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투자 설명회(1)
120화 투자 설명회(1)
농업이란 무엇인가.
아주 쉽게 정의 내리면 작물을 수확하여 인간의 식생활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농업을 발전시킨다는 건 결국, 생산력을 확충한다는 것과 의미가 같다.
지금껏 모두 이런 방향으로 농업을 바라봤다.
그러나 농업은 단지 먹고 사는 것만이 아니다. 일국의 문화력과 직결했다. 직설적으로 정리할 때 종이, 기름, 화장품, 치료제 등 생존보다 더 고차원적인 문화 현상을 주도하는 것이 바로 농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생존 이상의 것이었기에 평범한 백성이 주도하거나 향유할 수는 없었다. 이는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을 갖춘 위정자의 ‘특권’이었다. 즉, 귀족 문화의 핵심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더욱이 이런 요소는 나라의 내재적인 역량을 강화하고 결국, 더 나아가서는 더 시간이 지나면 백성이 향유하는 기층문화까지 확장하는 것이었기에 실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말이 길었다.
일단 단기적인 목표는 고구려 귀족 문화를 더 풍요롭게 아니, 당대 최고 수준으로 귀결시키는 것이다. 확장은 그 뒤에 고민할 부분이다.
한데, 문화라는 건 원래 사회의 모든 요소가 결합하여 가장 늦게,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다. 이를 개인이 어찌 추동할 수 있다는 건 그 자체가 오만이었다.
그러면 어쩌자는 것인가.
바로 그들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 정도는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찌해야겠는가. 뛰어놀 이들이 놀이터 건축 비용은 직접 부담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오늘 진행되는 집현전 완공 행사에 참석한 귀족들을 대상으로 투자 설명회를 진행하기로 했다.
아. 참고로 집현전 건축이 이리 오래 걸린 건 압도적인 규모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간 여러 분야로 일이 진행되었기에 소수의 인력으로 천천히 건축한 결과였다. 500명 정도가 숙식할 정도에 불과했으니 평범한 수준이었다.
말이 샜다.
나는 목을 가다듬으면서 귀족들을 바라봤다. 이미 나의 위대한 영도력을 따랐기에 대풍을 경험한 이들이었기에 눈빛에서는 신뢰가 가득했다.
실제로 이들의 곳간에는 콩과 쌀이 넘치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황금물결의 시대가 아니겠는가.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시작했다.
“곡저라는 작물이 있네.”
“오. 무엇입니까. 그 작물도 이모작이 가능합니까?”
일찍이 수나라를 약탈하여 가을~봄에 파종하고 수확하는 채소를 경험한 귀족들은 이모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니 처음 듣는 작물이면 이모작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곡저는 종이를 생산하는 작물일세. 자네들도 알고 있을 것이네.”
“종이라고 하셨습니까? 닥나무를 이르십니까?”
“과연 훌륭하군! 그렇다네. 곡저란 닥나무를 이르는 말일세.”
6세기의 농서인 제민요술은 곡저, 이후에 등장한 사시찬요는 닥나무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었다.
귀족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인. 우리 고구려의 만지는 서토인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뛰어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종이는 질기고 면이 매끈하기에 감히 천하제일이라고 자부하지요.”
다 옳은 말이다.
다시 언급하지만, 전통적인 고구려 사회에서 종이 문화는 절대로 부족하거나 뒤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변화를 따르기에는 속도가 뒤처질 뿐이기에 나는 이 부분에 주목하는 것이었다.
괜히 진나라의 기술자들에게 종이 생산을 강조한 게 아니었다.
또한, 내가 그들에게 종이 생산을 명하였다고 하여 이 부분에 대해서 아예 무지한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는 원론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나 이 시절 기준,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종이 생산이었다. 하지만, 나는 섣불리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모든 상황의 가능성을 보았을 뿐이다. 일단 진나라 기술자들의 기술도 익힐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의 기술자들에게도 내가 아는 선진 종이 제작 방법을 알려주었다. 모두 눈이 휘둥그레진 건 당연했다.
-허. 곡피지에 닥나무 껍질만 넣지 않고 죽마나 볏짚까지 넣으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네. 잘 섞어 정제하게. 또한, 닥나무의 껍질 중 불순물을 벗겨내고 흰 속살만 이용하여 찧고 끓이게. 하면, 최고 수준의 종이가 나올 것이니 말이다.
이는 당대 최고의 제지술로 인정된 우리 조선의 기술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들은 내 말을 정확하게 이해했다.
‘아’ 다르고 ‘어’ 다르긴 했다. 다시 말하지만, 고구려의 기술자는 고유의 문화를 발전과 귀족 문화의 역량 강화에 투입될 것이다. 반면, 중국의 기술자는 대량생산에 임할 것이다. 물론, 나는 나의 선진 지식을 익힌 중국인을 고향으로 보낼 생각도 없다.
