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부-
“저...... 외삼촌.”
“으응, 그래. 왜?”
후끈한 실내공기만큼이나 달아오른 얼굴로 연경은 기찬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찬의 영향력이며 실력을 몸소 체험한 뒤였으니 차마 말 못하고 미뤄두었던 사연을 이야기하려는 모양이었다.
“저......”
“허허, 그래. 이 녀석아. 말해 보라니까......”
“저, 혹시 외삼촌하고 함께 살면 안 될까요?”
“나하고 한 집에서 살고 싶다고? 혼자서 자취를 했다니까 뭐, 안 될 거야 없지만, 갑자기 그건 왜?”
“실은......”
그 속사정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직장 문제로 가족들이 지방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 사정이었지만, 무용을 전공해야 했던 연경은 상급학교 진학문제로 혼자 서울에 남아야만 했었다. 마땅히 기거할 만한 공간을 찾지 못해 고심하던 연경의 부모는 직장의 상사였던 현재 집 주인에게 부탁해 딸의 자취공간을 마련해 줬었는데,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딸의 보호를 부탁했던 셈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곳이 호랑이의 아가리였던 셈이니 원조교제를 하느라 잦은 외출을 하던 연경이의 뒤를 밟은 그 자에게 여관 앞에서 돈 문제로 남자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현장을 목격 당했다는 것이었다.
“음, 그래서......”
“처음에는 그저 집으로 데리고 와서 훈계를 하는 줄만 알았어요. 그러다가 자기 말을 안 들으면 아빠한테 알리겠다면서......”
“그 인간이 네 몸을 범했다는 거니?”
“네...... 그런 장면을 들켰으니 어쩔 방법이 없었어요.”
“너희 아빠의 직장 상사라면 나이도 많은 사람일 거 아냐? 음, 요즘도 계속 그러니?”
“네, 저도 정말 끔찍해서 죽겠어요. 진작 다른 곳으로 이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아빠한테 알릴까 걱정이 돼서 말도 못하고 있었거든요. 이제 외삼촌 힘이라면 그 아저씨한테서 저를......”
“으음, 그랬구나. 그래, 알았다. 일단 알았으니 더 이상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내가 방법을 찾아보마.”
연경이에게야 두려운 상대였겠지만, 기찬에게 문제가 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입장을 조금만 비켜두고 생각을 한다면 이제 그 사내는 기찬에게 대단한 약점을 잡힌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니 연경은 팀에 정식으로 합류를 하기도 전에 대단한 돈벌이를 기찬에게 제공하는 셈이었다.
이제 저녁시간이 이슥해지면서 계집애들이 출근을 하는지 옆의 대기실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기찬은 연경에게 눈짓을 보내 서둘러 옷을 입기 시작하고,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여진을 비롯해 미라, 세희가 들어서고 있었다. 자신들의 마스터인 기찬의 방이니 그에게 소속된 자신들에게는 프리패스인 셈, 나름대로 다른 여자애들과의 차별을 즐기는 모양으로 자주 드나들고 있었다.
“어머! 기찬씨, 오랜만에 보네. 웬 학생이야?”
“그러게...... 어머! 이건 무슨 냄새야? 어머머! 기찬씨, 너...... 설마......”
“호호호...... 창문을 좀 열어서 환기라도 시킬 것이지. 호호호......”
계집애들의 수다에 방금 치른 관계를 들킨 연경은 목덜미까지 붉어져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기찬은 빙그레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자, 자...... 시끄러워. 다들 앉아 봐. 방배동에 사업을 벌일 거라는 말은 모두 들어서 알고 있을 거 아냐? 나중에 졸업을 하는 대로 내가 데리고 있을 아이니까 인사나 나눠 둬. 그리고 미라도 오빠 이사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지?”
“으응, 고마워...... 흐흑......”
모처럼 볼 수 있었던 기찬이 반갑기도 했지만, 기찬의 덕에 이제 허리를 펴고 살게 된 오빠 생각으로 뜬금없이 울음을 터뜨리는 미라 때문에 떠들썩했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냉각되어 버린다. 그저 여고생 교복을 입은 연경과 정사를 치렀다는 게 민망하기도 해 화제를 돌린 것뿐이었는데, 상황이 뜻하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 버린다. 궁금해 하는 여진과 세희에게 미라를 통해 오빠의 사연이 전해지고 기찬이 아파트를 장만해 줬다는 대목에 가서는 기찬을 바라보는 여진의 눈 꼬리가 기어이 찢어진다.
