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4화 (464/605)

대규모 응징

2024년 1월 01일 11:30 (우크라이나시각 05:30),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스파르천코프 서단 10km.

지난날 28일, 토크마크 군 비행장에 도착한 제5해병사단(지룡)은 대대별로 이동 후 우크라이나군 수뇌부와 반군 토벌과 관련된 작전 안을 수립하기 위한 회의에 들어갔고 3일 후인 금일, 우크라이나군 제65차량화보병사단과 함께 도네츠크주 수복을 위한 진공에 들어갔다.

9년간 지속한 내전 탓에 도네츠크주의 마을과 도시는 대부분 크게 훼손되어 있었다. 특히 주 경계선과 인접한 마을은 거의 폐허 수준에 가까웠다.

멀쩡한 건물은 눈을 씻고도 볼 수 없었으며 반쯤 허물어져 있거나 아니면 완전히 무너져내려 건물터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할 뿐이었다. 그리고 도로에는 각종 건물 잔해들이 수북이 쌓여있었고 붉게 녹슨 채로 방치된 자동차들이 흉물스럽게 서 있었다. 그리고 치열한 교전이 있었음을 보여주듯 자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전차와 장갑차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영하에 가까운 날씨 속에 찬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이곳 작은 도시 스파르천코프는 마치 사람이 살지 않은 죽음의 도시처럼 보였다. 아마도 주 경계선과 근접한 도시였던 터라 교전은 매우 치열했고 이로 인해 이곳 작은 도시의 거주민들은 모두 피난을 한 듯했다.

이런 을씨년스러운 작은 도시에 지면을 울리는 캐터필러 소리가 서서히 크게 들리며 이내 장갑차 대열이 스파르천코 외곽에 모습을 드러냈다.

쿠르르르응! 쿠르르르응!

자체 양 옆면에 황금용 마크가 새겨있고 기다란 깃발에 태극기가 펄럭이는 제5해병사단(지룡) 제51해병연대 27해병대대 소속의 K-24P-N 상륙돌격장갑차 십여 대와 각종 장갑차가 기다란 종대 대형으로 도시 초입에 다다르자 서서히 횡대 대형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한편, 도시 외곽에 임시로 만든 초소에서 보초병이 27해병대대를 확인하고는 다급히 초소 아래층에 있는 중대본부로 뛰어갔다.

“중대장님! 서단 초입 대규모 장갑차부대가 출현했습니다.”

“뭐야? 장갑차부대?”

난로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한 컷 여유를 부리며 쉬고 있던 상위 계급장의 장교가 벌떡 일어나 초소로 뛰어 올라갔다.

그는 전방구역을 담당하는 반군소속 제1경비중대 중대장 파기즈 갈리울린이었다.

“뭐, 뭐야? 정말 장, 장갑차부대잖아? 제길, 저기까지 오는 동안 뭐했어?”

초소에 올라와 보초병의 망원경을 뺏다시피 낚아채고는 서단 초입 쪽을 바라보더니 질타 섞인 목소리로 일갈했다.

“죄송합니다.”

중대장의 질책에 보초병은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보초병을 째려본 파기즈 갈리울린 상위는 다시금 망원경으로 자세히 확인했다.

“저것들, 우크라이나군은 아닌 듯한데? 정체가 뭐지? 아니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보초병에게 망원경을 넘긴 중대장은 다시금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가 통신병에게 검지만 편 손을 보여주며 통신 수화기를 들었다.

이에 통신병은 무슨 뜻인지를 아는지 통신 콘솔을 조작했다.

“대대본부에 연결되었습니다.”

통신병의 말에 파기즈 갈리울린 상위는 다급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여기는 1경비중대 중대장 갈리울린입니다. 현재 서단 초입에 장갑차 다수 포착! 대략 파악한 숫자는 30여 대로 추정! 즉시 지원 바랍니다.”

