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임수
2021년 2월 07일 10:00,
일본 도쿄도 아다치구 외곽 내각 전용 건물.
전날 한국 외교부와 이번 한일전 종전 관련 요구조건을 협상한 후 일본으로 이동한 랜디 존슨 대외전략협상관은 일본 내각 정부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도쿄의 외곽 건물에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아베 총리의 신임을 받는 내각실 총리보좌관 야구마치 겐조가 현관까지 나와 랜디 존슨 일행을 맞이했다. 둘은 가볍게 악수를 한 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에 들어선 후 조금은 화려해 보이는 출입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들어가시지요. 총리님께서 안에서 기다리십니다.”
야구마치 겐조 총리보좌관은 정중한 태도로 출입문을 열며 안으로 안내했다.
랜디 존슨의 눈에 비친 내부는 이탈리아식으로 꾸며진 화려하면서도 품위 있어 보이는 실내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이에 주위를 둘러보며 들어섰고 홀 중앙의 널찍한 소파에서 일어서는 짤막한 노년 사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아베 신지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백악관 대외전략협상관 랜디 존슨입니다.”
“그래요. 앉으시지요.”
두 남자는 널찍한 소파에서 마주 앉아 비서진에서 내온 차를 마시며 잠시 서로의 안부를 전하는 얘기를 나눴고 아베 총리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야구마치 겐조가 오늘 만남의 목적에 대한 말을 꺼냈다.
“랜디 존슨 협상관님! 한국이 요구하는 조건이라는 것에 관한 확인했으면 합니다.”
“그러시지요.”
랜디 존슨은 고개를 돌려 함께 온 보좌관 사내에게 손가락을 튕기자 가지고 있던 서류 가방을 건넸다. 이에 랜디 존슨은 암호번호를 누른 후 제본된 서류철을 꺼내 탁자 위에 내밀었다.
“이것이 한국이 일본에 요구하는 조건들입니다.”
아베 총리는 서류를 들어 천천히 읽어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눈두덩이에 작은 경련이 일어났고 이내 온갖 인상을 쓰며 야구마치 겐조에게 서류철을 건넸다. 이에 야구마치 겐조는 조심스럽게 서류철을 건네받고는 빠른 속도로 읽어나갔다.
“일본을 패전국으로 치부하는 꼴이군요? 어떻게 이런 요구조건을 가져올 수 있습니까?”
방위성에서 협상관으로 이름을 떨치던 야구마치 겐조 조차 요구조건이 충격적이었는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랜디 존슨에게 물었다.
“저 또한 한국의 요구조건이 과하다 생각하여 몇 가지에 대해 수정을 요구하였으나 현재 한국 대통령의 입장은 굳건했습니다. 요구조건에 대한 그 어떠한 협상도 배제한다는 말만 되풀이하더군요. 어떻게 합니까? 중립적 입장인 저희 또한 난처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수용하고 가져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금은 난처한 표정을 지은 랜디 존슨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에 아베 총리가 노기 띤 목소리로 되물었다.
“우리 일본이 이런 요구조건을 듣고자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한 줄 아시오? 같은 동맹국으로서 너무하는 거 아니오?”
아베 총리는 급기야 앞에 노인 탁자를 주먹으로 세차게 내려쳤다. 그러자 반쯤 담겨 있던 찻잔이 엎어졌고 탁자 전체로 찻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구한 것은 현재 한국의 불법적 전쟁 만행에 대해 즉각 중단해달라는 것과 이런 불법적 전쟁행위에 대한 처벌이오. 이런 미친 요구조건을 듣고자 한 것이 아니란 말이오.”
랜디 존슨은 일본에 오기 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아베 총리가 강하게 반발하며 따질 줄은 몰랐다.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전화 내막을 알지 못하는 랜디 존슨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총리님! 우리 미국 정부는 한일전이 평화적으로 종전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이렇게 중립적 입장에서 애를 쓰고 있는데 이렇게 저희에게 뭐라 하십니까?”
