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8화 (208/605)

속임수

2021년 2월 07일 21:00 (미국시각 08:00),

미국 워싱턴 D.C 외곽 어느 건물(USSC 별장).

음산한 느낌의 낡은 건물의 실내, 약간 어두운 조명 속에서 넓은 홀 위쪽 벽면에는 검은 가면을 쓴 13인 반원형 형태로 앉아있었고 반대편 중앙에는 백발의 중년 사내가 앉아있었다.

바로 미국의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지금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최고 권한자다운 대우나 의전 지원을 받고 있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일반인과 다름없는 대우를 받으며 13인의 검은 가면과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이어갔다.

대화의 주제는 현재 한일전에 관한 이야기였고 그 중 핵심은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말한 한 가지였다.

“대체 그 인간은 어떻게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허스키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심각한 어조로 물었다. 그는 베토벤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13인 검은 가면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스핑크스! 대체 보안을 어떻게 한 것이오? 이런 중대한 정보가 흘러나가다니······.”

USSC의 의장인 빅토리아가 왼편에 앉아있는 스핑크스를 보며 말을 흘렸다.

“그놈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절대 제 쪽에서 정보가 흘러나간 것이 아닙니다.”

“그걸 어떻게 장담합니까?”

USSC 부의장 체스맨이 화난 어조로 되물었다.

“시간을 주신다면 제가 알아내겠습니다.”

“그건 나중 일이고 지금 상황에서는 아베 그 친구의 협박 아닌 협박에 대해 대처를 해야지 않겠습니까?”

13인의 검은 가면 중 가장 젊은 목소리의 주인공인 블랙킹이 좌우를 쳐다보며 가장 먼저 해결을 부분을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님.”

“네, 빅토리아님.”

미합중국의 대통령이자 5조 4천억 원대의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 대통령은 빅토리아의 부름에 정중히 대답했다. 미국 국민이 이 장면을 보았다면 기겁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국민의 투표로 당선된 대통령이 얼굴을 가린 수상한 13인에게 꼼짝 못 하는 장면을 본다면 말이다.

“한국의 요구조건을 거부한 아베 총리가 미국 정부에 정확히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빅토리의 질문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아베 총리는 군사강화조약을 빌미로 한국과의 전쟁에 있어 정식으로 미국의 참전을 원하고 있습니다.”

“군사강화조약은 핑계고 8‧15 평양 폭탄 테러에 우리 조직이 관여했다는 걸 가지고 협박하는 게 아닙니까? 아베가 넘지 말아야 선을 넘고 있습니다.”

가장 보수적이고 고지식한 성격의 소유자인 닉네임 콜롬버스가 회의 탁자를 두드리며 화나간 어조로 말했다.

“현재 일본에 가 있는 책임자가 누구입니까? 대통령님.”

“백악관 대외전략협상관인 랜디 존슨입니다.”

“알겠습니다. 여러분!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번 건은 의장의 권한으로 결정하겠습니다. 이의 있습니까?”

빅토리아 의장은 좌우를 살피며 물었다. 이에 나머지 12인의 검은 가면은 침묵으로 이의가 없음을 알렸다.

“그럼 이의가 없는 것으로 알고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님!”

“네, 빅토리아 의장님.”

“일단 일본 아베 총리에게 군사 강화조약에 따라 군사적 행동에 들어간다고 전하세요. 그리고 대통령께서는 태평양함대를 전시 체제로 전환합니다. 신속한 명령을 내려주세요.”

“빅토리아! 문제는 한국은 한국 시각 기준으로 8일 18시까지 요구조건을 일본이 수용하지 않으면 일본 전역에 대한 공격을 감행할 것이고 일본의 아베 총리는 재차 공격을 받으면 8‧15 평양 폭탄 테러에 대한 사실을 전 세계 언론에 알릴 것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트럼프 대통령은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말했다.

“당연히 한국에도 얘기해야지요. 일단 시간을 벌어야 하니 한국 정부에는 일본을 설득해 항복 조건을 받아내겠으니 1주일의 시간을 더 기다려 달라고 하세요.”

“과연 한국이 양보할지 모르겠습니다.”

“동맹국으로서 이 정도 요청도 들어주지 않는다면 우리 미국은 일본에 손을 들어줘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하세요. 또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태평양함대가 움직인다는 사실도 말이죠.”