- 뭔 소리야? 장갑차라니? 우크라이나 놈들인가?

통신 수화기 너머로 대대장의 신경질적인 반응이 전해왔다.

“우크라이나군은 아니듯 합니다. 장갑차 생김새도 그렇고 처음 보는 깃발이 걸려 있습니다.”

태극기의 정체를 모르는 파기즈 갈리울린 상위는 장갑차부대가 대한민국 해병대라는 건 알 수 없었다.

- 정확한 좌표 보내! 박격포 공격을 가할 테니까 말이야.

“박격포로는 안될 거 같습니다. 지금 하차하는데 생각보다 인원이 많습니다.”

- 그걸 누가 몰라? 연대에 긴급 지원 때릴 테니까 그렇게 알고 좌표나 불러.

“네, 좌표는 48°24'31.03"N 36°40'46.79"E입니다.”

“알았다. 지원부대가 올 때까지 방어선을 지켜라!”

“네, 알겠습니다.”

통신을 끝낸 파기즈 갈리울린 상위는 난감했다. 현재 제1경비중대 병력은 160여 명! 생전 처음 보는 특이한 장갑차에서 내리는 적군 수를 봤을 때 200여 명은 훌쩍 뛰어넘는 숫자였기 때문이었다.

“제길! 적어도 대대급 병력인데 중대 병력으로 어떻게 막으라는 거야.”

엄한 수화기를 내팽개치듯 던져버린 파기즈 갈리울린 상위는 다소 짜증 난 표정으로 참모진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원 전투준비! 각자 위치로 이동하고 대대본부에서 박격포 공격이 있을 것이다. 또한, 대대에서도 즉시 지원부대를 보낸다고 했으니 그때까지 방어선을 사수해야 한다. 다들 알았나?”

정규군은 아니지만 9년간 내전을 겪으면서 어느 정도 베테랑 수준에 도달한 참모진들은 중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각자 부하들을 데리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2019년 2월, 러시아군이 내전에 본격적으로 참전하자 우크라이나군은 도네츠크주와 루한스카주에서 철수하고 말았다. 이에 도네츠크주와 루한스카주는 반군 손에 완전히 넘어갔고 5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렇다 할 대규모 교전은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크라이나는 두 개 주에 대한 영향력은 현저히 떨어졌고 반군의 승리로 굳어져 이제 러시아에 편입하는 절차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상황이었다.

한편, 상륙돌격장갑차에서 하차한 해병들은 도시 내부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신속히 이동하며 시가전 준비에 들어갔다.

최첨단 광학장비인 실드글라스를 착용한 해병들은 사주경계를 펼치며 분대별로 이동해 나갔다. 해병들은 전방 몇백 미터 거리까지 피아식별에 따른 생명체 탐지는 물론 화기 소지 여부, 그리고 소지한 화기의 판별 등, 각가지 정보를 실시간으로 획득했다.

더욱이 인버터 모드로 건물 전체를 투시로 확인하여 건물 안에서 숨어있는 적군도 모조리 찾아낼 수 있었다.

이렇게 탁월한 성능의 최첨단 광학장비를 사용하는 해병대는 전투 중에서도 가장 위험하다고 볼 수 있는 시가전을 신속하고 빠르게 처리해 나갈 수 있었다.

폐허에 가까운 건물들이 즐비한 시내 쪽으로 서서히 들어가려는 그때 하늘에서 피리 부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곳곳에서 폭발음과 함께 흙기둥이 사방에서 솟구쳤다.

“피해! 박격포탄이다.”

누군가의 고함에 해병들은 저마다 신속한 동작으로 주변에 엄폐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뛰어갔다.

쮸웅쮸웅쮸웅쮸웅~ 쮸웅쮸웅쮸웅쮸웅~ 콰앙! 콰앙!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던 상륙돌격장갑차에서 22mm 레이저 빔이 하늘을 향해 붉은빛을 뿌렸다. 또한, 외곽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대본부 소속의 K-30 비호A2에서도 12mm 6열 벌컨 2문도 사정없이 하늘에 대고 붉은빛을 날렸다.

