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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농사도 잘함-30화 (30/199)

30화 전통

30화 전통

요즘 평양도성에서 가장 바쁜 사람을 뽑으라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해도 이문진이었다. 늘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긴 했는데 요즘에는 눈 밑에 다크써클이 보일 정도였다. 물론, 지쳐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즐거워 보인다고 해야 할까? 대단한 사람이긴 했다.

그래도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기에 모처럼 밥 한 끼 대접했다. 적당하게 배를 채운 뒤 가볍게 물었다.

“좀 어떤가.”

“5부마다 관리인들을 분산해서 파견했습니다. 그리고 패서 일대의 농지도 잘 나눠서 관리하고 있는데 무탈합니다. 또한, 도성의 인분을 확보하고자 귀족들이 갈수록 열과 성을 다하니 백성들은 참으로 기뻐하고 있습니다. 모두 좋은 방향으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잘됐군. 부족한 부분은 없는가? 내가 더 살펴봐야 한다거나.”

“아직은 딱히 없습니다. 물론, 유학자를 양성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도통 공부하려고 하지 않으니 답답할 정도이지요. 하지만, 이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겠습니까?”

고구려에서 가장 어려운 건 전쟁도 뭐도 아니었다.

바로 관리인들을 ‘공부’시키는 일이었다.

천자문은 어떻게든 익히게 했으나 유학은 정말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가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워낙 공부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단기간에 천자문을 익히긴 했다. 그 정도면 아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유학은 전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어쩌면 ‘강사’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물론, 섣불리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괜한 말로 분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는 법이다.

“그나저나 인분의 수량은 적당한가?”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 다들 난리입니다. 과거 연나라 때 국내도성이 함락된 건 난리가 난 수준입니다. 다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하면, 어지간한 귀족은 인분을 제법 확보했겠군.”

“그렇습니다. 한데, 이는 어찌 이르시는 겁니까.”

“처음에는 내가 직접 인분으로 거름을 만들었기에 기초적인 방법을 시행할 수밖에 없었네. 하지만, 이제는 귀족마다 인분을 넉넉하게 확보했다고 하니 능히 시행할 수 있네.”

“더 좋은 방법입니까?”

“당연하네. 왕씨농서에 기술하지 않은 건 상황에 맞지 않게 시행하는 일을 우려했기 때문일세.”

이문진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지필묵을 꺼냈다.

역시 FM이었다.

“전에는 인분을 부숙할 때 시간을 들이기만 했으나 이제는 사람이 직접 해야 할 일이 있네. 우선 똥을 끓여야 하네.”

“······허. 똥을 끓이기까지 해야 합니까?”

“이리하면 몇 배의 효과가 발생할 것이네. 아. 이왕이면 머리털을 약간 넣어 주게나. 이러면 더 좋으니까. 아니, 꼭 이렇게 하게. 알겠나? 머리카락도 함부로 버려서는 아니 될 것이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도 다 모아야 할 것일세.”

“허. 사람의 신체 중 함부로 할 게 아무것도 없군요.”

“그렇다네. 그리고······.”

자연 상태의 부숙법이 아닌 이 방법은 명나라 시절에서야 도입된 획기적인 시비법이었다. 장차 이 방법이 보급된다면 고구려는 황금물결과 춤을 출 것이다.

설명을 자세하게 이어갈 때였다.

“거. 밥 먹을 때 똥오줌 이야기는 안 하면 안 됩니까? 대체 몇 번째입니까?”

“그걸 다 기억하고 사나? 자네 볼수록 옹졸하군. 그나저나 언제부터 있었나?”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됐습니다. 다시는 안 오겠습니다.”

“잘 가게.”

“하!”

연자유가 화를 내며 나가자 이문진은 멋쩍게 웃었다.

“연 대인은 늘 화를 내시는군요.”

“옹졸해서 그런 것일세.”

“한데, 대인. 이건 당장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갈수록 인력이 부족할 듯합니다. 토지는 광활한데, 백성은 적지 않습니까. 그러니 토지 개간도 한계에 봉착할 것 같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아서 말입니다. 물론, 우리 백성을 먹여 살리고 남을 수준의 개간은 이뤄질 것이니 탈은 없겠지만 말입니다.”

“······.”

“하면, 소생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새로운 시비법을 널리 알려야 하니 말입니다.”

