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부- (26/40)
  • -26부-

    “어머머! 그럼 그 사람들...... 혹시 스와핑 하는 거 아냐?”

    “스와핑?...... 으흠...... 그거 그럴듯하네...... 아,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그 중사 태도가 석연치 않아. 그 친구는 정말 모르는 것 같던데......”

    “그게 아니라면 보나마나 그 선배라는 남자하고 군인 부인이라는 여자가 바람피우는 거지 뭐...... 누가 알아? 결혼 전부터 데리고 놀다가 멀리 보내기 싫으니까 자기 후배한테 소개시켜서 결혼 시키고 가까이 데리고 있는 건지......”

    기찬은 품에 안겨 누워있는 지영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으응?...... 기찬씨, 왜?......”

    “허헛...... 아니...... 누님, 상상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피...... 틀림없을 거야. 남자들 속이 다 그렇지. 뭐...... 마누라는 무슨 약점이라도 있는지, 꼼짝 못하는 모양이고, 그러니까 속에서 천불이 일어나도 할 수 없이 남편 정부를 미장원에 데리고 있는 모양이지. 동창은 무슨 얼어 죽을...... 잘 생각해 봐. 그 선배라는 사람이 이혼도 반대 했다면서......” 

    “하기야 군인 신분에 위험할 수밖에 없는 개인회생제도를 신청했다는 것도 선뜻 이해가 안 됐는데...... 그것도 그 선배라는 사람이 추천했다지...... 아마......”

    “어머머! 거봐...... 틀림없이 그런 모양이네...... 아유, 그 여자 너무 안 됐다. 무슨 사정인지 모르지만, 남편이 자기 친구랑 바람피우는 걸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 있어야 한다니......”

    “후후후...... 누님, 우리도 스와핑이라는 거...... 한 번 해 볼까?”

    “어머! 미쳤나 봐. 설마 기찬씨...... 나를 카이로 아가씨 정도로 생각하는 거야? 어디 그럴 여자가 없어서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해?”

    “아야...... 하하...... 아유, 꼬집지 마. 아파......”

    힘주어 꼬집어 대는 지영을 피해 자리에서 일어난 기찬은 담배를 피워 물고 장난스럽게 지영을 바라본다. 지수와의 정사를 마치고 올라오자마자 지영을 품에 안았으니 적잖이 힘이 들 터였지만, 워낙 마른 체격의 여자들인지라 기찬에게 큰 무리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공연히 지영에게 스와핑 소리를 한 것이 맘에 걸리는지 기찬은 지영의 표정을 다시 한 번 살피게 된다.

    “누님, 화났어?”

    “푸훗...... 아니...... 동생 같은 기술자가 뭐가 아쉬워서 제 여자 건네주면서 스와핑 같은 짓을 하겠어? 가서 그냥 유혹하면 바로 넘어올 텐데...... 호호호......”

    “으응?...... 하하하......”

    “그래도 앞으론 그런 소리 하지 마. 기분은 안 좋으니까...... 내가 죽을 때까지 이 두 다리 사이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자기 한사람뿐이야. 나, 믿을 수 있지?”

    “후후...... 그럼, 믿지. 믿고말고......”

    “기찬씨, 나만 봐 달라고 하진 않겠지만, 설마 나를 애경씨처럼 취급해서 여기저기 내돌리면 정말 나는 죽어 버릴 거야....... 응?......나는 자기만 보고 살게 해 줘.”

    “아유, 물론이지. 어떻게 누님을 내가 애경이 취급을 하겠어?”

    “참, 그런데 애경씨한테 아파트 사 준다는 말 진짜야?...... 안 사줄 것처럼 하더니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어?”

    “아, 아...... 그거?...... 후후...... 다 생각이 있지...... 누님 좋아하던 조사장 말이야.”

    “으응, 그 사람이 왜?”

    “그 영감...... 카이로에 한 번 놀러오라고 했는데도 통 안 나타나더라고...... 다 애경이가 만나주니까 궁한 게 없어서 그러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 애경이도 조건부로 외출 금지를 시킨 거야.”

    “그게 그거하고 무슨 상관이야?”

    “하루 이틀이야 그렇게 보낼 수 있겠지만, 자식들 눈치가 여전할 텐데...... 누님이나 애경이처럼 고운 여자들을 그 영감이 어디 가서 손쉽게 구하겠어? 노인네가...... 하하...... 결국 나한테 연락이 오겠지.”

    “어머! 그럼......”

    “후훗...... 그렇지. 영감을 설득해서 아파트 한 채 얻어주면 되는 일이지. 뭐...... 그리고 내가 애경이를 그렇게 내돌리는 건...... 할 수 없어. 원래 타고 난 게 자기 지조가 없는 여잔데...... 내 여자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잖아? 어찌 보면 그런 면에서는 카이로에서 몸을 파는 미라만도 못한 걸......”

    “아유, 그러면 그렇지...... 어쩐지...... 그리고 고마워......”

    “뭐가?...... 갑자기 뭐가 고마워?”

    “후훗...... 자기 말이야. 나하고 애경씨하고......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난 또 뭐라고...... 그럼 내 맘을 정말 몰랐단 말이야? 내가 누님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데......”

    “피...... 난 뭐, 한 집에 몰아넣어 놓고, 똑같이 생각하는 줄 알았지. 뭐...... 호호호......”

    “자, 이제 푹 잡시다. 누님......”

    “네, 서방님...... 호호...... 사랑해요. 쪼옥......”