때마침, 마담이 들어서면서 방배동 팀의 비밀스런 회합에 정족수가 갖춰지고, 그 덕에 기찬은 여진의 눈초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자, 그럼 나는 연경이를 집에 데려다 주고 올 테니까 나중에 보자.”
“어머머! 강 하사님, 제가 오자마자 나가는 건 또 뭐죠? 그리고 그 학생은 누구예요?”
“아! 마담, 갔다 와서 말해 줄게요. 나중에 봅시다. 우선 네 사람이 모여 앉은 김에 방배동 팀이나 꾸려 봐요.”
“어머머! 피...... 순 자기 맘대로야.”
마담에게 핀잔을 듣더라도 우선은 여진의 살벌한 눈초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모양이다. 친구 사이에 말을 않고 있어서일 뿐, 늘 미라와의 야릇한 경쟁구도 안에 있는 여진이 오늘 들은 소식은 매우 놀라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 기찬과 미라의 관계가 점점 깊어지고, 자꾸만 두 사람에게 따돌림을 당한다는 기분을 감출 수 없는 모양이었다.
“여기가 집이니?”
“네. 저기 축대 밑으로 문이 보이잖아요. 저 집......”
“거기는 꼭 차고처럼 보이는데......”
“후훗, 맞아요. 처음에는 차고로 지었던 모양이에요. 출입문을 따로 쓰니까 그래서 제가 마음대로 바깥출입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거죠.”
“으음, 그러면 뒷마당으로 통하는 문도 있겠구나.”
“네, 싱크대 옆으로 나가면 바로 집 마당이에요. 그 문 열쇠를 아저씨가 갖고 있는데, 한 밤중에 자고 있을 때도 몰래 들어오곤 해서 깜짝깜짝 놀랄 때도 많아요.”
“뭐야? 참 나...... 그러면 잠을 자다가 강제로 당하기도 한다는 거니?”
“네......”
“허헛, 참, 그 인간, 어떻게 생긴 인간이지 빨리 보고 싶구나.”
“저, 외삼촌...... 우리 아빠 귀에는 절대 안 들어가게 해 주셔야 돼요.”
“그야 물론이지. 그래, 걱정 말고 일단 들어가자.”
“네......”
바로 곁에 차를 주차해 두고 셔터 한 곁의 문을 열자 속에는 또 다른 유리문이 있어 전면의 셔터를 들어 올리면 구멍가게로도 사용할 수 있는 형태의 주차장이었다. 제법 넓은 공간이었고, 바닥에 장판을 깐 후, 책상과 침대를 마련해 두어 연경이 혼자 지내기에는 그런대로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화장실은?”
“네, 마당으로 나가면 장독대 밑에 화장실이 따로 있어요. 지금 가시게요?”
“아니, 안 보이니까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하하하...... 연경이가 하얀 엉덩이 드러내 놓고 싱크대 밑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게 상상이 돼서 말이야.”
“어머! 외삼촌도 참...... 호호호......”
아닌 게 아니라 싱크대 옆에는 별도로 수돗가와 배수구가 마련되어 있어서 여기에서 세차도 했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기찬은 물을 틀어 손을 씻으며 연경에게 질문을 계속 이어간다.
“우웃! 수압도 제법 세구나. 그럼 가장 최근에 그 인간이 너를 괴롭힌 게 언제니?”
“어, 어젯밤이요.”
“뭐, 뭐?...... 이런 젠장......”
방금 연경과 관계를 치른 기찬으로선 불과 하루 전에 다른 놈이 드나든 그 곳으로 자신이 몸을 실었다는 것이 개운치 않은 일이었다. 기찬의 표정으로 그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는지 수건을 내밀며 연경의 말이 바로 이어지고 있었다.
“흐응...... 외삼촌, 그렇지만 깨끗이 씻었단 말이에요.”