“고생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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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진을 보내고 계속 생각해봤다.

사실 나 역시 을지문덕 발 메뚜기 파동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거란족과 고막해가 약소세력으로 분류되고 있긴 한데, 주변국이 고구려나 북중국 그리고 돌궐과 같은 사기적인 존재들이라서 그럴 뿐 객관적인 전력이 약한 건 아니었다.

거란족과 고막해의 주력 병력이 각각 4만, 3만에 육박하는 걸 보면 절대로 무시할 수 있는 세력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만일, 이들을 모두 품을 수 있다면 고구려는 병력만 7만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씩 가르쳐야 할 신입 말고 경력직으로 7만이었다.

솔직히 탐나지 않으면 거짓말이었다.

고구려의 팽창에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겠는가.

그런데 이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월세살이가 기본이었고 월세 비 폭등하면 전셋집을 구할 뿐, 가족이 될 생각은 없는 무리였다. 이런 관점으로 바라볼 때 이번에 거란족 3천 호가 신속을 청한 건 진심이라고 보는 건 어려웠다. 그저 ‘어? 여기는 메뚜기 월드네? 고구려는 아니네?’라면서 일단 슬쩍 왔다고 봐도 무방했다.

늘 그렇듯 동화작업은 오랜 세월 천천히 해야 하는 것이기에 괜히 욕심내다가는 탈이 날 수도 있었다.

내가 일전에 대동단결을 주창하면서 귀족들에게 출산과 육아의 20년 대계를 말한 바가 있었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농업 생산력을 폭등시킬 수가 없다는 게 아니라, 20년이 너무 길었다. 사실 20년은 오는 세월이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미래다. 20년이 언제 오겠어.

이 고민을 이어가다 보니 문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건실하게 보급, 출산, 육아 정책과 동화정책을 추진하는 건 좋은 일이긴 한데 별개로 인구 증가 정책을 펼쳐야 하는 게 아닌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본질적으로 현재 고구려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인구였다.

당장 일할 인구가 적어도 너무 적었다.

속도를 내는 국토 개발도 언젠가는 한계에 봉착할 게 분명했다.

토지의 개간이라는 건 땅이 있다고 무조건 진행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토지의 인구부양력으로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즉, 현재 고구려는 ‘적당하게’ 개간해도 먹여 살릴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기에 개간을 더 강행해야 할 의지가 박탈될 수밖에 없었다.

이건 개인의 밀고 간다고 하여 뒤바꿀 수 있는 흐름이 아니었다.

왜? 노동력이 부족하기에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을지문덕의 성공으로 거란족 3천 호가 월세살이하러 오는 걸 보면서 아예 다른 생각을 했다. 자고로 본국의 노동력이 부족하면 외국인 노동자가 데려오면 되는 게 아니겠는가? 이건 법칙이다.

조선 시대에 보면 여진족은 말 타고 가서 명나라 사람을 잡아서 노비로 굴렸다. 이 좋은 풍습은 우리도 하면 되는 것이다.

아니, 다 하는데 고구려라고 못할 게 뭐가 있나 싶다. 우리도 몇 명 데려온 뒤 한적한 곳에서 일을 시키면 되는 것이다.

수나라가 열받을 수는 있는데 어차피 싸울 거잖아?

그러면 할 수 있는 거 다 하는 게 맞다.

그래서 불렀다.

“대인. 소인을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평양계 가문 출신인 강이식이었다.

내가 굳이 이 사람을 부른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강이식의 가문이 대대로 배를 잘 타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정확하게는 우리 가문에 종속된 수군 대장 느낌이었다.

“긴히 물어볼 게 있네. 우리 고구려의 군선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해주겠나?”

“소선은 40명, 중선은 100명, 대선은 150명을 태울 수 있습니다.”

딱 군인이었다.

군더더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우리가 서토로 배를 보낸다면 어찌 가는 게 가장 수월한가.”

“패서 하구에서 출발하면 2가지 바닷길이 있습니다. 모두 수월합니다.”

“······내가 실언했네. 더 자세히 말해주게.”

“음. 우선······.”

강이식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배치된 지도를 가리키며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1. 대동강 -> 서해 북부 근해 안 –> 요동반도 남쪽 해안 ->발해만 -> 산동반도 북부

2. 대동강 -> 압록강 하구 -> 요동반도 -> 산동반도 북부

대충 이런 항로였다.