    아침 일찍부터 가구 전시장에는 물건들이 입고되기 시작해 부산스러운 하루가 열리고 있었다. 그간 납품만을 하다가 직영 전시장이 처음 생기는 만큼 지수를 가까이 두고자 하는 기찬의 속내와는 관계없이 나름의 기대를 갖게 하는 회사의 역작이었다.

    영진에서 건설 중인 주택에도 붙박이 가구를 납품하기 시작하는 무렵에 회사를 홍보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공간이 되는 셈이었다. 

    “저...... 사장님, 정식 개장은 점심때쯤이나 될 것 같습니다.”

    “아, 김비서...... 그건 신경 쓰지 말고 일 보세요. 뭐, 테이프 커팅을 할 것도 아닌데...... 그저 자료삼아서 기념사진이나 몇 장 찍어 두라고 하세요.”

    “아, 네...... 알았습니다.”

    “누님은 어디 계세요?”

    “네, 옷 갈아입는다고 내실 쪽으로 갔습니다.”

    “아! 네, 곧 나오겠군요. 됐습니다. 일 보세요.”

    다시 김비서가 입고작업을 진두지휘하느라 여념이 없는 사이, 기찬은 걸음을 옮겨 내실로 향한다.

    “으응?...... 아침부터 웬 전화야?...... 여보세요?”

    “여보세요?......”

    “으응?...... 누나가 웬 일이야?......”

    “으응, 나야......”

    “아침부터 어쩐 일이야? 지금 수업 없는 모양이지?”

    “으응, 지금은 수업이 비었어. 저기...... 기찬아......”

    “으응, 말해. 무슨 일인데......”

    “저기...... 내 동생 말이야...... 윤호......”

    미림이가 다니는 학교, 수혜의 담임이기도 한 학창시절의 선배 이은숙이었다. 동생 윤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는지, 이른 아침부터 기찬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으응, 윤호가 왜?......”

    “지난번 그 일 있고 나서 애가 좀 이상해진 것 같아서...... 시간 좀 내 줄 수 있니?”

    “시간 내는 거야 어려울 거 없지만, 윤호가 이상해졌다는 게 무슨 소리야? 좀 자세하게 말을 해야 알지.”

    “으응, 애가 자꾸 우리 방에 들어와서...... 아유, 나중에 말해 줄게...... 전화로 못하겠어.”

    “알았어요. 점심시간에 맞춰서 학교로 갈게...... 나중에 봅시다. 참, 그리고 수혜를 보거든 나한테 전화 좀 하라고 해 주고......”

    “수혜한테?...... 내가 너를 아는 척 해도 괜찮을까?”

    “괜찮아요. 어차피 이제 원조교제하는 아이들도 모두 손 털었는데...... 혹시라도 어떻게 아는지 궁금해 하면 알고 봤더니 학교 후배라고 하면 될 거 아냐?”

    “으응, 그래...... 알았어. 전해 줄게......”

    마침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지수가 기찬을 발견하고는 곁으로 다가온다. 가슴이 크게 파인 홈드레스를 걸친 지수는 마치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그런 배우처럼 우아했고, 고전적인 가구와도 잘 매치되는 모습이었다.

    “와...... 누님, 멋지다. 역시 내가 보는 눈이 있다니까......”

    “아유, 사장님, 어색해 죽겠어요.”

    “아니야. 정말 멋있어...... 역시 팔등신이라니까......”

    “정말이에요? 보시기에 괜찮아요?”

    “하하...... 그렇다니까...... 누님은 그 쇄골이 예술이라니까...... 참, 그리고...... 며칠 안에 금주씨하고 그 남편이 올지도 모르거든.”

    “누구...... 제 친구 금주 말씀하시는 거예요?”

    “으응, 새로 추진하는 사업에 도움을 좀 받으려고 그 남편을 섭외했었거든...... 내가 접근을 좀 용이하게 하려고 누님하고 내가 친 남매라고 소개했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금주씨도 협조해 준다고 했거든. 친구 동생이니까 당연히 나한테 반말을 할 텐데...... 누님이 보고 놀랄까 봐 미리 말해 주는 거야. 그 남편 있을 때는 누님도 나한테 반말을 해야 되고......”

    “기, 기찬씨...... 혹시...... 설마......”

    “으응?...... 하하...... 누님 필요 이상 긴장하는 모양인데?...... 나한테 기찬씨라고 다 하고......”

    “그래도 설마 금주하고......”

    “누님, 사업상 필요해서 만나는 것뿐이야. 나는 누님뿐인 걸 잘 알잖아?”

    “몰라요. 그 계집애는 정말...... 제가 제일 싫어하는 계집앤데......”

    지수는 정말 마음에 상처를 입었는지, 한 번도 보이지 않던 모습을 보이며 기찬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앗아간 정인을 싫어하는 친구와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 못 견딜 일이었을 것이었다. 더군다나 금주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친구들 사이에서 애인을 뺏겼다는 소문이라도 난다면, 일전의 과시가 모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니, 망신이라면 그런 망신도 없을 것이었다. 

    “누님, 그러면 만나지 말까?...... 누님이 싫어하면 그까짓 사업 안 해도 그만이야.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차라리 다른 사업 찾아보지 뭐......”

    기찬은 지수의 등 뒤로 다가가 살며시 끌어안아 준다. 부드러운 속살이 그대로 느껴지는 얇은 드레스 안에서 지수의 더운 몸이 꿈틀거린다.

    “누가 그러랬어요? 뭐예요?...... 협박도 아니고......”

