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쇄작전
- 적 전차 무시하고 무조건 전방 기동해!
여러 전차장으로부터 피해 보고가 속출하자 중대장은 일갈 함성이 통신을 타고 울려 퍼졌다.
마을 곳곳에서 포격을 가하는 적 전차들의 공격에 캐터필러만 안 맞는다면 7중대 흑호 전차들은 특별히 피격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우박처럼 떨어지는 박격포탄은 단순 광범위한 낙탄 공격이기에 SECM(전파교란시스템) 같은 소프트형 능동방어체계는 무용지물이었다.
한마디로 눈 없는 박격포탄에 운 나쁘면 맞는 꼴이었다.
콰앙! 콰앙! 쾅앙!
짧게 지그재그로 회피기동을 펼치며 앞으로 내달리는 흑호 전차들 사이로 흙기둥이 솟구쳤고 걸쭉한 진흙 파편들이 가장 앞에서 기동하던 732호 흑호 전차를 덮쳤다.
“악! 뭐야! 앞이 안 보여!”
한 뭉탱이로 날아온 진흙 덩어리가 조종수의 전방을 보여주는 카메라를 가리자 조종수 김민지 병장이 가려진 화면을 보면서 비명을 내질렀다.
“뭐가 안 보인다는 거야?”
“진흙인지 뭔지가 전방 카메라를 가렸습니다.”
다급히 묻는 전차장 나상현 중사의 말에 김민지 병장은 측면 카메라에 의존한 채로 조종하며 대답했다.
“심해?”
“네, 전방 카메라 2개 다 완전히 안 보입니다.”
“이런 개방할! 나가서 닦을 수도 없고”
아랫입술을 꽉 깨문 전차장은 마을 쪽으로 돌려져 있던 현시경을 전방으로 돌리고는 일갈했다.
“나 병장아! 내가 안내할 테니까 내 말대로 조종해!”
“알겠습니다.”
“10미터 앞에서 왼쪽으로 20도 정도 꺾어!”
“네, 알겠습니다.”
순간, 오른쪽 측면에서 둔탁한 충격이 전해왔다.
둥캉! 크르르르르릉~
순간적으로 732호 전차가 중심을 잃고는 오른쪽으로 급히 꺾였다.
“뭐야?”
“아! 전차장님! 큰일 났습니다. 오른쪽 캐터필러가 피격되어 풀린 거 같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날탄에 피격된 오른쪽 캐터필러가 보기륜에서 이탈해 기다랗게 늘어졌다. 이처럼 한쪽 기동 축이 상실된 732호 전차는 앞으로 기동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오른쪽으로 회전만 했다.
하늘에서 박격포탄이 떨어지고 500여 미터 떨어진 마을에서 30여 문의 125mm 활강포가 노리는 가운데 기동력을 상실한 732호 전차는 딱 좋은 먹잇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신세가 되었다.
“여기는 황구 셋! 여기는 황구 셋! 오른쪽 캐터필러 피격으로 기동불능!”
다급히 중대장에게 보고한 남상현 중사는 현시경을 돌려 자신의 전차를 쏜 적 전차를 탐색했다.
9시 방향 2층 건물 사이로 하얀 연기를 뿜고 있는 포신만 보이는 99식A2 전차를 확인했다. 아마도 재차 포격을 가하기 위해 재장전 중인 듯했다.
“저 새끼다! 홍 상병!”
“확인했습니다.”
“1번 표적 지정! 조준되는 대로 바로 쏴!”
“네? 민간인 때문에 사격 금지 중이잖습니까?”
“그럼 여기서 그냥 뒤질래? 쏘라면 쏴! 새꺄!”
온갖 인상을 쓰며 남상현 중사가 소리쳤다. 이에 살짝 쫀 포수 홍민호 상병은 포탑 조종간을 움직였다.
끼이이이이잉!
차체는 계속해서 제자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며 가운데 포탑이 빠르게 회전했고 방금 남상현 중사가 표적으로 설정한 적 전차 한가운데에 포수 조준점이 정확히 조준되었다.
“딸깍!”
홍민호 상병은 조종간의 방아쇠에 걸린 검지에 힘을 주었다.
퍼엉!
120mm 활강포에서 검붉은 화염이 뿜어져 나오는 듯싶더니 이내 플라즈마탄은 빨랫줄처럼 날아가 적 전차의 차체와 포탑 사이를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콰앙!
폭발과 함께 포탑 전체가 하늘로 붕 뜨며 날아갔고 차체에서는 시꺼먼 화염이 춤을 추며 분출했다.
“일격 필살! 적 전차 명중!”
홍민호 상병이 좁은 전차 안에서도 주먹을 불끈 쥐며 함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내 남상현 중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차 내부를 울렸다.
“야! 홍 상병아! 그럴 때가 아니다.”
동료 전차가 피격되자 주변이 있던 99식A2 전차들의 포신이 일제히 732호 전차를 향해 포신이 움직이고 있었다.
