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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19화 (219/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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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33화

    [……헌데, 그 미물은 왜 달고 있는 거지? 듣자 하니 우리 쪽 과업을 수행 중인 슈페리언이던데.]

    마치 기절한 듯 프로메테우스의 목덜미에 얹혀 덩굴로 묶여 있는 이안을 살핀 제우스가 물었다.

    [아, 이거?]

    이는 나름의 눈속임이었다.

    기절해서 납치를 당한 뭐 그런 콘셉트 말이다. 비록 모양새가 조금 빠지기는 하나,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지 않겠는가?

    [에오스를 죽였다더군. 아프로디테와 작당해서 말이야. 티탄의 땅에 던져주면 좋아하지 않겠어?]

    [해서, 그놈을 재물 삼아 티탄의 땅으로 기어 들어갈 계획이었나?]

    [수틀리면 그렇게 하려고.]

    [설마 그 짧은 순간에 세 번째 배신까지 준비해 놓을 줄이야. 과연 그 분야의 지배자다워.]

    제우스가 손뼉을 치며 비꼬았다.

    아무래도 둘 사이에는 프로메테우스가 저지른 죄 말고도 깊은 감정의 골이 파여 있는 듯 보였다.

    [근데, 제우스 네놈은 또 조무래기들을 달고 왔구먼. 언제쯤 되면 나와 일대일로 겨뤄줄 생각이지?]

    [그 어떤 차원의 신이 한낱 범죄자 따위를 제 손으로 잡아들이는가? 저마다 역할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야. 그대의 역할은 죄인이고.]

    [하……!]

    또 나왔다.

    그놈의 신 타령.

    저놈들은 정말 자기네들이 신인 줄 안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다.

    [신이 다 얼어 죽었군.]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건가?]

    [아, 물론 있기야 있겠지. 눈먼 아버지야말로 신에 가장 가까운 존재일 테고. 헌데 말이다. 제우스, 너는 절대 신이 될 수 없어.]

    [이유는?]

    [너만큼 치졸하고 음흉한 신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거든. 그 어떤 전승에도, 하다못해 중간계의 신화 속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유형이라서.]

    [그런가?]

    [주로 신보단 교활하고 속 좁은 권력자로 나오지. 주인공한테 모가지가 날아가는 역할이기도 해.]

    배신의 지배자, 속 좁은 권력자.

    서로를 향한 진심 어린 평가들.

    [거참, 우리가 뭔 중간계 벌레들도 아니고 언제까지 입으로 싸울 겁니까? 적당히 좀 하자고요.]

    결국 기다리다 지친 아레스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구시렁거렸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이번에야말로 두 번 다시 풀지 못할 사슬로 묶어 타르타로스의 가장 깊숙한 감옥으로 던져 버리겠습니다.]

    반면 헤파이토스는 충직한 부하처럼 제우스에게 읍하며 말했다.

    두 지배자가 보여준 묘한 차이는 아마도 아들과 부하의 차이리라.

    [아레스, 헤파이스토스, 나 제우스가 그대들에게 명한다. 죄인 프로메테우스를 내 앞에 꿇리도록.]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야말로 최강자들의 격돌.

    [여기서 무릎을 꿇는 건.]

    또다시 양손에 칼날 한 쌍을 만들어낸 프로메테우스의 시퍼런 안광이 붉은색으로 변해버렸다.

    동급의 지배자, 그것도 셋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각오와 준비가 필요한 법, 붉게 물든 안광이야말로 가진바 모든 권능을 전투력에 집중시켰다는 증거였다.

    [너다. 제우스.]

    * * *

    ‘이쪽도 딱히 제정신은 아니네.’

    기억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안 안에서 프로메테우스의 평가는 ‘제정신이 아니다’ 쪽으로 굳어져 갔다.

    ‘자신의 고향과 동료들이 몰락하는 미래를 보고도 알리기는커녕 실현되길 바라기에 난 또 무슨 대단한 원한이라도 있나 했더니만.’

    그런 것이 아니다.

    원한 따위는 전혀 없다.

    단지 싫을 뿐이다. 영겁의 세월 속에서 차곡차곡 쌓아 올린 동족혐오와 환멸감이 도를 넘어버렸다.

    ‘더군다나 그 몰락에 자신까지 포함되기를 바라는, 어떻게 보자면 정말 순수하게 미친 존재로군.’