“아! 하하...... 그래, 알았다. 누가 뭐라고 했니?”
“피! 외삼촌 표정 보면 다 알겠는데 뭘 그러세요? 절 더러운 계집애 취급하시는 거 다 알아요.”
“후훗, 자식. 자, 일단 그 인간 좀 불러 내. 내가 만나볼 테니까......”
“지금, 여기로요?”
“그래, 그리고 그 인간 오면 너는 마당으로 좀 나가있고......”
“네, 알았어요.”
잠시 후, 전화통화가 이루어지고, 오래지 않아 마당 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오고 있었다. 쪽문을 밀고 들어오던 사내는 기찬을 발견하고는 적잖이 놀란 듯 두 눈을 멀뚱거리고 있었다.
“들어오세요.”
“아! 네, 네...... 누구신지......”
“연경이는 좀 나가 있어라.”
“네......”
연경이 마당으로 나간 뒤, 기찬은 신분증을 꺼내 사내의 면전에서 흔들고, 사내의 얼굴은 삽시간에 흙빛으로 변하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자연스레 높이가 조정됐으니 기찬의 발길질이 이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우당탕......”
말 한마디도 할 필요 없이 서로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 이제 그 흥정만 남은 장사였던 것이다.
“당신, 나이가 오십을 넘어 육십을 향해 가는 것 같은데, 딸이라고 해도 당신 막내 딸 같은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자, 잘못했습니다. 형사님. 제발 살려 주십시오.”
사내는 기찬의 바지를 붙들고 사정을 하고 있었으니, 그를 형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것 봐. 나는 형사가 아니고 군 수사기관에 있는 사람이야. 당신 같은 사람 하나 철책 밑 구덩이에 파묻어 버려도 외눈 하나 깜짝 하지 않을 사람이란 말이야.”
“그, 그럼 보안부대......”
“후훗! 어디서 들은 구석은 있는 모양이군. 그래......”
사내에게 굳이 제대로 된 정보를 줄 필요는 없는 일이었으니 소속에 대해선 그저 어물쩍 넘어갈 모양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알아서 바닥을 기고 있으니 이미 분위기는 기찬에게 넘어온 것, 천천히 걸음을 옮겨 침대로 자리를 한다.
“나, 연경이 외삼촌이요.”
“아! 네, 네! 제가 어떻게 해 드리면 좋을지 제발 선처해 주십시오. 죽으라는 말씀만 빼고 다, 다 하겠습니다.”
“후훗, 그러면 나도 똑같이 네 딸년 침대로 들어가야 되겠군. 자, 방으로 안내해.”
“아, 아니? 선생님.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제발...... 가족들이 알게 되면......”
사내는 다시 기찬의 바지자락을 붙들고 늘어지다가 기어코 수돗가로 나뒹굴 수밖에 없었다.
침대 한 곁에서 티슈를 집어 통째로 던져주자 흐르는 코피를 닦으며 사내는 다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러면 이사를 가도록 하쇼.”
“네?......”
“이사를 하라고 했어. 연경이를 더 이상 이 집에 살게 할 순 없는 노릇이니 이사를 시켜야 하겠는데, 시골에 있는 누님이나 매형에게 설명할 길이 없잖아? 당신이 이사를 하는 바람에 연경이도 할 수 없이 이사를 하는 거라고 해야 자연스럽게 설명이 될 거 아니겠어?”
“아! 네, 네...... 알아듣겠습니다. 그, 그러면 이사만 하면......”
“뻔뻔한 놈 같으니라고...... 그저 이사만 하면 용서해 줄 거냐고 묻고 싶은 건가?”
“아, 아닙니다. 말씀하십시오.”
“연경이에 대한 위자료 및 사건을 무마해 주는 조건으로 이 집은 내가 접수를 할 테니까 내일 부로 내 앞으로 등기 이전을 해 줘야 되겠어. 알았나?”
“지, 집을 말씀입니까? 그, 그건 너무하십니다...... 허걱!”
사내는 다시 한 번 바닥을 나뒹굴고, 한주는 사내의 멱살을 잡아끌어 길 밖으로 내치고 있었으니, 곧이어 지프의 문을 열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사내를 차 안으로 던져 싣고, 운전석으로 올라서고 있었다.
