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어머, 도이엄마 쓰러졌나봐.”
“놀랜 만도 하지, 저렇게 보기만도 억센 사람들이 때로 몰려와 집안을 발칵 뒤집었는데.”
“그래도 저러다 잘못 되는 건 아닌 가 몰라.”
“에이, 설마 이만한 쇼크로 잘못 되기까지야 할까?”
“어머, 민성엄마 그거 몰라? 도이엄마, 심장질환 앓고 있잖아.
조금만 쇼크가 가해져도 위험하다는 것 같던데.
왜, 언젠가도 갑자기 쓰러지더니 몇 번이고 위험한 고빌넘겼다잖아.”
“어머,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난 금시초문인데.”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복도 형 아파트였기에 같은 층에 사는 많은 집들이 나와서 이 소란을 구경하고 있었다.
도이는 화가 났다. 왠지 모르게 분하고 억울했다.
그리고 슬펐다. 걱정스러웠다. 이 모든 것이.
그리고 그 때, 마침 119 구급대가 도착했다.
현란하고 분산한 사이렌 소리를 크게 울리면서 말이다.
엄마는 그들의 손에 의해 들 것에 이송이 되어
산소 호흡기를 쓴 채로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러나 병원으로 이송된 엄마는 생각 보다 더 위험했다.
지금 당장 큰 병원으로 옮겨서 수술을 받아야만 할 상황이었다.
그러기에는 보호자가 필요했지만, 도이는 보호자로써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의료진은 아버지에게 당장 연락하라는 말만 반복 할 뿐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재촉만 할 뿐이다.
도이는 아직 미성년자이며,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에
아버지의 동의아래서 수술을 시작 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을 곁들이며.
도이는 갑갑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화가 나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며칠이 아닌 몇 달 째 연락이 되지 않던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회사와도 연락을 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다.
이미 지난겨울에 퇴직을 당하셨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아버진, 금융계 채권 팀에서 일을 하셨기에
잘못 된 보증으로 인하여 신용에 이상이 생긴 때에,
더 이상 그 곳에서 근무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보호자, 보호자 어떻게 됐어?”
보호자가 도착 하진 않았지만,
누가 봐도 한시가 긴박한 상황인지라 엄마는 이미 큰 병원으로 이송된 후였다.
여러 명의 의료진이 엄마를 감싸며 임시방편으로 심폐소생술을 마쳐는 놨지만
한 시름 놓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저, 그게......”
“학생, 얼른 아빠께 연락해요. 한시가 급하다고! 엄마 안 살릴 거야?”
모두가 입을 모아 한시가 급하다며 다급한 재촉을 해 온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결코 15살짜리 어린아이에게 수술동의서를 작성하게 하지는 않았다.
도이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갔고,
그렇게 아버지와 아무런 연락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간은 자꾸만 지체되어간다.
그러다가
“선생님!! 맥박이 뛰질 않아요. 의식이 없어요!”
띠- 띠- 띠이-
응급실 안에서 바삐 걸음을 움직이며 여러 환자들의 동태를 살피던 간호사가
호들갑스럽게 소리친다.
엄마의 몸과 연결되어 있는 몇 가지의 기계에서 혼잡한 소음이 멈추질 않고,
TV에서나 볼법한 기계는 곧은 일직선을 그리고 있었다.
“안되겠어, 심실제세동기 준비해! 얼른!”
“어, 엄마.....”
의료진들은 바삐 엄마를 살피지만, 도이는 그 순간 온 몸이 경직되어 버렸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기온이 도이의 온 몸을 감싸고돌았기 때문이다.
소름끼칠 만큼 차가운 공기와 가늠하기 어려운 공포가.
“100줄.”
“…….”
“200줄.”
“…….”
의사의 말에 따라 자그마한 기계 하나가 조금씩 수치를 높여 가며
엄마의 심장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띠이- 띠이- 띠이- 차가운 기계음이 약간은 정상적이지 못하게 소리를 내면,
펑- 하며 꼭 무언가 터지는 것만 같은 소리가 뒤따른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엄마의 상채는 침대위에서 대략 한 뼘 가량을 붕 떴다가
다시금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도이는 무서웠다.
