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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09일 22:05,
남주 서울특별시 서초구 국가정보원 원장실.
“자주독립국가 선포? 허허, 일본 정치인들의 망상은 끝이 없군.”
한 시간 전, 국가정보원 산하 일본본부의 도쿄지부로부터 올라온 보고서를 읽어가던 이영진 국정원장은 혀를 차며 말했다. 이에 옆에서 함께 보고서를 읽던 허영준 2차관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일본 족속들은 정화될 놈들이 아닙니다. 당장 청와대에 보고하고 즉각 조처해야지 않겠습니까?”
“음, 아무래도 그래야겠어! 우치다 이 양반은 믿었는데 역시 사람 속은 알 수가 없군”
나름 일본 시민을 우선으로 정치한다고 믿었던 우치다 총리마저 찬성표에 투표한 것에 이영진 원장의 마음은 찹찹했다.
“일본원숭이들이 어디 가겠습니까? 틈만 나면 제국주의 본색을 드러내려 하는 족속들이지요. 우치다 이 인간도 3년 전에 전쟁범죄자로 교도소에 보냈어야 했습니다.”
3년 전, 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은 당시 내각은 물론 여야당 할 거 없이 수많은 정치인은 전쟁범죄자로 분류되어 적게는 5년에서 길게는 무기징역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용되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노동후생부 대신에 있었던 우치다는 그러한 칼바람을 피했고 도리어 헌법 개헌 후 초대 총리 자리에 올랐다.
당연히 우치다가 총리가 된 배경에는 대한민국 정부의 입김이 있었다.
극우성향의 수많은 정치인이 한꺼번에 교도소에 갇히면서 일본 정치계가 큰 혼란에 빠진 것을 우려한 대한민국 정부는 이를 해결하고자 아베 정권 당시에 야권 출신으로 장관 자리에 있었던 우치다를 선택했다.
그렇다고 우치다를 총리 자리에 올려 마치 꼭두각시처럼 뒤에서 조정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전쟁으로 황폐해진 일본의 전쟁 복구와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스스로 노력하여 변하길 바랐다.
하지만, 오늘 보고서대로 일본 정치인은 거기서 거기라는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아무리 시민을 위한 참된 정치인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뼛속 깊은 곳에는 제국주의나 우파성향의 DNA가 자리 잡은 듯했다.
“과거 일을 말해서 뭐하겠나? 그 당시에는 우치다를 총리로 올리는 게 괜찮은 방법이었어. 문제는 미국이지······. 아직도 정신 못 차리리라고 뒤에서 이런 더러운 짓거리를 버리니 말이야.”
“네, 이번 기회에 미국 역시 매운맛을 보여줘야 합니다.”
“일단 그 부분은 청와대에 보고 후 상의를 하도록 하지. 자네는 내일 아침 9시에 국장급 이상 회의소집 좀 해주게”
“네, 알겠습니다.”
보고서를 서류 가방에 넣은 이영진 원장은 한쪽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고는 허영준 2차관에게 물었다.
“아! 지금쯤이면 EU 쪽에서도 뭔가 결과가 나왔을 시간이 아닌가?”
허영진 2차관 역시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지금쯤이면 아마도······.”
이때 인터폰이 울리고 비서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원장님! 대외정보국 강기원 국장께서 오셨습니다.
“들어오라고 하게.”
- 네, 알겠습니다.
“허허, 저 친구 양반은 못되겠습니다.”
“그렇게 말일세”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강기원 국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자리에 앉기도 전에 허영준 2차관이 물었다.
“어떻게 결정되었나?”
“네, 우리가 원하는 데로 일단 정상이사회로 상정 건은 이첩되었습니다.”
“휴! 일단 시간은 벌었군”
강기원 국장의 대답에 허영준 2차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이영진 원장을 보며 말했다.
“휴! 일단 시간은 벌은 듯합니다.”
“그러게 말이야. EU 대표이사회에서 잘못된 결정을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말이야. 강 국장! 이첩 건은 몇 표로 통과되었나?”
이영진 원장 역시 한시름 놨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열 표입니다.”
“허허, 열 표? 아슬하게 삼분에 일을 넘겼군”
“네, 미국 쪽에서 EU 회원국을 상대로 로비가 장난 아니었습니다. 오전까지만 해도 13개국은 정도는 이첩 건에 찬성할 것으로 예상했었으나 3개국이 미국 쪽으로 넘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강기원 국장의 대답에 허영준 2차관이 자신의 무릎을 치며 일갈했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하지 않나? 그나마 10개국이 찬성표를 던져 다행이야.”
“네, 그렇긴 합니다.”
강기원 국장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자 일단 한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한 이영진 원장은 조금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2차관과 국장에게 말했다.