    “그래, 안심해요. 누님...... 조금이라도 금주씨가 누님 마음에 어긋나게 굴면 그 때는 언제가 됐던지 그 사업에서 단칼에 빼 버릴 테니까...... 아마 그러면 그 여자가 누님한테 절대로 건방떨지 못할 걸...... 건방이 다 뭐야?...... 그때부터는 누님 졸개 한다고 따라 붙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어머! 정말이에요? 그게 무슨 사업인데 그래요?”

    “후후...... 나중에 누님한테는 다 말해 줄게...... 우선 나갑시다.”

    “네, 알았어요. 그 대신 기찬씨...... 약속 지켜야 돼요. 저 정말 금주 계집애 잘난 척해서 싫단 말이에요.”

    “알았어요. 자, 약속......”

    아직 은숙을 만나러 가기에는 시간 여유가 있는 편이었지만, 지수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아 자리를 피할 생각으로 일찌감치 차에 올라 시동을 켠다. 수혜를 통해 용돈을 받아갈 아이들의 면면도 살펴봐야 했는데, 어젯밤 시간이 늦어 지영과의 약속이 염려된 탓에 카이로에 들리지를 못했고, 여진에게 명단을 받지도 못했으니, 할 수만 있다면 아이들을 직접 만나볼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으응, 그래...... 수혜니?”

    마침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 수혜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네, 지금 이 교시 끝나고 전화 드리는 거예요. 외삼촌이 전화하라고 하셨다면서요?”

    “그래, 내가 점심시간 쯤 너희 담임 볼 일이 있어서 학교에 갈 거거든. 그 때쯤 애들 좀 볼 수 있을까?”

    “아...... 애들이요?...... 네, 제가 미리 말해 둘게요. 전에 외삼촌 처음 만난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을까요?”

    “그래, 밥들 먹고 나와 있으면 되겠다. 그렇지?”

    “네, 그럴게요.”

    “참, 그리고 병원에 계신 엄마는 누가 돌봐 드리고 있니?”

    “아니요. 제가 등하교 길에 들려서 가고 있어요.”

    “아! 그래?...... 간병인을 한 사람 붙여 두지 그랬을까? 여진 언니가 뭐라고 말이 없었니?”

    “네...... 언니는 그러자고 그랬는데 엄마가 미안하다고 그러셔서......”

    “에이...... 그랬구나? 그럼 외삼촌이 가서 한 사람 붙여 둘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그 병원이 어디지?”

    기찬은 수혜에게 병원과 엄마의 이름을 듣고 바로 병원으로 향한다. 하기야 신세를 지는 입장에선 간병비도 만만치 않은 일이니 그것까지 부탁하기에는 염치가 없는 일이어서 굳이 사양을 했을 것이지만, 이제 기찬은 수혜를 대하는 마음이 남 같지만은 않아 가능한 한 모든 배려를 해 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저...... 간병인을 구하려고 하는데......”

    “환자가 누구지요?”

    “네, 보호자가 안수혜로 돼 있을 거고......”

    “아! 네...... 그 환자요? 선생님은 환자하고 무슨 관계이신데......”

    “네, 저희 누님입니다.”

    “아, 그러세요? 병실에 가시면 간병인 협회 전화번호가 붙어있을 거예요. 그리 전화를 하시면 됩니다.”

    “아! 네, 고맙습니다.”

    “비용은 병원과 상관없이 간병인에게 직접 주셔야 하니까 잊지 마시고 꼭 만나고 가셔야 합니다. 어디에서 올진 모르지만 부르자마자 금방 올 순 없을 거예요.”

    “네, 네...... 잘 알았습니다.”

    수혜의 엄마는 디스크 환자였는지 허리와 한 쪽 다리 부분에 무거운 추를 매달아 들어 올리는 견인치료를 받고 있었다. 자칫 건드려서 될 일도 아니었으니 병원에서는 일인 병실을 권했던 모양이고, 간병인도 없이 쓸쓸하게 마치 수감생활을 하는 것과도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었다.

    “아! 이런...... 역시 혼자 계셨군요.” 

    “누, 누구신지......”

    “네, 말씀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제가 수혜 후원자 되는 사람입니다.”

    “아유, 네...... 선생님, 고맙습니다. 제가 일어날 수가 없어서......”

    “네, 네...... 물론이지요. 그대로 계십시오. 하하......”

    기찬은 바로 간병인 협회에 전화를 걸어 사람을 청하고, 곁에 앉아 비로소 수혜의 엄마를 자세히 살펴본다. 역시 금주나 지수 정도의 연배일 테지만, 고생을 많이 했는지 그보다는 더 들어 보이기도 했고, 수혜가 엄마를 닮았는지 아픈 테가 역력한 환자임에도 본바탕의 용모는 단아한 편이었다.

    간병인이 오기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던 중, 수혜의 엄마가 매우 곤란한 표정을 짓고 기찬을 바라본다.

    “왜 그러세요? 어디 불편하신 데라도......”

    “네...... 저...... 간호사 좀 불러 주시겠어요?”

    “네, 네...... 잠시만 계십시오.”

    기찬은 서둘러 병실을 빠져 나오고, 간호사 석을 찾아갔지만, 근무자가 한 사람뿐이어서 응급상황이 아니고, 정해진 회진시간이 아니면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안내만 듣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워낙 엄살이 심한 환자들이나, 이유 없이 근무자들을 채근하는 환자들이 의례히 있는 법이니 간호사가 그렇게 규정을 들어 고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었다.

    “저...... 지금 아무도 없어서...... 무슨 일이신데요? 이유를 알 수 있으면 의사라도 호출하면 될 텐데...... 어디가 갑자기 아프기라도......”

