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5화 (465/605)

힘겨루기

2024년 1월 01일 20:40 (신중국시각 19:40),

신중국 베이징시 일대 X-15 벙커.

“장관님! 러시아로부터 긴급 연락입니다.”

한 참모가 러시아 국방부로부터 긴급히 날라온 전문을 장예흥 국방장관에게 내밀었다.

“음, 이 정도의 전력을 한 번에? 러시아도 급하긴 하는가 보군.”

전문을 읽으며 중얼거린 장예흥 국방장관은 오전부터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은 왕징위 주석을 뵈러 주석실로 향했다.

똑똑!

“뭔가?”

“장예흥 입니다.”

“들어오게.”

주석실로 들어온 장예흥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20평 남짓한 주석실은 술 냄새가 진동했고 한쪽에 마련된 간이 침실에는 왕징위 주석이 너부러진 채 반쯤 풀린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금일 아침, 총장비부 비밀연구소의 폭발사고와 그에 따라 총장비부장이 순직했다는 비보를 듣고 화가나 온종일 주석실에서 술만 마신 왕징위 주석이었다.

‘주석이란 자가 이런 상황에 술독에 빠져있다니······.’

한심하다 못해 못마땅해진 장예흥 국방장관은 기분 나쁜 감정을 뒤로하고 왕징위 주석에게 다가가 전문을 보였다.

“주석님! 러시아로부터 대규모 공군전력을 투사하자는 군사협조 전문입니다.”

“러시아로부터?”

“네, 양국이 동 시간에 대규모 공군전력을 투사한다면 아무리 강한 한국이라 해도 100% 대응하지 못할 것입니다.”

“흥! 자네는 러시아를 믿나?”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상호군사보호조약까지 맺은 상황에서 군사동맹국을 믿냐는 질문에 어리둥절했다.

“허허, 아둔해서야······.”

왕징위 주석은 혀를 찼다.

“우리 공군을 미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네.”

“네?”

“우리 공군을 죄다 투입 시켜 한국놈들과 싸우게 하고 양국 전력이 소모되면 그때 러시아 공군전력을 투입하여 날로 먹겠다는 의도가 아니고 뭐겠나?”

“네? 그건, 좀 지나친 생각이라 듭니다.”

“뭐? 지나친 생각? 크억!”

왕징위 주석은 술병을 든 채로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비틀거리며 소파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한숨에 술병을 들이키고는 딸꾹질을 하며 소리쳤다.

“저런 놈을 국방장관에 올린 내가 바보지! 한심하다. 한심해!”

왕징위 주석은 술에 취했는지 안하무인이 되어 횡설수설했다. 아무리 한 국가의 주석이라고 하나, 국방장관에게 대놓고 놈이라고 욕설을 내뱉는 건 실례였다. 이에 장예흥 국방장관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였다.

“주석님! 그렇다면 러시아의 공동작전요청을 거부하실 겁니까?”

“아직도 머리가 안 돌아가나?”

왕징위 주석은 손가락을 자신의 머리를 돌리는 시늉을 했다.

“음, 죄송합니다.”

“쯧쯧, 일단, 러시아가 요청한 대로 한다고 전하게.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면 안 되지. 모든 공군전력을 총동원할 수 있도록 준비만 하고 기다렸다가, 러시아 놈들이 한국놈들과 붙고 나면 그때 출격시키란 말이야. 러시아 놈들의 계획을 역이용하자는 거지. 하하하”

왕징위 주석은 뭐가 그리 좋은지 불룩하게 튀어나온 배를 보이며 주석실이 떠나가라 웃었다.

“주석님! 만약 주석님 생각이 틀리셨다면, 향후 큰 문제가······.”

“뭐야? 지금 나의 판단을 우습게 보는 거야?”

“그게 아니라······.”

“닥치고 하라는 대로 해! 당장 총참모장에게 지시를 내리란 말이야.”

양국의 동시다발적인 대규모 공군전력 투사로 현재의 전쟁 양상을 뒤집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술에 취해 잘못된 판단을 해버린 왕징위 주석, 이에 장예흥 국방장관은 다시 한번 조심히 입을 열어 설득했으나 돌아온 건 자존심을 뭉개는 온갖 욕설뿐이었다.

독재자 한 명이 모든 의사결정을 자기 마음대로 해버리는 1인 독재국가의 병폐를 그대로 보여주는 예였다.

★ ★ ★

2024년 1월 01일 22:00 (신중국시각 21:00),

신중국 톈진시 베이천구 공업단지 15구역 외곽.

“박 팀장님! 본국으로부터 뭔가 도착했습니다.”

오후 3시가 돼서야 잠이 들었던 박기웅 팀장은 윤길수 주임의 불음에 실눈을 뜨며 말했다.

“뭐가 도착해?”

“윤 팀장님이 알아보신 거라고 하던데요?”