    만약 모든 것이 몰락하는 가운데 본인만 멀쩡하길 바랐다면 그것은 가짜 광기다. 하지만 기억 속에서 묘사된 프로메테우스는 자기 자신도 함께 소멸하기를 바랐다.

    진심으로 말이다.

    이러면 인정할 수밖에 없잖아?

    ‘내가 예지능력으로 본 미래의 단서임을 파악하자마자 목숨 걸고 바위산을 탈출할 만큼, 해서 기억을 읽어낼 시간까지 벌어줄 만큼 자신의 고향이 몰락하기를 바란다.’

    프로메테우스는 그런 존재였다.

    이안의 입장에서는 쉬이 이해할 수 없는, 그럼에도 왠지 모르게 이해가 될 것 같은 그런 존재였다.

    ‘좀 더 살펴볼까.’

    메모리 이터는 예민한 마법이다.

    주문을 펼치는 술자뿐만 아니라 당하는 이의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다행히 프로메테우스는 기억을 읽히는 것에 완전히 순응한 상태였으니, 이전까지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기억을 열람할 수 있었다.

    ‘이건 기회다. 이 동족 혐오자 안에 담긴 지식과 정보들, 어떻게든 전부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해.’

    전부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이미 단면만 보았음에도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파져 오기 시작했거든.

    하지만 이제는 멈출 수도 없다.

    끝장을 본다. 이 자리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그로부터 얼마 후.

    마치 망망대해와도 같은 기억과 정보의 바다 한가운데 퐁당 빠져 표류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번쩍!

    마침내 눈을 감고 있었던 이안이 다시금 푸른색 안광을 번쩍거렸다.

    메모리 이터 주문에 심취하여 반쯤 나갔던 정신이 돌아온 거다.

    ‘……여긴?’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여전히 프로메테우스의 목덜미와 어깨 부근에 얹혀 있는 신세였다.

    다만, 몇 가지 차이가 보인다면.

    ‘아레스, 헤파이스토스……?’

    먼저 투쟁의 지배자 아레스와 불과 대장장이의 지배자 헤파이스토스가 보인다는 점이었는데, 이는 프로메테우스의 마지막 기억을 통하여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기 저 존재가…….’

    올림포스 전당의 우두머리.

    조금 전 읽은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에 따르길, 12과업 중 열두 번째 과업의 계시자로서 이안을 마지막으로 시험할 최상급 지배자.

    ‘……제우스.’

    번개의 지배자 제우스.

    그 존재는 처음 나타난 그 자리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반면 아레스와 헤파이스토스는 한눈에 봐도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였는데, 전투를 시작한 지 벌써 만 하루가 넘어갔기 때문이리라.

    [이봐, 죄수 아저씨. 우리 그냥 이쯤 하는 게 어떨까? 그쪽 때문에 내 할 일도 못 하고 여기까지 불려 와서 이게 다 뭐야?]

    창대를 쥔 아레스가 말했다.

    [어차피 우리 아버지까지 나서면 죄수 아저씨는 죽어. 아니, 죽을 만큼 괴롭힌 다음에 나락으로 떨어뜨리겠지.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우리 아버지, 정상은 아니거든.]

    그는 처음 왔을 때부터 쭉 일관되게 짜증이 난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좋게 끝내자고. 일단 어깨에 있는 그 친구부터 내려놓고 항복해. 그럼 내가 아버지께 잘 말씀드려서 타르타로스 행만큼은 어떻게든 막아줄 테니까. 어때?]

    아레스는 아까 전부터.

    아니, 처음 프로메테우스 앞을 가로막았을 때부터 쭉 놈의 어깨에 얹혀 있는 과업의 수행자, 칼리두 와탕카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간만에 괜찮은 심부름꾼이란 말이야. 괜히 노인네들 싸움에 휘말려서 죽게 만들 수는 없지.’

    아레스는 수행자가 마음에 들었다.

    심부름 잘하는 심부름꾼은 어딜 가나 예쁨을 받기 마련일 터.

    ‘여차하면 내 직속 심부름꾼으로 키워볼까도 생각 중이었는데, 하필 이런 문제에 휘말려 가지고…….’

    비록 처음엔 아프로디테와 작당하고 에오스를 죽였다기에 분노했지만, 알고 보니 그녀는 자신을 이용하고자 했고, 본인 역시 여흥에 불과하였으니 금세 잊어버렸다.

