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반대세력
천장까지 이어진 합금 위를 날아가는 차량.
버키의 차량에는 어느새 앨버트까지 탑승한 상태였다.
『잘 기억해요! 이 차량을 타고 싶어서 타는 거 아니고, 내 친우를 보호하기 위해서 탄 거니까.』
『눼! 누가 뭐랬나요? 야만족의 부족장님?』
『뭐야?!』
티격태격, 티격태격.
버키와 앨버트에게서 황제의 위엄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둘 다 그만 좀 해요.』
『맞아. 앨버트, 갑자기 왜 그래? 애도 아니고.』
미나와 백현의 말에 버키와 앨버트가 각각 항변했다.
『내가 뭘 했다고 그래?』
『애가 아니니까 그렇지. 난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의 태도를 고쳐 줄 책임이 있거든?』
그러나 그건 오히려 서로의 관계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 뿐이었다.
『저분 뇌 비었습니까? 미나 어떻게 생각해?』
『와! 한참 어린놈이 몸 좋다고 개기네. 나도 한 몸 하거든?』
『저 그렇게 안 어리거든요?』
둘의 말에 백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기억 지워. 네가 안 지우면 내가 녀석들의 입을 다 찢어놓을게.』
『아니야. 굳이 찢어놓을 필요까진 없잖아. 신생아로 만들면 되지.』
단순한 말이었지만, 거인 둘의 주둥이를 막는 데는 충분했다.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진짜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한편, 거인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는 인간들은 뒷좌석에서 현재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다들 배고프지?”
“충분히 챙겨오길 잘 한 것 같아.”
케이크와 아이스크림, 바게트 빵과 우유, 건포도에 생딸기까지.
“백현아, 너도 와서 먹어.”
“네! 미나야. 너도 와.”
“응.”
앞좌석에 있던 둘이 뒤쪽으로 이동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고급음식, 케이크.
그런데 백현은 입맛이 없었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아직은 아무것도 해결된 게 아니잖아요.”
“그래도 희망은 보이잖니.”
김만철의 말에 강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런데 방주 바깥에는 얼마나 많은 괴물들이 득실거릴까요? 얼마나 위험한 존재이기에 율리만이 인간과 거인들을 핍박하면서 실험을 거듭했을까요? 그런 걸 생각하면 전 사실 조금 무섭고 두려워요.”
강백현의 말에 김만철이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괜찮을 거야. 난 희망을 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 우리 형도 언젠가는 내 곁으로 돌아올 거고, 아버지도 돌아올 수 있다는 거잖아.”
“클론이죠.”
강백현의 말에 미나가 소리쳤다.
“오빠! 그런 소리를 왜 해?”
“아- 미안.”
“빨리 사과해. 아저씨한테 사과해.”
“아저씨, 클론이라고 말한 거 죄송해요.”
김만철은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사과할 필요 없어. 나는 이미 한 번 죽었고, 현재의 내가 영혼의 돌과 소생의 돌로 목숨을 연장한 클론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죄송해요.”
“아니, 그것보다 영혼의 돌이 복제인간을 뜻하는 건 알겠는데, 소생의 돌은 도대체 뭐야? 무슨 원리야?”
김만철의 질문에 강미나가 대답했다.
“소생의 돌은 DNA 편집기술을 고도로 응용한 기술이에요. 아메바 세포와 합성한 율리만의 성질을 이용해 본래의 신체를 재구성하고, 기존의 신체에 남아있던 기억을 마인드 리딩 능력을 통해 전이시키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죽고 살아나면 그간의 기억을 잃게 되잖아요.”
“아, 그러네. 나도 엑스트라 페이즈에서 있었던 일은 기억이 안 나.”
“네. 그거예요. 우리가 빛의 기둥을 통과할 때마다 율리만이 마인드 리딩을 통해 모든 기억을 자신의 체세포 내에 저장해두었던 거죠.”
“그럼 내 형이나 형수님, 아버지는 마트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겠네.”
김만철의 말에 강백현이 대답했다.
“아마도 되살아나시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아요. 미나야! 설명해줘.”
“율리만은 인간들이 작아지기 직전 시점의 데이터를 상공에 있는 데이터위성에 전송했어요. 그 데이터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페이즈 1 도중에 돌아가셨다면 작아지기 전의 기억만 가지고 소생할 확률이 높아요.”