“알겠습니다. 한데, 빅토리아님의 정확한 의중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시간벌기입니다. 아베 총리가 세계 언론에 우리 조직은 물론 8‧15 평양 폭탄 테러 사건에 대해 나불거리는 짓은 막아야지 않겠습니까? 적절한 조치를 할 때까지 말입니다.”

빅토리아의 목소리는 차갑게 바뀌어 있었다.

“적절한 조치라면······.”

★ ★ ★

2021년 2월 08일 08:00,

일본 도쿄도 아다치구 외곽 내각 전용 건물.

전날 랜디 존슨으로부터 미국의 입장을 전해 들은 아베 총리는 아침 일찍부터 통합막료감부와 각 부서 대신들을 소집하여 비상회의를 가졌다.

“미국이 정식으로 참전하는 듯합니다. 먼저 태평양함대가 전비 상태로 전환한다고 합니다.”

“정말입니까? 총리님.”

“그럼 지금 내가 농담이나 할까요?”

해상막료장의 물음에 아베 총리는 핀잔주듯 대꾸했다. 근래 모든 해상전에서 패배만 하는 해상자위군 때문에 무라 카와 해상막료장은 미운털이 박힌 상태였다.

“통합막료장.”

“네! 총리님.”

“미국이 정식으로 참전하면 미군과 우리 자위군과의 협조가 중요합니다. 통합막료장은 주일 미군 사령관과 전쟁 수행에 있어 적극적 협조를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총리님.”

이때 시바사키 방위성 대신이 총리에게 다가가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총리님! 평양 건이 먹힌 겁니까?”

“쉿! 조용하시오.”

아베 총리는 시바사키 대신을 향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흘겼다.

“죄송합니다. 총리님.”

“시바사키 대신은 생각 좀 하면서 말하세요.”

“제가 실수했습니다.”

시바사키 대신이 머리를 조아리는 가운데 보좌관 하나가 달려와 다급히 수화기를 건넸다.

“야구마치 겐조 보좌관입니다.”

“그래요? 다들 회의를 진행하고 계시오.”

아베 총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건너편 총리실에 들어갔다.

- 여보세요.

- 안녕하십니까? 총리님! 야구마치 겐조입니다.

- 그래 어떻게 되었나?

- 얘기는 잘되었습니다. 요청하는 날에 러시아에서 움직여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야구마치 겐조는 말은 끝에서 흘렸다.

- 조건이라니? 뭘 말하는 건가?

- 푸틴 대통령은 북방영토(쿠릴 열도) 4개 섬에 대한 일본의 영토 주장을 철회하고 러시아의 영토임을 인정한다는 합의서를 원합니다.

아베 총리는 살짝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 그렇게 한다고 전해! 생각보다 조건이 나쁘진 않군!

러시아와 영토분쟁이었던 북방영토(쿠릴 열도)는 현재 러시아가 실효 지배 중인 4개의 섬이었다. 현재 일본이 한국에 패전하느냐 아니냐 하는 상황이었고 또한 일본 영토를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닌 이상 충분히 수락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 그럼 요구조건에 대해 수락하는 것으로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 그렇게 하도록 하게.

어제까지만 해도 암울했던 아베 총리는 뭔가 일이 술술 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후후후! 이제 뭔가가 돼가는군!’

전화 통화를 마치고 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회의실은 자위군의 재편성과 관련해 회의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 ★ ★

2021년 2월 08일 13:00,

서울 종로구 외교부 장관실.

아침 일찍 비행기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랜디 존슨 대외전략협상관은 이번에도 주한 미 대사인 월리 골드와 함께 외교부를 방문하여 어젯밤 전달받은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전했다.

“1주일이라고 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김 장관님.”

“분명히 저희는 금일 오후 6시까지 수용 여부에 대한 답을 원했습니다.”

“압니다. 하지만 요구조건이 일반 조건도 아니고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런 중대한 사안을 사흘 만에 결정할 순 없지 않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김 장관님.”

“그건 일본 사정 아닙니까? 우리 대한민국 정부가 지금 상황에서 일본 입장을 이해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 장관님.”

랜디 존슨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커피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네, 말씀하시지요.”