    “아,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네, 말씀하세요. 답답하게 그러지 마시고...... 아, 이래서 간병인이 있어야 한다니까......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도 모르겠고......”

    “저, 제가 지금 소피가......”

    “아, 아...... 네...... 아, 이런......”

    몸이 고정되어 있는 환자를 일으킬 수도 없고, 달리 도움을 청할 만한 사람도 없으니 곤란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순간 다른 병실에 있는 간병인이나 보호자에게 잠시 부탁을 할 수도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워낙 상황이 다급해 그도 여의치 않을 것만 같았다.

    “아흑...... 아침에 수혜가 늦었다고 하는 바람에 그냥 보냈더니......”

    “하, 할 수 없네요. 제가 어떻게 해 드릴까요? 저를 그저 수혜 외삼촌이라고 생각하세요.”

    “아유, 그래도...... 어떻게......”

    “어허...... 참을 걸 참아야지요.”

    “미, 밑에......”

    침대 밑을 보니 용변을 받아내는 도구인 듯 주둥이가 묘하게 생긴 그릇이 있어 기찬은 허리를 숙여 그것을 집어 올린다. 뒤이어 환자복을 벗겨야 하니 다시 난감해지지만, 이미 오래 참은 듯 점점 일그러지는 표정을 보고 더 이상 망설일 수도 없어, 즉시 병실 문을 걸어 잠그고 수혜 엄마의 환자복 치마를 걷어 올린다.

    “하윽......”

    수혜의 엄마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가리고, 기찬은 이미 한쪽 다리가 견인되어 들어 올려진 상태로 벌어진 수혜 엄마의 사타구니 밑으로 용변기 주둥이를 들이밀어 넣는다.

    환자복 밑으로는 이런 경우 때문인지 팬티를 입지 않아 거뭇한 거웃이 모두 드러나고 도독한 아랫배까지 노출이 되어 기찬의 시야를 어지럽힌다. 혹여 소변을 흘려서도 곤란한 일이니 기구를 바짝 들이대느라 벌어진 살집도 고스란히 기찬의 시선 아래 놓여진다.

    “자, 부끄러워하실 것 없어요. 어서 힘주세요.”

    “흐윽......”

    기찬은 기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더욱 사타구니에 밀착시킨 채 붙들고 있어야만 하니 바로 수혜 엄마의 코앞에서 주문을 하고, 수혜 엄마도 더 이상 참기가 힘들었는지, 부끄러움을 뒤로 하고, 방뇨를 시작한다.

    조용한 실내에 소변줄기가 내뿜어지는 소리만 요란해 알 수 없는 정적이 흐르고, 약물이 녹아들어 샛노란 소변을 보고 있는 기찬의 기분이 야릇해진다. 다시 한 번 곤란한 일이 찾아 온 것은 뒤처리가 남아있다는 것이지만, 이미 한 번 넘은 산,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기찬은 티슈를 꺼내 사타구니 사이의 살집을 꼭꼭 더듬어 물기를 제거해 주고는 치마를 다시 덮어내려 준다.

    수혜의 엄마는 여전히 얼굴을 가린 채 손을 떼지 못하고 있었고, 그 심정을 모르는 바도 아니니, 기찬은 수돗물을 틀어 손을 씻으면서 너스레를 떨어 댈 뿐이었다.

    “하하...... 너무 그러실 것 없어요. 수혜도 저를 외삼촌이라고 부른다니까요.”

    “죄, 죄송해요. 선생님...... 인사도 못 드리겠어요.”

    “자, 그럼 저는 밖에서 간병인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우선 쉬세요. 가기 전에 다시 뵙고 갈게요.”

    몹시 부끄러워하는 수혜 엄마를 남겨두고 병실을 나오자 오래지 않아 간병인이 오고, 제반 처리를 마친 기찬은 다시 수혜 엄마에게 안부를 전한 뒤 병원을 빠져 나온다.

    알싸한 약냄새마저 풍기며 모락모락 더운 김이 피어오르던 수혜 엄마의 방뇨장면을 좀처럼 쉽게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마음이었다.

    “허헛...... 참...... 이게 병으로 치면 아주 심각한 병이라...... 환자를 보고도 그게 생각나니......”

    점심 무렵 학교에 도착하니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았는지 운동장은 조용하기만 하였다. 오늘따라 체육 수업도 없는지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아 무료하게 하늘을 바라보던 기찬은 전화를 들어 은숙에게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아! 그렇지...... 한실장에게도......”

    소공동 사채 사무실에 나가 있는 한기주에게도 전할 말이 있는지, 재차 전화기를 눌러 대고 말을 이어간다.

    “한실장......”

    “네, 네...... 사장님.”

    “얘기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당신 집사람하고, 최강희씨 말이야......”

    “네, 네......”

    “이제 다른 사업장에 투입할 계획이거든......”

    “아! 네, 들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주방 일 배우러 다닌다던데요.”

    “으응, 그래서 그 사무실에는 소영씨나 누구...... 다른 사람으로 인원을 대체해야 할 것 같은데...... 이거 한창 바쁜데 내가 숙달된 사람을 빼 가는 거 아닌지 몰라......”

    “하하...... 아닙니다. 안 그래도 집사람이 그러기에 벌써 대체 투입하고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이야 깔려 있는 거고, 신상정보만 바꿔주면 되는 일인 걸요. 뭐......”

    “으음...... 잘 했네요. 그래도 보안에 각별히 유념해야 됩니다.”

    “네, 네...... 조심, 또 조심하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대체 인원이 자리 잡히는 대로 두 사람은 완전히 뺄 거니까, 한실장이 판단해서 전화 해 줘요.”