순간, 박기웅 팀장은 벌떡 일어나더니 곧바로 거실로 달리듯 나갔다.

“이거야?”

“일어났냐?”

윤태진 팀장의 인사를 뒤로 흘리고 거실 한복판에 놓여있는 커다란 상자에 시선을 고정한 박기웅 팀장은 생각할 것도 없이 그대로 상자를 뜯어냈다.

“아! 자식! 눈이 돌아갔구먼. 돌아갔어! 그게 VR-M2 투시경보다 한 열배는 성능 좋은 다영역파 뭐시기 하는 구조용 장비란다. 이름은 CRB-330 이라고 했나? 암튼 그거다. 성능은 지하 50m까지 생체반응 및 위치추적이 가능하다고 하더라”

윤태진 팀장의 설명을 듣는 듯 마는 듯 정신없이 상자를 뜨는 박기웅 팀장은 VR-M2 투시경보다 두세 배나 큰 장비를 꺼내 들고는 이리저리 살폈다. 그리고 그제야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며 말했다.

“야! 윤 팀장! 고생했다.”

“빨리도 말한다. 이거 구하느라 개고생했다.”

“오케이, 오케이, 본국으로 돌아가면 화끈하게 술 한번 쏠다.”

온 신경이 장비에 박힌 채 설명서를 보며 만지작거리는 박기웅 팀장에게 윤태진 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야! 박 팀장!”

“아 왜! 이따 말해! 바빠!”

“국장님께서 철수하란다.”

“뭐?”

순간 박기웅 팀장은 하던 걸 멈추고는 얼어붙은 듯 되물었다.

“뭘 철수해?”

“본국으로 오래”

“이런 시팔! 철수하라고 할 거면서 이건 왜 보낸 거야?”

“사실 그거! 우리 국에서 보낸 거 아니고 이혜진 과장님께서 소방국에 협조 요청해서 긴급하게 보내온 거다.”

“뭐? 에잇! 언제까지 철수야?”

“내일!”

“내일? 지랄하네. 엿 같아서 이번 일 끝나면 퇴사하고 만다 정말!”

“박 팀장! 본국에서는 두 과장님을 순직한 거로 판단한 듯하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냐?”

박기웅 팀장의 물음에 윤태진 팀장은 잠시 뜸을 들이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그 상황에서는 살아남기 힘들지!”

“이 자식이 정말? 염병 떨래?”

급기야 박기웅 팀장은 윤태진 팀장의 멱살을 잡고는 흔들었다. 이에 3팀 이은하 팀장이 두 팀장 사이로 끼어들어 말렸다.

“아! 왜 그러세요. 부하들도 보는데, 박 팀장님 흥분 가라앉으세요.”

“마! 네 마음 이해 못 하는 거 아니다. 나도 두 과장님이 살아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그렇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잖아?

“그래도 이 자식이!”

팍!

휘두른 박기웅 팀장의 주먹에 얼굴을 맞은 윤태진 팀장이 중심을 잃고 거실 바닥에 나뒹굴었다.

“어어? 참으세요. 박 팀장님!”

4팀장 성상윤 팀장까지 달려들어 이은하 팀장과 함께 박기웅 팀장을 말렸다.

“야! 아무리 그래도 뭔가는 해보고 판단해야지 새꺄!”

“박 팀장! 신중국과 전쟁 난 거 알잖아? 조만간 이곳에도 전략급 폭탄이 떨어진다고 철수하라는 거야. 우리 직원들 안전도 생각해야지 자식아!”

터진 입술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윤태진 팀장이 말하자 박기웅 팀장은 보호 슈트를 벗으며 소리쳤다.

“나! 오늘부로 퇴사하니까. 명령 들을 필요 없지? 다들 윤 팀장과 돌아가! 그리고 이 장비는 이 과장님께서 소방국 통해 전달한 거니까 본사랑 상관없으니 내가 쓰도록 한다. 이의 없지? 다들 철수할 준비 해!”

박기웅 팀장은 할 말만 하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에 일어나 소파에 앉은 윤태진 팀장은 천장을 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대외정보1과의 비밀 안가는 초상집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 ★ ★

2024년 1월 01일 23:00 (러시아시각 23:00),

러시아 자바이칼 지방 치타 상공.

러시아군 40만 병력이 새벽 2시를 기해 일제히 대반격에 나선 내몽골자치주 북서부전선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지옥의 화약고였다. 20시간 동안 포성과 폭음이 끊이지 않았다.

방어하는 대한민국 국군은 고작 8개 사단 10만 병력이었지만, 대규모 공습에 따른 공군전력 지원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4배에 달하는 수적 우위의 전력을 보유했으나 현대전은 최첨단 무기로 인해 대량살상력이 매우 증대한 전쟁이었다. 즉 제2차 세계대전 때처럼 물량전으로 승부를 보는 전쟁이 아니었다. 상대국보다 얼마나 더 진보한 장비와 대량살상 전력을 보유했는지가 관건인 전쟁향상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대규모 물량전을 무시할 순 없었다.

