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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310화 (31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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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24화

    슈페리어 차원의 높다란 탑.

    시계탑은 크게 하층과 상층으로 나뉜다.

    그중 하층은 올림포스 전당과 아스가르드 전당의 영역.

    나머지 상층은 이 시계탑의 진정한 주인, 혼돈의 전당이 차지한다.

    “문 한번 엄청 크네.”

    하층과 상층이 나뉘는 지점.

    바로 그곳에 거대한 문이 존재했다.

    지키는 이도, 손잡이도 없는 흑요석 문.

    그저 사각형의 큼지막한 홈만 눈에 띄었다.

    초대장으로 떨어졌던 비석에 딱 맞는 홈이었다.

    덜컹!

    이안이 그 홈에 비석을 꽂아 넣었다.

    그러자 굳게 닫혔던 문이 스스로 열렸다.

    하층과 상층을 연결해 주는 유일무이한 통로.

    그 너머로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이 펼쳐졌다.

    뚜걱, 뚜걱, 뚜걱…….

    한 칸, 한 칸, 그리고 또 한 칸.

    이안의 흑요석 밑창이 시계탑 상층의 계단을 쉴 새 없이 밟았다.

    아무리 오르고 또 올라도 도통 끝나지 않았으나, 이안은 인내심을 발휘했다.

    직접 계단으로 올라오라는, 애당초 방법이 그뿐이라는 초대장의 내용을 충실히 따랐다.

    ‘이놈들은 목적이 뭘까?’

    항상 염두에 두고 있던 궁금증이다.

    다만 지금까지는 지배자가 되기 위한 과업을 수행하느라.

    격을 쌓고 힘을 키우느라 제대로 고찰해 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 계단을 오르는 순간만 해도 그렇다.

    이런저런 고민을, 강해지는 것 이상을 고려할 차례가 되었으리라.

    ‘내가 아는 거라곤 그저 압도적인 힘으로 슈페리어 차원을 침공한 외계 세력이라는 점뿐.’

    어디에서 왔는지.

    왜 하필 슈페리어 차원을 침공했는지.

    이그드라실의 아홉 세계로부터 무얼 얻으려는 것인지.

    혼돈의 군주가 이안 자신에게 원한다는 일은 또 무엇인지.

    ‘뿐만 아니라.’

    이안과 더불어 절대적인 시간을 되감을 수 있다는 존재.

    아니, 이안보다 먼저 크로노스를 다루어 많은 걸 이룬 존재.

    일컫기를 ‘눈먼 아버지’와 이안 본인의 관계에 대한 진실까지도.

    ‘그것들을 알아야 앞으로의 일이 더 수월해질 테니까.’

    계단을 오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거듭하면서.

    이안은 문득 자신의 양쪽 손을 바라봤다.

    마법으로 형체를 유지 중이기는 하나, 다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터.

    ‘점점 더 많아지겠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들이.’

    이 기나긴 여정의 끝에 닿을 때.

    과연 자신은 예전의 그 이안 페이지일까?

    아니면 전혀 다른, 뒤틀린 존재가 되어 있을까?

    쿵!

    여러 생각과 고민이 궁극적인 호기심에 닿는 순간.

    끼이이이이이……!

    계단의 끝자락을 가로막은 두 번째 문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 문은 마치 이안을 인식이라도 한 듯 저 스스로 열렸다.

    [왔군.]

    반쯤 열린 문 너머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여성의 것도 아니고, 남성의 것도 아닌 음성.

    스스로 혼돈의 군주라 칭하는 자의 읊조림이었다.

    [올림포스의 새로운 왕, 칼리두 와탕카.]

    그는 이안의 정체를 안다.

    그럼에도 칼리두 와탕카란 이름에 힘을 줬다.

    이는 아마도 이안을 향한 무언의 메시지이리라.

    예컨대 건너편에서 이안을 바라보는 또 다른 초월자.

    ‘공허의 군주’는 아직 이안의 정체를 모른다는 뜻이겠지.

    “……오랜만에 뵙습니다. 혼돈의 군주님. 그리고 처음 뵙겠습니다. 공허의 군주님.”

    빠르게 눈치챈 이안이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와 더불어 천천히 열리고 있던 흑요석 문이 완전히 열렸다.

    “칼리두 와탕카라고 합니다.”

    흑요석 문 너머에는 커다란.

    정말이지 커다란 타원형 탁자가 놓여있었다.

    탁자의 끝과 끝에는 각각 혼돈의 군주와 공허의 군주가 한쪽씩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 한가운데쯤 놓인 탁자가 바로 오늘 만찬의 손님, 칼리두 와탕카를 위한 자리인 것 같았다.