    “네, 알았습니다. 오늘 최종적으로 지켜보고 오후 쯤 전화 드리겠습니다.”

    “그래요. 한실장이 알아서 잘 해 주니까 한결 부드럽군. 그래...... 하하하...... 그럼 이쯤에서 선물을 안 해 줄 수도 없겠는데......”

    “네?...... 선물이라니요?”

    “오늘 인출해서 한실장 아파트에 깔린 빚도 정리해 버려요...... 그게 얼마나 된다고 했지?”

    “아! 아...... 네...... 한 이억이 조금 넘습니다.”

    “어이구...... 그 아파트 시세가 제법 나가는 모양이네?...... 이억씩이나 잡아주게......”

    “하하...... 이거 정말 죄송해서......”

    “아니야. 어차피 내가 약속한 건데...... 그리고 당신하고 당신 집사람은 이미 내겐 식구 같은 사람들 아닌가? 자, 서둘러서 입금해 버리고 개운하게 지내라고......”

    “네, 네...... 고맙습니다. 사장님......정말 고맙습니다.”

    전화를 끝낼 즈음 차임벨 소리가 들리고 삽시간에 웅성거리는 소음이 느껴지는 것이 점심시간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건물 현관을 바라보고 앉아있던 기찬은 은숙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먼저 걸음을 옮겨 학교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미안해...... 많이 기다렸어?”

    “아니, 나도 조금 전에 온 거야. 어디 가서 점심이라도 먹으면서 얘기할까?”

    여학교라서 그런지 학교에서 썩 멀지 않은 곳에 경양식 집도 여러 군데 있어 그 중의 한 곳으로 자리를 하고 기찬은 담배를 꺼내 문다.

    “그래, 무슨 일인데?...... 윤호가 뭘 어쨌기에......”

    은숙은 종업원이 주문을 받고 가기를 기다렸다가 주변을 다시 돌아보며 작은 소리로 속삭여 사정을 전해 온다.

    “아유 참,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지...... 애가 이상해졌어...... 내 세탁물에다가......”

    “으응?...... 하하하...... 난 또 뭐라고...... 그럴 수 있는 거야. 건강하다는 증거고......”

    아마도 은숙은 자기 동생 윤호가 자신이 벗어 둔 속옷에 자위행위를 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신체 건강한 사내가 예쁜 누나에게 연정을 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으니 기찬은 그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설명을 해 줄 뿐이었다.

    어찌 보면 자신이 건사하던 계집애들을 모두 기찬에게 뺏기고 나서 사귀어 오던 유정이나 다른 계집애들에게조차 접근을 못하게 하고 있으니 그 답답함이 그렇게 분출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그저 웃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순진하기만 한 은숙은 동생이 자신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에 몹시 놀랐을 것이고, 그 일을 터놓고 상의할 만한 사람이라곤 기찬 밖에 없으니 이렇게 하소연해 오는 것이라고 짐작하는 모양이었다.

    은숙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말을 못하고 있다가 다시 종업원이 상을 차리고 물러가길 가다려 말을 끊어 버리는 기찬이 답답하다는 듯 말을 이어간다.

    “아이 차암...... 그런데 그걸 우리 남편이 본 모양이야...... 나한테 속옷이 왜 그렇게 더럽냐면서 냉이라도 있는지 검사 받으라고 하는데 나도 가서 보고는 낯 뜨거워서 혼났단 말이야.”

    “으응?...... 하여튼 그 자식...... 뒤처리도 제대로 못하고......”

    “그런데 그게...... 남자들이 보면 대번에 알 수 있을 텐데...... 냄새도 날 거고......”

    “푸훗...... 그렇겠지. 그 냄새가 쉽게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남자가 돼서 그게 뭔지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니...... 아마 윤호 자식한테 주의라도 주라는 뜻인 모양인데......”

    “그러니까...... 요새 내가 아주 곤란해 죽겠어...... 이제는 안방까지 들어와서 내 옷장을 뒤지는 모양이야......”

    “그 자식, 그거 아주 애물단지구먼...... 그래, 내가 어떻게 해 주면 좋겠어? 누나가 말해 봐.”

    “저...... 너는 발이 넓을 테니까...... 어디 취직이라도 시킬 수 있으면 애가 좀 다른 데에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아마 내 생각엔 그렇게 여자애들을 만나 오다가 이제 그 짓을 못하니까 순간적으로 저러는 것 같기도 하거든......”

    “참 나...... 그래도 누나 동생이라고 역성 들어주는 거야? 허헛 참......”

    “......”

    “그럼, 그러지 말고...... 나한테 아주 맡겨요. 누나가 천 년 만 년 옆구리에 끼고 살 수 있는 일도 아니잖아? 벌써 다 커 버린 동생을...... 저대로 두면 언제고 매형하고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일인데......”

    “나도 그게 걱정이야...... 그럼 어떻게...... 어디 적당한 일자리라도 있을까?”

    “아예 짐 싸서 자리를 옮기게 해 줄게. 바닥부터 열심히 하면 기회 봐서 진급도 빨리 시켜 줄 거고...... 어쩌면 윤호 녀석 취향에 딱 맞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기찬은 카이로에 대해 설명을 해 주고, 숙소를 그곳에 마련해 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계집애들이 외박을 나갈 경우, 여관을 수배해 실어 나르고, 다시 데려오기도 하는 일종의 똘마니 역할이지만, 여자에 대한 갈증도 해소할 겸 자신이 뜯어먹던 그런 계집애들로부터 팁을 받아 연명해야 하는 자리니만큼 화류계에 몸담고 있는 아가씨들에 대한 인식이며 관계설정도 새로이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할 것이었다. 