    [제안에 모순이 있네.]

    [응? 모순은 무슨 모순?]

    [과연 네가 봐도 정상이 아닌 네 아비가 아들 말이라고 들어줄까?]

    [그, 그건…….]

    [차라리 네가 물러나라. 아무리 정상이 아닌 아비라지만, 그래도 제 아들을 죽이진 않을 터이니.]

    회유가 통하지 않는 상대.

    결국 싸워서 쓰러뜨릴 수밖에.

    [그럼 피차 어떻게 되든 원망은 하지 맙시다. 난 솔직히 죄수 아저씨한테 악감정 없거든. 알지?]

    한숨이 절로 나온 아레스가 창대를 고쳐 잡았다. 함께 싸운 헤파이스토스 역시 망치를 움켜쥐었다.

    이제 어떻게든 끝내야 할 시간.

    제우스의 표정이 좋지 않다.

    ‘……어쩌면 기회일지도.’

    한편.

    눈앞에 모든 상황을 파악한 이안의 두뇌가 재빠르게 굴러갔다.

    그는 바위산에서 탈출하기 전 프로메테우스가 남긴 말을, 어떤 상황에 부닥치든 본연의 목적대로 움직이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나에게 호감을 보인 아레스와 세 번째 과업의 계시자 헤파이스토스, 무엇보다 올림포스 전당의 우두머리가 한자리에 모였다.’

    바꿔 말하자면, 이는 곧 기회다.

    아레스와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고, 세 번째 과업의 계시자에게도 호감을 줄 수 있으며, 올림포스 전당의 우두머리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말이다.

    ‘하지만 무슨 수로?’

    사실 어찌할지는 이미 정했다.

    다만 혹시라도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을 뿐.

    어째서 그런 고민을 했느냐고?

    간단하다. 뒤통수를 쳐야 하거든.

    ‘프로메테우스의 뒤통수를.’

    물론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프로메테우스의 기억 속에서 그라는 존재를 완벽히 이해했으니까.

    ‘내가 기회를 잡길 바라겠지. 그 누구보다, 심지어 나 자신보다도.’

    이안 페이지를 위해서?

    그럴 리가, 단지 자신이 본 미래가 실현될 수만 있다면, 조금이나마 현실에 가까워질 수만 있다면.

    프로메테우스는 그깟 뒤통수, 수천 번을 맞아도 행복할 수 있다.

    오히려 그조차 계시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겠지.

    ‘시작하자.’

    이 무식한 괴물들이 두 번째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특히 저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지배자, 제우스가 참전하기 전에 두각을 나타낸다.

    어떻게? 바로 이렇게.

    ‘혹한의 감옥.’

    숨죽이고 있던 이안이 상대방을 강력한 얼음 속에 속박하는 마법.

    ‘혹한의 감옥’을 펼쳤다.

    대상은 프로메테우스.

    극심한 환멸감으로 슈페리어 차원의 몰락을 바라는 존재였다.

    콰득, 콰득, 콰드드드드득……!

    이안의 손이 닿은 목덜미를 중심으로 마나가 잔뜩 담긴 얼음이 프로메테우스의 온몸을 휘감았다.

    [……!]

    비록 상대는 지쳤을지언정 최상급 지배자의 힘을 갖고 있기에 간단히 저항할 수 있겠지만, 아주 짧은 순간의 멈칫거림이면 충분했다.

    거기서부터는 이안이 아닌, 전적으로 비슷한 ‘격’을 갖춘 최상급 지배자들의 영역이었으니까.

    [오케이, 여기까지.]

    찰나의 순간.

    이안이 만들어준 빈틈을 놓치지 않은 아레스가 프로메테우스의 목덜미에 황금빛 창날을 겨누었다.

    [힘 그만 뺍시다. 아저씨를 내 손으로 죽이고 싶진 않으니까. 그래도 옛날부터 봐온 정이 있잖아?]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져서일까?

    잠시 말문을 멈췄던 프로메테우스가 이내 피식 웃었다.

    그 웃음 속에서 명백한 만족감이 느껴졌다.

    [잘했어. 칼리두 와탕카.]

    물론 다른 이들한테는 허탈함이 섞인 웃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 그저 상황이 끝났음에 만족한 아레스가 이안, 아니, 칼리두 와탕카에게 오른쪽 눈을 찡긋거렸다.

    [역시 쓸모가 많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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