아베 총리는 랜디 존슨의 말이 끝나고 동시에 야구마치 겐조 보좌관이 들고 있던 서류철을 빼앗아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한국의 요구조건이 평화적 종전입니까? 이건 완전히 일본을 패전국으로 치부하며 무조건적인 항복 조건이 아닙니까? 이 요구사항 트럼프 대통령은 압니까?”
“이번 협상권을 저에게 모두 전담했기에 상세한 요구조건은 모르십니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여주시오. 그리고 다시 얘기합시다.”
아베 총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노기 띤 표정으로 랜디 존슨을 한번 노려보고는 다른 방으로 사라졌다.
트럼프 대통령 대신해 오게 된 자리에서 아베 총리의 행동은 결례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와의 내막을 모르는 랜디 존슨 협상관은 서서히 올라오는 화를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쉴 곳을 안내하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야구마치 겐조 보좌관이 앞장서 말했다.
“안내하시오.”
“협상관님, 한국 요구조건 수용일이 내일 오후 18시로 되어있는데 오늘 중으로 총리님에게 확실한 답변을 주셔야 할 것입니다.”
안내하며 앞에서 걷는 야구마치 겐조가 협박성에 가까운 말을 건넸다.
‘대체 이 미친 일본 놈들은 우리 미국 정부를 뭐로 보고 이렇게 안하무인격으로 말을 하는 건지, 내가 모르는 뭔가가 양국 간에 있단 말인가?’
야구마치 겐조 보좌관을 따라가던 랜디 존슨의 머릿속에서는 자꾸만 의심스러운 생각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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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07일 11:00,
서울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회의실).
미국의 간섭으로 잠시 오든 작전이 중지된 상황에서 합동참모본부는 최악의 상황인 미국과의 전쟁까지 고려하여 비밀스러운 작전 회의를 했다.
“이해할 수 없슴네다. 미제 놈들이 지금 상황에서 고춧가루를 뿌리는 이유를 말이디요.”
최호일 합참차장이 불만이 한가득한 표정으로 회의 시작을 알렸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일 간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지 않겠습니까? 차장님.”
강이식 합참의장이 대답했다.
“그 이해관계가 궁금하디 않습네가? 뭔 꿍꿍이인지 간나새끼들.”
“정치적인 일은 정치인들한테 맡겨두고 우리는 군인 신분으로서 만에 하나 미국과의 전쟁에 대한 방안에 관해서 얘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그 전에 현재 러시아의 군사적 움직임에 관해 잠시 브리핑을 하도록 합시다. 안 중장.”
“네, 의장님.”
정보본부장 안길원 중장이 대답과 동시에 브리핑 단상으로 올라왔다.
“현 시간 기준으로 러시아의 움직임에 관해 간단하게 브리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의 전부터 미리 준비한 영상 화면을 스크린에 띄운 안길원 중장의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현재 러시아군의 움직임은 초반과는 다르게 적극적인 움직임은 없습니다. 여러모로 분석하고 있지만 정확한 이유에 관한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대대적 공격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음 화면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동부군관구 예하 제5군에 관한 정보가 상세하게 보였다.
“참고로 지금 보고 계신 정보는 저번 1월 21일 보고 이후 어제까지 24시간 감시 체제에 확보하여 분석한 최신 정보입니다.”
스크린을 통해 보이는 제5군의 군사 장비는 현재 러시아에서 최근에 개발되어 실전 배치된 최신예 군사 장비 목록이 즐비하게 쓰여 있었다. 그중 최신예 T-14 아르마타 전차가 완전 편제가 되었고 자주포 MSTA-S 2S19와 속력이 향상한 차세대 자주포인 구경 152mm의 2S35 코알리트시아 -SV, 최신 단거리 전술 탄도탄 미사일 9K720 이스칸데르, 방공 미사일 시스템 Tor-M2U와 부크 M2, 근거리 대공 방어 시스템 판치리-S KAMAZ-6560, 다목적 장갑수송차 라쿠시카, 차세대 보병전투차량 BMD-4, 마지막으로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 S400 트리움프 등 세부적으로 확인된 러시아 최신예 군사 장비였다.
“육군 장비가 대폭 최신예 장비로 바뀌었으나 공군 및 해군전력은 예전과 비슷한 상태입니다.”