“일주일 정도 시간을 달라는 건데 그것도 못 들어줍니까? 우리 미국 입장이 지금 매우 난처한 상태입니다. 또한, 우리 정부에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태평양함대에 전비 명령을 내린 상태입니다.”

“만일에 사태? 태평양함대에 전비를 지시했다고요?”

“그렇습니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랜디 존슨의 자세가 조금은 거만해지며 소파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지금 태평양함대를 들먹이며 우리 정부를 협박하려는 겁니까?”

“아! 그걸 협박으로 들으셨습니까? 아닙니다. 단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자 합니다.”

“그러니까요. 만일의 사태가 바로 한국과의 전쟁을 말씀하는 거 아닙니까?”

불편한 표정을 지은 김재학 장관은 랜디 존슨을 노려봤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서현우 대통령님께 잘 말씀드려 일주일만 연장해 주시면 됩니다. 요구 철회도 아니고 단지 일주일만 연장해달라는 부탁이 아닙니까?”

이번엔 함께 온 월리 골드 주한 미 대사가 말했다. 이에 김재학 장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알았습니다. 호텔에서 기다려 주시면 대통령님께 보고를 드린 후 전화 드리겠습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장관님! 그럼 전 이만 호텔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장관실을 빠져나가는 랜디 존슨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김재학 장관은 이내 대통령과 연결된 전화기의 수화기를 들었다.

★ ★ ★

2021년 2월 08일 15:00,

전남 목포 해군기지 군항.

3일 전 인천항에서 일본 상륙작전을 위해 출항한 제10상륙함대를 비롯한 제7기동전단과 제2함대 구축함, 그리고 수많은 지원 수상함은 갑작스러운 작전 취소로 이곳 목포항 해군기지 정박지 해상에서 닻을 내린 채로 3일의 시간을 보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제2해병사단, 제3해병기동사단, 제6해병여단의 해병과 4개의 공수특전사단 및 특전사는 잦은 파도로 흔들리는 탓에 뱃멀미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아! 죽겠습니다.”

은현준 일병이 뱃멀미가 심한지 초점 잃은 눈으로 헛구역질해댔다.

“더럽게! 화장실 가서 해.”

분대 선임인 오수경 상병이 은현준 일병을 밀어내며 소리쳤다.

“너무 하십, 우엑!”

“너무하긴! 너 여기다 토하면 죽는다. 어서 화장실이나 가! 아휴 막내도 잘 버티는구먼. 일병이란 놈이.”

“화장실 꽉 찼습니다.”

화장실마다 뱃멀미로 인해 토해대는 해병대원으로 항상 만원이었다. 이때 중대 행보관이 선실에 들어왔다.

“필승.”

“필승이고 뭐고 니들이 해병대냐? 무슨 해병이 이틀 동안 배 탔다고 뱃멀미나 하고 아휴! 육지에 내려가면 빡시게 한판 굴려야겠어.”

연대에서도 로보캅이라 불리며 유명한 중대 행보관인 윤홍길 중사가 시퍼런 눈을 부라리며 맥없이 쓰러져 있는 해병대원들을 보며 일갈했다.

“행보관님! 저 정말 죽겠습니다.”

생김새는 우락부락하고 말투가 거칠어도 항상 사병들을 챙겨주는 윤홍길 중사에게 은현준 일병이 달라붙어 사정하듯 말했다.

“다들 하선 준비해! 개인 군장과 개인화기 확실히 챙겨서 앞으로 30분 후 하선한다. 알았냐?”

“상륙작전 취소입니까?”

분대장 김경준 병장이 물었다.

“취소는 아니고 무한대기라 다음 명령이 있을 때까지 병력만 하선한다. 뱃멀미로 비실거리는 놈들은 여기다 버리고 간다. 알았냐?”

“이상 없습니다. 행보관님! 힘 펄펄 납니다.”

방금까지 뱃멀미에 정신 못 차리던 은현준 일병은 언제 그랬냐는 듯 눈에 힘을 주고 위장 군기를 보였다.

“분대장.”

“네, 행보관님.”

“하선 시 뭐 빠뜨리는 거 있는지 네가 마지막에 확인하고 알았냐?”

“걱정하지 마십시오. 확실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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