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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20화 (22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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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34화

    ‘다행히 멍청이는 아니로군.’

    뒤통수를 맞았음에도 분노 대신 안도하길 택한 프로메테우스였다.

    ‘이러한 판단이야말로 정말 내 기억을 읽고 이해했다는 증거겠지.’

    물론 저 중간계인의 성향이 타고나기를 기회주의적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놈의 목적이니까.

    ‘놈이 슈페리어의 몰락으로 가는 길에 꼭 필요한 존재라면, 내 뒤통수쯤이야 얼마든지 때려도 좋다.’

    순도 100%의 솔직한 심정.

    그때였다.

    [끌고 가라.]

    그런 프로메테우스의 심중을 전혀 모르는 제우스가 명령했다.

    [죄인에 관한 처분은 평의회를 소집하여 의논할 터. 그전까지는 시계탑 지하 감옥에 수감하도록.]

    제우스의 명령에 헤파이스토스가 프로메테우스를 일으켜 세웠다.

    재료가 귀해 잘 쓰이지 않는 ‘불카누스의 사슬’로 포박한 뒤였다.

    [또한 세 번째 과업의 수행자, 이름이 칼리두 와탕카라고 했던가?]

    제우스가 이번에는 이안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는 이미 이안 페이지, 아니, 칼리두 와탕카에 관하여 무언가 알고 있는 눈치였다.

    “예, 제우스 님.”

    [그렇지 않아도 최근 들어 우리 올림포스 전당에 그대의 이름이 여러 번 오르내리더군. 티탄의 땅에 숨어든 애물단지 한 마리를 박멸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지?]

    “그저 아프로디테 님께서 행하시는 일에 미끼가 되었을 뿐입니다.”

    [오히려 그대 머리에서 나온 계획이었고, 아프로디테가 도구였다고 들었는데, 내 말이 틀렸는가?]

    “그건…….”

    [방금 보여준 판단력과 실행력으로 미루어보건대, 에오스를 척살한 그 계획은 전적으로 그대의 작품이 맞는 것 같군. 아프로디테에게는 그럴 만한 책략 머리가 없으니.]

    “…….”

    이렇게 나오니 할 말이 없네.

    이쯤에서 인정하고 넘겨야겠지.

    “……아프로디테 님께 제안을 드린 건 사실입니다. 물론 아프로디테 님께서 주요한 역할을 하셨지요.”

    [그렇겠지. 그대의 힘으로 옛 지배자를 처리할 순 없었을 테니까.]

    제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이 읽히지 않는 건조한 표정.

    그 앞에 선 이안은 그저 정체가 탄로 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여타 최상급 지배자들보다도 월등히 강한 지배자다. 시간을 되돌릴 여유조차 없을지도 몰라.’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에 따르자면 그랬다. 정말이지 강한, 비유가 아니라 표현 그대로 정말 이안을 벌레 죽이듯이 죽일 수 있는 존재.

    올림포스 전당의 우두머리.

    그러니 집중해야 한다.

    들키는 순간 끝이다.

    [해서 더욱 흥미가 생기는군.]

    흥미가 생긴단다.

    자세히 봐서 좋을 거 없는데.

    이안이 애써 긴장한 기색을 숨기며 제우스의 발언에 집중했다.

    [지배자의 힘과 권능은 격을 허락받음으로써 충분히 누릴 수 있다. 허나 수행자의 그 계획성, 판단력, 실행력 따위는 날 때부터 타고나는 법이지. 여기서 그대와 같은 이는 좀처럼 보기 드물다.]

    보기 드물다.

    단순한 칭찬일까?

    아니면 뼈를 숨긴 말일까?

    “과찬이십니다.”

    [과찬일지 아닐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그대가 과업을 멈추지만 않는다면 증명의 기회가 여러 번 남아 있을 터.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도록 하마. 칼리두 와탕카.]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우스 님.”

    [음.]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번개로 형성된 차원문 너머로 제우스가 넘어갔고, 아레스와 헤파이스토스 역시 프로메테우스를 붙든 채 그 뒤를 따라갔으니 말이다.

    [네놈은 복귀하는 대로 신전부터 들르도록 해라. 세 번째 과업에 대한 판결을 내려주도록 할 터이니.]

    그 막간을 이용한 헤파이스토스의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끝으로.

