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309화 (309/342)
  • 309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23화

    ‘대군주들의 만찬이라.’

    ‘대군주’라 함은 혼돈의 전당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혹은 지배하기 위하여 매 순간 알력다툼 중인 초월자들.

    예컨대 혼돈의 군주나 공허의 군주 따위를 지칭할 터.

    ‘불편한 자리에서 밥 한 끼 먹자 이건가?’

    슈페리어 역사상 처음으로 나타난 수행자 출신 최상급 지배자.

    하물며 올림포스 전당의 새로운 왕이 된 지배자 아니겠는가?

    혼돈의 군주는 그렇다 쳐도, 나머지가 굉장히 궁금하겠지.

    ‘내가 누구인지, 어떤 힘과 잠재력을 지녔는지, 목적은 무엇인지.’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포섭의 대상이 될 수도, 경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불편한 자리지, 밥 한 끼 가볍게 먹고 빠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다행이라면 지금 당장 부르는 게 아니라는 점.’

    비석 말미에 적힌 내용을 따르면 아직 여유가 꽤 있다.

    그때까지 이런저런 대비나 계획을 수렴할 수 있으리라.

    ‘그럼 우선 왕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착수하려고 했던 일부터 시작해 볼까?’

    이제 이안은 시계탑에서도 꽤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

    혼돈의 전당을 제외하고는 어디든 갈 수 있는 몸.

    그가 향한 곳은 바로 헤파이스토스 고유의 영역.

    거대한 공방 및 대장간으로 꾸며진 공간이었다.

    “헤파이스토스 님.”

    [오, 자네……! 아, 아니지. 왕께서 오셨소이까?]

    한창 담금질 중이었던 헤파이스토스가 읍하며 인사했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럴 수는 없지요. 어찌 왕이 되신 분께…….]

    “왕도 스승한테는 존대를 하는 법입니다.”

    [음……? 스승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 실은 그것 때문에 찾아뵌 겁니다.”

    잠시 말하기를 멈춘 이안이 대장간 이곳저곳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용광로 옆에 놓인 망치 한 자루를 들며 읊조렸다.

    “대장 기술을 좀 배워볼까 해서요.”

    [대장 기술을? 칼리두…… 아니, 이안 자네가?]

    “사실 예전부터 관심이 조금 있었거든요.”

    [그 말은 자네의 고향에서도…….]

    “네, 조금 배웠습니다.”

    물론 거짓말이다.

    이안은 대장 기술을 배운 적 없다.

    다만 보랏빛 별 너머에서 대장 기술을 배운 삶도 경험했다.

    물론 그리 대단한 삶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중간계 수준의 장인 정도?

    ‘하지만 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헤파이스토스에게 배운다면…….’

    거기서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을 터.

    ‘그리고 그 발전된 기술을 내 고향에 전수할 수 있겠지.’

    제아무리 올림포스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했다고 한들.

    혼돈의 전당을 제외한 모든 세력을 규합할 계획이라고 한들.

    마지막 순간까지 온전하게 믿을 수 있는 아군은 결국 고향뿐이다.

    고향의 힘을 키우는 것이 자신의 힘을 키우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거다.

    [갑자기 대장 기술을 배우고 싶은 이유라도 있나?]

    “앞서 말씀드렸듯 꾸준히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수행자 신분이었던지라 여유를 부릴 틈이 없었지요. 배우고 싶어도 어디 말 꺼낼 처지가 되어야 말이죠.”

    [헌데 이제는 그 여유라는 것이 생겼다?]

    “아무래도 수행자 시절보다는 훨씬 여유롭지 않겠습니까?”

    [그야 그렇겠지. 제우스 그 양반도 딱히 하는 일은 없어 보였거든.]

    이안의 뜻을 전해 들은 헤파이스토스가 수북이 자란 회색빛 털을 매만졌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안이 쥔 망치를 빼앗아 제자리에 두었다.

    전수해 주지 않겠다는 무언의 제스처일까?

    [……시간은 내가 호출할 때마다.]

    다시 한번 부탁을 해야 하는 찰나.

    헤파이스토스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기초부터 다시 익혀야 하니 망치 들 일은 당분간 없을 게야.]

    “그 말씀은…….”

    [왕이라고 봐줄 생각 없으니 각오 단단히 해놓도록. 아시겠는가?]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안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대장 기술을 전수해 달라는 부탁 말이다.

    “단단히 각오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스승님.”

    [좋아. 가서 기다리고 있어. 나도 간만에 받는 제자라, 준비가 좀 필요하거든.]

    “네, 알겠습니다. 편하실 때 언제든 기별해 주십시오. 그럼.”