    “그 일을 녀석이 참아내고 해 낼 수 있으면, 기회 봐서 다른 곳으로 옮겨서 중하게 써 줄 테니까...... 어때?...... 누나 생각엔 괜찮겠어?”

    “아유, 난 잘 모르지...... 그럼 나는 너만 믿을게...... 기찬아...... 부디 날 생각해서 험하게 다루지 말고, 네 동생처럼 생각해 줘.”

    “허허...... 참, 기가 막혀서...... 그 자식하고 나하고 동갑이야. 동생은 무슨 얼어 죽을......”

    “그래도 기찬아...... 나를 생각하면......”

    “그래, 누나야 물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지...... 그럼 이따가 내가 저녁쯤 누나 집으로 가서 윤호를 만나볼 테니까 걱정하지 마. 자, 이젠 갑시다. 애들도 만나보기로 했는데......”

    나무 밑 벤치에 모여 있던 녀석들은 역시 수혜의 말처럼 교내에선 특별한 세를 형성하고 있는 녀석들인지 다른 아이들이 접근을 꺼려 자기들끼리 오붓한 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은숙과 함께 들어서는 기찬을 발견하고는 멀리서 수혜가 달려와 팔짱을 걸어온다.

    “어머! 외삼촌이 우리 선생님 학교 후배라면서요?”

    “으응, 그래...... 참, 애들은 다 나왔니?”

    “네...... 저쪽에 다 모여 있어요.”

    기찬은 은숙을 먼저 들여보내고, 아이들을 만나 면면을 살펴보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비밀요정의 별동대로 삼을 수도 있는 노릇이니 그 용모며 몸매 따위도 품평회에 나온 물건처럼 세세히 뜯어보고서야 비로소 만족한 듯 만면에 미소를 띠게 된다. 개중에는 고등학생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뛰어난 아이들도 제법 있었기 때문이었으니, 이런 아이들을 나중에 제 값을 쳐서 화류계에 스카우트하려면 엄청난 뒷돈을 들일 수도 있는 문제였다.

    “어때요? 외삼촌......”

    “그래, 모두들 맘에 드는구나. 전부 다 몇 명이지?”

    “저까지 열두 명이요.”

    “흐음...... 그럼 여기에 이름 적고, 그 옆에 자기가 매달 받기를 원하는 금액을 적으라고 해. 결국 자기가 나중에 갚아야 하는 돈이니까 무리해서 적을 필요는 없겠지?”

    “네...... 애들도 다 알고 있어요. 나중에 금액을 조정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래, 그래......”

    역시 아이들은 유흥비 따위의 용돈 목적이 대부분인지 그 금액이 오십만 원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적은 금액들을 올려 기찬의 실소를 자아낸다.

    기찬은 아이들을 둘러보고 그 중 가장 미모가 뛰어나고, 몸매가 날씬한 아이 하나를 가리킨다. 키도 무리 중에 제일 커서인지 단연 돋보이는 아이였다.

    “저 애는 몇 학년이니? 옷만 갈아입히면 학생처럼 안 보이겠는데......”

    “아! 연경이요? 저 애도 우리 반이에요. 이학년...... 피...... 외삼촌...... 지금 혹시......”

    “으응?...... 자식...... 후훗......”

    수혜는 아이들과 따로 떨어져 나와 기찬과 명단을 들여다보며 아이들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틈틈이 기찬의 표정을 살피며 기찬의 기호에 맞는 아이들을 눈여겨보는 듯 측근 비서의 역할 을 제법 당차게 해 내는 모습이었다.

    “그럼...... 제가 가서 물어보고 올게요.”

    “뭐, 뭐를......”

    “혹시라도 생리 중이면 안 되잖아요? 저는 지금 ing거든요...... 호호......”

    말릴 새도 없이 달려가 계집애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모습을 보자니 미모가 눈에 띄어 그저 물어 본 말에 적잖이 난처해지기도 했지만, 이내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이는 계집애의 표정을 보니 비로소 저 애도 자신의 손 안에 들어온 내 여자라는 포만감이 몰려온다.

    “네, 연경이는 괜찮대요. 그럼 선생님한테 조퇴시켜 달라고 하세요.”

    “으응, 그래. 알았다.”

    정문 입구에 차를 대 놓고 기다리니 잠시 후, 연경이가 고개를 숙이며 차 안을 들여다본다. 수혜와 어영부영하다가 분위기에 몰려 연경이를 조퇴까지 시키게 되었지만, 아닌 게 아니라 아까 병원에서의 일로 기찬은 내내 뭔가 해소하지 못해 개운치 못한 기분이 들었던 중이었다. 중간에 만난 은숙에게서 해결을 하기에도 시간이 촉박해 여의치 않았던 터에 꿩 대신 닭이 아니라 봉황을 얻은 셈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으응, 그래...... 어서 타라.”

    계단이 높은 지프임에도 워낙 키가 커서 어렵지 않게 발을 딛고 올라선다. 벌어지는 치마 사이 속살을 바라보며 가방을 받아 뒤로 넘긴다.

    “날씨가 무척 덥지? 비라도 한 번 쏟아지겠다.”

    “네...... 저...... 저도 외삼촌이라고 불러도 되나요?”

    “으응?...... 그럼...... 되고말고...... 연경이는 성씨가 김씨지? 김연경......”

    “네...... 맞아요.”

    “키가 무척 크네?...... 옷만 갈아입으면 학생으로 보는 사람도 없겠어.”