    파스스스스……!

    제우스의 차원문이 사라졌다.

    문제는 아프로디테의 차원문과 달리 이안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애당초 그럴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거의 확실하다.

    “쯧, 쪼잔하기는.”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잘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에 따라 몇 가지 확인할 일이 생겼는데, 지금 하면 되겠지.

    ‘다만, 그전에.’

    아까부터 궁금했다.

    바위산 꼭대기의 감시자, 올드 가드가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워낙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 탓에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했다.

    ‘문제는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건데, 설마 또 앞길을 막진 않겠지?’

    다행스럽게도 코카서스 산악지대의 의지는 조용했다. 프로메테우스에게 압도당한 여파가 큰가 보다.

    ‘방해만 없다면야 금방이지.’

    이안이 속도를 냈다.

    처음 바위산으로 향할 때보다 수십 배는 더 빠르고 수월한 등반.

    그 끝에 도착한 바위산 꼭대기에는 프로메테우스 대신 감시자 올드 가드가 떡하니 앉아 있었다.

    “저를 보자고 하셨다던데.”

    이안이 말을 걸었다.

    그러자 뻥 뚫려 있던 감시자의 눈에서 백색 안광이 피어올랐다.

    [기다리고 있었소. 수행자.]

    이안은 프로메테우스의 기억 덕분에 감시자가 구사하는 티탄족 언어를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시다시피 약간의 문제가 생겨서 말입니다.”

    [사과할 거 없소. 오히려 제우스가 움직인 덕에 연결이 잠깐 끊어졌으니, 지금이야말로 편하게 대화할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소이까?]

    바위산 감시자의 말투는 올드 가드란 칭호답게 다소 올드했다.

    비록 언어가 다르긴 하나, 그 뉘앙스로만 따진다면 이안의 고향에서도 나이깨나 잡순 어르신분들이 구사할 법한 말투였으니까.

    ‘그러고 보니 프로메테우스 이 양반, 통역을 너무 과격하게 했잖아?’

    프로메테우스가 통역했던 감시자의 발언과 실제 발언 간에는 약간의 차이가 존재했으니, 실제로는 굉장히 정중한 어조였다는 점이다.

    “그리 말씀해 주신다면야…… 하고 싶은 말씀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시간이 없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소. 그대가 날 쓰러뜨릴 때 부렸던 그 주술, 도대체 무엇이오?]

    감시자를 쓰러뜨릴 때 부렸던 주술이라 함은 턴 언데드를 말하는 것일 터. 어째서 그걸 묻는 걸까?

    [나는 저주에 걸렸소.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내 이름이 무엇이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 채 꼭두각시로 살아가는 저주 말이오.]

    제우스의 꼭두각시.

    이름 없는 감시자, 올드 가드.

    그가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헌데 그대의 그 기이한 주술, 나를 단숨에 뼛가루로 만들어버린 그 주술은 달랐소. 그간 수없이 많은 수행자를 죽였고, 또 그들의 손에 죽어봤지만, 단 한 번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소이다.]

    “어떤 느낌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영멸, 되살아나지 않고 영원한 안식에 빠질 것만 같은, 그런 달콤한 기분이 들더군. 그대의 주술에 파괴당하는 순간 말이오.]

    과거 장인들이 그러했듯.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이들은 죽음에 대한 열망이 매우 강하다.

    아마 이 감시자도 그러할 터.

    [해서 묻는 것이오. 도대체 어떤 주술인지, 어쩌면 내게 영원한 안식을 선사해 줄 답이 아닐까 해서.]

    진정한 죽음을 맞이하는 느낌.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는 감시자.

    장인들이 생각나서 그럴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방법이 없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방금 그 주술이 전부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치였죠. 그럼에도 되살아나셨다는 건…… 저로서도 방법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쪽 세계에서 이안은 힘을 아낄 수 없다. 그렇게 생겨 먹은 세계다.

    죄인을 지키는 감시자조차 이안의 방어막이 거울처럼 보일 만큼 손쉽게 깨부수는 이런 세계에서 무얼 아끼고 숨길 수 있겠는가?

    [그런가…….]

    풀이 죽은 목소리.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무언가 생각난 듯 읊조리는 감시자였다.