    스승을 향한 예로 허리 숙인 이안이 헤파이스토스의 영역에서 빠져나왔다.

    이로써 고향 땅에 전파할 대장 기술은 어느 정도 그 물꼬를 튼 셈이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번에는 아예 시계탑을 빠져나왔다.

    더불어 최상급 지배자 고유의 권능인 차원 문으로 하여금 제우스가 소유했던.

    그러나 지금은 올림포스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한 이안의 소유가 된 모든 희귀광물 광산 및 농경 지대 등 수많은 사유지를 한 곳도 남김없이 순회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모든 곳에서 훌륭한 일꾼이 되어줄 감시자의 갈빗대도 함께였다.

    ‘여기서 수확된 모든 자원을 내 고향 땅으로 꾸준하게 제공한다. 예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대량의 자원이니, 분명 고향의 군사력과 기술 발전에 엄청난 도움이 될 거야.’

    그렇지 않아도 지금까지의 자원 제공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싶었거늘.

    왕이 되니 이런 장점이 있다. 제우스의 사유재산을 모조리 흡수해 버렸잖아?

    ‘자원뿐만이 아니다. 제우스의 보물창고 수백 개가 슈페리어 차원 곳곳에 숨겨져 있어.’

    그 옛날 프로메테우스의 보물 창고와는 수와 규모가 차원이 다르다.

    과연 올림포스의 우두머리로 오랜 세월 군림한 기득권의 정점다웠다.

    ‘모조리 챙겨둬야지. 나 말고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

    슈페리어 차원 교유의 여러 자원과 보물로 고향의 전력을 강화한다.

    수행자 시절부터 꾸준히 행해온 목적이 이제야 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고향 땅의 전력과 기술력은 이안이 알던 수준을 넘어섰으리라.

    하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겠지. 앞으로도 계속, 멈추지 않는 채로.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까? 내가 알던 그 모습이 남아 있기는 할까?’

    * * *

    “부유 장치 점검 완료!”

    “부유 장치 점검 완료!”

    “전방 갑판 이상 무!”

    “전방 갑판 이상 무!”

    “후방 갑판 이상 무!”

    “후방 갑판 이상 무!”

    병사와 기술자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바깥으로부터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린리버의 황제이며, 대 슈페리어 저항군 연합 총사령관 하이든 그린리버.

    어느덧 나이를 제법 먹었음에도 여전히 미남자인 그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딸깍, 딸깍, 딸깍.

    그는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이자 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그린리버의 초상화가 담긴 회중시계를 버릇처럼 열었다가, 닫았다가 하며 누군가에게 받은 편지를 반복적으로 읽어 내렸다.

    ‘……이안, 네가 오랫동안 밟고 있는 그 살얼음판으로 올리버 역시 떠났다. 다들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부디 잘 지내고 있기를, 제발 멀쩡하게 살아 있기를 바랄 뿐이야.’

    그 편지의 정체는 이안이 보낸 안부였다.

    여러 종류의 자원을 보내며 함께 동봉된 마지막 편지.

    이 편지를 끝으로 한동안 연락이 없으니, 걱정되는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하물며 황제의 호위기사 올리버 레이우드조차 슈페리어 차원으로 떠나지 않았던가?

    그 세월이 벌써 상당했으니, 밀려오는 쓸쓸함을 이런 식으로나마 달랠 수밖에 없으리라.

    ‘우린 언제쯤 다시, 온전하게 만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여전히 그 답을 찾을 수 없는 의문.

    황제 하이든의 생각이 얼마나 깊은 곳에서 표류했을까.

    “폐하, 합동훈련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부단장, 아니, 검공 올리버 레이우드가 자리를 비운 이후 그를 대신하여 단장의 자리에 오른 호위기사 폴 렌스가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에게 읍하며 보고했다.

    “음, 나가지.”

    회중시계와 편지를 책상 위에 고이 올려놓은 황제 하이든이 바깥으로 나섰다.

    그 바깥은 언뜻 보기에 배처럼 보였으나, 물이 아닌 하늘을 나는 비행선이었다.

    잡티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새하얀 구름, 적당히 부는 바람, 상쾌한 공기.

    바로 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비행 포격선’ 말이다.

    뚜걱, 뚜걱, 뚜걱…….

    흑요석을 포함한 여러 자원으로 완벽하게 업그레이드된 비행 포격선.

    그중에서도 황제가 친히 탑승하는 대장선의 전방 갑판 위에 올라선 하이든 그린리버.