빛 속도로 날아가는 붉은빛이 일제히 하늘을 수놓자 크고 작은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간혹 레이저 빔의 화망을 뚫고 박격포탄이 해병들이 엄폐한 곳에 낙탄하며 폭발했다.

쿠아앙!

흙기둥이 솟구치며 폭탄 파편과 건물 잔해들이 사방으로 비상했다. 해병들은 엄폐한 곳에서 저마다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박격포 공격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

박격포탄이 아군 지역에 떨어진 지 2분도 안 된 시점, 후방 10km에서 대기하고 있던 제5포병연대 745포병대대 알파포대에서 즉각적인 응징 대포병 사격에 들어갔다.

기존 C-9 선더볼트를 대폭 개량한 C-9A1 라이트닝 자주포 6문은 사격통제시스템이 완전 자동화인지라 분당 10발에 가까운 속도로 플라즈마탄을 발사했다. 비록 6문밖에 되지 않았지만 엄청나 발사속도로 인해 마치 일반 포병대대 전체가 쏘는 결과를 보였다.

알파포대의 대포병 사격이 가해지고 몇 분 후 박격포 공격은 멈췄다.

“전체 앞으로 이동!”

더는 박격포탄이 떨어지지 않자 3중대 중대장 오성원 대위가 진격 명령을 내리자 각 소대 소대장들이 앞서 달리면 자신의 소대원들에게 진격 명령을 내렸다.

“1소대 앞으로”

“2소대 앞으로”

“3소대! 앞으로”

“화기소대! 전방 지원사격!”

9년간 이어진 우크라이나 내전을 종식하기 위해 대한민국 해병대가 본격적으로 교전에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 ★ ★

2024년 1월 01일 13:30 (신중국시각 12:30),

신중국 톈진시 베이천구 공업단지 15구역 외곽.

축구장보다 넓었던 하이싼 공장 전체가 무너져내려 각종 콘크리트와 철재 구조물만이 이리저리 엉켜 흉물스럽게 변해버린 이곳에 다시 찾아온 박기웅 팀장은 2km 떨어진 어느 건물 옥상에서 VR-M2 투시경를 통해 수북이 쌓여있는 건물 잔재 아래들 샅샅이 살폈다.

현재 무너져내린 하이싼 공장 부지를 중심으로 수많은 공안병력과 무장 군인들이 이중 삼중으로 통제선을 설치하고 민간인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고 20여 대의 중장비가 쉬지 않고 건물 잔해들을 파내고 있었다.

여러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혹시나 살아있을 사람들을 구조하려는 듯했으나 박기웅 팀장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박기웅 팀장의 눈에는 어떻게든 지하에 묻혀있는 서버를 찾아내 플라즈마 핵심기술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개자식들 아주 목숨을 거는구나 걸어!”

아랫입술을 질근 깨든 박기웅 팀장은 그것보다 두 과장 생사가 걱정됐다. VR-M2 투시경의 배율을 최고로 조정하고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위치 정보를 참고하여 스캔을 해봤지만, 이렇다 할 생명체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박 팀장! 어떻게 됐어?”

언제 왔는지 윤태진 팀장이 캔커피를 건네며 물었다.

“어? 왔어? 아직 찾지는 못했다.”

온 줄도 모르고 스캔하는데 정신이 빠졌던 박기웅 팀장은 잠시 VR-M2 투시경을 내려놓고 건네받은 커피를 단숨에 마셨다.

“야! 천천히 마셔! 뜨겁다.”

“오케이”

“혹시, 과장님들 빠져나오신 건 아닐까?”

“그랬으면 벌써 숙소로 오셨겠지.”

“음, 그렇긴 하지! 아! 정말 걱정이다.”