“지금부터는 외교부의 외교력 싸움이야. 그만큼 우리가 수집하는 정보가 외교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니 허 차관은 대외정보국뿐만 아니라 가용한 모든 부서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신경 쓰게. 아예 외교부에 우리 쪽 직원 몇 명 보내놔! 실시간으로 정보 전달을 할 수 있게 말이야.”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정상이사회가 언제쯤 개최될지가 관건인 거 같습니다.”
허영준 2차관의 질문에 강기원 국장이 바로 대답했다.
“이번처럼 대표이사회에서 상정 건이 이첩된 건 처음인지라 속달이 예상할 순 없지만, 알아본바 규정상 정상이사회가 개최되려면 각 회원국 정상들의 일정을 고려하여 통상 이십 일에서 삼십 일 사이로 개최일을 정한다고 합니다.”
“20일에서 30일 사이라······.”
이영진 원장은 바로 자신의 태블릿 PC를 조작하여 일정 사항을 확인했다. PC 화면에는 국방부에서 제공한 각종 군작전 일정이 짜여 있었다. 즉, S급에 해당하는 일정표였다.
“음, 그때쯤이면 파병군이 우크라이나를 넘어 러시아 남부에서 충분히 군사적 활동을 하는 시점이군. 좋아 시간적 여유는 생겼어.”
하지만 허영준 2차관은 걱정되는 표정으로 반문을 제기했다.
“원장님! 미국이 과연 가만히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미국이 하는 짓을 봐서는 정상이사회 개최일을 최대한 앞당겨 상정 건을 통과시키려 하지 않겠습니까?”
“음, 자네 말대로 당연히 그럴 수 있겠군. 하지만 그 부분 역시 외교부에서 해결 해야 할 문제야. 외교부에서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최대한 돕는 방법뿐이 없네.”
이때 다시금 인터폰이 울리며 비서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원장님! 청와대에 갈 시간입니다.
“벌써 시간이 이리되었군. 알았네. 곧 나가지”
- 네, 알겠습니다.
이영진 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입었다. 그리고는 서류 가방까지 챙기고는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2차관과 국장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난 지금 청와대에 보고하러 가겠네. 허 차관은 강 국장과 함께 내일 있을 회의소집 건과 지원 가능한 부서 현황 확인해 보게.”
“네. 알겠습니다.”
“그래, 그것만 마치면 퇴근해!”
“하하! 일을 산더미 주시고 퇴근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가? 하하, 미안하네. 그럼 내일 보세.”
“네, 조심히 가시기 바랍니다.”
이영진 원장이 나가고 둘만 남게 된 허영준 2차관과 강기원 국장은 이날 자정이 될 때까지 향후 진행될 일에 대해 논의했다.
★ ★ ★
2024년 1월 09일 22:10 (신중국시각 21:10),
신중국 허베이성 푸닝현 남단 24km 평원.
5중대와 본부중대가 1차 방어진을 무력화하는 동안 하늘에서 쏟아지는 박격포탄 사례를 받으며 급속기동으로 2차 방어진까지 도달한 6중대와 7중대는 인간방패인 민간인을 피해 좌우로 갈라지며 우회기동에 들어갔다.
왼쪽으로 우회한 6중대는 2차선 도로를 타고 빠르게 진입했고 오른쪽으로 우회한 7중대는 폭이 1.5km에 달하는 널따란 농경지로 방향 전환을 하고는 이내 야지 속도에서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7중대 전차의 속도는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영하의 날씨에 얼음장처럼 단단할 것으로 생각했던 땅은 육중한 전차가 지나가자 이상하게도 금세 진흙투성이가 되어 C-2A1 흑호 전차의 기동 속도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야! 속도가 왜 이래! 더 밟아!”
732호 전차장 남상현 중사가 헤드셋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아! 전차장님! 최대한 밟고 있는 겁니다. 지금 바닥이 진흙투성입니다.”
억울하다는 듯 어투로 전차 조종수인 김민진 병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뭔 소리야 마! 이런 날씨에······. 진흙투성이라니?”
“아 현시경으로 좀 보세요. 바닥 좀!”
급기야 따지는듯한 김민진 병장의 말에 남상현 중사는 즉시 현시경을 돌려 지나온 길을 확인했다.
길게 이어진 두 갈래의 캐터필러 자국이 마치 무릎 깊이 이상으로 깊이 패 있었다.
“이런 닝기리~ 대체 뭔 조화야. 지금 영하 10도인데······. 찝찝하네. 제길! 일단 최대한 밟아라.”
“네, 알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732호 전차의 엔진에서 괴성 같은 엔진음이 울렸으나 헛도는 캐터필러 때문에 속도는 늘지 않았다.