“그랬구나. 아직 모든 걸 이해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시 살아나는 데는 문제없는 거네?”
“네. 전력만 공급되면 문제없을 것 같아요. 다만, 원래 크기로 되돌아가면 식량이 문제가 될 순 있어요. 그걸 위해서 저희가 바깥세계에 나가서 확인해야 하는 거고요.”
“그래. 일단 먹자.”
“네.”
하늘에서 바라본 지면.
초대형 거인의 사체와 그 옆에 보이는 나타샤, 제이미의 모습.
그들을 보니 강백현은 4개월을 함께 했던 에반이 떠올랐다.
에반은 과연 반성하고 있을까?
끝까지 같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서 미니맵을 열었다.
에반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근처에 있어?’
에반은 빠른 속도로 자신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강백현이 앨버트에게 소리쳤다.
『앨버트! 에반이 근처에 있는데?』
『뭐? 그 반역자가 여기에 있다고? 어디? 어디?』
『상공. 우리가 가려는 곳 바로 위.』
그 말에 앨버트가 상공을 바라보았다.
작은 점이 보였다.
날개를 펄럭이는 생명체. 그리고 그 위에 탄 거인들.
강백현은 깜짝 놀라, 미니맵 옆에 보이는 거인들의 표기를 눌러 이름을 읽어보았다.
페르오네 막시무스. 페르오르 막시무스. 에반 막시무스, 거기에 페르세우스까지.
그들이 타고 있는 펫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펄럭이는 날개 옆에 거인의 얼굴이 점차 선명해졌다.
‘키메라 사자……. 역시 황제가 온 거야!’
그때 앨버트가 경고의 소리를 질렀다.
『멈춰!』
『아, 저건 뭐지?』
『도르시안의 문양이다. 도르시안 녀석들이야.』
도르시안의 황제와 왕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하나같이 날개를 펄럭이며 움직이는 키메라에 타고 있다.
페르세우스 황제는 펫을 정지비행시킨 채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들은 아르케에서 온 자들인가?』
그런데 그때 에반이 앨버트를 가리켰다.
『아닙니다. 저자는 앨버트라는 자로, 신디아 대륙에서 반역으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저자를 죽이시면 아버님의 손에 신디아 대륙이 들어올 겁니다.』
에반의 말에 깜짝 놀란 앨버트가 황당함을 이기지 못하고 따져들었다.
『반역자는 에반 당신이잖아. 국민들을 실험체로 활용해서 두루마리 제작용으로 희생시키고! 동족의 생존보다 자신의 권력밖에 바라보지 않는 녀석은 바로 너 아니냐고! 어?』
그러자 에반은 아무렇지 않은 듯 페르세우스 왕에게 고했다.
『저자는 황족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자입니다. 민심을 어지럽혀 백성들을 봉기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제거해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그래? 그럼 에반, 너에게 기회를 주지.』
『감사합니다.』
에반이 근엄한 표정으로 황제가 하사한 펫으로 갈아탔다.
표범 얼굴에 날개가 달린 펫.
녀석을 탄 에반이 창을 들고 백현과 엘버트가 있는 방향으로 곧장 날아들었다.
앨버트는 당황하며 차에서 뛰어내렸다.
녀석의 목표는 자신.
그렇기에 모두를 위해 차량 아래 가지처럼 뻗은 텅스텐 합금에 발을 디디고 녀석이 접근하길 기다렸다.
날개 달린 표범을 탄 에반의 창이 앨버트를 향했다.
허리를 젖히며 날카로운 창끝을 피하는 앨버트.
그러나 표범의 발톱이 뒤따르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한순간의 실수로 앨버트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말았다.
『……독인가?』
앨버트의 푸른 피부 틈으로 피가 흘러나왔다.
피부를 적시며 흘러내리는 녹색의 무언가.
『그래. 넌 곧 죽고 말겠지. 애당초 내 상대가 되지 않았던 거야.』
에반이 조소를 머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앨버트는 여유 있는 미소를 머금고 있다.
표범이 날개를 펄럭이며 방향을 전환했다.