차 안의 조수석 앞에는 예의 경광등과 수사차량이라는 팻말이 버젓이 자리를 하고, 사내의 눈에도 띄는 것은 당연지사, 차의 시동을 걸고 있는 한주의 팔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예사 경찰이 아니라는 것은 이 차의 분위기가 말해 주고 있었고, 이대로 끌려간다면 그의 말대로 구덩이를 파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서, 선생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정말인가? 한 번만 더 말을 바꾸면 그대로 흙냄새 맡는 거야.”
“네, 네...... 알았습니다.”
“이미 연경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질 검사를 받았기 때문에 당신 정액을 채취할 수 있었어. 의사 말로는 일주일이 지나도 당신 유전자를 얻어낼 수 있다고 하더군. 하물며 하루밖에 안 지났으니 누워서 떡 먹기인 셈이지. 만에 하나, 당신이 내 눈앞에서 도망을 친다고 하더라도 증거는 내 손에 있으니 결국 당신 가족들이며 지인들은 모두 알게 되고, 당신은 파렴치범으로 지명수배가 되어서 떠돌아다니게 되겠지.”
“아, 아닙니다. 절대로 도망치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게다가 당신 가족들은 이유도 모른 채 어디론가 끌려가서 뭇 사내들에게 가랑이를 벌리고 정액을 받아내며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 이 세상에 이유도 없이 행방불명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나?”
“서, 선생님...... 제발......”
다시 연경의 방안으로 들어 온 두 사람은 마치 자기 자리가 정해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기찬은 다시 침대 위로, 사내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것은 그만큼 기찬의 공갈이 주효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사건을 무마해 준다는 것은 당신을 죽이지는 않겠다는 뜻이야. 다시 말해서 이 사건을 확대한다면 당신을 재판정으로 끌고 가겠다는 말이 아니라 그 때에는 아예 소리 소문도 없이 죽여 버린다는 뜻이지. 알다시피 나는 군인의 신분이고 비밀 수사요원이기 때문에 내 행적은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아. 그 정도 대가도 치르지 않고 당신이 편안하게 살아간다면 내 조카가 너무 억울하지 않겠어? 물론 내 조카가 원조교제를 했다는 말도 들었어. 당신 입장에서야 숫처녀도 아닌 계집애를 건드리고선 온통 바가지를 쓴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입장을 바꿔서 생각을 해 봐. 믿고 맡긴 누군가에게 당신 마누라나 딸자식이 당신 모르게 똑같은 짓을 당하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어? 그래도 괜찮다면 당신 집안에 있는 여자들은 모조리 내가 접수를 해 주지. 어때? 집이 아깝다면 지금이라도 그렇게 해 줄까? 물론 이유는 설명을 해 줘야 되겠지. 당신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까......”
“아, 아닙니다. 제, 제가 내일 부로 집을 이전해 드리겠습니다. 제발 식구들은 모르게...... 다, 다만......”
“다만 뭐?”
“이사는 한 일주일 정도만 말미를 주셨으면......”
“좋아, 그건 그렇게 해 주지. 그 대신 나도 조건을 하나 달아야 하겠군.”
“조, 조건이라면......”
“당신도 연경이 부모에게서 확인전화가 오게 되면 당신이 이사를 하게 돼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을 잘 해 줘야 되겠지? 만에 하나라도 아픈 사연이 담장을 넘게 되면 당신도 가족들 때문에 뼛골 쑤시는 일이 생기게 될 거라는 점 잊지 말고......”
“아! 네, 무, 물론입니다.”
“좋아. 그럼 내가 내일 전화를 할 테니 서류를 준비해 두고 바깥에서 만나는 것으로 하지. 자, 나가 봐.”
연경은 장독대 근처에서 바닥을 바라보며 어슬렁거리고 있다가, 사내와 한주가 마당으로 나오자 곧바로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보내 외면하고 있었다.
“연경아.”
“네, 외삼촌......”
“이제 들어와라. 내일 학교 갈 준비도 해야지.”
“네......”
사내는 꽁지가 빠지게 계단을 올라 현관 안으로 사라지고, 그 모습을 곁눈질하던 연경은 눈을 크게 뜨고는 기찬을 바라본다.
