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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21화 (22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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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35화

    코카서스 산악지대를 벗어난 이안의 다음번 목적지는 슈페리어의 심장이 아닌 다른 곳이었다.

    ‘기억을 넘겨받은 김에, 챙길 수 있는 건 알뜰하게 다 챙겨놓자고.’

    프로메테우스의 기억 속에는 수없이 많은 비밀창고가 존재했다.

    대부분 거리가 멀어 당장 다녀오기 부담스러울 지경이었으나, 그중 한 곳은 비교적 가까운 거리였다.

    ‘늑대의 땅.’

    이안이 처음 슈페리어 차원으로 넘어왔을 때 도착했던 커다란 땅.

    추방자들과 헤라클레스를 만나기도 했던 바로 그 땅에 프로메테우스의 비밀창고 중 한 곳이 있었다.

    ‘내가 쓸 만한 물건도 몇 가지 있고, 무엇보다 공양물로 쓸 귀중품들이 많다. 챙겨서 나쁠 건 없지.’

    사실상 주인을 잃어버린 창고다.

    어차피 그곳에 평생 잠들어 있을 금은보화라면, 그 주인이 바라던 바를 이루는 과정에 쓰이는 편이 더 좋지 않겠는가?

    ‘여긴가?’

    한참을 비행했던 이안이 도착한 곳은 늑대의 땅 북서부 끝자락.

    기괴하리만큼 커다란 풀과 나무가 빼곡하게 우거진 협곡이었다.

    ‘분명 이쯤에…….’

    겉보기로는 평범한 동굴 앞.

    거기 멈춰선 이안이 쪼그리고 앉아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적었다.

    그것은 명백한 티탄의 언어.

    예컨대 마법진에 가까웠다.

    [엘 카마쉬.]

    엘 카마쉬.

    열려라, 라는 뜻의 티탄어.

    그러자 바닥에 적어놓았던 티탄족 마법진이 빛을 뿜으며 평범해 보였던 동굴과 공명하기 시작했다.

    쿠궁! 쿵! 쿠구구구구구……!

    격렬한 진동.

    그 진동으로부터 느껴졌다.

    동굴 안 구조가 바뀌고 있음이.

    더는 평범한 동굴이 아닌, 한때 최상급 지배자였던 프로메테우스의 커다란 비밀창고로 바뀌었음을.

    쿵!

    무언가 끼워 맞춰지는 소리를 끝으로 모든 진동과 변화가 멈췄다.

    이제 들어가면 된다.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이 그렇게 속삭여줬다.

    ‘라이트.’

    마침내 이안이 사방을 밝혀주는 라이트 주문과 함께 프로메테우스의 비밀창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첨벙, 첨벙!

    바닥에 고인 구정물이 이안의 가죽 신발 밑창을 적시길 여러 번.

    이윽고 눈앞에 범상치 않은 무언가가 나타났으니, 그것은 동굴 끝 널따란 공터에 세워진 비석이었다.

    ‘두 번째 봉인 주술.’

    평범한 동굴로 위장되었던 입구가 첫 번째 봉인 주술이라면, 이 비석은 두 번째 봉인 주술이었다.

    ‘비석에 걸린 주술을 풀면…….’

    이안이 한쪽 검지에 마나를 집중시켰다. 그러고는 비석의 글귀에 티탄어 몇 마디를 추가로 새겼다.

    우우우우우우웅!

    두 번째 공명.

    그러자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방이 막혀 끝인 줄 알았던 비석 일대에 수많은 통로가 나타났으니, 이쯤 되면 어디로 가야 할지조차 고민이 될 지경이었지만…….

    ‘이건 함정이다.’

    프로메테우스에게는 별거 아닌.

    그러나 이안에게는 몹시 위험한.

    그런 함정을 이안이 제 손으로 직접 발동시켰다. 도대체 왜?

    간단하다. 별수 없거든.

    ‘이 함정을 끝까지 버텨야 진짜 비밀창고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

    쿠구구구구구구구……!

    때마침 사방에서 기척이 들렸다.

    수많은 무언가가 사방에 생긴 통로 끝으로부터 달려드는 소리였다.

    “이야.”

    느껴지는 기척만 수천 마리.

    하물며 그 개개인으로부터 전해져오는 기운조차 평범하지 않았다.

    “많이도 오나 보네.”

    자칫 목숨까지 걸어야 할 상황임에도 이안은 여유로웠다. 누가 봐도 믿는 구석이 있는 눈치였다.