    “호호...... 네...... 다들 대학생인 줄 알아요.”

    “그래, 나하고 친구라고 해도 믿겠는데...... 인기가 많았겠어?”

    “그동안에도 다시 만나자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겁이 나서...... 그래서 전 주로 새벽에 술이 많이 취한 아저씨들만 만났어요. 그래야 잘 기억을 못하거든요. 호호......”

    “새벽에?...... 그 시간에 집에서는 어떻게 나오고......”

    “전 집이 시골이라 아빠가 아는 분 댁에서 지내고 있어요. 호호...... 하숙집처럼 제 방은 출입문이 밖으로 따로 있어서 문제없거든요.”

    “으응?...... 하하...... 유학생이네?......”

    “원래는 여기서 살다가 이사를 갔는데...... 제가 무용부라서 그냥 저만 여기에 남았어요. 어차피 대학교도 무용 전공으로 가야 하는데...... 시골 학교에서는......”

    “아! 그랬구나?...... 식구들하고 떨어져 지내려면 많이 외롭겠네......”

    “외삼촌...... 그런데, 지금 어디 가시는 거예요?”

    “으응?......아! 이런......”

    연경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심코 은숙의 집으로 방향을 잡아 버렸다. 낮에 잠시 만나 윤호에 대한 상의를 했던 것이 무의식중에 자리를 잡았는지 노량진이나 흑석동으로 가야 할 것을 엉뚱한 곳으로 오게 된 모양이었다.

    “할 수 없지.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연경이 너도 윤호 알지?”

    “윤호 오빠요?...... 네...... 그 오빠 이제 외삼촌한테 혼나고 일 안 한다면서요?”

    “으응, 그래...... 내가 볼 일이 조금 있는데...... 같이 올라갈래? 아니면 차에서 기다릴래?”

    “아이, 같이 가요. 여기는 더워서......”

    “그래, 그럼......”

    무엇을 하는지 한참이나 시간이 지난 뒤 문을 열어주는 윤호를 밀치고 기찬이 안으로 들어선다. 함께 따라온 연경이의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기찬의 출현에 윤호는 기가 죽어 버리고, 이미 기찬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는 바였지만, 이렇게 학교에 있어야 할 낮 시간에도 자유자재로 여학생을 대동하고 다니는 기찬에게는 도저히 맞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감만 더 할 뿐이었다.

    “무, 무슨 일이신지...... 요즘은 아예 바깥출입도 안 하고 있는데......”

    “그래서 왔어. 인마...... 너 당장 짐 싸서 따라 나서. 네 누나하고도 대강 상의한 얘기니까......”

    기찬은 은숙과 나눈 얘기들을 들려주고, 그 내용이 절정에 달해 은숙의 속옷 얘기가 나올 때는 따라온 연경을 볼 수가 없어 고개를 바닥으로 처박을 뿐이었다.

    “너, 이 자식아...... 그래 가지고 너희 매형하고 네 누나하고 큰 싸움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렇게 어리석게 굴어? 당장 갈아입어야 할 옷 몇 가지만 가방에 싸서 냉큼 따라 나서. 앞으로 벌어먹고 살 길은 내가 열어 줄 테니까......”

    “네, 네......”

    “뭐 해? 인마...... 얼른 안 움직이고......”

    주춤거리는 윤호를 닦달해 서두르게 하고, 기찬은 연경의 곁으로 다가앉는다. 당당한 체격의 기찬이 윤호를 압박해 들어가는 모습에 연경은 기찬의 영향력을 확연히 느낌으로 전해 받게 되고, 그것은 마치 작은 집에서 살다가 크고 안락한 집으로 이사를 마친 것과도 흡사한 느낌으로 연경의 마음을 녹아들게 한다.

    “저...... 외삼촌...... 혹시......”

    “으응, 그래...... 뭐?......”

    “아, 아니요...... 나중에 말씀 드릴게요.”

    “자식...... 싱겁긴......”

    “후훗......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래......”

    연경이 일어서자 기찬도 따라 일어서, 방안에서 짐을 싸고 있는 윤호를 재촉한다. 더운 날씨에 윤호의 일로 인해 연경과의 회포를 푸는 것이 늦어져서인지 잔뜩 짜증이 섞인 소리로 윤호를 몰아간다.

    “뭐 해?...... 이 자식아. 아직까지 트레이닝 복 쪼가리를 입고...... 빨리 안 갈아입어? 시간 없는데......”

    어영부영 짐을 싸던 윤호는 기찬의 재촉에 엉거주춤 일어서 난감한 표정을 짓고, 그것이 연경이 때문이라고 생각한 기찬은 방문을 닫아 준다.

    “이 자식 봐라? 너, 좀 이상한데...... 그 바지 얼른 벗어 봐.”

    여전히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윤호의 바지를 끌어 내리자 윤호는 황급히 기찬의 손을 막아온다. 하지만 힘이 없는 바지는 이미 반쯤 내려가 있고, 그 속에는 여자의 스타킹을 걸치고 있는 모습이 드러나 버린다. 아마 문이 열리는 시간이 오래 걸린 것에는 그런저런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허헛 참...... 이 자식...... 많이도 망가졌네...... 야, 야...... 알았다. 어서 갈아입어. 그까짓 게 뭐 대수라고......”

    기찬은 윤호가 편히 옷을 갈아입도록 방을 빠져나와 안방으로 건너가 서랍 따위를 열어보곤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은숙의 말대로 이제는 서랍을 뒤져 속옷을 가지고 노는지 그 속은 심하게 흐트러져 엉망이었다.