“어, 어떻게 하신 거예요? 아까 큰 소리도 나던데......”
“으응, 별 일 아니야. 몇 대 쥐어박았을 뿐이야. 저 인간도 이 집을 팔고 이사를 가기로 했으니까 이제 다 해결이 된 셈이지.”
“이사를요?”
“그래, 그래야 너도 자연스럽게 이사를 할 수 있잖아? 시골에서 왜 이사를 하느냐고 물어봐도 대답 할 말이 생기는 셈이고......”
“어머! 저, 그럼 이제부터 외삼촌하고 같이 사는 거예요?”
“그래, 일단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가 내일 이사할 곳을 알려 줄 테니까 그리 이사를 하도록 하자. 시골에 계신 네 부모님이 혹시 와서 보더라도 이상이 없는 곳으로 이사를 해야 될 거 아니니?”
“아! 네, 그거야 그렇죠. 호호호......”
자신의 일로 인해서 기찬이 얼마만큼의 수익을 올리게 됐는지는 알 수도 없는 일, 오로지 사내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과, 기찬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에 그 품을 파고드는 연경이었다.
꽃뱀, 문득 기찬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계집애들을 이용하여 한 몫을 잡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는 게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지금이야 물론 우연히 이런 사연을 접하게 된 것이지만,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제압해야 한다면 이런 방법이 상당히 주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에 자리를 잡는다.
“후훗, 어떤 놈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야말로 골병드는 일이지. 후후후......”
“외삼촌, 무슨 생각 하세요?”
“으응, 아, 아니다. 이제 그만 자자......”
“네, 잠깐만이요. 저 아까 언니들이 갑자기 쳐들어와서 뒷물도 못했잖아요. 몸 좀 씻고 올라갈 테니까 먼저 누우세요.”
“하하, 그랬지? 그래. 얼른 씻고 와.”
이제서 교복을 풀어 발밑으로 흘려두고는 침대에 걸터앉아 양말을 떼어낸다. 한주도 옷을 벗어 옷걸이에 던져두니 연경은 눈을 곱게 흘기며 다시 차곡차곡 개어 예쁘게 정리를 해 둔다. 이윽고 팬티와 브래지어를 떼어내 물에 담그는 것 같더니 놀란 눈으로 기찬을 바라본다.
“참! 외삼촌, 저 내일 이사한다고 하셨죠?”
“그래, 빨래를 물에 담그면 어떻게 해?”
“호호호, 그럼 비닐봉지에 담아둬야 되겠네요. 내일 거기에 가서 빨죠. 뭐......”
“자식......”
수돗가에 돌아앉아 물을 끼얹는 뒷모습은 십 대 여고생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성숙하기만 했으니 다시 기찬의 심벌에 힘이 실리는 노릇이었다.
“아이, 시원해......”
“후훗, 같이 씻을까?”
“네, 이리 오세요. 어, 어머! 외삼촌...... 푸훗......”
이미 팬티를 내리고 있는 기찬을 보고는 잔뜩 성이 나 있는 물건에 저리 웃는 모양이었다. 수돗가에 가서 앉자, 슬그머니 허리춤으로 손을 뻗어오는 모양새를 두고 보자니 기찬을 한 번 더 바라보고는 고개를 숙여간다.
“후웃!......”
“으흠...... 후루룹......”
기찬은 그대로 맨 바닥에 누워 버린다. 턱이 올라와 있는 수돗가에 엉덩이를 걸치고 있으니 허리가 꺾여 잔뜩 도드라진 심벌은 유난히 그 위용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서늘한 바닥 기운이 기찬의 오감을 더욱 일깨우고, 이미 풀어 헤쳐진 연경의 머리카락이 쉼 없이 기찬의 몸을 쓸고 지나간다.
슬그머니 몸을 일으킨 연경은 기찬의 다리를 의지하고 수돗가 턱으로 발을 딛는다. 이 가냘픈 아이에게 저리 큰 엉덩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여자의 뒷모습이라는 것은 신비한 노릇이었다. 늘 보는 것이었지만, 볼 때마다 감탄을 불러일으키니 기찬은 스스로 엉덩이마니아가 아닌지 우스꽝스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악......”