“2번 표적, 3번 표적, 4번 표적! 타켓팅한 대로 자동 사격!”
재차 남상현 중사의 명령이 떨어지자 홍민호 상병은 즉시 조종간을 움직였고 적 전차보다 먼저 2번 표적으로 설정된 적 전차의 포탑 아래쪽에 조준점을 위치시켰다.
퍼엉!
펑! 퍼어엉! 펑! 퍼엉!
732호 전차와 적 전차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포성음이 울렸고 서로를 향해 플라즈마탄과 날탄이 비켜 날아갔다.
콰앙!
2번 표적으로 설정된 99식A2 전차가 들썩이더니 이내 대폭발을 했다. 거대한 불기둥이 사방으로 휘말렸고 시꺼먼 연기가 솟구쳤다.
한편 732호 전차를 향해 날아온 날탄 2발은 정면 장갑을 맞고 튕겨 날아갔고 나머지 2발의 날탄은 허공을 가르며 빗나갔다.
텅!
텅!
쉬이이이이잉~ 쉬이이이이잉~
불쾌한 소음이 연속으로 732호 전차를 울렸다. 그리고 이때 중대장으로부터 중대 사격 명령이 떨어졌다.
- 7중대 지금부터 회피기동 간 제압사격에 들어간다.
민간인 피해 때문에 회피기동 명령을 내렸던 중대장은 더는 아군 피해를 줄이고자 향후 군사재판까지 넘겨 질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공격 명령을 내렸다.
중대장의 공격 명령에 회피기동만 하던 7중대 전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적 전차를 향해 일제 사격을 가했다.
퍼엉! 퍼엉! 퍼엉! 퍼엉! 퍼엉! 퍼엉! 퍼엉!
건물 뒤에서 포신만 내밀고 사격을 가하던 99식A2 전차 한 대가 담벼락과 집을 뚫고 날아온 플라즈마탄에 측면을 맞고는 그대로 폭발했다. 당연히 주변에 있던 집들도 폭발에 휩싸이며 무너졌다.
732호 전차를 노리던 나머지 99식A2 전차들도 아군전차의 제압사격에 포신을 축하니 늘어뜨리거나 아니면 화염에 휩싸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한편, 왼쪽으로 우회해 2차선을 타고 기동하던 6중대는 타격 목표인 골프 클럽으로부터 1km 남기고 선두 전차부터 차례대로 속도를 줄였다.
- 여기는 붉은여우 하나! 전방! 200m 지점, 대전차 지뢰 탐지! 현재까지 탐지된 대전차 수는 대략 30여 개!
선두에서 기동하던 611호 전차장이자 1소대장인 민기철 중위가 중대 통신망을 통해 알렸다.
- 여기는 흑돼지 하나! 돌파 기동 불가능하겠나?
이어 중대장의 질문이 이어졌다.
- 여기는 붉은여우 하나! 불가능하진 앉지만, 시간은 다소 걸릴 거 같습니다.
- 알았다. 현재 위치에서 전측방 경계!
일렬로 기동을 멈춘 흑호 전차들은 좌우로 포신을 돌려 경계에 들어갔고 잠시 후 전방 상황을 대대 정찰 드론으로 파악한 중대장은 다시금 지시를 내렸다.
- 여기는 흑돼지 하나! 붉은여우는 현 위치에서 대전차 지뢰 제거에 들어가고 회색곰은 우측 해안가 도로로 이동해 기동한다. 백호는 붉은여우를 엄호 경계한다. 이상!
- 여기는 붉은여우 하나! 확인!
- 여기는 회색곰 하나! 확인!
- 여기는 백호 하나! 확인!
붉은여우 소대 전차들이 전방 대전차 지뢰 제거 작업을 위해 편도 2차선 도로에서 지그재그로 정렬한 후 포 사격준비에 들어가는 동안 회색곰 소대 전차 4대는 도로 난간을 밟고 넘어가 해안가 도로 방향으로 기동했다. 그리고 엄호 및 경계 임무를 책임진 백호 소대 전차들은 각자 정해진 방향으로 포신을 돌리고는 각종 모드를 통해 상황을 파악했다.
퍼엉! 퍼엉! 퍼엉! 퍼엉!
지뢰제거탄 4발이 도로를 따라 날아가며 지상에 작은 파편들을 뿌렸다. 그러자 도로 곳곳에서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커다란 웅덩이가 파헤칠 만큼의 폭발이 일어났다.
하지만 아직도 도로 곳곳에는 위장된 대전차 지뢰 십여 개가 남은 상태, 붉은여우 소대 흑호 전차들이 재장전에 들어간 사이, 주변 일대 민가와 각종 건물에서 수상한 그림자들이 은밀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은 제38집단군 소속의 특작 보병들로 한국군으로 말하자면 특공 보병이라 할 수 있었다.