    “저...... 그럼 저는 거기서 차 운전만 해 주면 되는 건가요?”

    “그래, 너무 기죽어서 지낼 것도 없어. 아가씨들이 네 생명줄이니까 친절하게 대해주고, 눈치껏 다른 사람들하고도 원만하게 지내 봐. 정 수입이 없어서 곤란할 지경이면 내가 다만 얼마라도 쥐어줄 테니까...... 어쨌거나 한 번 해 봐. 팁을 많이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 아가씨들 옷...... 세탁소 심부름도 나서서 해주고, 신발도 닦아주고 하다 보면 네 편이 많이 생기지 않겠어?”

    “네...... 알았습니다.”

    “언제까지 대가리 굵어진 동생을 네 누나가 데리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잖아? 여기서 아주 뿌리 내릴 생각으로 열심히 하면 내가 또 기회를 줄 테니까 잘 해봐.”

    “네......”

    이른바 bar boy 역할을 맡기는 것이니, 술집에서 계집애들의 온갖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하며 그녀들이 주는 팁으로만 연명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기찬의 목적은 그로 인해서 계집애들과의 올바른 상관관계를 맺어가기를 바라는 것이었으니 장차 방배동의 비밀요정에서도 이처럼 허드레 일을 맡아서 처리해 줄 사람은 필요할 터, 그 재목으로 윤호를 내정해 두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영향력 아래 차츰 차츰 사람들을 모아가는 기찬에게 박상사의 카이로는 아주 좋은 배양소인 셈이었다. 조직에 순응하면서 조직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을 잊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 기찬의 놀라운 순발력이 돋보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어머! 이 술집도 외삼촌 거예요?”

    “으응?...... 아니, 그건 아니고...... 나중에 연경이가 도와 줄 일은 방배동에서 할 거야.”

    “우리 학교에서 가깝네요?”

    “하하...... 그렇지?...... 연경이가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예쁘고 날씬하니까 특히 나를 많이 도와줘야 돼. 연경이를 수혜하고 같이 팀장을 시킬 생각이니까......”

    “어머! 정말이에요? 후훗...... 아이 신난다.”

    윤호를 웨이터들에게 소개하고 인계해 준 뒤, 연경이와 함께 내실로 들어와 잔뜩 옭아맸던 긴장을 풀어 버리고 느슨하게 기대어 쉬고 있는 중이었다. 낮 시간에도 각종 준비 작업으로 바쁘기만 한 카이로의 식구들도 여고생 교복을 입고 들어서는 연경을 보고는 모두가 깜짝 놀라 기찬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한동안 에어컨을 틀어 두어 서늘한 기운이 방안을 감돌 무렵 기찬이 몸을 일으켜 여기저기 구경을 하고 있는 연경을 끌어당긴다.

    “흐으읍...... 흐으음...... 쭈우웁......”

    “하악...... 외삼촌......”

    입맞춤 한 번으로 연경의 눈가에 열망이 피어오른다. 흑석동 아파트나 노량진 집으로 데리고 갈 것을 일정이 어긋나는 바람에 윤호를 만나고, 이 곳 카이로까지 와서야 품에 안아 들인다. 예정에 없던 일정으로 기찬의 영향력을 한 눈에 확인하게 된 연경의 방심은 삽시간에 무너져 내려 그저 기찬이 만져주기만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흐윽......

    그까짓 비밀요정의 팀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리도 없을 테지만, 그저 기찬이 자신을 총애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십팔 세 소녀는 구름 위에 뜬 기분을 체험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가슴을 주물러 오는 기찬의 손길에 뒤 이은 순서를 연상하는지 팽팽한 긴장감으로 몸을 떨어 댄다.

    “외삼촌......”

    기찬의 얼굴로 단내를 쏟아내는 연경을 일으켜 세워 잘록한 허리의 교복 단추를 풀어낸다. 흰색의 얇은 셔츠를 받쳐 입은 영락없는 여고생 차림이 기찬의 성감을 폭주하게 만들어 버려 갑자기 그의 손길을 거칠게 몰아간다.

    “하윽...... 천천히......”

    연경을 책상 모서리로 돌려 세우고 그 엉덩이를 천천히 쓰다듬어 치마를 걷어 올린다.

    무용을 해서인지 탄탄한 엉덩이가 주는 감흥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역시 무늬 없는 흰 색의 팬티를 끌어내려 사타구니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분홍 빛 살집을 쓰다듬어 내린다.

    “하악......”

    연경도 내심 자극을 받아왔다는 것이 그 촉촉한 물기로 느껴진다. 허리띠를 풀어 내는 동안 연경은 두려움과 기대가 교차되는 시선으로 엉덩이를 잔뜩 내민 채 기찬을 돌아본다.

    “하아아아악...... 삼촌...... 흐응......”

    한두 번 문질러 길을 내고 이내 들이치는 기찬의 심벌에 연경은 책상을 끌어안고 절규를 한다. 연이어 오가는 낯 설은 이물감은 그 크기에 있어서도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으니 적지 않은 충격에 책상 모서리를 붙들고 몸을 의지할 뿐이었다.

    “후욱...... 후욱......”

    낮 시간에 만났던 병상의 수혜 엄마가 오버랩 되어 떠오르고 펄럭이는 잿빛 치마 밑으로 연경이의 엉덩이가 파문을 일으켜 물소리가 요란하다. 한껏 발기한 기찬의 심벌, 그 혈관을 꿈틀거리는 욕정 덩어리가 연경이의 분홍 빛 속살 사이를 쪼개어 폭주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