왜? 내가 그들에게 언급한 제지술은 최소한 조선시대에서 사용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청나라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수준의 것이었다.
말이 샜다.
어쨌거나 이만하면 당위성은 충분했다.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닥나무로 돈을 벌 수 있는 이유를 말할 때였다. 투자 설명회의 핵심이었다.
나는 유려하게 오른손을 내저으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잘 듣게. 닥나무로 수익을 내는 방법은 3가지가 있네.”
그리고
“첫 번째는 나무를 베어 파는 것이며, 두 번째로는 껍질을 벗겨 파는 것, 세 번째는 제지하는 방법일세.”
손가락으로 적절하게 시각을 지배했다.
“하지만 비용과 인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참으로 좋은 질문이 아닐 수 없네! 그런데 더 듣게.”
“······송구합니다.”
“첫 번째는 인력이 적게 들지만, 이익이 적을 수밖에 없네. 허. 모두 생각해보게. 우리 고구려의 귀족이 어찌 이런 방법을 택할 수 있겠는가?”
“애초 1번은 귀를 닫는 법이라고 들었습니다.”
“과연 훌륭하군!”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오른손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두 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을 투입해야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익도 크네. 그러나 우리는 늘 말하지 않나?”
“가장 뒤에 나오는 것이 핵심이 아니겠습니까?”
“자네들은 귀족의 자격이 충분하네. 바로 그러하다네! 과연 제지하는 게 가장 큰 수익이라고 할 수 있다네. 자네들은 어찌 생각하나?”
“대인. 양잠할 때 누에고치나 생사를 거래하는 것보다 비단을 내다 파는 게 더 이익인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닙니까.”
“훌륭하군.”
나는 양손의 손바닥을 크게 마주쳐 소리를 냈다. 또한, 빙그레 웃으며 귀족들을 바라봤다.
자연스럽게 닥나무 재배법을 언급했다.
“닥나무는 일 년만 지나도 사람의 키만큼 자란다네. 재배하는 맛이 나는 작물일세. 게다가 가을에는 열매를 수확할 수도 있지. 그리고 겨울에는 삼씨와 또 함께 파종하는 걸세. 이후 정월이 되면 삼씨는 모두 베고 태워버리게. 이리하면 아주 잘 자란다네. 어떤가? 해보겠나?”
“예? 소인들이 언제 그랬습니까? 이러면 곤란하십니다.”
“허. 오해하고 그러나? 내가 언제 뭐라고 했나? 고구려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는 걸세.”
“음. 예. 송구합니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해보려고 했으나 역시 투자자들은 만만하지 않았다. 나는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험험. 이리 한 뒤 그래도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면 2월에 모두 잘라버리는 것일세. 살아남은 닥나무는 3년 뒤 수확하는 것이네. 간단하지 않나?”
“음. 그래서 어느 정도의 면적이 필요합니까?”
역시 만만치 않은 이들이었다. 지나치게 꼼꼼했으니 내가 참으로 힘들었다.
“이 방법을 30무의 면적에 시행하는 걸세. 3할의 면적마다 베어낸다면 3년을 순환하지 않겠나?”
“음······.”
“약조하지. 내 말대로 할 때 30무의 토지로 비단 100필과 버금하는 수익을 낼 수 있네.”
엄청난 수익이다.
동시에 이들의 경제력을 고려했다. 그러니까 내 앞의 귀족 중 이를 해낼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을 갖춘 이는 절대 많지 않다. 더욱이 농경에 전력을 다하고 있기에 더 어려운 일이었다.
바로 그래서 이는 성공적인 투자가 될 수밖에 없다. 종이를 생산하는 귀족과 하지 못하는 귀족이 공존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귀족들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렇다면 닥나무 아니, 종이가 어떻게 사회를 지배하게 될 건지 확장하여 말해줄 때였다.
“고구려의 농업은 작년과 올해가 다르며, 올해와 내년이 다를 수밖에 없네. 종이가 바로 관련이 있네.”
단지 문화적인 영역이 아니라 또 다른 판매처가 언급되자 귀족들의 눈이 무서울 정도로 빛났다. 동시에 닥나무 투자가 부담스러운 귀족들의 눈동자에는 아쉬움이 더 진해졌다. 이건 아주 좋은 현상이었다. 전자는 투자의 열의가 강해질 것이고, 후자는 다른 투자라도 놓치지 않고자 할 것이니 말이다. 참고로 오늘의 투자 설명회는 닥나무반만 있는 게 아니다.
“나무와 나무를 붙일 때 진흙만으로 봉하면 어찌 되던가.”