이러다, 정말 이러다가, 아까의 의사의 말처럼 엄마가 잘못되는 건 아닌지
불안했던 것이다.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지만 맘 놓고 울 수도 없었다.
혹여나 눈물이라도 흘리면, 좋지 못한 상황을 인정하는 것만 같았고,
그것은 곧 엄마의 죽음을 준비하는 것만 같아서 싫었다.
“선생님! 환자의 의식이 돌아왔어요.”
“수술이 다급해. 보호자 동의 없이 우선 진행 하자고.”
하아....
천만다행으로 한숨 돌릴 겨를도 없이 그들은 곧 엄마의 침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 간호사, 일단은 학생의 동의라도 받아 놔.”
“네, 선생님.”
그렇게 바라던 수술을 시작하기 위해 서두르는 의료진의 발길에 따라
도이도 함께 움직였다.
그리고는 한 의사의 지시에 맞춰 엄마의 옆에서
줄 곳 엄마의 상태를 분 간격으로 체크하던 간호사가 어떤 종의를 내밀었다.
“일단 여기 서명부터 하세요.”
도이는 떨리는 손으로 조금은 힘겹게 동의서에 서명을 마쳤다.
그리고는 이미 엄마가 들어가 있는 수술실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의료진들은 미처 다 착용하지 못한 수술복을 걸음을 옮기면서 가다듬었다.
그것은 곧, 모든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 보이는 마냥
조금 더 커진 불안감을 형성했다.
더 많은 눈물이 쏟아 나올 것만 같았지만,
도이는 두 손을 꼭 잡고는 기도를 시작했다. 엄마를 위한 기도를......
딸칵-
그러나 다수의 의료진들이 저마다 진한 풀색의 가운을 입고 수술실에 들어간 지
채 오 분도 되지 않았을 때,
엄마를 데리고 들어갔던 수술실의 문이 열렸다.
하나둘, 어깨가 축 쳐진 의료진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안타까운 표정으로 도이의 곁으로 다가왔다.
“서, 선생님...”
“학생.....”
“버, 벌써 수술이 끝난 건 아니죠?”
왠지 모르게 얼굴에 열이 올랐다. 반면에 온 몸에는 한기가 맴돈다.
무더운 여름의 뜨거운 열기조차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오싹한 한기가.
“미안해요. 너무 늦었어요.”
“..네?”
“얼른 아버지께 연락하세요. 아무리 바빠도 장례는 치러야지.”
하아.... 너무 놀란 나머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슬프지도 덤덤하지도 않았다. 그냥 멍했다.
하다못해 미친 듯이 웃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웃다 보면 눈물이 나올 것도 같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도이는 맥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엄마를 멀리 떠나보낸 수술실 문을 마냥 초점 없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슬프지도, 그렇다고 원망조차 섞이지 않은 공허한 눈길로.
.
.
정확히 12시간 후였다.
믿을 수 없고 믿고 싶지 않은 엄마의 죽음이 다가온 지 정확히 12시간 후였다.
아버지가 그 얼굴을 내비춘건.
어디서 무슨 일을 겪기라도 했는지 아버지의 얼굴은 며칠 새 많이도 퀭해져 있었다.
그러나 도이는 아버지가 걱정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원망스러웠을 뿐.
엄마를 그렇게 보낸 것에 대한 원망이 싹틀 뿐이었다.
아버진 슬픔을 드러내지 않았다.
적반하장이라고, 오히려 도이를 붙잡고 화를 내고 있었다.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것이 아닌 어처구니없는 이유에서.
왜 이렇게 됐냐고, 자초지정을 묻기에 앞서,
왜 엄마를 병원으로 데리고 왔느냐며, 어차피 이렇게 될 거 왜 수술실까지 들여보냈냐며
화를 내고 있었다.
그 돈을 다 누가 감당할거냐며 그렇게 화를 내고 있었다.
기가차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어이없는 웃음조차 새어나오지 않았다.