    [뭐야? 둘은 이미 구면이야?]

    [당연한 소리를, 올림포스 전당은 내 관할이지 않느냐?]

    [아스가르드 놈들은 도대체 뭘 한 거야? 쓸모 있는 놈들은 죄다 올림포스 놈들한테 빼앗기고……!]

    혼돈의 군주와 공허의 군주가 가볍게 입씨름을 했다.

    그 몇 마디만 들어도 두 초월자의 관계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앙숙.’

    그렇다. 딱 봐도 앙숙이다.

    둘도 없는 앙숙이 분명하다.

    길고 깊은 애증의 관계 말이다.

    “올림포스는 제가 선택했습니다.”

    [왜지? 뭐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나?]

    “인연은 딱히 없고, 그냥 발길이 닿았습니다.”

    [발길이 닿아?]

    “올림포스 신전 앞으로 말이지요.”

    […….]

    놀랍게도 반쯤 사실이다.

    실제로 당시 이안은 이 세계에 관한 이해도가 극히 낮았다.

    기껏해야 고향 땅을 침범했던 분석관의 기억 중 일부가 전부 아니던가?

    그 분석관이 올림포스 출신이었고, 덕분에 올림포스 신전으로 가는 길이 익숙했다.

    ‘그나저나 이 괴물은 혼돈의 군주와 달리 아예 얼굴 자체가 없군.’

    공허의 군주가 건넨 질문에 답을 하면서.

    이안은 그의 얼굴을 면밀히 살폈다.

    그 존재는 아무런 장식이나 문양 없이, 오직 눈구멍만 두 개 달린 무면 탈을 쓰고 있었는데, 특이한 점을 꼽자면 그 눈구멍 안쪽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공허의 군주인가?’

    시꺼먼 그림자가 가면처럼 일렁거리는 혼돈의 군주와는 다르다.

    그리고 그 다름은 비단 외형뿐만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자신의 정체를 모르는 점으로 보건대, 두 군주는 지향하는 바가 다를 가능성이 높다.

    [……어떤 놈인지는 나도 대충 들어서 알고는 있었는데,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골 때리는 놈이잖아? 이봐요, 혼돈 아저씨, 어디서 이런 꼴통을 구해온 거야?]

    [꼴통이야 많지. 그 꼴통 중에 이 친구만큼 재능 있는 친구가 없을 뿐이고.]

    [그러니까, 도대체 어떤 기연을 퍼다 줬기에 이런 놈이 만들어지느냐고?]

    [그런 거 없네. 그 친구는 순전히 제 능력으로 여기까지 왔으니까.]

    [지금 그 소릴 나더러 믿으라고 하는 거야?]

    [반대로 묻지. 우리가 돕는다고 일개 슈페리언을 제우스나 오딘보다 강한 지배자로 만들 수 있나? 그건 이미 오래전에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았어? 애당초 그런 육성이 가능했더라면 우리의 일이 훨씬 더 쉬워졌겠지. 아니 그런가? 내 오랜 벗이여.]

    [흐음, 그거야…….]

    공허의 군주가 말꼬리를 흐렸다.

    대화만 놓고 보면 공허의 군주가 혼돈의 군주보다 훨씬 더 어리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컨대 올림포스 전당의 아레스나 헤르메스처럼, 거의 불멸자나 다를 거 없는 여생을 살아왔음에도 생각하는 것과 행동거지가 매우 철부지 같은, 그런 느낌을 풍기는 부류 말이다.

    [……뭐, 좋아. 이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자고. 일단 앉아. 칼리두…… 뭐였지?]

    “칼리두 와탕카라고 합니다. 공허의 군주시여.”

    [그래, 그래. 칼리두 와탕카. 거기 앉아. 일단 셋이서 오순도순 식사나 한 끼 하자고.]

    그리 읊조리며 손뼉을 탁, 하고 치는 순간.

    [어때, 맛있겠지? 이쪽 세계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식재료들이야.]

    타원형의 식탁에 수백 가지 요리가 마법처럼 나타났다.

    그것들은 모두 갓 조리된 음식처럼 김이 모락모락 풍겼는데, 통 적응이 되지 않았던 슈페리어 차원의 음식과는 달랐다. 그도 그럴 게, 모두 이안의 고향에서 먹던 것과 비슷하잖아?

    꿀꺽……!

    그 음식들 앞에서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군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게 도대체 얼마 만에 보는 음식다운 음식이란 말인가?

    “……진수성찬이로군요.”