    [……만약에 말이오. 그대가 모든 과업을 완수하고 지배자의 격을 얻는다면, 지금과는 완벽히 다른 존재가 된다면, 그때는 어떻겠소?]

    지금보다 더 강해진다면 어떨까?

    그때도 되살아날 수 있을까?

    일리가 있는 질문이다.

    “글쎄요. 거기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는데, 장담할 수도 없고요.”

    [그럼 내 부탁 한 가지만 드리겠소. 이 부탁을 들어준다면, 들어주겠노라 약속만 해준다면, 내가 지금 당장 드릴 수 있는 최선의 보상을 드리겠소. 선불로 말이오.]

    약속만 하면 보상을 선불로?

    손해가 없는 장사다. 들어보자.

    “들어보고 판단하죠.”

    [훗날 그대가 지배자의 격을 얻는다면, 부디 날 찾아와 한 번만 더 그 주술을 걸어줄 수 있겠소?]

    죽여 달라는 것도 아니고 한 번만 더 시도해 달란다.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닌데, 문제는 제우스다.

    “가능하면 시도야 해드릴 수 있는데, 어렵지 않겠습니까? 지금 당신은 제우스 님의 사유재산이고, 저는 그 제우스 님의 휘하로 들어가기 위해서 과업을 수행 중인 몸인데.”

    [가능하면 시도는 할 수 있다, 그 마음이면 충분하오. 나로서는 어차피 더 잃을 것도 없으니 말이오.]

    보아하니 작금의 감시자에게 필요한 것은 죽음이 아닌 희망인 것 같았다. 언젠가 영원한 안식에 빠질 수도 있다는 희망 말이다.

    지금까지는 그 희망조차 존재하지 않았으니, 그걸 줄 수 있는 이안에게 기대를 거는 것이리라.

    ‘확실히 손해 볼 장사는 아니군.’

    판단을 끝낸 이안이 말했다.

    물론 이대로 수락하진 않았다.

    확실히 말해두는 편이 좋겠지.

    “……뭐, 좋습니다. 제우스 님께서 허락해 주시든, 또 다른 명분이 생기든, 그밖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가능해진다면, 그리고 저한테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 일이라면, 시도쯤이야 한 번 해드리도록 하죠.”

    [오오……! 그거면 충분하오. 고맙소. 정말 고맙소이다. 수행자여!]

    뼈밖에 남지 않은 앙상한 손으로 이안의 손을 꼭 잡는 감시자였다.

    인제 보니 그냥 노인네 같네.

    아까는 죽자고 달려들더니만.

    [자, 여기, 이걸 받아가시오. 앞으로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 상당한 도움이 될 거요.]

    고마움을 표한 감시자가 제 갈비뼈 중 일부를 뚝 떼어 꼭 잡고 있던 이안의 손바닥에 쥐여줬다.

    자신의 육체 일부를 떼어주는 행위가 썩 유쾌하진 않았으나, 이안은 꾹 참고 그 갈빗대를 살폈다.

    “이게…… 뭡니까?”

    [그 뼈를 땅에 심어보시겠소?]

    뼈를 땅에?

    가만, 이거 혹시?

    ‘용아병 스파르토이처럼?’

    과거 드래곤 일족의 권속 중 한 명이었던 용아병 스파르토이 역시 비슷한 능력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때의 기억으로 미루어보건대.

    이 뼈를 심는다면 아마도…….

    우득! 우득! 우드득……!

    과연.

    용아병 스파르토이와 같다.

    갈빗대를 심은 곳에서 또 다른 감시자가 자라났다. 물론 그 감시자는 본체와 달리 안광을 내뿜지 않았으며, 소리를 내지도 못했다.

    단지.

    [이 갈빗대에서 빚어진 아이들은 모두 수행자를 주인처럼 따를 것이오. 그뿐만 아니라 땅에 심은 채로 계속 두면 그 머릿수가 무한히 늘어나니, 이만하면 수행자의 앞날에 유의미한 도움이 되지 않겠소?]

    나쁘지 않다.

    아무런 책임과 대가도 없이 얻은 보상치고 상당한 값어치 아닌가?

    “요긴하게 쓸 수 있겠군요.”

    불쾌함을 털어낸 이안이 서둘러 올드 가드의 뼈를 파헤쳐 꺼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수확.

    기꺼운 마음으로 챙기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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