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페르세우스 가문
버키의 말에 페르세우스 왕이 비웃었다.
『자네가 즉위한 지 얼마나 됐지?』
『그걸 왜 물으시는 거죠?』
『나는 도르시안에서 황제로 즉위한 지 50년이 지났어. 내 아들만 50명이 넘지. 아들이 많다는 걸 자랑하는 건 아니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절대적으로 축적된 힘, 포인트지.』
『포인트요?』
『그래. 자신의 펫을 얼마나 강하게 만들 수 있는지의 척도지. 그 포인트로 펫에게 강력한 능력을 익히게 할 수 있고, 그 포인트로 강력한 갑주를 입힐 수도 있어. 내 펫처럼 말이야.』
페르세우스의 품에서 검은 슈트가 나왔다.
그 검은 슈트는 갑자기 늘어나더니 페르세우스 왕의 펫, 사자의 몸을 덮기 시작했다.
그걸 보며 미나가 혀를 끌끌 찼다.
『나노 박막형 타입이야. 거인의 신체를 나노 단위로 분리해서 만든 것으로,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신축성과 자가복구 능력을 가졌어. 방어력이나 유틸리티 측면에서 최고의 기술이야.』
『자네의 펫이 아주 잘 알고 있군. 이건 율리만에게도 넘기지 않은 도르시안 최고의 걸작, 나노 슈트지. 이걸 입었다는 것부터 자네는 이미 지고 들어가는 걸세. 방금 전 신디아 꼬마 녀석의 펫이 부리는 잔기술은 이 슈트 하나만으로도 완벽하게 방어가 가능할 걸세.』
페르세우스는 강한 자신감을 표출했다.
『역시 아바마마가 최고십니다.』
『역시 도르시안은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니, 세계는 아버지가 다스려야 합니다.』
그의 말에 김만철이 나섰다. 의사소통하는 것은 역시 미나였다.
『버키 님, 김만철 아저씨를 던져주세요.』
버키가 페르세우스를 향해 김만철을 집어던졌다.
김만철은 버키가 던진 힘을 이용하여 페르세우스의 펫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김만철이 신체강화 능력으로 휘두른 펀치가 날개 달린 사자를 타격했다.
“됐어. 이거야!”
김만철은 자신의 공격이 통할 것을 알았다.
한 점에 모인 공격.
송곳은 무게가 100g도 되지 않지만, 한 점에 힘을 집중할 수 있어 대단한 파괴력을 낸다.
인간의 피부도 뚫을 수 있고, 플라스틱이나 고무 또는 질긴 천에도 구멍을 낼 수 있다.
지금의 공격이 그랬다.
버키의 던지는 힘에 능력으로 강화된 힘을 더해 한 점에 집중시킨 것.
그런데 놈의 슈트는 생각보다 신축성이 뛰어났다.
한 점에 집중된 공격이지만, 슈트가 꿀렁꿀렁 움직이며 주변에 파형을 전달해 타격을 분산했다.
100배는 넓은 범위가 수축을 반복하며 울렁거렸지만 그 뜻은 한 점에 모인 힘이 1/100 이하로 줄어들었다는 것을 뜻했다.
그때 사자가 귀찮다는 듯 꼬리를 움직여 김만철을 쳐내버렸고, 공중에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김만철에게 연이어 몸통 박치기를 가했다.
단순히 몸통으로 들이받는 공격. 하지만 신장 10m가 넘는 사자와의 충돌은 김만철에게 큰 데미지가 될 수 있었다.
『하하하하, 이런 것을 펫이라고 기른 건가?』
페로세우스 왕의 말에 버키는 미소를 지었다.
『아무렇지도 않은데?』
『무엇이라?』
절대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김만철에게 날개가 있는 것도 아니니, 사자의 몸통 박치기에 엉망이 되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둥둥.
김만철이 하늘을 날고 있다.
“어떻게 된 거지?”
김만철 또한 당황하고 있었다.
꼼짝없이 죽을 줄 알았는데.
“아저씨, 나만 믿고 싸워요.”
김만철이 날고 있는 것은 김아람의 염력 덕분이었다.
염력으로 세세한 움직임을 조종하진 못해도, 단순한 공격을 피하는 정도는 컨트롤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사자의 박치기를 피하고 놈의 품으로 파고들도록 김만철의 몸을 움직였다.
자신의 모든 능력을 만철의 제어에 집중하고 있는 김아람.
