자회가 성공했사옵니다!”

이문진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오오오!”

“오오오오!”

“오오오오!”

“오오오오!”

“오오오오!”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어찌나 기뻤던지 양손을 세게 마주치거나 힘을 꽉 주며 주먹을 쥐기도 했다.

“폐하! 감축드리옵니다!”

“하하하! 내가 한 게 뭐가 있겠소이까! 그저 수저만 올렸을 뿐이외다.”

“그게 전부가 아니겠사옵니까!”

진심 가득한 기쁨이 환하게 넘실거렸다.

“폐하. 1차 투자회의 성공으로 기대되는 성과가 실로 엄청나옵니다. 어찌 기쁘지 않겠사옵니까.”

“하하하!”

그때였다.

“아직 다 끝난 게 아니니 모두 진정하시지요.”

냉정한 목소리가 찬물을 끼얹었다.

그 즉시 모두 웃음을 싹 거두며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당연히 평강공주였다.

“고작 1차 투자회의 성공만을 바라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지 않사옵니까. 폐하께서도 자중하시옵소서.”

“험험. 네 말이 옳다.”

고양성은 민망하여 천장만 쳐다봤다.

다른 이들은 먼 산을 찾았다.

평강공주는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2차 투자 설명회의 결과에 따라서 고구려는 밤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천하에서 유일하게 태양을 1년 내내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모두 일희일비하지 말고 이를 지켜보시지요.”

맞는 말이었다.

모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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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나무 투자 설명회를 성공적으로 끝낸 나는 적당하게 휴식을 취했다. 하도 고함을 질렀기에 목이 칼칼해서 찬물을 몇 그릇이나 들이켰다.

피곤해서 쉬고 싶었으나 명강사로서 어찌 그리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고된 몸을 이끌고 2차 설명회를 준비된 강의실로 이동했다.

아니나 다를까 1차 설명회에서 본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닥나무 투자에 재정적 압박을 느낀 귀족들이었다.

이는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사정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크게 한탄하며 그들을 바라봤다.

“내가 아니면 누가 자네들을 이해하겠는가.”

“휴. 정말 좋은 방책이었으나 소인들의 재력으로는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곳에서는 괜찮은 성과를 낼 겁니다.”

“암! 나를 믿게! 내가 자네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네!”

나는 호언장담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1차 투자에 부담을 느낀 귀족들과 1차 투자 내용을 말로만 들었을 귀족까지 모두 기대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고개까지 끄덕이며 본격적으로 설명회를 시작했다.

“지금껏 우리는 비계살이 잔뜩 붙은 돼지껍질을 구했네. 그 뒤에 어찌했던가. 눈을 부라리며 쇠솥을 빡빡 소리 나게 문지른 뒤 비계를 볶아서 돼지의 지고(동물성 기름)를 취했네.”

“그렇지요. 그 정도는 소인들도 압니다.”

이 시절 기름은 주로 돼지기름을 자주 사용했다. 소의 병을 치료할 때나 말의 종기를 치료할 때도 효과가 있었다. 이 시절 기름이라는 건 단지 식용의 영역만은 아니었다.

“한데, 언제까지 이리해야 하나? 나는 우리 고구려가 새로운 방법을 가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네.”

“허. 돼지의 지고를 더 간편하게 확보할 방법이 있다는 겁니까.”

“하하하! 어찌 고작 그 정도로 자네들을 이렇게 불러 투자 설명회를 개최할 수 있겠는가. 내가 그렇게 경우가 없지는 않네.”

“오! 믿고 있었습니다.”

“하하하!”

나는 호탕하게 웃으며 투자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유려하게 손을 움직이며 말했다.

“고유일세.”

“······.”

아이템을 꺼냈으나 반응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기에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고유는

“작물에서 구할 수 있네.”

식물성 기름이었다.

“예······?”

“작물에서요?”

“가축이 아니라 작물이라고 하셨습니까?”

상당한 소란이 발생했다. 특히 당혹감이 가장 거대한 감정이었다. 너무나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시절 기름은 동물성 기름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동물성 기름과 식물성 기름의 가장 큰 차이는 실온에서 동물성 기름은 고체, 식물성 기름은 액체로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됐고. 자고로 기름이라는 건 인간의 역사를 새로운 길로 인도한 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를 기존의 동물성 기름에서 식물성 기름까지 이끈다는 건 천지개벽이나 다름이 없다.

“대인께서는 이 분위기를 해결할 책임이 있으십니다.”

“잘 듣게. 마자, 임유, 순무(만청)을 활용하면 되는 걸세.”

“음. 흔히 사용하는 구황작물로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 작물들을 이제 유료작물이라고 부를 것이네.”

제민요술과 사시찬요에 의하면 전한 시대, 서역에서 유료작물이 유입됐다. 제민요술이 당대의 농법서라는 걸 고려할 때 아직은 식물성 기름이 대중화된 건 아니라고 추론할 수 있었다.