한 마디로 중국까지 무난하게 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대선 30척과 병력 3천 명을 주겠네. 다녀오게.”

“대인. 소인이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자세히 일러주시겠습니까.”

“자네가 말한 바닷길 중 편한 길로 가서 서토인을 잡아 오라는 말일세. 모두 노비로 삼을 것이네. 일단 1천 명 정도 기대해도 되겠나?”

정직한 군인, 강이식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상당히 동요했다는 사실을 알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군인은 동요 같은 거 하는 거 아니다.

“뭐 하나?”

“음. 지금 당장 갑니까?”

“물론일세. 아. 이건 명심하게. 적이 크게 반격하면 주저 없이 퇴각하게. 우리는 점령이나 정벌이 목적이 아니라 ‘약탈’을 하러 가는 것이니까.”

“······.”

“그리고 곳간이나 이런 게 보이면 욕심내지 말고 그냥 불태워버리게. 나는 그들이 굶었으면 좋겠네. 알겠나?”

“······.”

“듬직하군. 하면, 무운을 빌겠네.”

“······다녀오겠습니다.”

태왕의 윤허를 받았느냐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나는 선결제 후보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며, 고구려 수군은 전통적으로 평양계가 독식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고구려의 수군은 사실상 내가 총사령관이었다.

물론, 내가 배타거나 작전을 수립할 생각은 없다.

죽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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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식을 보낸 뒤 곧장 안학궁으로 이동했다.

간략하게 내용을 전하자 고양성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강이식이 성과를 내면 조직적으로 확대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사옵니다.”

“······.”

“매번 조정에서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리옵니다. 수군의 대장을 따로 두어 그들이 알아서 판단하게 한다면 효과가 더 좋지 않겠사옵니까? 수백 척의 군선을 그냥 두는 것보다 이렇게 활용하는 게 어떻겠사옵니까.”

“······.”

“어떠하옵니까.”

“막리지. 그래도 고구려의 국격이라는 게 있소.”

“국격은 곧 국세가 아니겠사옵니까? 신이 천하 만방에 고구려의 국세를 떨칠 것이옵니다.”

“허······.”

고구려의 역사 저 너머에도 약탈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절 고구려는 약탈은 국가 단위로 하지 않았다. 아니, 해도 사람을 약탈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적어도 국가 차원에서 말이다.

이러하니 뼛속까지 고구려인인 고양성은 정말 고민이 깊어 보였다. 그의 입에서 나온 ‘국격’이라는 건 말 그대로 진심이었을 것이다.

너무 낭만적이라서 그냥 잘라버리듯 말했다.

“폐하. 우리는 강성해지고 적은 약해지게 하는 방법 중 적의 물건을 뺏어오는 것보다 좋은 건 없사옵니다. 한데, 왜 머뭇거리시는 것이옵니까?”

“하긴. 어차피 싸워야 할 적인데 이것저것 따질 이유는 없지요. 좋소. 하면, 이참에 육로로도 해보는 건 어떻소? 지금 영주는 난리가 났을 것이니 말이외다.”

“물론이옵니다. 하오나, 그전에 벌떼의 효과를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 같사옵니다.”

“좋소.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시오.”

“천은이 망극하옵니다.”

“아. 아니외다.”

고양성은 다시 손을 내저었다.

설마 그새 생각이 바뀌었나 싶었는데 기우였다.

“미리 이 내용을 국내성에 전달하시오. 벌떼의 효과를 본 직후 기병을 출병하여 노비를 구해올 수 있게 한다면 더 좋을 것이오.”

판을 더 키울 생각이었다.

아예 국가적인 차원으로 말이다.

이건 너무 바람직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경작할 사람이 부족한 듯싶었는데 잘되었소. 또 생각해보니 서토에는 남는 게 사람이니 적당하게 출병하더라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외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전하여 그들의 사기를 고취하는 게 옳소.”

“신하들의 근심을 이렇게 헤아려주시다니 폐하께서는 가히 성군이시옵니다.”

“하하하. 되었소. 이는 막리지가 국내계와 평양계를 잘 다독였기에 가능한 일이오.”

“신은 사양하지 않겠사옵니다.”

“썩 물러가시오.”

“하하하. 천은이 망극하옵니다.”

요즘 분위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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