저마다 커다란 화기를 들고 건물 사이사이로 은밀하고 신속하게 움직인 특작 보병들은 어느새 붉은여우 소대 전차로부터 400m까지 접근했다.
- 전방 7시 방향! 400m 지점, 정체불명의 인형 출현! 소지한 무기는 대전차미사일로 보임! 적군으로 확인! 적군으로 확인!
전방을 경계하던 백곰 소대 전차 중 6시부터 8시 방향을 감시하던 632호 전차장이 통신망으로 알려왔다. 이에 중대장이 즉각 사격 명령을 내렸다.
- 바로 제압사격! 제압사격!
- 아! 타격 지점 여러 건물 안에 민간인으로 보이는 다수의 사람 확인!
632호 전차장으로부터 추가 보고가 올라왔다.
- 민간인? 확실한가? 네, 어린아이도 있습니다.
- 이런 제길!
이곳 역시 민간인을 여러 집에 묶어놓고 방패막이로 삼고 있었다.
- 이런 미친 새끼들을 봤나? 자국민을 방패로 삼아?
중대장이 욕설을 내뱉는 동안 여러 전차장의 질문이 쇄도했다.
- 제압사격합니까?
- 중대장님?
- 공격합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중대장은 쉽게 판단하지 못했다. 하지만 중대장의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7중대 교전 상황을 보고받은 대대장은 6중대 역시 같은 상황이 전개될 거로 생각했고 마침 기가 막힐 정도로 시간에 맞춰 대대장이 명령이 내려왔다.
- 북극성 하나다! 지금부터 민간인 무시하고 정상적인 교전에 들어간다. 반복한다. 민간인 무시하고 정상적인 교전에 들어가라!
대대장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대기 하던 백호 소대 전차들은 일제히 포격을 가했다. 표적으로 지정된 2층 건물이 통째로 폭발했고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상했다. 이에 건물 안에 있던 특작 보병과 민간인 여러 명이 산화했다.
쾅아아아앙!
가공할 폭발력에 주변 일대 건물들이 연달아 무너져 내렸다.
쿠르르르릉~
그리고 자신들의 정체가 들통났다는 것을 감지한 특작 보병들도 소지한 대전차미사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지닌 휴대용 대전차미사일은 3세대급 최신기종인 HJ-12로 적외선 호밍 방식으로 신중국 최초의 Fire and Forget 방식이었다.
도로 위에 있던 마지막 대전차 지뢰를 제거하자마자 붉은여우 소대 전차 안에서 LWR(Laser Warning Receiver)에서 레이저 감지 경고음이 울렸다.
슈어어어어와~ 슈어어어어와~ 슈어어어어와~
특작 보병답게 이들은 신속하게 대전차미사일을 발사했다. 하얀 연기 꼬리를 문 대전차미사일 여러 발이 붉은여우 소대 전차에 날아갔다.
콰앙! 콰앙!
여러 발의 대전차미사일 중 2발이 정지상태였던 붉은여우 소대 611호 전차와 613호 전차 포탑에 적중했고 나머지 4발은 SECM(전파교란시스템)에 무력화되어 표적을 잃고 허공으로 날아가다 폭발했다.
포탑 정면 장갑 부위에 직격당한 611호 전차는 순간 강한 충격에 들썩이긴 했지만 그리 심한 손상은 없었다. 전차장 현시경과 12.7mm 기관총만 너덜너덜해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613호 전차 피해는 심각했다. 대전차미사일이 팝업 형식으로 솟구쳤다가 그대로 포탑 상단장갑을 강타했기 때문이었다. HJ-12 대전차미사일은 휴대용일 정도로 크기는 작았으나 일반 장갑차에 장착하여 발사되는 HJ-10 같은 대전차미사일과 견주어 관통력은 뒤지지 않았다.
완전한 피격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충격이 613호 전차 내부를 휩쓸었고 검붉은 화염과 연기가 반쯤 쪼개진 틈 사이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각종 외부 광학장비들은 모조리 박살 난 상태였다.
기동은 가능했으나 교전불능! 사망선고와 같았다.
- 여기는 붉은여우 하나! 붉은여우 셋은 후방으로 빠지고 붉은여우 넷은 연속 제압사격! 붉은여우 둘은 셋과 함께 엄호 기동한다.
침착한 소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붉은여우 소대 전차들은 명령대로 바로 움직였다. 613호 전차는 시꺼먼 연기를 뿜으며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고 614호 전차는 전방을 향해 연속 제압사격을 가했다. 그리고 612호 전차는 613호 전차 앞으로 나서서 엄호하며 후진기동에 들어갔다.
이날 1전차대대는 자국의 국민을 방패로 삼고 교전하는 신중국군 때문에 상당한 애를 먹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승리는 했으나 아군 피해는 심각했고 민간인 피해도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공식적인 발표는 아니었으나 합동참모본부에 보고된 문서에는 민간이 사상자가 876명, 사망자가 395명으로 적혀있었다. 그리고 사망자 중에는 어린이 59명이 포함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