“지렛대와 쐐기 틀로 착유할 수 있네. 원리는 압착일세.”

“질이 제법 괜찮습니까?”

“음. 어쩔 수 없이 불순물이 제법 있을 것일세. 하지만, 식용이나 조명 따위로 사용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네.”

“일단 조명에 관심이 가는군요. 대인. 우리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자격이 있습니다.”

“암. 그래야지”

본격적으로 신기술을 설명할 때가 됐기에 나의 최고조로 흥분했다. 투자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물론!”

오른손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며 단호하게 말했다.

“동물로부터 취할 수 있는 것보다는 부족함이 있을 수가 있을 것이네. 그러나 새로운 착유의 길을 개척한다는 건 고구려의 밤을 제압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일세! 우리는 바로 이 부분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네.”

문명이 발전하면 밤의 시간을 줄어들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척도가 아니겠는가.

이미 고구려는 단기간에 농업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부들 줄기로 초를 만들 수 있네.”

“허.”

“이미 다 자란 부들을 수확하여, 송진을 가진 소나무 가지를 가늘게 잘라 심지를 만들게.”

“오. 계속해주십시오!”

“이후 소와 양의 기름을 녹여 부들 안에 채우는 걸세!”

“오오!”

“그 직후 밀랍을 녹여 감싸서 초를 만들 수 있네.”

중국에서는 이미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식물성 기름이 제대로 보급되지 못한 고구려에서는 혁신 그 자체였다.

식물성 기름의 위력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했다. 그러나 지속하여 강조한 것처럼 그 모든 건 하나로 귀결된다. 더 많은 기름의 생산.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상상해보았네.”

문명의 척도, 사람의 불 그것은 바로 기름이다. 나는 투자자들을 한눈에 담으며 말했다.

“잎은 수레 30대분, 뿌리는 200대분을 확보할 수 있는 1경의 순무밭.”

주먹을 꽉 쥐었다.

“속살은 돼지에게 먹일 수 있고, 씨는 조명의 기름이 되는 박을 28,800개 확보할 수 있는 10무의 밭.”

손을 뻗으며 모두에게 말했다.

“유료작물의 밭이 가득한 고구려의 밤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늘 상상해보았네.”

다시 말했다.

“오늘의 고구려는 이를 취할 자격과 능력이 있네.”

바로

“바로 자네들이 투자하기에 그러한 것일세.”

이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오오!”

“오오오!”

“오오오!”

“오오오!”

투자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일제히 일어섰다.

그리고

“투자하겠습니다!”

“놓칠 수 없습니다!”

“문서를 주십시오!”

투자 설명회는 대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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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었다.

모든 시선이 내게 집중됐다.

안다.

저들의 눈빛에 담긴 뜨거운 열의를.

변화에 대한 강렬한 갈망을.

혹자가 그랬다.

누군가에게 의미를 전달할 때는 때로는 말보다 정확한 게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그저 미소지었다.

그 순간

“드디어 고구려의 농업이 확실하게 변화를 추동하는 단계에 이르렀사옵니다.”

흥분한 평강공주의 목소리가 안학궁을 흔들었다. 늘 침착했던 그녀의 모습은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세상이 열릴 것이니 어찌 기쁘지 않겠사옵니까.”

또한, 이는 참으로 의미가 깊은 장면이었다.

그리니까 더는 눈치 보지 않고 기뻐해도 된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하하하! 공주의 말이 참으로 지당하다.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마음껏 기뻐해도 탈이 없는 날이로다!”

아니나 다를까 고양성을 필두로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기쁨을 만끽했다.

뜨거웠다.

실로 열광과 환희가 가득한 순간이었다.

“폐하. 닥나무와 유료 작물이 고구려의 땅에 가득할 때 이뤄질 변화는 상상도 할 수 없사옵니다.”

“하하하! 내가 어찌 모르겠느냐!”

부녀의 말을 들은 나는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어찌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오. 막리지. 이 정도라고 하셨소? 하면, 기대할 게 있다는 말이오?”

“물론이옵니다. 투자 설명회의 내용은 아주 단편적인 것에 불과하옵니다.”

단적으로 유료작물이 대대적으로 보급된다면 의복, 의술, 사육 등 고구려의 저변이 아예 확 바뀔 수밖에 없었다. 기름이라는 건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기름을 확보할 수 있는 유료작물의 다수가 구황작물이라는 건 불시에 진행될 수 있는 기근까지 대비할 것이니 참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감을 가득 담아서 말했다.

“기름은 약제나 치료제로도 사용할 수 있사옵니다. 특히, 사람이 아닌 가축까지 고칠 수 있으니 어찌 놀랍지 않겠사옵니까.”

그랬다.

기름 아니, 농업. 그것은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산업이었다.

놀라움이 가득한 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농업부가 이를 확실하게 진행할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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