밉지도 원망스럽지도 않았다. 다만, 저주스러웠다.
아버지를 향한 분노의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엄마의 장래는 끝이 났지만,
그 동안 도이와 아버지는 단 한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하물며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그 안으로는 서로가 들어가지도 않았다.
누가 봐도 꼭, 원수지간으로밖에 여겨지지 않게, 그렇게.
“이 집도 오늘이 마지막이네.....”
“서운하니? 그래, 서운할 만 하지. 어떻게 안 그렇겠어.”
“엄마생각 난다. 이 집 처음 이사 왔을 때 엄마가 그렇게 좋아했는데.....”
“그래, 그랬지. 언니가 참 많이 좋아했지.”
“있잖아 이모.... 나 이모네 집으로 가면 안 될까?”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이미 엉망이 되고 건져갈 것도 없이 난장판이 되어버린 집에서
옷가지를 꾸리던 도이가 곁에 있던 여자에게 말한다.
그는 엄마를 꼭 빼다 박은 양, 많이 닮은 사람이었다.
“나, 여기 싫어. 서울이 싫어. 이모.”
“…….”
“....그런데 그보다 더 싫은 건.... 바로 아빠야.....”
“도이야.....”
“나 막 화가 나. 아빠만 보면 화가 나. 아빠만 그러지 않았어도....
그 사채라는 것만 쓰지 않았어도......”
도이는 다음 말을 잊지 못했다.
어지간히 화가 난 눈과 괴로움이 가득 깃들여진 얼굴을 바닥으로 떨구었다.
그에 이모는 가만히 도이의 머리를 끌어다 않는다.
“싫어.... 아빠가... 싫어.... 미워....”
“아빠도 어쩔 수 없었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만 이해를...”
“싫어... 난 싫어, 이모... 난.... 있잖아... 하아....”
도이는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냥 장시간을 이모의 품에 안겨 울었다.
아빠를 향한 원망을 낱낱이 끄집어내면서, 서럽게, 서럽게.
그 날 밤. 손님이 찾아왔다. 낯선 중년의 신사였다.
“신도이 양인가요?”
“누구시죠?”
“이쪽은 대경그룹의 차선무회장님 이십니다.”
비서쯤으로 되어 보이는 남자가 이런저런 말을 대신 전했다.
그리고 그는 도이에게 아버지와 아는 사람이라면서 자신을 따라 가자고 제안한다.
도이는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오히려 더 두터운 경계선을 만들었다.
대경그룹이라면 그래도 이 나라에서는 최고로 꼽히는 삼대그룹이었다.
그런 대기업 회장님이 아버지 같은 그저 평범한 샐러리맨을 알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이는 이모가 아닌 그를 따랐다. 결국엔 이곳에 남은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사정을 이미 다 알고 있다면서, 사실은 본인도 아버지와 엮일 일이 있었다는 그 남자의 말은
거의 반 강제적이었다.
자세히는 말 하지 않았지만, 어림짐작 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그에게도 갚아야 할 돈이 얼마가 있다는 것쯤은.
도이를 담보로 최소한 몇 년간은 싫어도 할 수 없다는
그 사람의 굳건한 말과 날카로운 눈이 알려줬다.
누구에게 어떤 말을 물어 볼 수도 없었고, 들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냥 모든 일을 어림짐작으로,
퍼즐 짜 맞추듯 그렇게 맞추며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도이의 운명이었다.
엄마의 죽음에 미처 슬퍼 할 새도 없이,
많은 일의 정확한 이유와 본인이 왜, 그런 많은 일들을 감당해내야 하는지도 모른 채로
도이는 그들의 말에 꼭두각시마냥 그렇게 숨쉬어야 했다.
아무것도 듣지도 못한 채로, 아무도 도이에게는 그 어떤 이야기도 알려주지 않은 채로,
엄마의 죽음과 그날 그들의 횡포.
그리고 또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은 아버지의 비밀.
그 많은 일들은 점차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고,
그렇게 도이는 차 회장을 따라 그의 저택으로 옮겨온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민을 만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