    ‘이걸 받지 않았다면 나중에 왔겠지. 하지만 지금은 해볼 만하다.’

    이안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감시자한테 받은 갈빗대였다.

    쿵! 쿵! 쿵!

    마나를 머금은 주먹으로 동굴 바닥을 으스러뜨린 이안이 서둘러 감시자의 갈빗대를 심어놓았다.

    우득, 우득, 우드득……!

    그러자 바위산 꼭대기에서 봤던 감시자와 똑같은 모습을 한 해골 기사 한 마리가 땅속에서 기어 올라와 이안을 향해 무릎 꿇었다.

    “지금 무릎 꿇을 때가 아니야.”

    [……?]

    “아, 혹시 티탄어로 말해야 하나?”

    […….]

    이거,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이 아니었더라면 하등 쓸모없을 뻔했다.

    [저쪽 입구를 막아. 지원군 보내줄 테니까 이쪽으로 넘어오려는 놈이라면 무엇이든 베어도 좋아.]

    [……!]

    역시 티탄어였다.

    이제야 제대로 알아들은 ‘감시자의 모조품’이 사방에 뚫려 있는 입구 중 가까운 곳으로 달려갔다.

    감시자는 본디 티탄 출신이라고 하였으니, 감시자의 모조품 역시 기본적으로 티탄족에 가까울 터.

    우득, 우드득, 우드드득……!

    그러는 사이 또 다른 감시자의 모조품이 바닥에서 기어 올라왔다.

    한 마리, 그리고 또 한 마리.

    심지어 점점 빨라졌다.

    우드득! 우득! 우드드드득……!

    감지자의 설명이 실로 정확했다.

    심어놓은 뼈를 꺼내지 않는 이상 무한히 나타날 거란 설명 말이다.

    ‘기대 이상이잖아?’

    덕분에 수월해졌다.

    프로메테우스가 심어놓은 함정.

    그 공세로부터 살아남는 것이.

    [침입자다! 침입자가 나타났다!]

    [티탄의 보물을 사수하라! 가이아 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더러운 도굴꾼 놈들!]

    [모조리 쓸어버려!]

    통로 끝으로부터 달려든 무언가의 정체는 이안조차 쉬이 규정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그도 그럴 게, 저걸 대체 무어라 불러야 할까?

    ‘빛으로 이루어진…… 인간?’

    새하얀 빛이 인간의 형태를 이루었다. 심지어 그들이 손에 쥐고 있는 창칼과 방패 또한 빛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빛으로만 이루어진 수천 명의 군대가 티탄어를 울부짖으며 몰려들었다.

    [……전투 준비.]

    혼자였다면 쉽지 않았을 거다.

    애당초 격을 더 쌓고 왔겠지.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쪽에도 못지않은 군대가 있다.

    ‘무한으로 늘어나는 군대가.’

    물론 감시자의 모조품 군대에게 모든 것을 맡길 생각은 없었다.

    이안 역시 전력의 한 축.

    그가 주문을 펼쳤다.

    ‘정예군 한 마리 추가해 보자고.’

    상대가 인해전술로 나온다.

    그럼 이쪽도 맞불을 놓는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머릿수에는 머릿수!

    ‘소환술, 늑대 정령.’

    이안이 불러낸 첫 번째 정예병은 과거 모그리안 대영주를 찾을 때 불러내기도 했던 늑대 정령이었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와, 이 정도는 나도 처음인데.’

    과거에는 웬 강아지 같은 녀석이 나왔다. 힘을 되찾고부터는 굉장히 커다란 늑대 정령이 나오곤 했다.

    그러나 작금의 늑대 정령은 어딘가 남달라도 확실히 남달랐다.

    이를 무어라 표현하면 좋을까?

    ‘……신수?’

    그래, 신수神獸.

    이건 신수에 가깝다.

    “아우우우우우우……!”

    이안의 격이 올라간 만큼 불러낸 정령의 격까지 덩달아 높아져 가히 신수에 가까운 늑대 정령이 나타났으니, 그 은빛 털을 찰랑거리는 늑대가 이안 앞에 조아렸다.

    명령을 내려달라는 뜻이었다.

    “대충 알겠지? 뭐가 나타나든 모조리 물어뜯어. 부숴버려도 좋고.”

    모조리 물어뜯고 부숴라.

    그 간단한 명령이면 충분했다.

    모름지기 신수에 가까워졌다 함은 덩치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지능과 자아 역시 발달되었다는 뜻이니까.

    “아우우우우우우우 - !”