“비가 다 들어가지요. 툭하면 떨어지기도 하고요.”
“불편하지 않나?”
“미치겠습니다. 비만 오면 손해가 나는 세상이 아닙니까.”
만일 이 내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투자로 성공할 자격이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자고로 이 시절 상자라는 건 물류를 옮기는 수단이다. 그러나 비가 오면 내용물이 모두 상하니 얼마나 손해가 크겠는가. 이를 종이가 다 해결할 수 있으니 실로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지금 이를 언급하고 있었다. 그래서 의미심장한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참으로 모순적인 삶을 살았네. 농사를 지어야 하기에 비가 내리길 바라였으나, 나무에 비가 스며들어 손해를 보게 되는 걸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네. 그러나 오욕의 세월은 이제 끝이 난 것일세!”
“방법이 무엇입니까.”
“진흙의 외부를 종이를 감싸고, 삼 껍질로 동여 매어준다면 비가 스며들지 못한다네. 떨어지지 않는 건 당연하지.”
“허. 정말입니까.”
“물론일세.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먼저 언급한 건 사시찬요에 나온 내용이다. 그리고 더 발전한 농상집요에도 이 부분이 있다.
“나무의 중간을 잘라 대목으로 삼게. 그 이후 접수를 끼워 접붙일 때 틈새를 종이로 채우는 걸세. 이때 떨어진 거적 조각으로 감싸고 그 속에 진흙으로 채운 뒤 바람을 막으면 되는 걸세. 하면, 어찌 되겠나?”
“흙이 마르겠지요.”
“그렇다네. 그때 물을 뿌려주는 걸세.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종이일세.”
내 말을 믿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굉장한 성과를 내면서 여기까지 달려왔다. 누가 감히 의심하겠는가.
그리고 뛰어난 투자자의 감각을 보인 귀족들은 눈을 빛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빠르게 무르익는 분위기를 만끽하며 손을 내저었다.
“어디 이것밖에 없겠는가. 아닐세. 절대로 아닐세. 무릇, 종이는 항아리의 주둥이를 덮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걸세.”
“허. 종이를 어찌 그리 낭비할 수 있습니까.”
“참으로 답답하네. 그래서 우리가 종이를 대량으로 생산하려는 게 아닌가? 나를 믿지 못하는가?”
“음.”
아무리 투자자라고 할지라도 불필요한 말을 하면 딱 잘라버려야 하는 법이다. 나는 절정의 단호함을 보이면서 말을 이었다.
“허. 잘 듣게. 등나무 껍질이나 뽕나무 가지를 잘라도 질이 낮은 종이를 만들어낼 수 있네. 이를 잘 활용한다면 대량생산이 되는 걸세.”
이 방법은 기본적인 대량생산의 조건이었다. 사실 그래서 크게 힘을 쏟고 있지는 않았다. 은근슬쩍 하급 종이도 준비하라는 말을 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논지는 역시 닥나무였기에 나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
“하하하! 자네들이 닥나무 농사를 짓는다면 재료까지 완비되는 건데 어찌 고구려에 종이가 부족하겠는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진행에 귀족들은 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이어갈 것이네. 나는 자네들이 나를 신뢰한다고 생각하고 있네. 그러니 듣게. 음. 음식 아니 술을 예로 들겠네. 고두밥과 누룩을 혼합하여 항아리를 채우지 않나?”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그럴 겁니다.”
“관심 좀 가지게.”
“술을 즐기면 되는 겁니다. 어찌 제조 방법까지 알아야 합니까.”
“이런 멋 없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됐네. 듣기나 하게. 어쨌거나 그때 항아리의 주둥이를 덮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진흙으로 했네. 하지만, 이리하면 내용물이 상한다는 것일세. 내부의 열 때문에. 그러나 종이로 덮고 그 위를 적당한 돌로 눌러주면 효과가 비교도 할 수 없네.”
종이는 항아리 안팎의 온도나 습도 따위를 조절할 수 있었다. 즉, 발효 기술과 직결한다는 것이다.
나는 호언장담했다.
“이리하면 장을 30년간 보관할 수 있네.”
“허.”
“아니.”
“정말입니까.”
30년이라는 엄청난 시간을 언급하자 사방에서 난리가 났다.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는 사시찬요에 언급된 내용이었기에 진실일 수밖에 없었다.
해서, 나는 다시 단호하게 외쳤다.
“닥나무와 쌀이 만나면 고구려는 더 풍요로워질 것이네.”
그리고
“나는 장담하는 바일세!”
온 힘을 다해 외쳤다.
그 순간
“오오오!”
“오오오!”
“오오오!”
“오오오!”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압도적이었다.
1차 설명회는 성공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