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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311화 (31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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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25화

    ‘잘못 본 게 아니야. 이건 분명 마법이다. 마나의 흐름도 느껴졌어.’

    슈페리어의 언어에 담긴 힘도 아니다.

    저 공허의 군주라는 존재 특유의 권능도 아니다.

    이건 명백한 마법이다. 술식으로 발동하는 마법 말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안 페이지 본인이 그걸 모를 리가 없잖아?

    ‘인정하기는 싫지만, 저들 눈에 술식으로 부리는 마법이란 그저 열등한 중간계인들의 발악이나 다를 거 없다. 물론 압도적인 격이 뒷받침된다면 그 발악도 엄청난 힘을 발휘하긴 할 테지만, 어디까지나 저들로서는 아예 배울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할 거라는 뜻이야.’

    그런데 어찌 마법을 부린단 말인가?

    이그드라실의 아홉 세계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큼 초월적인 존재.

    중간계를 벌레 소굴 취급하는 지배자들 위에 군림하는 이들이 왜, 어째서, 무슨 이유로?

    ‘……알 길이 없군. 아직은.’

    조금 더 지켜보자.

    자연스레 알게 될 터.

    마음을 굳힌 이안이 말했다.

    “여러분께 숨길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냥 이쪽 세계로 넘어온 이후부터 항상 이런 모습이었던지라, 이러고 다니는 게 익숙해졌을 뿐이죠.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호오, 그래?]

    그런 이안의 반응에 공허의 군주가 미묘한 기운을 뿜었다.

    더불어 한참을 생각하는가 싶더니, 다시 이안에게 물었다.

    [물론 사과도 받기는 해야겠는데, 그보단 설명이 먼저 아니야?]

    “정확히 어떤 설명을 원하십니까? 무엇이든 해드리겠습니다.”

    [어째서 중간계인 따위가 여기에 있는지, 그것부터 들어야겠군.]

    “여러분, 혼돈의 전당과 똑같은 이유입니다.”

    [똑같은 이유?]

    “여러분께서도 이 세계의 토착민은 아니지 않습니까?”

    [……뭐?]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침략자이시죠. 힘으로 모두를 굴복시켰고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중간계에서 올라온 침략자이고, 올림포스 전당을 굴복시켰을 뿐입니다. 그게 답니다.”

    당당하다.

    참으로 당당하게 말한다.

    너희와 내가 다를 것이 무엇이냐고.

    우리는 결국 똑같은 침략자, 그중에서도 승리한 침략자일 뿐이라고.

    [똑같은 침략자라, 그거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네.]

    그 말에 일리가 있기 때문일까?

    공허의 군주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네 목적이 뭐지? 겨우 심부름꾼의 왕이 목적은 아닐 거 아니야?]

    “혼돈의 전당은 뚜렷한 목적을 갖고 슈페리어 차원을 침략하셨습니까?”

    [당연한 소리를, 목적 없는 침략자가 어디 있을까?]

    “그 목적이 무엇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묻는 거야 네놈 자유인데, 대답할 생각은 없어.]

    “그렇다면 저도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네놈은 대답을 해야 해.]

    그 순간 무면 탈의 양쪽 눈구멍이 번뜩거렸다.

    분명 눈이랄 게 없는데, 어디서 번뜩거리는 걸까?

    [나보다 약하니까.]

    쉽게 말해서, 대답하지 않으면 힘으로 그 대답을 듣겠다는 뜻이다.

    반대로 너는 내가 대답을 하지 않아도 어찌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명백한 힘의 차이에서 오는 자신감이니, 지금으로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목적을 말하라.

    어설픈 수작을 부렸다가는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

    잠시 말문을 멈춘 이안이 혼돈의 군주 쪽을 슬쩍 바라봤다.

    [어지간히 하지. 자네 관할 지배자도 아닌데.]

    그러자 서둘러 이안을 두둔하고 나서는 혼돈의 군주였다.

    역시 두 군주는 모든 것을 공유하는 존재가 아닌 것 같았다.

    [뭘 어지간히 해? 수상한 놈이잖아?]

    [올림포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 관할이네.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도 내 몫이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도 내 몫이지. 그 간단한 규칙을 잊었는가? 공허의 군주여?]

    [알지, 아는데……!]

    [알면 이쯤 해두게. 이미 자네 심부름꾼들한테 체면치레할 만큼은 되지 않았나?]

    혼돈의 군주는 알고 있었다.

    공허의 군주가 어째서 이안에게 지대한 관심을 두는지.