자세가 그런 만큼 더욱 깊이 삽입되는 것을 어쩔 수는 없었다. 바닥에 누워있는 상태에 있으니 연경의 처분에 맡길 뿐, 기찬은 용두에 힘을 주고 있을 따름이었다. 연경은 몸이 앞으로 쓰러지려고 하는지 발을 수돗가 안으로 내려딛더니 본격적으로 엉덩이를 치켜들어 내리찍기 시작한다.
“흐응...... 이상해...... 외삼촌......”
서걱거리는 느낌마저 요란하게 속살을 긁어대는 느낌으로 기찬을 몰아가고, 고개를 들어 바라본 그곳은 드나들 때마다 분홍빛 속살이 심벌을 쫓아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었다.
아침 일찍 윤호를 호출해서 포장이사와 함께 연경의 짐을 노량진 본가로 보내 버린다. 밤새 끌어안고 몸부림을 치던 계집애에게 교복을 입혀 등교시키는 것은 기찬으로서도 낯이 설은 경험이었고, 기찬의 전화를 받은 지영은 예의 핀잔을 던지고 있었다.
“흥! 그러면 그렇지. 나는 자기가 설마 고등학생까지 집안에 들일 줄은 몰랐어. 뭐? 어린애들은 관심이 없다면서?”
“에이, 사정이 그렇게 됐다니까...... 하하하, 그래도 누님은 내 편이잖아. 그렇지?”
“몰라요. 그 애 들어오기만 해 봐. 내가 막 청소 시키고 빨래도 시키고 구박할 거니까......”
“하하하......”
“자기, 이제 그렇게 어린애들까지 거느리게 되면 나처럼 늙은 여자들은 점점 관심도 안 줄 거 아냐? 칫......”
“에헤이, 우리 비서실장님께서 왜 이러시나? 안 그렇다는 거 다 알면서......”
“몰라요. 나중에 식당으로 밥이나 먹으러 와요. 그럼 어떻게 하지요? 내가 나중에 가야 하나? 아니면 애경 씨가 남아서 이삿짐을 받아야 하나?”
“소공동 사무실이 바빠서 애경이는 사무실에 제 시간에 가야 돼. 누님은 레스토랑 직원들한테 전화해 두고 조금 늦게 가도 되잖아.”
“피...... 알았어요. 그럼 오늘 저녁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집에 와서 자요. 공연히 처음 집에 들어오는 아이가 자기마저 없으면 낯설어 하고, 우리를 보기도 괜히 힘들 거 아니에요.”
“후훗, 역시 우리 누님이라니까...... 그래, 나중에 봅시다. 애경이한테도 잘 말해 두고......”
간밤에 도망치듯 빠져나온 카이로에 다시 돌아가질 못했으니 여진은 물론, 마담 세미를 볼 면목도 없었다. 전화를 할까 하다가 시간이 시간인지라 차를 몰아 과천 세미의 집으로 방향을 잡아가는 모양이었다.
“야! 강기찬......”
“으응? 어! 소라야...... 너, 왜 아직까지 출근을 안 했니?”
“흥! 그 술집 여자 만나러 온 거니? 아주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구나?”
차를 주차하고 부리나케 걸음을 옮기는 뒷덜미에 소라의 앙칼진 목소리가 꽂힌다. 바로 옆 동에 살고 있으니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이미 시간이 상당히 흘렀는데 아직도 집에 있다는 것이 의아한 일이었다.
“아, 아니라니까...... 그냥 직장 동료라니까......그나저나 이 시간에 왜......”
“넌, 몰라도 돼...... 난 간다...... 참! 너, 내가 경고한 말 잊지 마. 그거 아직도 유효한 거니까......”
아직도 언니 보라의 일로 화가 나 있는 것 같아 더 이상 물어보지도 못하고, 돌아서다 타고 난 호기심은 어쩌지 못하는지 전화를 꺼내 보라에게 연락을 해 본다.
“어머! 도련님......”
“으응, 누구 있어요?”
“아니, 아무도 없어요.”