윤태진 팀장은 VR-M2 투시경을 들어 한창 중장비가 작업하는 곳을 스캔했다. 박기웅 팀장 말대로 여기저기 살펴봤지만, 그 어떠한 생명체 반응은 없었다. 벽 투시도 아니고 흙과 콘크리트가 겹겹이 10여 미터나 쌓여있는 터라 VR-M2 투시경으로 확인하기엔 무리였다.

“이것보다 더 성능 좋은 장비는 없나? 그래, 그렇지”

스캔하다 말고 윤태진 팀장은 자신의 무릎을 쳤다.

“뭐가?”

“소방대 말이야. 지진이나 사고로 건물 잔해에 묻힌 사람들 찾아내는 그런 장비가 있지 않겠냐?”

“음, 그렇지, 당장에 알아봐야겠다.”

“야야! 내가 팀원들 시켜서 본국 소방청에 알아보라고 할 테니까 이만 철수하자! 너 한숨도 못잖잖아.”

“오늘 중으로 알아볼 수 있지?”

“알았다. 알았어. 이만 가자!”

박기웅 팀장은 윤태진 팀장의 말에 일말의 희망을 품고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 ★ ★

2024년 1월 01일 16:00 (신중국시각 15:00),

신중국 베이징 상공.

20분 전, 성남기지 제1우주전투비행단에서 출격한 알파편대 CFS/A-31SP 삼족오 우주전투기 1호기가 TCS모드 상태로 베이징 상공에 막 진입했다.

“와!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삽니까? 완전히 이건 지옥인데요?”

1호기 부조종사인 오태빈 대위가 캐노피 너머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고개를 절레거리며 혀를 찼다.

신중국의 황사는 사시사철 심했지만 유독 겨울에는 더욱 심각했다. 거기다가 경제부흥을 위해 기존에 있던 환경 관련 규제까지 없애버려 수많은 공장 굴뚝에서는 24시간 유해성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가 온 거 아니냐?”

1호기 주조종사 최영호 중령이 조종간 레버를 당기며 말했다.

“우리가 온 거라니요? 달까지 갈 수 있는 최첨단 우주 비행체를 고작 우체부로 만들었는데요.”

“우체부?”

“네, 우체부지 뭐겠습니까?”

“하하하, 우체부라······. 그거 웃기네.”

두 조종사가 잡담을 주고받는 사이 항전운용통제관인 조은빈 대위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앞으로 1분 후 타격 항정지점에 도달합니다.”

“헐! 조 대위! 뭔 타격 항정지점이야? 전단지 상자로 도시를 날려버리게?”

“네? 그럼 뭐라고 말해요? 이것도 임무인데 전투 용어를 써야지요. 호호”

“아! 그래, 그래,”

최첨단 우주전투기로 고작 전단지나 뿌리는 임무가 무척 마음에 들지 않은 오태빈 대위가 입을 비쭉거렸다.

“오 대위! 임무에 대소사가 어딨나? 맡은 임무 충실히 하는 거지”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삼족오 우주전투기 1호기의 하단 페어링이 열리자, 폭탄 모양과는 사뭇 다른 투명한 상자들이 차례대로 지상을 향해 떨어졌다. 그리고 어느 정도 고도에 다다르자 작은 폭발과 함께 상자 안에 들어있던 수많은 종이가 흩날리더니 베이징 전체로 퍼져나갔다.

베이징 상공에 흩날리며 떨어지는 종이에는 중문으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신중국 국민 여러분, 앞으로 7일 후 아래에 적혀 있는 모든 도시에 핵폭탄 이상의 위력을 가진 강력한 폭탄이 떨어질 예정입니다. 부디 이 글을 읽으셨다면 즉시 피난을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단에는 32개 도시 이름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날 오후, 베이징을 포함한 32개 도시 상공에는 피난 가라는 내용의 전단지 수천만 장이 겨울 눈 대신 하늘을 가득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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