이렇게 국경선을 두고 엎치락덮치락 힘겨루기하는 가운데, 러시아군은 대한민국의 후방 타격을 위해 대규모의 스페츠나츠와 공수군으로 공수작전에 돌입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움직임은 진작에 해외정찰국 정찰위성으로부터 정찰되어 그에 맞는 대비를 한 상황이었다. 즉 자칫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 신세가 될 수 있는 악수를 두고자 했다. 사실 러시아로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견고한 방어선 뚫고 진공을 하기 위해서는 후방 일대에 대한 타격은 필수였고 더 큰 이유는 제35군에 이어 제36군 방어선을 돌파하고 국경선을 따라 빠르게 우회하며 밀고 들어오는 제7기동군단(선봉) 때문이었다.

만약 방어선을 뚫지 못하고 국경선 일대에서 지체하여 우회하는 제7기동군단(선봉)에 측면을 내주게 된다면, 큰 피해를 볼 수 있었고 자칫 대반격 작전까지 실패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후방 타격은 필수였고 무조건 해야만 하는 작전이었다.

오후 10시가 되자, 러시아군은 드디어 본격적인 공중강습작전을 실행했다. 치타 근방에서 집결했던 스페츠나츠 수천 명과 12개 강습여단은 2014년부터 도입한 전략수송기인 IL-476 일류신을 비롯해 An-124 러슬란 등 최신예부터 구형 수송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군 수송기 100여 대가 여러 비행장에서 이륙했다.

대한민국 공군의 지속적인 폭격과 미사일 공격을 고려하여 6곳 군 비행장에서 나뉘어 일제히 이륙한 수송기들은 서서히 기수를 선회했다. 기수를 돌린 방향은 합동참모본부가 공중강화 지점으로 예상했던 후룬베이얼이 방향이었다.

이렇게 100여 대기의 대규모 수송기가 여러 그룹으로 대형을 갖추고 비행하는 전방 상공에는 남부군구의 제4항공군과 중부군구의 제2항공군 소속의 전투기 400여 기도 이미 출격한 상태였다.

이들의 임무는 다양했다. 군 수송기의 호위 임무뿐만 아니라 다수의 전폭기로 지상공격에 참여할 예정이었던지, Tu-22M3 투폴레프 전략폭격기 24기도 함께 비행 중이었다. 즉, 단순 지상 타격이 아닌 전략적 폭격 임무가 주어졌다.

그리고 후방 300km 상공에는 A-100 프리미어 공중조기경보기 8기도 각자 거리를 두고 비행 중이었다. A-100 프리미어 공중조기경보기는 IL-476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한 공중조기경보기로 2022년부터 실전 배치가 된 최신예 기종이었다. 원래는 2019년에 실전 배치할 계획이었으나 여러 가지 시행착오와 스텔스기를 탐지할 수 있는 강력한 레이더를 탑재하기 위해 3년이나 늦어졌다.

늦어진 만큼 성능은 탁월했다. 극초단파(UHF, Ultra High Frequency) 무선신호 및 위성통신 광대역 송수신, 대용량 통신 중계 기능까지 포함한 데이터링크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어 전투기와 공대공 및 공대지 미사일을 직접 운용이 가능했다. 또한, 활용이 높아지는 무인항공기, 무인지상무기, 무인함정 등과 직접제어 및 무기 사용이 가능한 데이터링크 기능도 개발되었다.

즉, 지상에 전개 중인 각종 방공부대와 대기권 밖에 있는 정찰위성, 그리고 해상의 구축함들과 완벽한 네트워크 구축으로 한 실시간 데이터링크로 입체작전이 가능한 전천후 공중지휘기지라 불리게 되었다.

신중국 역시 대규모 공군전력을 투사하겠다는 답장이 온 만큼 러시아 총참모부는 자신 있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대한민국 공군전력에 어느 정도 타격을 입힌다면 제공권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있을 모든 전투에서 일방적으로 당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편 현재 러시아 공군전력의 움직임을 부처님 손바닥 보듯 뻔히 파악하고 있는 합동참모본부 역시 그에 맞는 대응전략을 수립한 상태였다.

먼저 만주 3개 주에 주둔한 공군기지에서 가용한 모든 전투기가 출격 준비를 마쳤고 우주항공군 소속 제2우주전투비행단 망산기지에서도 CFS/A-31SP 삼족오 우주전투기 24기와 CSRQ-100P 페가수스 우주정찰기 12기도 이미 대기권 상에서 유유히 비행 중이었다. 더불어 전략위성단 소속 CS-AD 제우스 전략요격위성 3기도 이번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각각 궤도 상에서 공격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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