김만철도 이를 알아차리고 목표를 바꿨다.
이제 공중에서 역동적인 움직임이 가능해진 김만철이, 펫이 아닌 황제를 직접 노리고 끊임없는 공격을 가했다.
황제는 코웃음을 쳤다.
이 정도 역량으로 반격하려 하는 버키가 우스웠다.
『후후, 고작 이걸로 이길 거라 생각한 거야? 우리 도르시안이 그동안 한 번도 외적의 침략을 받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아나?』
페르세우스가 펫의 능력을 개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자의 거친 피부가 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놀랍게도 페르세우스 본인 또한 은색으로 바뀌었다.
『내 펫은 주인인 나까지 은색 금속으로 변화시킬 수 있지. 금속으로 변하면 모든 공격에 대비할 수 있어.』
두 왕자들이 황제를 칭송했다.
『역시 아바마마십니다.』
『아버지를 이길 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을 얻으십시오! 세상은 아버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두 아들의 칭송에 페르시우스가 말했다.
『그리고 난 내 펫이 갖고 있는 4가지 능력 중 겨우 하나를 선보였을 뿐이야.』
그런데, 버키는 그게 뭐가 중요한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야기 다 끝났어?』
『날 무시하는 건가? 아니면 죽음이 코앞에 와서 미친 겐가?』
『당신한테 한 소리 아니야. 미나, 다 끝난 거야?』
버키는 미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버키 님, 다 끝났습니다.』
미나의 손이 페르시우스와 그의 두 아들을 향하고 있다.
『실행해.』
『네.』
버키는 처음부터 앞의 공방에서 이기리라 믿지 않았다.
김아람도 김만철도 분명히 강했지만, 그보다 강한 것은 강미나였다.
거인들의 정신을 속박하고 기억을 제어할 수 있는 강미나. 그녀의 능력은 거인 세계에서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사자를 탄 거인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건 키메라인 사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으르렁거리며 경계의 울음소리를 내뱉던 사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한 거야?』
버키의 질문에 강미나가 대답했다.
『라이언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시켜 거인들의 체내 세포까지 은으로 변화시켰어요. 그래서 저들이 비명을 지른 거죠.』
『라이언?』
『네. 도르시안 황제의 펫 이름이 라이언. 라이언은 키메라로 합성당했던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황제를 주인으로서 받아들인 것을 후회하는 중이에요. 이제는 검은 구체가 거인의 룰을 통제하지 않으니, 그들 또한 주인의 명령으로부터 자유롭게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됐어요. 저는 단지 그걸 알려주었을 뿐이에요.』
미나에 의해 펫의 제어를 잃은 페르시우스와 그의 아들들이 바다에 추락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들이 섬이 아닌 바다에 떨어졌다는 것.
잘하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라이언이 추락하는 그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라이언은 50년 이상 철창에 갇혀 자유롭지 못한 생활을 했다. 그리고 지금 자유를 얻은 라이언의 선택은, 바로 주인의 목숨을 노리는 것이었다.
녀석의 선택을 보며 미나가 말했다.
『라이언은 도르시안에서 가장 잘나가는 수사자 중 하나였어요. 제법 강하고 잘생겨서 암컷들로부터 수많은 구애를 받았죠. 그를 따르는 암사자만 무려 13마리나 되었대요. 하지만 황제가 나타난 후 라이언은 암사자와 함께할 수 없었다고 해요. 변해버린 외모, 거기에 사자라고는 볼 수 없는 너무나 큰 체형을 보고 암사자들은 겁먹어서 모두 줄행랑 치고 말았죠.』
『……황제의 자업자득이군.』
『라이언의 생명은 얼마 남지 않았어요. 죽기 전에 자신의 본 모습을 되찾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라이언이 섬의 중앙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키메라였던 라이언의 몸이 두 개로 분리되기 시작했다.
사자의 몸과 거위의 날개.
사자와 거위 두 마리의 동물로 나뉘게 된 것.
『거위의 이름은 두두, 역시 수컷으로 거위들을 이끄는 우두머리 중 하나였어요. 하지만 이제는 세월의 흔적을 피할 수 없는 늙은이가 되고 말았네요.』
사자와 거위가 울부짖었다.
서로의 몸을 되찾았지만, 그들의 세월을 되돌리기에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다.
흰색으로 바랜 털을 가진 사자와, 깃털이 다 빠져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병든 거위의 모습.