    [역시 그렇지? 하하, 이거 오랜만에 미식을 아는 지배자가 나타났잖아? 제우스나 오딘 같은 녀석들은 식습관이 개판이라서 그런지, 이렇게 차려줘도 통 먹지를 못했는데 말이야.]

    공허의 군주의 말이 옳다.

    그만큼 슈페리어 차원의 식습관은 무엇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어 있다.

    제우스와 오딘 같은 슈페리어 토착민이 이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 말은…….’

    칼리두 와탕카 행세를 하는 중인 이안에게도 적용이 되는 문제였다.

    하마터면 눈앞 진수성찬에 홀려 칼리두 와탕카라는 역할조차 망각해 버릴 뻔했다.

    ‘그럴 수는 없지.’

    아차, 싶은 이안이 포크와 나이프를 쥐었다.

    그러고는 마침내 시작된 식사 시간 내내 최대한 맛없게.

    더불어 굉장히 서툰 식사법으로 음식들을 입으로 가져갔다.

    모처럼 즐거운 순간이었으나, 겉으로 표를 내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맛이 없나 봐?]

    “……아뇨,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괜찮아. 입맛이 다를 수도 있지. 우린 엄연히 다른 종족이잖아?]

    이미 지배자들의 식습관을 봐왔기 때문일까?

    별거 아니라는 듯 넘어가는 공허의 군주였다.

    물론 약간의 실망감까지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는 자칭 혼돈의 전당 최고의 ‘미식가’였으니까.

    이 요리도 전부 공허의 군주가 직접 차린 상이거든.

    [이쯤 되면 슬슬 궁금하겠지? 왜 불러서 이런 이상한 밥이나 먹이는 건지 말이야.]

    “음, 그냥 인사 나누는 자리라고 생각했는데요. 올림포스의 새로운 왕이 되었으니까요.”

    [맞아. 처음에는 그럴 요량으로 불렀어. 너희끼리 왕이니 뭐니 해도, 결국 우리 밑에서 심부름이나 하는 심부름꾼 대장이잖아? 얼굴 한번 익혀둬야 일 시키기가 편하지. 안 그래?]

    각 전당의 수장은 그저 심부름꾼 대장일 뿐이다.

    평범한 올림포스, 아스가르드 일족이 들었다면 분노를 꾹 삼킬 모욕.

    물론 이안에게는 타격이 전혀 없었다. 애당초 그는 중간계에서 왔잖아?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그런데 있잖아. 막상 널 보니까 생각이 좀 바뀌었어.]

    원형 탁자에 턱을 궨 공허의 군주, 그 무면 탈의 존재가 이안을 빤히 쳐다봤다.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시선만큼은 확실히 느껴졌다.

    [너, 아까부터 왜 이상한 가면을 쓰고 있지?]

    “……가면 말씀이십니까?”

    갑자기 가면은 무슨 가면?

    가면은 그쪽이 쓰고 있잖아?

    [맞잖아? 그 슈페리어 족속들을 따라 한 얼굴도, 팔도, 몸뚱이 여기저기에 같잖은 눈속임이 가득한데, 설마 그깟 것들로 내 눈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그리 읊조린 공허의 군주가 이안에게 한쪽 팔을 쭉 뻗었다.

    그러자 곧 이안의 머리 위로 회색 빛기둥이 번쩍 내리꽂혔다.

    ‘……어?’

    그 갑작스러운 빛기둥에 이안은 감출 수 없는 당혹감을 느꼈다.

    당혹감의 원인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는데, 먼저 첫 번째 까닭은 이안의 정체를 숨겨줬던 변장 주술과 사라진 육체를 감추고자 펼쳐두었던 환영 마법이 깔끔하게 지워졌다는 점.

    ‘이건…… 설마……?’

    그리고 두 번째 까닭.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당혹감의 9할이 이쪽이거든.

    ‘……마법?’

    이안의 변장 기술과 환영 마법을 모조리 지워 버린 회색 빛기둥.

    그것은 마법사 이안 페이지로서 너무나도 익숙한 마법이었으니까.

    ‘캔슬레이션……?’

    일컫기를 캔슬레이션Cancellation.

    대상에게 걸린 모든 마법 효과를 무효화하는 상아탑 고유의 마법.

    과거 이안도 수차례 즐겨 썼던 그 술식의 힘이 어째서 지금.

    혼돈의 전당에서도 세 손가락 안으로 꼽히는 공허의 군주란 존재의 손끝에서 발동된단 말인가?

    ‘……그 말인즉.’

    저 괴물이.

    마법을 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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