    그가 응시하는 건너편 하늘에는 무려 수천 대의 포격선이 잘 훈련된 병사마냥 각 맞춰 도열한 채 제자리 비행을 유지하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비행 포격선 군단’이 따로 없으리라.

    [아아, 제군들, 들리는가?]

    그 웅장한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며.

    황제 하이든이 통신 수정구를 발동시켰다.

    모든 비행 포격선에 연결된 명령 하달 장치였다.

    [역사적인 첫 합동훈련이다. 비록 실전은 아니나,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이니만큼 긴장의 끈을 놓지 말도록. 나 또한 최전선의 병사로서 목숨 걸고 임할 터이니. 이상.]

    연설은 길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몇 마디에 담긴 무게는 엄청났다.

    역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 무소불위의 국력과 권력을 동시에 지닌 황제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인재들을 곁에 둔 하이든 그린리버가 목숨 걸고 임하겠단다.

    후방에서 모두를 독려하는 황제도, 지휘관도 아닌, 그저 최전선의 병사로서 싸우겠단다.

    전쟁을 겪어본 이라면 그 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황제가 함께 싸운다는 것이 병사들의 사기진작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실제로 죽은 자들과의 전쟁에서 최전방을 누볐던 하이든 그린리버의 말이라면 허풍조차 아니다. 그는 황태자였던 당시 두 자루의 붐 스틱을 양손에 쥔 채 누구보다 용감히 싸웠던 장본인 아니겠는가?

    “폐하, 아무리 그래도 최전선은 좀…….”

    단장 폴 렌스가 황제의 연설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아무리 훈련이어도, 아니, 훈련이기에 더더욱 위험하다.

    훈련은 곧 실전의 예습 아닌가? 훈련 내내 최전선에 선다면 결국 실제 전투에서도 최전선에 서야만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상당한 차질과 혼란을 야기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하지만.

    “내가 타고 있는 이 대장선, 공들여 건조한 건 알지? 다른 포격선보다 흑요석은 거의 다섯 배 이상 더 썼을 거고, 다른 부품이나 마법 각인도 전부 공들여놨지. 왜 그런 줄 알아?”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는 단 한 순간도 후방에 서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자신이 최전방에 서야 이 승률 낮은 싸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노라고 믿었다.

    과거 죽은 자들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경험했던, 황제 나름의 ‘필승전략’이었다.

    “나 한 명 안전하자고? 아니, 그럴 리가. 내가 탈 대장선이 최전방에서 든든하게 버텨줄 수 있게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버틸 수 있을 만큼 튼튼하게 만들어달라고 신신당부를 해놓았거든. 그래서 이리 공들여 건조한 거야. 헌데, 이런 대장선을 후방으로 뺀다? 그게 말이 돼?”

    “하, 하오나 폐하…….”

    “여러모로 낭비야. 그리고 폴, 자네도 알잖아? 나 이제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 아니라고. 이안이랑 올리버가 얼마나 강해졌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몇 방은 버틸 수 있을걸?”

    황제 하이든이 그리 읊조리며 자신이 입고 있는 특별한 흑요석 갑옷을 퉁, 하고 쳤다.

    마도 공학, 인공정령, 슈페리어 차원의 광물이 만나 탄생한 제국 기술력의 결정체 아닌가?

    이 전신 갑옷을 벗지 않는 한 절대로 허무하게 죽지는 않으리라, 하이든은 그리 믿었다.

    “그나저나, 우리 훈련 파트너 친구들은 언제 오는 거지? 약속 시간 넘지 않았나?”

    “아, 네, 그렇습니다. 약속 시각은 다 되었는데…….”

    바로 그 순간.

    “저, 저게 뭐야……?”

    “어디? 뭐가 나타났는데?”

    “저기 말이야! 저길 좀 보라고!”

    비행 포격선의 선원들로부터 동시다발적인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그들은 모두 한 곳을 바라보며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이었는데, 그 반응만 봐도 대충 무엇을 보고 저러는지 알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나타났나 보다.

    오늘 만나기로 약속한 ‘훈련 파트너’가.

    “……오, 마침 왔구나.”

    잘 훈련된 군대처럼 대열을 유지 중인 비행 포격선 군단의 반대편 하늘.

    그곳으로부터 또 다른 비행물체 수천 기가 구름을 가로지르며 나타났으니.

    “짐의 귀여운 조카, 그리고 훈련 파트너 친구들이.”

    그들은 바로 ‘리시스 라덴쥬’를 필두로 한 수천 마리 용 일족.

    더불어 리시스 라덴쥬의 커다란 머리 위에 우뚝 서 있는 여인.

    손끝으로 푸른색 로브의 후드를 붙잡은 그녀가 포격선을 응시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