    늑대정령의 울부짖음은 곧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되었다.

    빛으로 이루어진 군대와 뼈로 이루어진 군대, 그리고 짐승보다 신수에 가까운 늑대가 섞인 전투.

    이 격렬한 전투의 현장에 목숨이 하나뿐인 이는 오직 이안뿐이었다.

    * * *

    마침내.

    치열했던 전투가 끝이 났다.

    승리는 이안과 감시자의 모조품.

    그리고 늑대 정령, 이안이 이름 붙이길 ‘펜리르’의 승리로 돌아갔다.

    쿠궁! 쿠구구구구구구……!

    그와 동시에 프로메테우스의 보물창고로 연결된 통로가 열렸다.

    이제 더 이상 함정 따위는 없다.

    “고생 많았어. 펜리르.”

    “아우우! 아우우우우우 - !”

    어째서 그 이름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아무래도 프로메테우스의 기억 때문인 것 같은데, 왠지 그런 이름을 써야 할 것 같았다.

    “또 필요하면 부를 테니까, 그때까지는 돌아가서 쉬고 있어.”

    “아웅……!”

    이안의 명령 한마디에 먼지처럼 사라지는 늑대 정령 펜리르였다.

    [너희도.]

    [……!]

    어디 그뿐일까? 감시자 군단 역시 갈빗대를 회수하기 무섭게 뼛가루가 되어 폭삭 내려앉았다.

    이래저래 유용한 물건이다.

    “자, 그럼.”

    이제 진짜 도굴꾼이 되어볼까?

    ‘그러고 보니 오랜만이네.’

    과거 옛 상아탑의 터에서 용언서와 보석을 털 때 느꼈던 감정.

    이안이 명명하길 ‘도굴꾼의 마음’을 설마 또 느끼게 될 줄이야.

    오래 살고 볼 일이리라.

    ‘스케일이 좀 커졌지만 말이야.’

    마침내 닿은 동굴 가장 깊숙한 곳에는 이안의 표현처럼 ‘스케일이 남다른’ 금은보화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참고로 말하는데, 산처럼 쌓였다 함은 절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정말 산처럼 쌓였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다 챙겨가고 싶긴 한데, 그러기에는 내 아공간 주머니에도 한계가 있으니…….’

    결국 옥석을 가려야 할 터.

    다행히 이안에게는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이 있다. 그 말인즉 이 많은 보물 중에서도 특별한 가치가 담긴 보물을 가려낼 수 있다는 뜻.

    ‘예컨대…….’

    이안이 산처럼 쌓인 보물 더미에서 무언가를 찾았다. 그것은 언뜻 보기에 주먹만 한 황금 덩어리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과일’이었다.

    ‘황금 사과.’

    황금 사과.

    그 대단한 시계탑의 지배자들조차 사족을 못 쓰는 마성의 과일.

    ‘젊음을 유지해 주는 과일.’

    지배자들의 수명은 무한하다.

    그러나 영원히 젊은 것은 아니다.

    수명은 무한하되, 외형은 늙어가니, 누군가는 젊고 누군가는 백발이 성성한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물론 외모가 늙는다고 힘과 권능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서, 그냥 그대로 늙어가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젊은 모습을 원하지.’

    대표적으로 올림포스 전당의 우두머리치고는 아레스만큼 젊어 보였던 제우스를 꼽을 수 있을 터.

    ‘제우스뿐만 아니라 여러 지배자한테 이 사과는 젊은 모습을 유지해 줄 필수요소와도 같다.’

    이거 몇 개 챙겨두면 일부 지배자들의 공양물로 안성맞춤이리라.

    ‘나중에 기회 되면 우리 어머니도 한 개 챙겨드려야겠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많이 늙은 거 같다며 걱정하셨는데, 그게 벌써 그쪽 기준으로는 몇 년 전일 거 아니야?’

    물론 여전히 아름다우시지만,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거의 대다수 지성체들의 공통점일 터.

    기회 되면 꼭 드리고 싶다.

    ‘사과는 다 챙겼고, 다음은…….’

    황금 사과를 모조리 챙긴 이안이 곧바로 다음 목표를 찾아 헤맸다.

    황금 사과가 공양물, 혹은 지배자들의 환심을 살 선물용도라면, 이번에는 자신을 위한 도구였다.

    ‘이게 좋겠군.’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기억을 읽어야 했던 긴박함 속에서도 이거다, 싶었던 보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마도서’로서, 마침 이곳 늑대의 땅 비밀창고에 보관되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네크로노미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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