    그것은 단순히 호기심이나 경계심 따위가 아니다.

    평소 주변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 타입 아닌가?

    그런 이가 갑자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까닭.

    간단하다. 오딘에게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글쎄, 이걸로 될까? 오딘 그놈이 도통 만족을 모르는 놈이라서.]

    [만족 못 하면 방금처럼 윽박지르면 될 거 아닌가? 나보다 약한 놈이 어디서 감히 꼬박꼬박 말대답이느냐고, 이쯤 알아다 줬으면 입 다물고 돌아가서 심부름이나 기다리라고.]

    [이야, 우리 아저씨, 그거 다 경험담이지? 나보다 곱절은 더 권위적이잖아?]

    그리 말하면서도 순순히 이안에게 꽂혔던 관심을 거두는 공허의 군주였다.

    혼돈의 군주가 이만큼 감싸도 돈다는 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그래서 더 궁금하기는 한데, 일단 여기서는 한 걸음 물러남이 옳다.

    저 음흉한 늙은이, 한번 눈깔이 돌면 감당하기가 참 어렵거든.

    [정 그러면 질문 바꿔서 딱 하나만 더 물어볼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은 아닐 거야. 이건 그냥…… 내가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거든. 딱히 누구한테 전해줄 목적이 아니라.]

    “말씀하십시오. 제가 그 정도는 대답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이안이 직접 나섰다.

    초면부터 너무 척을 지는 것도 악수가 아닐까 싶은 판단 때문이었다.

    또한 지금은 혼돈의 군주가 아군처럼 보일지언정 나중 일은 또 모르는 거다.

    언제고 저 공허의 군주라는 초월자와 손을 잡는 날이 찾아올 수 있다는 뜻이다.

    [중간계의 벌레가 되도 않는 변장으로 슈페리언 행세를 하고 있으니, 그에 걸맞은 가명도 정했겠지. 칼리두 와탕카, 그 웃기지도 않은 이름이 그 가명일 거고. 내 말이 틀린가?]

    항상 느끼는 건데.

    가명을 잘못 고른 것 같다.

    전적으로 헤라클레스 책임이다.

    “……네, 맞습니다. 진짜 이름은 따로 있지요.”

    [그 이름이 뭐야? 그냥 궁금해서 그래. 궁금해서.]

    “제 본명은 이안 페이지, 이안 페이지라고 합니다.”

    [이안…… 페이지……?]

    그 이름을 잠시 곱씹었던 공허의 군주가 손뼉을 탁, 하고 쳤다.

    [아…… 아아! 너구나? 중간계의 변수!]

    중간계의 변수.

    아무래도 유명한 이름인가 보다.

    하기야, 평의회도 다 아는 이름 아닌가?

    문제는 어째서 변수로 지정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정확한 사유는 오직 한 명, 혼돈의 군주만이 알고 있었으니까.

    ‘하데스도 알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하데스 개인의 추측으로 알아낸 것이고.’

    처음부터 눈먼 아버지의 의중을 알고 있는 존재는 혼돈의 군주뿐.

    그렇다면 지금 눈앞에 저 또 다른 군주, 공허의 군주는 어떨까?

    과연 절대적인 시간 ‘크로노스’와 관련되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이야, 이러면 좀 앞뒤가 맞네. 그 짧은 시간에 자력으로 심부름꾼 대장 자리를 꿰차는 중간계인이라, 그건 확실히 변수지. 아주 치명적인 변수이고말고! 음, 음, 그랬군, 그랬어.]

    ……어라?

    설마 이 존재도 모르는 건가?

    이안이 어째서 눈먼 아버지로부터 중간계의 변수로 지목되었는지를?

    [가만, 근데 왜 이놈이 아직까지 살아 있는 거야? 제힘으로 심부름꾼 대장 자리에 오른 거야 뭐, 지배자 놈들이 무능해서 그런 거니 그렇다 쳐도, 혼돈 아저씨, 아저씨는 이놈 죽여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아버지께서 제거하라 명령까지 내린 놈인데.]

    [아버지께서 생각을 바꾸셨네.]

    [왜?]

    [나도 모르지. 그분의 뜻을 어찌 헤아리겠는가?]

    [그냥 아무런 생각이 없어서 읽히지도 않는 건 아니고?]

    [좋을 대로 생각하도록.]

    [흐음…….]

    시원치 않은 대답에 공허의 군주가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시선을 거두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이거야 원, 아버지를 독대할 수가 없으니 알 길이 없네. 부디 아버지 이름 팔아서 본인 하고 싶은 대로 이 일 저 일 꾸미고 다니는 게 아니길 바랄게. 아저씨.]