“러시아놈들이래 저것들 죄다 수송하느라 고생깨나 했겠구만 기래.”
최호일 합참차장이 비꼬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이에 신성용 합참차장이 거들어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러다가 몰살당하고 후회나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디요? 저런 거 믿고 까불다간 푸틴 간나새끼래 후회하디요.”
잠시 회의실이 시끄러워지자 안길원 중장은 헛기침으로 주목해달라는 말을 대신했다.
이에 눈치챈 최호일 차장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이거 안 중장 브리핑을 방해했군기래, 계속하기요.”
“감사합니다. 저번 브리핑 당시 동부전선에 대한 방어를 제5경계사령부의 11군단과 12군단을 러시아와의 군사경계선에 배치한 후 러시아 제5군 주력을 제82기갑사단과 제81기계화보병사단으로 차단하며 후속 지원부대로 제3군 사령부의 5군단 제6기계화보병사단, 제8기계화보병사단, 제3기갑사단으로 두만강 국경선을 포함한 동부전선 전체를 방어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러시아의 제5군 전력이 상당히 강해졌다는 판단에 방어 주력 부대를 수정했습니다.”
“어느 부대로 결정했는가?”
강이식 합참의장이 물었다.
“네, 제7기동군단의 제20기갑사단입니다. 원래 계획은 영주시(지린시)에서 주둔하며 만주 일대의 후속 지원부대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러 본부장과의 회의를 통해 제5군 전력에 대한 직접적 방어부대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한중전에서 고생 많았던 부대인데 이번에도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되었군! 이은형 대장이 격려의 전화 좀 자주 해주게.”
“네, 알겠습니다. 의장님.”
“이외! 나머지 방어 전략은 예전 브리핑 당시와 변함없습니다. 이로써 짧게나마 러시아군의 동향에 대해 브리핑을 마치겠습니다.”
안길원 중장은 절도 있는 거수경례를 하고는 자리로 돌아갔고 작전기획본부장인 나태윤 중장이 바톤을 터치하든 자리에서 일어나 브리핑 단상에 올라갔다.
“다음은 이번 회의의 주 안건인 미군과의 군사적 충돌에 따른 최악의 상황 대응방안입니다.”
나태윤 중장이 말이 끝나자 스크린 화면에 미군 전력의 상세한 정보가 화면 가득히 나타났다.
“지금 보시는 정보는 한반도 유사시 미국에서 동북아에 투입할 전력을 기준으로 재편성된 정보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화면을 보시기 바랍니다.”
레이저 포인트로 스크린 화면을 가리켰다.
“먼저 증원전력은 육·해·공군과 해병대를 포함하여 병력 약 69만 명, 함정 약 160척, 항공기 약 2,000대의 규모입니다. 육군 병력으로 예전 주한미군 부대였던 8군 예하의 제2보병사단 외에도 4개 사단이 추가로 증원되며, 해군전력으로는 제7함대와 미국 7공군이 지원됩니다. 그럼 각 군 상세한 정보로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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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07일 16:00,
일본 도쿄도 하네다 공항.
한국 공군의 대규모 공습으로 인해 국제공항인 하네다 공항에는 외국으로 나가려는 인파들로 매우 복잡했다. 이러한 인파 속에 검은 정장을 입은 야구마치 겐조 보좌관이 여러 사내와 함께 막 고위공무원 전용 출국 심사대를 통해 빠져나갔다.
야구마치 겐조 보좌관의 목적지는 러시아 모스크바, 오전에 랜디 존슨 협상관이 들고 온 어처구니없는 한국의 요구조건에 몹시 화가 난 아베 총리는 야구마치 겐조 보좌관을 불러 중요한 임무를 지시했다. 일본 특사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을 만나 아베 총리의 말은 전하는 임무였다.
모스크바 비행기에 오른 야구마치 겐조는 비즈니스석의 푹신한 의자에 앉아 두 눈을 감고 앞으로 있을 중대한 임무를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모스크바행 JAL 일본항공의 B747-200 항공기가 활주로에 들어섰고 이내 4개의 엔진에서 굉음을 울리며 앞으로 날아갔고 양력을 확보하면서 서서히 활주로를 따라 하늘로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