그리고 그 위에 탄 에반은, 미친놈처럼 시시덕거리며 웃고 있는 앨버트의 모습에 의문을 품었다.
『뭐가 그리 웃긴 거지? 곧 죽을 텐데?』
『에반 왕자님을 죽이고 싶진 않았습니다.』
『네가 죽는다니까?』
『아뇨. 이미 승부는 결정 났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에반 막시무스는 고개를 돌려 녀석이 입은 상처를 바라보았다.
독이 더 이상 퍼지지 않았다.
녀석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왜? 왜 독이 퍼지지 않는 거지?
그 이유는 조그마한 생명체에 있었다.
『고마워. 작은 친구. 치료 능력이 있을 줄이야.』
윤수가 앨버트의 상처에 손을 가져다대고 있었다.
윤수의 손길이 닿으면 그 어떠한 상처도 치료가 가능했다.
독뿐 아니라, 조그마한 뾰루지조차도 말끔히 회복된다.
그리고 에반은 갑자기 비명을 지르는 자신의 펫을 바라보았다.
표범의 펄럭이던 날개가 어느새 동작을 멈추고 있었다.
날개 사이사이로 튀어나온 반투명한 막이 보였다.
그것들이 엉켜 날개가 삐거덕거리며 움직이질 않는다.
강백현은 날개 관절 사이에 자신이 조형한 보호막 파편을 집어넣었다.
더 이상 날개를 펄럭이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녀석을 처리하는 것은 충분했다.
『강백현?』
『그래. 에반, 내 마지막 자비야. 내려가서 반성 좀 해.』
『강백현! 강백현!』
날개가 동작을 멈추면 지상으로 추락하고 만다.
그러나 에반은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듯, 표범의 날개에 걸린 보호막 파편을 보며 비웃었다.
『설마 내가 아무 준비도 안 했을 것 같아?』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표범의 날개가 떨어지고, 새로운 날개가 돋아났다.
날개의 움직임만을 막는 것으로는 녀석을 떨어뜨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강백현의 얼굴에 걸린 조소가 멈추질 않는다.
『왜 비웃지?』
『내 능력이 보호막 한 개만은 아니잖아?』
강백현의 분신들이 표범의 머리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
표범을 가격하는 분신들.
그러자 날개를 만들어내는 표범의 능력이 계속 초기화된다.
에반은 강백현의 분신들을 잡기 위해 파리채를 휘두르듯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강백현의 분신들은 얄밉게도 보호막까지 만들어냈다.
『뭐야! 이런 것까지 가능해?』
『응. 그것뿐만이 아니야. 걔네들도 보호막 변형이 가능하거든?』
강백현 1호와 2호가 보호막으로 해머를 만들어 표범의 대가리를 갈겼다.
강백현 3호와 4화가 보호막으로 표범의 콧구멍을 막았다.
그러자 표범이 숨을 쉬지 못하여 헐떡이기 시작했다.
날개가 없으면 중력 방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에반이 패배를 직감하고 소리쳤다.
『강백현! 이 자식! 날 배신하더니! 또! 또!』
『배신한 건 너야. 날 키메라로 만들려고 했던 것도 너고. 잘 가라!』
표범이 자유낙하하자, 거기에 타고 있던 에반 또한 수직낙하하기 시작했다.
공기저항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표범과 에반.
『복수할 거야! 복수한다. 널 죽여버리고 말겠어!』
『응. 그래. 다음 생에 보자고.』
팍!
섬 바닥과 충돌한 두 생명체의 사체가 여기저기 흩뿌려졌다.
앨버트와 강백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걸 본 윤수가 재밌는 듯 외쳤다.
“우와! 짜부됐어. 엉아! 짜부! 짜부!”
어린 윤수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윤수도 어엿한 동료였다.
“그래. 윤수 덕분에 우리 앨버트 살렸다. 잘 했어. 윤수!”
“응. 근데 거인들은 치료가 잘 안 들어. 그래서 힘들었어.”
“그래. 걔네들 몸에서는 텅스텐을 합성하니까, 쉽지 않았을 거야. 고생했어.”
이제 한 명이 죽고 3명이 남았다.
도르시안의 황제와 그의 아들.
그들을 향해 아르케의 왕 버키가 말했다.
『당신들도 저를 상대할 생각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