    [걱정할 필요 없네. 그럴 생각 추호도 없으니.]

    [믿어야지 별수 있나? 어휴, 이럴 줄 알았으면 적당히 까불걸. 아저씨처럼 납작 엎드려 살았으면 이 지경이 되진 않았을 텐데 말이야. 독대 못 하는 놈은 서러워서 살겠나, 어디?]

    고개를 휘휘 저은 공허의 군주가 차원 문을 열었다.

    자신의 시계탑 상층 개인 영역으로 통하는 문이었다.

    [아무튼 거 누구냐, 이안 페이지?]

    “하문하십시오. 공허의 군주시여.”

    [나중에 또 보자고. 아무래도 자주 볼 것 같거든.]

    공허의 군주와의 만남은 거기까지였다.

    질척거림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존재.

    그가 떠나자 이번에는 혼돈의 군주가 입을 열었다.

    [조심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놈인지 모르니까.]

    글쎄올시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니, 당신이 더 그런 것 같은데?

    “명심하겠습니다.”

    물론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어찌 되었든 지금 당장은 혼돈의 군주가 중요하다.

    눈먼 아버지라는 궁극의 적과 가장 가까운 존재 아닌가?

    [표정을 보아하니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인데.]

    “몇 가지 있긴 합니다. 군주께 들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요.”

    [그래? 허면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자리를 옮기도록 하지.]

    혼돈의 군주의 차원 문을 타고 넘어간 곳은 그와 처음 만났던 지하 연구실.

    분류하자면 시계탑 하층에서도 최하층에 자리 잡은 혼돈의 군주만의 영역이었다.

    [자, 이제 편히 말해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지?]

    이것으로 혼돈의 군주와는 세 번째 독대.

    그가 권한 소파에 앉은 이안이 입술을 뗐다.

    [자, 이제 편히 말해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지?]

    이것으로 혼돈의 군주와는 세 번째 독대.

    그가 권한 소파에 앉은 이안이 입술을 뗐다.

    “슬슬 들어야겠습니다.”

    [무엇을?]

    “저한테 바라는 것이 있다고 하셨죠?”

    [그랬지.]

    “이제 말씀해 주셔야겠습니다. 바라는 게 뭔지.”

    더는 지체할 필요가 없다.

    최강의 지배자로 거듭난 이상.

    다음 순번은 당연히 혼돈의 전당이다.

    이들이야말로 모든 문제의 원인이잖아?

    “그걸 알아야 앞으로 무엇을 할지 정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 순번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의뭉스러운 존재, 혼돈의 군주는 중요하다.

    목적이 무엇인지, 어째서 이안을 계속 살려두는 건지.

    적인지, 아군인지, 아직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미지의 존재.

    혼돈의 전당을 무너뜨리는 것은, 그를 ‘규정’하는 것부터 시작되리라.

    [이미 말해줬을 텐데? 어련히 알아서 알게 될 거라고.]

    “처음 만났을 때, 마지막에 해주셨던 그 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선결조건만 완성되면 그 말에 담긴 진의가 무엇인지 자연스레…….]

    “여전히 모르겠고, 그 선결조건이란 것을 완성시킬 생각도 없습니다. 이쯤 되면 아시겠지만 제가 성질이 좀 급해서요. 그러니 더 답답하게 굴지 마시고 이쯤에서 중간계산부터 치릅시다. 정 안 되겠거든 최소한 그 선결조건이 뭔지나 제대로 알려주시든가.”

    […….]

    그 말에 혼돈의 군주가 침묵했다.

    무겁되 길지 않은 침묵이었다.

    [……공허의 군주에게 대답할 수 없었던 네 목적, 그것은 아마 네 고향, 다섯 번째 중간계의 영원하고도 완벽한 평화겠지. 그 목적으로 가는 길에 놓인 모든 장애물을 깨부술 생각일 것이고. 그 장애물이 시계탑이라면 시계탑을, 나라면 나를, 저 꼭대기의 눈먼 아버지라면 그분조차 깨부수고 나아가는 것, 그것이 지금 너를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일 것이다. 내 말이 틀린가?]

    “정확히 보셨습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뭐?

    마찬가지라고?

    갑자기 무슨 헛소리일까?

    [영원하고도 완벽한 평화.]

    “……?”

    [나 역시 그것을 바란다. 이안 페이지, 어쩌면 너보다 더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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