이렇게 7중대 소속의 전차 14대와 여러 대의 장갑차가 진흙투성이 위에서 이리저리 미끄러지며 기동하는 가운데 오른쪽에 있는 작은 마을 곳곳에서 정체불명의 기갑군이 출현했다.
이들은 앞서 5중대와 교전했던 99식A2 전차를 운용하는 또 다른 전차대대였다. 30여 대의 99식A2 전차는 마을 건물 안에서 완전히 엄폐했기에 정찰 드론으로부터 정체를 숨길 수 있었다.
그리고 7중대 전차들이 무릎 깊이까지 빠지는 진흙 위에서 버벅거리며 기동하자 이때를 놓칠세라 모습을 드러냈고 거리가 500m 안 되는 거리에서 일제히 포격을 가했다.
퍼엉! 퍼엉! 퍼엉! 퍼엉! 퍼엉! 퍼엉!
지축을 흔드는 폭격음과 함께 무지막지한 날탄이 흑호 전차를 덮쳤다.
워낙 가까운 거리였기에 일부 흑호 전차의 포탑 측면에 날탄이 정확히 착탄 했다.
빠캉!
마치 쇠끼리 부딪치는 경쾌한 소음과 함께 날탄에 얻어맞은 흑호 전차 내부까지 충격이 전해왔다. 하지만 다행히도 날탄은 튕겨 허공 속으로 날아갔다.
C-2A1 흑호 전차가 4세대급이긴 했으나 방호력(KE) 만큼은 5세대급 전차 못지않았다. 정면방호력은 2,000mm에 달했고 측면방호력은 1,500mm에 달했다. 현시대 모든 대전차미사일도 방어할 수 있는 방호력이었다. 단 16MJ급 레일건을 사용하는 미국의 M4 워독 전차나 러시아의 T-14B 아르마타 전차에게는 측면 같은 경우는 피격당할 확률은 높았다.
이렇듯 가공할 방호력을 갖춘 C-2A1 전차들은 125mm 날탄들을 모조리 튕겨내거나 아니면 강력한 SECM(전파교란시스템) 발산해 조준점을 틀어지게 하여 빗나가게 했다.
- 중대장이다! 전차장들은 신속히 반격 사격 후 최대한 마른 땅 쪽으로 기동한다.
중대장의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7중대 전차장들은 이미 반격 태세를 갖추고 대기하고 있었다.
순간 711호 전차장이자 1소대장으로부터 다급한 목소리가 중대 통신망 전체를 울렸다.
- 민가! 민가에 다수의 민간인이 있습니다. 인버터 모드로 확인 바랍니다.
그랬다. 박격포 포대와 1개 보병연대 전방에 민간인을 방패막이로 삼은 것처럼 신중국군의 전차대대 역시 엄폐하고 있는 건물과 가정집에 민간인을 집어넣어 방패막이로 삼고 있었다.
- 이런 개망할 새끼들을 봤나! 다들 반격 중지! 반격 중지! 전방 500m 앞에 있는 작은 언덕 넘어까지 빠르게 기동한다. 서둘러!
중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반격을 가하려던 7중대 흑호 전차들은 방향을 전환한 후 최대속도로 앞으로 튀어나갔다. 완전히 함정에 걸려버린 상황, 99식A2 전차들은 건물과 가정집을 엄폐 삼아 날탄을 발사했고 곳곳에서 신중국군 보병들도 모습을 드러내고는 7중대를 향해 대전차미사일을 발사했다. 또한, 하늘에서도 잠시 멈췄던 박격포탄도 휘파람 소리를 울리며 7중대 전차 위로 쏟아졌다.
쿠앙! 쿠앙! 푸우우우우~
박격포탄이 지면에 떨어지자 곳곳에서 흙기둥이 사방으로 솟구쳤다. 박격포 공격 시 빠른 기동력으로 착탄지대를 벗어나는 게 가장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진흙구덩이에 빠진 7중대 전차들의 기동력은 현저히 떨어져 쉽사리 착탄지대를 빠져나가기가 힘들었다.
이에 간혹 박격포탄이 흑호 전차의 포탑 상단 장갑에 꽂히며 폭발하기도 했다.
쾅아!
포탑 상단 장갑 역시 700mm에 달하는 방호력이었기에 155mm 이상의 중구경 포탄이 아닌 100mm 미만의 박격포탄은 충분히 방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포탑 외부에 장착된 각종 광학장비의 손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방금 박격포탄에 포탑 상단을 맞은 724호 전차장의 피해 보고가 통신망을 타고 올라왔다.
- 여기는 불독 넷! 방금 박격포탄 피격으로 포수 조준경 사망! 그리고 레이저 측정기 사망!
재수 없게도 사격과 관련된 광학장비만 파손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 보고는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