“아! 다름이 아니고 소라, 무슨 일 있어? 나 지금 과천에 볼 일이 있어서 왔는데 아직 출근을 안 하고 여기 있네?”
“어머! 지금 소라하고 같이 있어요?”
“아니, 우연히 만났는데 지금은 가고 없어. 계집애 나한테 잔뜩 틀어져 가지고......”
“어머! 왜요?”
“왜는 뭐가 왜야? 계집애가 넘겨 집는 통에 내가 말실수를 해 가지고 우리 사이를 들켜 버렸거든......”
“어머머! 그럼 소라가 우리 사이를 알았단 말이에요? 어쩌다가 그랬어요? 아이 차암......”
“으응, 미안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돼 버렸어. 소라도 형수 입장이 있으니까 모른 척 하고는 있지만, 저게 나만 보면 으르렁거려서...... 왜 그렇게 됐는지는 말해 주지 않았으니까 형수는 그냥 모른 척 하고 있어. 나만 조심하면 되는 일이니까...... 아마 자기 생각에는 내가 형수를 술이라도 먹여 놓고 겁탈한 줄 알겠지.”
“......”
“참, 그런데 소라가 왜 아직 집에 있냐니까?”
“아, 아...... 참! 그 애 오늘 선 보는 날이에요.”
“선?...... 시집을 간단 말이야?”
“네...... 저도 나중에 그 자리에 나가야 돼요. 대양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점심 때 만나기로 양가 약속이 있었거든요. 자기들끼리 맞선은 며칠 전에 벌써 진작 봤고, 오늘은 두 번짼데 양가 식구들이 함께 만나기로 했거든요.”
“아! 그래? 벌써 진전이 있는 모양이네...... 계집애, 그렇게 바락바락 대들 때는 밉더니 그래도 시집을 간다니까 조금 아깝네.”
“어머머! 기찬 씨! 아깝다니? 그 애는 제 동생이란 말이에요. 설마 소라한테 나쁜 맘 품고 있었던 거 아니에요?”
“아! 이거 참, 무슨 말을 못해요. 그냥 그렇다는 말이지. 그나저나 소라가 우리 일을 알고 있으니까 보라도 그런 줄만 알고 있으라고......”
“아, 알았어요. 나중에 제가 조용히 말을 해 볼게요. 그냥 모른 척 하고 넘어갈 일은 아니니까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그리고 이젠 소라도 시집을 갈 나이니까 제가 알아듣게 이야기를 하면 이해를 해 줄 거예요. 사실...... 기찬 씨가 무슨 잘못이 있어요? 다 제 입장 생각해 줘서 그렇게 된 건데......”
“그, 그럼 소라하고 그 이야기를 한다고?”
“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누가 뭐래도 도련님은 제 남자예요. 소라 때문에 혹시라도 마음 변하면 안 돼요? 알았죠?”
“후훗, 그래. 난 모른 척 하고 있을 테니까 그럼 자매끼리 잘 해봐요. 난 나중이라도 소라가 도끼눈만 안 떴으면 좋겠으니까......”
“네, 알았어요. 잊지 마세요. 기찬 씨는 제게 순결을 요구했던 사람이니까 그 책임도 지셔야 하는 거예요. 나 지금 무지하게 창피한 거 무릅쓰고 이 말 하는 거예요.”
“아! 하하하, 알았어. 그럼 물론이지. 보라는 내 여자니까 내가 책임을 져야지. 하하하......”
“아유, 참...... 웃지 말고...... 어머! 손님 들어온다. 그럼 끊어요.”
전화를 끊고 비로소 승강기 안으로 걸음을 옮기는 기찬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린다. 아마도 보라와 소라 자매가 자신의 일로 심각해 하는 모습이 연상되는 모양이었다. 사실을 알고 난다면 소라도 기찬을 소가 닭 보듯 할 수는 없을 테니 그것 또한 기대되는 일이었다. 어쨌든 동생으로서 언니의 행복을 빌어 줄 테니 그 때부터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는 것이고 기찬으로서는 차라리 개운한 입장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열쇠로 아파트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언제나처럼 규방의 향기와 함께 쌔근거리는 숨소리마저 들리는 듯 카이로의 마담, 세미의 공간은 기찬의 오감을 일깨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