『둘은 더 이상 살 수 없어요. 키메라는 합성 생명체라서 서로 분리되면 금방 죽고 말아요. 그걸 알면서도 저들은 분리를 택했어요.』
슬픈 일이었다.
미나의 설명을 들은 버키는, 어째서 아버지의 펫이 여기로 오지 않으려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키메라로 합성된 생명체에게 분리란 죽음을 뜻한다.
그래서 조윤아는 아버지를 조종하고 더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 했을 것이다.
‘아르케에서 키메라는 더 이상 제조되어서는 안 돼. 내가 막아야 해.’
『올라가지.』
『네. 버키 님.』
『이제 님 자는 됐어. 넌 친구니까 그냥 버키라고 불러도 돼.』
버키의 말에 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삶과 죽음, 죽음과 삶.
그 길은 여전히 고되고 어렵다.
누군가가 정답을 알려줄 수도 없고, 누군가가 선택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버키는 작은 생명체들의 선택에 깊은 경의를 표했다.
『나가면 위험하다고 들었어. 정말 나갈 거야? 너희들이 아니라도 지원자는 많을 거야.』
버키의 말에 앨버트가 거들었다.
『아직 40일이 남았다잖아. 내 백성들도 너희들을 돕기 위해 많은 것을 지원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좀만 더 생각해보자. 백현아! 그리고 백현이 친구들도!』
하지만 백현과 미나는 이미 마음을 먹었다.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이건 저희가 끝내야 해요. 그러기 위해 많은 시련을 이겨왔으니까.』
미나의 말에 백현이 동의했다.
『저는 제 동생의 소설, ‘작은 세상의 공주님이 살아남는 방법’에서 결말을 본 적이 있어요. 결말에서 제 동생과 저는 모두를 구출해요. 악당으로부터 받은 저주를 풀고 3cm가 된 우리들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죠. 미나야, 안 그래?』
강백현의 말에 미나가 눈썹을 찡그렸다.
『오글거려. 그만해! 거인어로 말했으니까 봐준다. 다른 사람 들었으면 둘이 사귀냐고 물어도 이상하지 않을 멘트였어.』
『미쳤니? 너 같은 애를 누가 좋아하냐?』
『좋아하는 사람 많거든? 오빠처럼 고집불통이나 없지.』
남매의 다툼에 앨버트가 씩 웃었다.
『저기 출구가 보이는군. 다툼은 저기 가서 하는 게 좋겠어.』
『아-아, 이번만은 그 의견에 동의해주지.』
앨버트의 말에 받아치는 버키.
금속으로 된 가지 끝에 지름이 3cm밖에 되지 않는 작은 구멍이 보인다.
율리만은 3cm로 작아진 인간들을 자신의 미래를 지킬 구원자로 보았다.
그래서 일부러 출구를 작은 크기로 만들었다.
『다시 오겠습니다. 고마웠어요. 버키!』
미나는 버키에게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아-아, 잘 가. 작은 친구. 강미나. 네가 우리말을 잘해서 정말 재밌고 즐거운 시간이었어.』
강백현도 앨버트에게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앨버트, 신디아를 잘 부탁해. 아르케하고도 잘 지내고, 백성들 불평불만 없게 소통하는 황제가 됐으면 좋겠다.』
『당연하지. 배 안에서 내 발언 못 본 거야? 얼른 가! 눈물 나겠다.』
앨버트는 두 달여를 같이 보낸 강백현과의 유대를 자신의 가슴속에 새겼다.
버키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자신의 동생과 같이 훈련했던 김아람과 김만철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은 물론 서로 강제로 뽀뽀도 시켰다.
“으아아아악!”
“아- 짜증 나. 버키! 얘 왜 이래?”
“아저씨가 왜 짜증을 내요? 기분 나쁜 건 저거든요? 이제 난 20살밖에 안 됐는데 첫 키스를 왜 아저씨랑 하냐고요!”
그걸 보며 울기 시작하는 꼬마. 윤수.
“으아아아아아아아. 아빠 하기로 했잖아! 아빠 하기로 했는데 왜 누나랑 뽀뽀하는데!”
그걸 보며 옆에 있던 최형우가 윤수를 달래기 시작했다.
“윤수야! 괜찮아. 괜찮아. 윤수도 할아버지랑 뽀뽀하자. 응?”
“싫어! 싫어. 아빠 안 할 거야. 김만철 아저씨랑 헤어지라고 우리 엄마한테 이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